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법인 스님의 주례사

법인 스님 2012. 07. 02
조회수 14101 추천수 0


결혼-전통결혼-.jpg

전통혼례를 치르는 신랑 신부    사진 <한겨레> 자료




 지망없이 행복한 예비 신랑, 원민 군에게


 결혼식을 임진년 7월 8일 거제도에서 한다구.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는, 축하인사를 들떼놓고(꼭바로 집어 말하지 않고) ‘뭐 그렇게 험난한 고행의 길을 가려하느냐’며 역설적으로 건넨 기억이 있네. 이 뜻깊고 특별한 날에 자네에게 줄 선물을 톺아보며(샅샅이 더듬어 가면서 살피며) 고민했었다네. 축의금, 다구, 책, 그림 등 많은 것을 생각해보았지만 그리 마땅치가 않더라구. 내 마음을 담은 그 무엇을 주고 싶은데...... 그래서 자네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니, 지금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더군. 그래서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걸맞은 의미를 얹어주는 선물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문득 떠오른 게《유마경》의 말씀이었네. 《유마경》〈불국품〉은 대략 다음과 같은 요지로 보살의 길을 말하고 있다네.


 중생의 국토야말로 보살이 추구하는 부처님 나라이다. 허공에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우리들의 평화와 행복의 이상세계는 중생이라는 삶터를 떠나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불국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정직한 마음씀이 불국토이다. 자기 삶을 정화하고 성숙시키는 수행이 불국토이다. 그리고 비움과 나눔, 자기 삶의 질서를 세우는 일, 선행을 실천하는 일, 인내하고 온유한 일상의 삶, 자비심의 실천이 불국토이다.


  잘 알다시피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 거사는 세속의 사람이네. 세속에 살지만 욕망과 번뇌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맑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재가불자이지.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보살이 아프다’고 하며 큰 연민과 자애로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다양한 방편행을 몸소 실천하는 대승보살이라네. 

 

 원민 군.

  세속은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희비와 고락을 함께 겪으면서 살아가는 삶터라네. 다시 말해 중생의 국토인 게지. 그러기에 안락과 행복은 희비와 고락이 함께 있는 중생의 삶터에서 씨 뿌리고 꽃 피우며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라네. 안락과 행복은 그저 애틋한 감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겠지? 서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네. 그렇다면 모듬살이(사회생활)의 가장 근원을 이루는 가정이야말로 수행과 보살행을 실천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터이지. 세속에서 그러한 삶을 이루어낸 분이 바로 유마 거사라네. 아, 자네와 동행하는 벗이 김현혜 님이라고 했던가. 김원민과 김현혜는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유마의 삶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우리 이웃을 위하는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네. 

  

 그래서 유마 거사의 뜻을 나의 주례사에 담았다네.(이 주례사는 다만 지면에만 발표되네) 여섯 개의 시와 더불어 그 시의 말미에 내 생각을 덧붙였네. 이 새김꺼리가 드팀없는(틈이 생기거나 틀리는 일 없이, 흔들림이 없는) 사랑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의 삶을 옹골지게 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법인스님-.jpg  

법인 스님




   첫째 마당

   인연 - 인생의 참된 가치는 만남에 있습니다. 


      한 사발 정화수에 새벽별이 눈을 뜨면 

      전생의 꿈길을 밟고 내게로 오시는 이

      종소리 하늘과 땅을 열어 풀꽃 세상 피웁니다. 


      그리움 빗장을 열고 한 우주를 맞이합니다. 

      긴 세월 뿌리 깊이 싹을 틔운 바람 하나 

      우리는 한 그루 소나무, 생명입니다 영원입니다. 


  오늘 이 시각 여기에, 오롯한 사랑으로 서 있는 두 사람은 여러 생의 소중한 인연이 다시 만나 한솔(부부)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은 결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옷깃 한 번 스쳐도 삼천 생의 인연이라 했으니 한솔의 인연은 그 어떤 인연보다도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인생의 전 과정은 만남, 그 자체입니다. 서로의 마음과 가치, 서로의 이상과 노력이 개성과 조화를 이루어 만날 때, 두 사람은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로 한 세상을 열어갈 것입니다. 



둘째 마당

사랑 - 사랑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내 눈빛 가는 길에 어느 누가 서 있는가 

내 마음에 비친 그대 누구의 얼굴인가 

사랑은 이심전심으로 한 줄 시를 쓰는 일 


내 안의 나를 비워 너에게로 가는 길에는 

땡볕 아린 한낮에도 갈대꽃이 눈부시고 

한겨울 매운바람에도 매화향기 뿜어나리 


  사랑은 참마음으로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감동시키는 종소리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참마음 본래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소설《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은, 혼란한 이념의 갈등 속에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그 어떤 이념과 제도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진리에 대한 믿음과 갈구는 모든 지혜와 사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길은 단순 소박한 마음에 있습니다. 진실을 사랑하고 선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가꾸는 일이 바로 사랑입니다. 



셋째 마당

노동 - 일 속에 진정한 사랑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피와 땀을 받을지니 

이 밥의 무게를 알면 사는 일이 경건하리 

풀과 별, 향기나는 정신도 밥을 먹고 꽃핍니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는 일은 손발의 놀림 

보아라, 몸을 깨워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우리네 서로의 얼굴, 기쁨입니다 자유입니다. 


  사랑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바로 노동에 있습니다. 인생과 사랑은 어설픈 관념의 유희가 아니며, 허영으로 치장한 낭만이 아닙니다. 밥을 먹고 돈 버는 일에 엄숙해야 합니다. 흔히들 정신은 고귀한 것이며 물질은 하천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건강한 정신에서 생산되는 모든 밥과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모든 일상의 생활이 진리 그 자체이며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손은 추하고 일하는 손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일을 단순한 밥벌이로 치부한다면 일과 사랑, 일과 행복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땀 흘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참사랑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결혼식체험행사 2009년-.jpg

지난 2009년 서울 중구에서 열린 결혼체험행사에서 결혼식을 치러보는 젊은이들  사진 <한겨레> 자료



넷째 마당

생활의 계율 - 일상의 작은 마음씀과 몸가짐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손길 하나에도 기쁨과 슬픔이 묻어나고 

말 한마디에도 가시 돋고 꽃이 피니 

몸 마음 모두를 낮추면 걸리는 일 없으리니 


  사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구체적이고 작은 실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한 알의 씨알 속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의미는 곧 일상의 작은 실천을 소중히 할 때 전 인생이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일상의 마음씨갈(마음을 쓰는 태도나 바탕)을 소홀히 합니다. 그러기에 늘 언행을 진솔하고 품위 있게 가꾸어야 합니다. 

 

진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눈과 귀는 늘 열려 있어야 하며, 늘 겸허한 마음으로 몸을 낮출 때 서로가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따뜻한 손길 부드러운 말 한마디 나누는 한솔은 애초름한(웅숭깊게 새뜻한 맛이 있는) 향기가 되어 멀리 퍼지고, 정성스럽고 온화한 얼굴을 마주하는 한솔은 하늘의 별을 따서 꽃밭을 만듭니다.



다섯째 마당

더불어 즐겁게(與樂) - 사람과 자연, 모두와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흙은 위안이다 생명의 뿌리 내림 

물과 안개와 바람, 역사가 숨을 쉬며 

우리도 그와 더불어 한 세상을 건너간다 


사람은 위안이다 생명의 어우러짐 

사랑, 사랑 바다에 노래가 가득하다 

그렇지, 꽃밭에는 꽃들이, 여러 꽃들이 모여 사노라 


  이 세상은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자연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과 행복은 돌서더릿길(돌이 많이 깔린 길) 삶에서 고립을 가져오고 급기야 나와 이웃 모두를 불행하게 합니다. 항상 양가 부모와 친척 친구를 자식을 대하는 어미의 부드럽고 환한 얼굴로 사랑하십시오. 참사랑의 메아리가 퍼져나갈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감성을 두 사람은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여섯째 마당.

문화 -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 생활 속의 예술입니다. 


늦가을 다사로운 노을빛이 마음 흔드니 

한적한 들길 따라 물매화 보러 가자는 

그러한 사내의 가슴은 두고두고 음악일 것이다. 


봄햇살 고요로이 뜨락에 내려오면 

연두빛 녹차에다 청매화를 띄우는 

그러한 아낙의 가슴은 두고두고 향기일 것이다. 


  옛날 중국의 ‘운’이라는 여인은 해질 무렵 연꽃이 봉오리를 접으려 할 때, 그 연꽃 속에 찻잎을 넣고 다음 날 연꽃이 피어나면, 연꽃향기 베인 차를 내어 남편과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살아가는 일에 힘이 들고 여유가 없다할지라도, 집안을 가꾸고 대화하고 여가를 즐기는 생활의 멋을 가꾸어 갈 때 인생은 더욱 풍요롭습니다. 아무리 바쁠지라도 한 생각만 깊게 가지고 한 걸음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소박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생활이 멋이 되는 아름다운 한솔이 되기를 바랍니다. 


덧끼움말 -  결혼식 날 서울에서 정기법회가 있어 가지는 못한다네. 결고운 비단 위에 꽃을 더하듯, 내 마음을 담은 이 글이 자네 부부의 앞날에 돋되는(점점 좋은 데로 변하여 나아지는) 행복한 삶의 씨앗이 된다면, 내게는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그 많은 고무신을 누가 빛나게 닦았을까그 많은 고무신을 누가 빛나게 닦았을까

    법인 스님 | 2018. 08. 01

    세간의 지인들이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사연인즉 종업원들 눈치 보느라 속이 상해 장사를 못 해먹겠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조금 좋은 조건이 있으면 말미도 주지 않고 떠난다고 한다. 기분이 상하다 싶으면 하루종일 까칠한 분위기를 만들어...

  • 직선과 곡선의 차이직선과 곡선의 차이

    법인 스님 | 2018. 07. 11

    벗들과 직선의 차탁에서 차를 마시면 서로가 다소 긴장한다.

  • 사는 즐거움, 죽는 즐거움사는 즐거움, 죽는 즐거움

    법인 스님 | 2018. 06. 13

    ‘죽음의 즐거움’이라니! 생과 사가 본디 경계가 없고 뜬구름과 같이 실체가 없다는 선언은 이미 진부하다. 문득 ‘삶의 즐거움’이 발목을 잡는다.

  • 나에게 이런 사람 있는가나에게 이런 사람 있는가

    법인 스님 | 2018. 06. 04

    슬프다. 선생이시여, 42년의 깊은 우정을 잊지 말고 저 세상에서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읍시다.

  • 천박한 사람, 고귀한 사람천박한 사람, 고귀한 사람

    법인 스님 | 2018. 05. 17

    돈의 힘을 믿고 사람이 사람에게 표정과 말로 폭력을 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