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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길희성 2014. 03. 09
조회수 10059 추천수 0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요즘 한중일 3국(북한을 포함하면 4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국제정치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느끼는 것 같다. 나 역시 요즈음 무언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슬슬 든다. 살날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무언가 큰 비극적 사건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다. 


이 불안감의 진원지는 역시 이웃나라 일본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우경화를 향해 미친 듯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우익 세력이 노리는 일차적 목표는 현 평화헌법을 고쳐서 일본을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내가 일본인이었어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전쟁을 <안 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진 나라여야만 한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바로 이 점에서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의심과 우려를 사고 있다. 세계 평화를 여러 번 깬 '전과' 기록을 가진 전범국가의 낙인을 아직 깨끗이 지워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물리적 힘은 있지만 전쟁을 안 할 도덕적 능력은 없는 매우 위험한 국가라는 의구심을 주변국들로부터 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구심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망언이다. 진심어린 사과를 해도 시원치 않는 마당에, 범죄의 역사를 아예 부정해버리려고 하니 누가 일본을 전쟁 안 할 수 있는 나라로 신뢰하겠는가?


일본우익sbs스페셜.jpg

*출처 : SBS스페셜


서방 그리스도교 사상의 초석을 놓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논하면서, 우리 인간은 본래 죄를 지을 수 있고(posse peccare) 안 지을 수도 있는(posse non peccare)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은 죄를 너무 많이 짓다 보니 이러한 자유를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자유의지가 죄의 사슬에 얽매어서 현실적으로 우리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non posse non peccare, unable not to sin) 버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초자연적 은총의 도움 없이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간에 대한 그의 지독한 비관론이 여기서 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비관론에 찬동하지 않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도 수용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선과 악 자체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은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선택할 때 선이지, 만약 우리가 원천적으로 악을 행할 수 없도록 봉쇄된 존재라면 선도 불가능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해도 선을 행할 자유 내지 능력이 조금도 없다면 더 이상 비판이나 정죄의 대상이 아니다. 선도 악도 그에게는 무의미하다. 우리가 자유의지가 없는 동물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고 물을 수도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세계 사람들에게 전쟁을 안 할 능력이 없는 나라처럼 보인다. 나는 물론 일본이 완전히 그런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글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반성할 줄 모르는 우익세력과 그들의 망동을 제어할만한 시민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위험한 나라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기 전에 먼저 전쟁 안 할 능력이 없는 나라라는 국제사회의 불신을 불식해야만 한다.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혐한시위.jpg


일본을 잘 아는 분들 가운데는, 지금 일본에 불고 있는 광풍이 일시적인 것이며, 일본에도 균형을 잡을 세력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참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얼마 전에 산케이 신문의 한국 특파원으로 잘 알려진 구로다라는 사람이 우리 한국인의 아픈 곳을 찌르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야기인즉, 한국은 자기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열등감이 많은 나라이며,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징징거리는 근본원인도 여기에 있다는 식의 논조였다. 일리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지적하지 않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한 번도 자기 자신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한경험이 없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의 눈에 한국인들은 거칠고 저돌적인 사람들로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고, 또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폭발성이 강한 저돌성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치열한 투쟁을 통해 자기 손으로 민주화를 쟁취하게 만들었다.


지금 일본의 우경화 행보가 매우 위험스럽고 불길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수 양심적인 지성인을 제외하고는 일본사회가 대중적 저항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 번화가에서 버젓이 한국인을 혐오하는 혐한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일본인을 혐오하는 시위 - 가 벌어진다는 뉴스는 나의 과문인지는 몰라도 들은 적이 없다. '혐일시위'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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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동서양 종교와 철학을 넘다드는 통찰력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서울대에서 철학을 미국 예일대에서 신학을,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서강대 명예교수. 한완상 박사 등과 대안교회인 새길교회를 이끌었고, 최근엔 사재를 털어 강화도에 고전을 읽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도를 찾는 공부방’이란 뜻의 심도(cafe.daum.net/simdohaksa)학사를
열었다.
이메일 : heesu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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