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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김형태 2020. 03. 10
조회수 2128 추천수 0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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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천주교 미사는 사제의 선창에 따라 모든 참례자들이 이를 따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전체이신 당신을 향해 개체들이 드리는 이 탄원은 한 번이 아니고 세 번 반복됩니다.


이 간절한 기도를 통해 내가 내다하는 오만에서 깨어나 불쌍한 제 주제를 파악하는 그만큼 우리는 전체이신 당신께 더 가까이 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날씨가 조금만 싸늘해져도 길거리 모든 이들이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요즘 코로나 19가 유행하면서 거리는 온통 흰 마스크로 가득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끔찍이도 자기를 위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그 발버둥을 보면서 존재의 측은함을 느낍니다. 생물학적으로 개체들의 삶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먹이활동과 짝짓기 활동. 내가 살기 위해서는 쌀이며 고기며 남의 생명을 먹어야 하고, 나를 영속시키기 위해서는 짝짓기 경쟁에서 승리해 내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른 개체의 희생을 전제로 하니 존재 자체가 이고 불쌍한 신세입니다.


이 불쌍한 신세를 벗어나는 길은 개체의 숙명인 이기심을 최대한 버리는 거라고 모든 종교는 가르칩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다른 개체를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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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종교인 중에는 사랑과 자비라는 근본 가르침은 잊어먹고, 사랑과 자비를 그 시대에 맞게 구현하는 방편에 불과한 계율이나 제도를 절대화해서 제 형제들을 단죄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저나 나나 다같이 불쌍한 개체들인 처지에 말입니다.

 

최근 차별금지의 여러 사유 중에 성적 취향을 포함시키는 법안에 대해 일부 개신교에서 동성애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면서 극구 반대를 하고 있고 정치인들은 유권자들 표를 의식해서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십계명이나 불교의 다섯 가지 계율은 살인, 도둑질, 간음을 죄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수만년 전 집단생활을 할 때 먹이활동과 짝짓기 영역 다툼으로 상대 부족을 죽이는 건 일상사였을 테니 살인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그 시절에는 수렵 채취한 것을 네 것, 내 것 없이 다 같이 나누어 먹었으니 도둑질이라는 개념이 있을 리 없고, 원시 모계사회에서 간음죄가 있을 리 없습니다. 살인, 도둑질, 간음은 1만년전 농경생활로 사유재산제가 생기면서 비로소 십계명이나 5계로 종교적 단죄 목록에 오르게 된 것이고, 근본은 그 시대 상황에서 사랑과 자비의 가르침을 구현하는 방편으로 이런 행위들을 금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거대 금융자본들이 이상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적 규모에서 없는 사람들 돈을 빼앗아 가고,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결과적으로 집 없는 사람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털어갑니다. 이는 쟝발장이 교회 은촛대를 훔쳐 가는 절도죄보다 몇 만배 더 끔찍한 범죄입니다. 지금의 결혼제도가 바뀌어 모두 혼자 살게 된다면 간음이란 개념이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지난 111일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주관하는 제9회 이돈명인권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이 수상을 했는데 우연히도 그 대표 어머니와 축사를 한 성소수자 청년들이 모두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이돈명-.jpg » 이돈명인권상 수상자들과 기념촬영한 천주교인권위원회위원장 김형태 변호사(맨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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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의 남편 소주라고 자신을 소개한 30대 청년의 축사내용은 이랬습니다. “저는 한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저희 어머니는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항상 기도하시고 노력하시는 가톨릭 신자십니다. 그래서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수상이 정말 저에게는 감동이자 특별한 것 같습니다. 한때 저에게 저의 성 정체성이 죄이자 병이라고 했던 성직자들이 있어서 저는 신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저희 어머니도 한동안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셨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천주교 단체에서 격려를 받은 것에 대해 엄청 감동을 하는 거였습니다. 아마 천주교의 이름으로, 단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 주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남을 먹어야 내가 살 수 있고, 내가 너보다 옳다고 생각해야 겨우 이 한 세상을 살아낼 수 있고, 흰 마스크 쓰고 중국 유학생들 학교에 못 돌아오게 해야 내 한 몸 보존할 수 있으니 너나 나나 다들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스승님들 가르침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이기심을 버리고 또 다른 인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 일입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글은  <공동선 2020. 3, 4월호>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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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법무법인 덕수의 대표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과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평소 영성과 깨달음, 뇌과학 등을 탐구해오다 종교를 넘은 영성잡지인 <공동선>을 2002년 창간해 발행인으로 있다.
이메일 : dorda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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