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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26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4-3. 何以故? 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

4-3.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리라.

[강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 이미 先秦時代에 불교와 무관하게 성립한 중국의 지혜의 書인 ‘노자’ 제7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러하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몸을 뒤로 하기에/ 그 몸이 앞서고/ 몸을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한다./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여기서 말하는 “無私”는 곧 불교의 “無我”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진정하게 無私하면 곧 그 私를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역설이 여기 숨어있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成私하기 위해서 無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成私는 無私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身先”이란 “後其身”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그 몸이 앞서는 것이다. “身先”이라했지, “先身”이라 하지 않았다. “先身”의 先은 身을 목적어로 갖는 타동사이다. “身先”의 先은 身이라는 주어에 붙는 자동사일 뿐이다. “不住於相”에도 복덕은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하게 우리가 “不住相”할 때에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즉 여기서 보살운동은 無我의 도덕성을 윤회와 결부시켜 논의하는데, 그 인과는 우리가 말하는 세속적 인과관계는 아닌 것이다. 王弼은 그의 명저 ‘老子微旨例略’의 끝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몸을 뒤로 하기에 몸이 앞선다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몸이 앞서는 것일 뿐이지, 그 몸을 앞세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 몸을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한다 함도, 결과적으로 몸이 보존되는 것일 뿐이지, 그 몸을 보존하려해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後其身而身先, 身先非先身之所能也; 外其身而身存, 身存非存身之所爲也)

- 도올은 보살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 소위 중국의 聖人된 자의 행실과 유사한 것으로만 이해하려 하니 석가여래의 진정한 정신을 通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보살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를 이 성품의 삶으로 보아 이 성품의 삶은 이 성품의 삶 각각의 독립적 개체로써의 소승, 곧 작은보살로써의 작동이며 동시에 통합적 전체로써의 대승, 곧 큰보살로써의 작동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로써 중도·여래·열반임을 밝혀 증명한 말인 것이다. 즉 이 한 성품으로써의 나는 대·소승적 보살로써의 중도며 여래며 열반의 보살로써 연기의 실상인 것이다.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은 오직 이를 깨닫는 기도로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4-3의 해석글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왜냐면, 지혜작동의 보살은 실재의 실체랄 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펼쳐져 베풀어지는 보시의 지혜작동이므로 그 펼쳐져 베풀어진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선정인 福으로 지혜작동하는 德의 이 보살은 사람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가 없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보살을 표상한 복덕이 아니라 각종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若’라는 문자이다. 대책없이 ‘만약만약’이라고만 풀어대는 데,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엔 ‘만약’이라는 가정은 추호도 있을 수 없다. 설령 가정이란 대도 이것이 진리의 진실임을 말하는 것이지 진리의 진실이 아니라거나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보살은 어떤 상으로써의 실재의 실체랄 상으로써의 보시작동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거나, 안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 보시작동의 이것인 것이다. 즉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연기의 실상이므로 마땅히 온통 보시작동으로써의 보살인 것이다.

이 구절의 보살이 보시를 하되 ‘만약’ 상이 없이 하면 그 복덕이 한량없다고 이해하여 말하는 건 윤리적 최고의 보살된 자, 곧 성인이 행하는 삶의 형식, 계율로써 마땅한 것처럼 보일 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이 구절이 사람성품의 삶을 말한 거라고 한 대도, 보살로써의 사람은 사람이라는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불가사량으로써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가 이 사람성품임을 말한 것이다.

若이란 문자는 옥편(국한 홍자옥편 1962)에 있는 대로 반야의 지혜를 의미하는 문자이다. 그러므로 若菩薩이란 말은 저 반야심경의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과 같은 의미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若이란 문자가 이렇듯, 복덕이란 말도 ‘세속적 인과관계’로 치부해, 이런 세속적인 것은 감히 이 금강경이나 노자가 운운할 것이 못되는 허접으로 치부하는 건, 암만해도 도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안쓰럽다.

도올이 끌어들인 ‘노자’ 일절이 이 금강경 구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필자가 알 수가 없다. 한문엔 완전 손방이므로. 그러나 분명 범어의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했을 땐 번역자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범어의 원작자의 정신이 완전하게 옮겨진 것이라고 보긴 어려운 일이다. 분명 이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삶에 대한 석가여래 당대의 인식이 불경이고 보면(불경이라고 해서, 위경이 아니라 최초의 경전이라고 해도 석가여래 개인의 말 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당대의 중국인들 역시 이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삶에 대한 그들의 인식체계에 의한 번역일 것임은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한역된 불경에 ‘노자’의 정신이 쪼끔이 아니라 태반도 넘을 건 당연한 일이지 싶다.

그러나 노자가 사람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한 사람이라고만 본다면, 이는 노자를 넘 얕보는 게 아닌가? 그 시대에 뭔 우주를 논하고 자연의 진리를 사유할 지적 수준이 있었겠냐고, 인간의 윤리나 다독였지 라고 윽박지른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모르므로.

그렇단 대도 여기 이 ‘노자’ 7장의 해석 말은 께름찍 하다. ‘성스러운 사람’의 살림은 私邪롭지 않아서 ‘성스러운 사람’으로써의 몸이 存하는 私를 이룬다는 것인가? 그러니까 까놓고 말해서 ‘성스러운 사람’은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티를 내고 살지 않아서 ‘성스러운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인가? 이 건 아닌 것 같다. 대체 是以聖人,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이라는 말은 聖이 된 사람과 안 된 사람 중에서 聖이 된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도올의 해석은 이것 같은데, 이건 아닌 것 같다. 노자가 사람을 뭔가 덜된 물건으로 보았다? 아닌 것 같다. 이 是以聖人 구절 앞에 뭔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은 ‘聖으로써의 사람’이라는 말로써 평범한 사람과 다른 상대적 개념의 성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이미 성, 智德最高無不通知로써의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지 싶다. 사람이 뭔 수행 따위 노력을 해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특별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이미 이 최고의 경지임을 말한 말이지 싶다. 마치 금강경에서 금강의 이 보살이 사람일뿐만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온통 이 금강의 보살임을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싶다.

이는 필자가 잘 모르는 일이니 각설하고, 도올이 ‘“不住於相”에도 복덕은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하게 우리가 “不住相”할 때에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즉 여기서 보살운동은 無我의 도덕성을 윤회와 결부시켜 논의하는데, 그 인과는 우리가 말하는 세속적 인과관계는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르러선 이 일을 걷어치우고 싶어진다. 저 노자가 ‘세속적’ 허접한 이들하고는 안 놀고 성스럽게 된 사람들하고나 놀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석가여랜 이를 가리지 않고 놀았다. 오직 허접한단 대도, 성스럽단 대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오직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이 부처임을 말한 이다.

이 금강경 4-3 구절이 ‘노자’ 7장의 일절과 같은 의미맥락이란 대도, 이 의미가 이것임을 말해야지, 단지 인간의 윤리적 도덕성이나 운운하며, 이런 저들이 태어나 살던 시절의 무식이 오늘날 엄청난 우주적 존재론으로 부활한 역사의 쾌거라고 외치는 건, 다만 과거며 현재에 사로잡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다.

바르게 보시라. 보살이란 말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가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임을 말하여, 이 성품의 삶이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의 선정으로 지혜작동하는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표상한 말이 보살이란 말임을 바르게 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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