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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다시 생각하다 

교회남성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출처 : 기독교사상 6월호 http://clsk.org/g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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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들의 로망, 교회오빠

드디어 딸아이에게 이상형이 생겼다. 시트콤의 남자주인공이란다. 첫아이의 모든 것이 신기한 나는 열심히 해당 시트콤을 챙겨본다. 잠자는 도중에도 싱글싱글 웃는 낙천성? 짓궂은 장난질에 상대가 정색하면 “농담입니다.” 어설프게 마무리하는 썰렁함? 전교 1등도 못 푸는 수학문제를 척척 쉽게 설명해주는 똑똑함? 당구든, 결투든 해박한 이론만 내세우다 된통 당하는 허당? 출세지름길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아프리카행을 선택하는 용기? 다시 물었다, 어떤 면이 좋은 거야? “음…, 교회오빠 같잖아.” “그래애? 그럼 열심히 교회활동을 해야 겠네” “아, 놔…, 교회오빤 말이죠, 교회 다니는 오빠를 말하는 게 아니예요. 교회에 다닐 법한 오빠라는 뜻이예요. 근데 정말 슬픈 건요, 교회에는 실상 ‘교회오빠’가 없다는 거죠.” 


교회에는 없는 ‘교회오빠’라니… 더 궁금해진 엄마는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시도한다. “교회”라고 치니 연관검색어 수위가 교회오빠다. 성당누나와 함께 교회오빠는 요새 청춘들의 로망이란다. 내친 김에 후배들, 제자들, 교회자매들께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넉넉한 품성. 따뜻한 배려심, 건전하고 절도 있는 성실성, 부드러운 미소를 띤 가정적일 것 같은 젊은 남자…. 한마디로 좋은 신랑감의 요건 중 하나라고 답한다. 상업적 결혼정보회사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큰 교회들이 결혼시장의 역할을 해온 걸 고려해 볼 때, 그녀들의 답변이 생뚱맞은 건 아니다. 


근데 중요한 사실중 하나는 교회에는 어린 교회오빠보다 쿨하면서도 따뜻한 ‘나이든 교회오빠’들을 만날 기회가 훨씬 많다.


교회오빠 타입을 이상형으로 치켜세웠던 그녀들은 일군의 교회 남성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편협하고 배타적으며 독선적이고 복종을 강요하는 불편한 존재라는 것이다. 때마침 배달된 교계신문의 광고란에는 어떤 교계단체 임원으로 소개된 200명 남짓의 근엄한 목회자의 사진이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총재, 본부장, 단장, 고문 등의 갖가지 권위를 드러내는 직책 명을 보니 그녀들의 반응이 이해될 법도 하다. 이미 코미디나 드라마에서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드러내고자 애씀으로써 조롱대상으로 전락한 시대착오적인 인물상과 오버랩 된다. 


교회에는 실로 다양한 남성성이 있다. 다양한 남성성들이 같은 힘과 무게감을 가지고 공존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 안에서의 남성성 사이에도 위계가 있는데 지배적인 이미지와 타입을 헤게모니 남성성이라고 한다. 교회공간에서 재현되고 있는 위의 두 상반된 이미지는 오늘날 교회의 헤게모니 남성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수년간의 학제간 연구는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성적 특성이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크게 받으며 형성되어 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덕목으로 간주되는 독립성, 공격성, 의지력, 대담성과 여성의 덕목으로 간주되는 종속성, 부드러움, 수동성 등은 19세기의 과학적 지식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근대적 인간의 특징일 뿐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이분법이 중세기나 후기근대 사회의 남성/여성에게 절대적 기준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몬느 보봐르의 유명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은 남성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남성성은 사회문화에 따라 상이하게 규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다양한 남성성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받아들인다면 한국교회의 남성성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와 그 특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2. 문명적 남성성

기독교가 수용된 개항기는 새로운 질서가 유입되면서 전통적 사회질서가 교란된 시기이다. 한마디로 변화의 시기였다. 남성성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대적 종교라는 기치를 내건 기독교는 유교적 기반에서 형성된 기존의 남성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남성성을 제시하는 대표적 공간이었다. 당시 기독교가 제시한 새로운 남성성은 두 통로를 통해 구현되었다. 하나는 문명과 신앙의 힘으로 부국강병을 꿈꾸던 한국교회의 남성지도자요, 다른 통로는 선교사이다. 


선교사의 새로운 남성성 만들기 기획은 전통적 남성성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선교사들이 내면화한 남성성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남성성이다. 제국주의가 표방한 강인한 남성성과 빅토리아 시대에 형성된 성적 순결은 전통적 한국 남성성을 야만성과 음탕함으로 규정하는 기준이었다. 전통적 습속은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잣대에 의해 척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의 한 풍경을 보자.


가장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모든 남자와 6-7세 이상의 사내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방에서 품위를 지키면서 혼자 식사를 한다. 딸들은 부인들과 함께 안채에서 식사를 하는데 거기에는 어떤 의식이나 존엄도 없이 남자들이 식사를 마치고 남은 것들을 먹는다.1)


이러한 ‘야만적’ 풍속을 없애기 위해 선교사들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그 효과인지 교계 신문에는 새로운 풍경을 보도하는 기사가 등장했다.


동네 외인들이 흉볼지라도 … 밥 먹을 때에 부인들도 방에 들어와 남편과 같이 편안이 앉아서 먹기로 작정하고 … 또한 내외간에 높고 낮은 말 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서로 같은 말로 대접하기로 작정했다.2)


이러한 풍경의 변화는 교회가 밥상의 질서를 전복하거나 남녀부동석의 법을 파기함으로써 유교전통에 근거한 남성의 권위를 부정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평등을 추구하는 낯선 남성성을 재현하는 교회의 열린 공간은 근대적 부부관계를 꿈꾸는 청춘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은 전통적 혼인제도 및 성적 습속도 ‘악폐’로 규정하고, 교인들에게는 권고와 정죄를 통해 이러한 ‘악습’과 단절하도록 강권하였다. 조혼은 전근대적 혼속과 망국적 폐습으로 간주되어 우선적인 타파의 대상이 되었다. 19세기 서구에서 유행하던 우생학적 지식이 동원되고, 조혼하는 민족은 하나님이 멸망시킨다는 신앙적 논리가 등장했다. 이를 통해 남자아이가 남성이 되는 통로를 차단하고자 했다. 축첩 역시 새로운 남성성 만들기 기획의 주요 배제대상이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첩이 없는 남자는 ‘사나이’가 아니라 ‘못생긴 사람’으로 놀림을 받았으며 “일부이첩을 대장부의 당연한 일로 여겨 아침밥과 저녁죽을 먹을 만한 사람이면 의례히 첩을 두었다”3)고 한다. 축첩은 부를 가진 남성성의 징표였던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축첩제도를 문명에 어긋나는 ‘야만적 행위’이자 하나님이 주신 법의 위반으로 간주하면서 축첩자들을 추방시켰다. 이처럼 조혼과 축첩에 대한 정죄는 교인과 불신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자 교회의 새로운 남성성 만들기 기획이었다. 


전통적 남성만들기는 조혼이나 축첩과 같은 혼속뿐만 아니라 상투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상투를 올리지 않은 이는 남성이 아니었다. 백정이나 승려는 제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상투를 올릴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남자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존칭어미도 부여받지 못했다. 그들은 높임을 받을 수 없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반면 상투를 튼 남자는 족보에 이름을 등재하고 아명을 버리며 성인으로서의 의무를 부여받고 조상제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상투는 명예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 곧 소년이 아니라 남성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상징이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단발은 덕과 존경심, 지위와 남자다움의 상실을 의미했다. 그것은 신체적 상징적 거세였다. 그런데 교회는 앞장서서 상투를 자르는 곳이었다. 단발은 위생적 차원에서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외양을 구별하게 해주는 표지였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게으름, 거짓말, 욕심, 도적질, 술, 담배, 노름, 마약과의 단절 등 유교의 수신과는 다른 방식의 몸의 절제를 요구하면서, 교회의 새로운 남성 만들기 기획은 진행되었다. 


교회의 남성지도자들은 남성성을 ‘강함’의 자질에서 찾았다. 강한 남성성은 민족/서구 영웅모델과 하나님 상징을 통해 제안되었다. 모세로 대표되는 경전 속의 민족영웅뿐만 아니라, 워싱턴, 링컨 등 서양의 위인들이 적극 소개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국가의 독립, 구국 혹은 강력한 국가의 건설 등과 같은 영웅서사와 긴밀한 관련성을 내포한 인물들이다. 외세로부터 민족을 구해줄 구국 영웅을 열망하던 시대정신이 반영된 셈이다. 서구의 위인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민족 영웅도 발굴하였다. 이순신에 대한 기독교 민족주의 인사들의 깊은 관심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순신은 근대 이전에는 ‘충신’의 표상이었지만 개항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강인한 애국자의 표상이 된 대표적 인물이다. 다수의 기독교 인사들로 구성된 ‘충무공유적보존회’의 활동에서 우리는 당대 민족공동체의 염원/욕망과 결부되면서 새로운 남성성을 모색한 교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한국교회는 관념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실제적 차원에서도 강인한 남성성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가령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운동부는 야구, 농구 등 근대 스포츠의 소개와 지도에 많은 공헌을 함으로써 강건한 신체에서 새로운 남성성을 재현하고자 했다. “원기(元氣)없는 국민이 되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고 건전치 못한 신체로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선언은 마음을 통해 몸을 다스리는 전통적 남성성과는 달리 몸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자 한 근대적 남성만들기 기획의 근본 취지였다. 


한국기독교는 신체적 차원의 남성적 강인함을 강조하는 한편 강력한 가부장적 하나님 이미지를 통해 신앙적 강인함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절대적 통치자, 만왕의 왕, 엄위하신 성부, 신들의 신과 같은 가부장적 언표와 대장, 군졸, 복음갑주, 성신금, 기도투구 등의 군사적 메타포들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의 무기는 십자가요, 우리의 전술은 성서요, 우리의 대장은 예수 그리스도이다”4)라든지 “청년아 청년아 십자가를 지고 용감히 나아가 싸우자. 장로선배들이여 용감한 전사와 같이 나아가는 청년들을 무서워말고 행여나 그 길을 막지말자”5)는 구호는 문약(文弱)한 선비로 대변되는 유교적 남성성을 대체하는 강인한 남성성 만들기의 외침이었다. 이와 관련된 메커니즘이 젠더(gender)의 위계화이다. 교회의 제도화와 교권이 확립되던 시기의 기독교는 여성을 배제하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남성성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당시 한국교회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코드화함으로써 여성안수 불허의 결정을 내렸는데 이러한 젠더의 위계화 작업은 교회 안에서 남성성의 확대를 강화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3. 군사적 남성성 : 영적전사, 반공전사 

전근대적 남성성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남성을 만들려는 교회의 기획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증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담론의 영역에서만큼은 강인성과 순결성, 절제력 그리고 평등성이 교회남성성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해방과 분단, 군사정권의 등장과 월남파병, 유신독재를 거치면서 교회의 남성성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냉전논리에 근거한 반공주의와 개발독재에 근거한 성장주의는 격동의 현대사가 만들어낸 남성성을 생산하는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한 손에 망치 들고 건설하면서 한 손에 총칼 들고 나가 싸우자”는 당대 국민가요에 함축된 산업전사와 반공전사의 이미지는 땀과 피로 얼룩진 강철 같은 남성성을 잘 보여준다. 


산업화 사회가 본격화되면서 가정과 일터를 중심으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뚜렷이 구별되었고 남성은 임금노동으로, 여성은 가사노동의 영역으로 이분화되었다. 성역할이 명확하게 나눠진 것이다. ‘성공하는 남편, 사랑받는 아내’가 시사하듯, 가족의 생계는 우선적으로 임금노동을 담당하는 가부장에 의존하였다. 임금노동자의 역할을 맡은 남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과 일에 대한 성취를 중심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부양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집안의 군주로 ‘진정한 남성’임을 확인받았다. 남성다움의 구체적인 목록은 노동자로서의 덕목, 부양자로서의 덕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체적으로 책임감 합리성 자제력 결단력 여성보호적 태도를 포함함으로써 남성다움과 일은 동일시된다. 조선시대에는 풍류를 아는 남성으로 미화되기도 했던 ‘백수와 한량’은 산업화시대에 오면 지배적인 남성모델이었던 ‘산업전사’와 대비되면서 사내구실을 못하는 비남성적 존재로 폄하되었다. 


필요할 때마다 전시체제임을 상기시키며 장기집권을 도모했던 군부독재시대의 이상적 남성상은 국가를 개인의 우위에 두고, 애국이라는 정신적 가치와 신체단련이라는 육체적인 힘을 동시에 구현하는 군사적 남성성이었다. 국민애창곡이었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의 노랫말에는 군대에 가야 남자가 된다는 일상적 통념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말썽꾸러기 김총각이 동네처녀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훈장 달고 김상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만연된 폭력과 무조건적 복종을 유도하는 군대생활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청년들이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대는 성인남성을 탄생시키는 통과의례로, 남성성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기관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군사적 남성성은 총동원체제의 헤게모니 남성성으로써 남성들을 훈육하고 길들였던 이데올로기이자 ‘정상적인 남성’이라면 모방해야 할 삶의 목표였다. 가족/국가 공동체를 위해 싸우는 전사는 헤게모니 남성성과 완벽하게 동일시되었다. 


군사문화는 군대만이 아니라 스포츠, 기업, 학교, 교회, 진보적 운동진영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거대한 뿌리를 내렸다. 총동원체제를 통과하면서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은 군대”가 되었다. 애국주의와 애사주의가 ‘태극전사’ ‘반공전사’ ‘수출전사’를 생산했다면, 우리 교회(종교)중심주의는 ‘영적전사’를 생산하는 장치가 되었다. 교회개혁 진영에서는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배타주의와 근본주의, 성공주의와 성장주의, 승리주의와 정복주의, 친미주의와 반공주의, 군사주의와 권위주의 등으로 지목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상호 연동되면서 ‘영적전사’(Holy Fighter)를 생산하는 기름진 토양이 되었다.


경제성장제일주의가 물질적 번영을 추구하면서 분배의 정의를 방기하였던 것처럼, 교회성장주의는 이웃과의 나눔과 섬김, 봉사와 사랑 등을 실천하기 보다는 장엄한 교회건축을 비롯한 외형불리기에 몰입하도록 이끌었다. 예수정신을 유보하고 사회로 확장해나간 대가로 전대미문의 양적 팽창을 구가한 셈이다. 공격적인 선교를 펼친 영적전사들의 활약 덕에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복음의 깊이를 훼손하였다는 비판으로부터 교회는 자유롭지 못하다. 영적전사는 한편으로는 악으로 지목된 타자를 신앙의 힘으로 정복하여 승리를 구가하고, 이를 발판으로 내부적 결속력을 다지며 외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적/타자를 생산함으로써 타자(타공동체)에 대한 배제와 적대적인 차별화를 도모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의 영적전사는 반공전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였다. 누구나 인정하듯 분단이데올로기 조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한국교회이다. 우리는 전투적이고 물러섬이 없는 용감한 영적전사들이 시청광장의 친미반공 시국집회를 주도하면서 공격성을 드러내는 현장을 빈번히 목격한다. 이러한 용맹한 배타성은 때로는 교회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러한 돌진적 성장주의와 공격적 배타주의는, 마치 군부독재가 반공주의와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총동원체제를 활용했던 것처럼, 총동원체제 안에서만 가능하다. 교인배가운동의 일환으로 마련된 전도대폭발이나 총동원 주간은 이 시기 교회가 즐겨 사용했던 수사 중 하나인데 얼마나 군사적인 에토스가 농후한지를 엿볼 수 있다. 군사문화가 교회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용어만이 아니다. 교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로 수렴되는 장치가 필요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가장 용이한 장치이다. 서구 기독교 전통에 내재해 있던 가부장적 요소를 근간으로 하여 유교전통, 서구근대성,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강화된 가부장주의는 한국교회의 남성지배체제를 흔들림 없이 구축할 수 있었다. 


카리스마 리더십은 영적전사의 모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 선포자라는 아우라(Aura)와 영웅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 리더십은 명령과 설득으로 맹목적 복종의 위계질서를 교회문화로 조성했다. 카리스마 리더십에 갈망하는 신앙인들은 자신을 대신해서 판단해주고 명령을 내려 줄 위대한 존재에 기대고 싶어 한다. 비합리적이고 상식에서 벗어난다 할지라도 신성성으로 포장만 된다면 맹종하도록 길들여진 마음바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전인권은 한국의 남자들을 ‘동굴 속 황제’에 비유했다. 언제 어떤 공간에 있든지 황제이길 원하는 한국남자에게, 황제였던 아버지는 몸소 황제다운 언행을 보여주었고 어머니는 그를 황제로 받들고 길렀다. 자기애와 권위주의의 동굴에 갇힌 남성은 한국의 가족문화가 낳은 독특한 유형이라는 주장이다. 일리 있는 추론이다. 교회남성 특히 목회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전임여전도사로 사역하는 후배는, 교회 어르신들이 훨씬 어린 파트타임의 남전도사와 자신에게 대하는 상반된 태도에 분개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와는 달리 미래의 목사가 될 남전도사에게는 어려워하며 정중한 언행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길러진 교회남성과 지도력은 섬김과 나눔의 가치를 알고는 있지만, 정작 몸이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요컨대 이 시기의 주도적 교회남성성은 영적전사로 요약할 수 있는데, 남성성은 경쟁심과 배타성, 공격성, 섬김 받음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4. 시민적 남성성 : 부드러운 아버지와 교회오빠 

민주화의 결실로 상명하달의 복종문화와 권위주의는 극복 대상이 되었다. 개인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무시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던 시대의 ‘국민’은 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한 주체 즉 ‘시민’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민주화와 함께 진행된 신자유주의화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무한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조류에 쉽게 조응하지 못한 남성들에 대한 위기담론은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남성성 담론은 사회적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담고 있다. 그동안 가족 부양의 책임을 맡았던 가장들은 명예퇴직이나 비정규직화로 그 위치가 불안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여성들이 가장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6) 등의 자조적 표현과 40대-50대의 스트레스 사망률 세계 1위, 자살률 1위, 이혼율 급증 등의 구체적인 통계는 위기가 실제임을 부각시킨다. 남성위기담론에는 산업전사, 민족전사로 몸을 바쳐 충성한 그 노고를 망각하고 있는 세태에 대한 분개와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아무리 남성성의 위기를 호소해도 옛 권위를 회복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성장기의 표본적 모델이었던 산업전사는 더 이상 주도적인 남성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화와 다품종 소량생산의 소비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취향과 표현의 다양화를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남성성이 구성되는 요인이 되었다. 날로 커져가는 남성복 시장은 남성의 몸도 산업전사의 몸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메트로 섹슈얼, 위버 섹슈얼, 크로스 섹슈얼, 꽃미남, 차도남 그리고 짐승남이 공존하는 이 시대의 남성성은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스마트한 지적 능력과 스위트한 매너, 스마일을 갖춘 국민남편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젊은 처자들의 로망인 ‘교회오빠’가 떠오른 맥락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군사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성은 이제 더 이상 새시대를 주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시대착오적 존재로 지목되어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희화화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교회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화 열풍이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자율적 주체의 정체성을 가진 시민적 성도들은 교회의 권위주의체제를 유지해오던 관행들을 문제시함으로써 크고 작은 분쟁과 갈등이 개교회, 교단, 교회연합체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고 있다. 위계와 권위에 기초한 교회권력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뿐만 아니라 권위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시민적 성도들은 목회세습을 통해 권위를 자식에게 계승시키려는 카리스마 리더십의 결단에 더 이상 순종적이지 않다. 

교회는 이러한 위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군사적 언표를 담은 전도폭발성회가 ‘새생명축제’로 개명되고, 예배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시민적 성도의 눈높이를 위해 고안된다. 강압적이고 일방 통행적인 교회문화는 훨씬 완곡하고 부드러운 형태로 변하고 있다. 군사적 남성성에 기초한 위압적인 영적전사 모델과는 차별화된 교회남성성을 모색하고 있다. ‘두란노아버지학교’와 ‘아바러브스쿨’ 등 교회의 기반을 둔 기획프로그램들은 다정다감함, 배려심의 남성성을 몸에 각인하는 장치들로 역할하고 있다. 힘의 논리에 의해 운위되던 남성중심적 질서, 그리고 그것의 신체화된 형태인 남성성을 극복하려는 이러한 일련의 노력의 이면에는 남성성을 새롭게 구성해냄으로써 위기에 처한 남성주체를 복권하려는 변함없는 의지가 담겨있다. 요컨대 착한 가부장을 모색하고 다정다감한 남성성의 창조를 통해 추락하는 가부장의 권위를 다시 세우려는 이러한 기획은 남성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인 셈이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거치면서 남성성의 표상은 변해왔다. 이에 발맞춰 교회 남성도 사회의 지배적 남성성과의 적대적 혹은 친화적 관계를 맺으며 변화되어 왔다. 문명적 남성성, 군사적 남성성, 시민적 남성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시대마다 변형된 남성성의 표상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적 성격은 별반 변한 것 같지 않다.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남자들에 대한 대우가 예전 같지 않다’는 푸념은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다’는 말처럼 어느 시대나 되풀이되어 왔다. 요컨대 남성위기 담론의 실상은 새로운 남성성이 요구될 때마다 남성권력이 취한 ‘리액션’이었다. 위기를 외치는 구호 속에는 남성우월주의를 당연시하는 태도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최근 교회관련 프로그램에서는 남성재교육에 관한 기획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의 권위만 회복할 수 있다면, 엄하고 냉정하며 무심했던 이전 모습에 대해 회개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겠다는 욕망이 잘 반영된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는 ‘돌봄’, ‘양육’, ‘섬김’, ‘다정함’ 등 흔히 여성성의 특질로 거론되는 것들이 실천덕목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실상은 이분법적 젠더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요컨대 ‘강한 가부장’이냐 ‘착한 가부장’이냐 하는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구심점과 영향력을 되찾고자 하는 남성지배적 욕망은 변함없다는 말이다. 중심이 되려는 욕망 대신에 젠더질서를 넘나들면서 배려하고 돌볼 줄 아는 교회형제, 내 가족 내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도 적극 관여하는 정의롭고 따뜻한 형제야말로 교회남성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숙진 l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인문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성공회대, 감신대 등에서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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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5 일반 '나는 꼼수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권력이 화를 내면 쪼잔하게 보이잖아요." image dhsmfdmlgodqhr 2011-09-30 1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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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3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막가자는 거지요? imagefile anna8078 2013-07-11 16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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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1 일반 성불하신 능허 거사 소개 아제보리 2008-04-02 1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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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8 일반 다음번 원전 사고는 한국이나 프랑스서 날 것이다 imagefile [1] wonibros 2012-04-16 1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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