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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 두엔데에 대하여

일반 조회수 10626 추천수 0 2008.01.26 20:08:36

 

[조현 기자님, 휴심정 오픈을 축하합니다. 김홍근입니다. 특히 ‘하늘이 감춘 땅’

시리즈를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저도 모 신문에서 일타스님

전기 연재소설을 읽고 도솔암을 꿈꾸었는데, 뜻밖에 여기서 생생한 모습을 보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뜻을 같이 한다는 의미에서 작년에 다녀온 스페인 여행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의 아랍식 구시가지 알바이신 마을에서 극장식 플라멩코

클럽인 타블라오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설렌 마음은 뛰기 시작했다. 마치 먼

길을 돌아온 순례자가 마침내 성지의 문 앞에 당도했을 때의 심정이랄까. 실내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다. 무대는 겨우 탁자 서너 개를 붙여놓은 것처럼

았고, 그리 넓지 않은 관람석은 무대 코앞에 바짝 붙어있었다.


가벼운 술과 안주를 시켜놓고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명당의 수도처나 수준 높은 예술 공연장에 앉으면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법이다.

그 현장에 쌓인 에너지의 여운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 앞으로 휘몰아칠 거친 비바람에 대한 비릿한 예감 같은 것.


관객이 꾸준히 들어와 좌석이 채워지자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여성 무희들이 여러 명 나와 번갈아가며 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현란한 기타

연주와 의자처럼 걸터앉은 나무박스를 손으로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는

토케(toque), 손바닥을 치며 노래 부르는 칸테(cante), 그리고 화려한 치마를

휘날리며 빠른 춤사위를 선보이는 바일레(baile)의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공연장은

순간적으로 공간이동해가는 듯했다. ‘몸으로 공중에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

춤이라고 할 때, 플라멩코가 그려내는 선은 유독 크고, 굵고, 빠르며, 현란하기

그지없다. 반은 청동으로, 반은 꿈으로 빚어진 것 같은 관능적인 육체가 뿌려대는

이미지의 꽃비.


‘두엔데(Duende)!’

문득 이곳 그라나다 출신의 천재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플라멩코의 정신을 두엔데라고 불렀다. 플라멩코는 원래 15세기 인도 북부에서

건너온 집시들의 춤과 음악이다. 그들은 유럽으로 들어와 보헤미아 등 각지로

흩어졌지만, 유독 붉디붉은 안달루시아의 흙에 뿌리를 내리면서 플라멩코라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몸짓을 창조해낸 것이다.


두엔데라는 말은 흔히 접신(接神), 신기(神氣), 마력(魔力) 등으로 번역되는데,

어원적으로는 ‘원래 주인’을 가리킨다. 플라멩코를 추고 노래할 때 워낙 격정적인

리듬과 동작으로 집중하게 되니까, 자신도 모르게 원래 몸의 주인이 깨어난다는 것.

인간은 삼매에 들면 인격적 자아가 무너지며, 내부의 본성이 분출하게 되어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코앞의 집시 무희들의 몸이 바르르 떨릴 때마다 튀기는 땀방울

비를 맞으며 얌전히 앉아있을 인간은 없다. 무대 위 아래를 흐르는 강렬한 전류에

어찌 감전되지 않겠는가! 문명인이고 교양인이고 그런 허울은 벗어버리고 어깨는

들썩들썩, 무릎은 부들부들, 눈은 충혈 되고, 상기된 뺨, 손바닥엔 불, 전신엔 소름,

입에선 괴성이 터져 나온다. 객석에도 신명이 내린 것일까, 정신의 벼락이 떨어진

것일까? 아무튼 가슴이 뛰고 격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무희들도 고통스러운지,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연신 기합과 한숨을 토해낸다. 두엔데는 맹수가 먹잇감을

덮칠 때처럼 엄습한다더니, 가슴이 데인 것처럼 뜨겁고 아리다.


인간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대체 그 안에 뭐가 들어앉았기에 단숨에 우주를

가로지르는듯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것일까? 마침내 검은 투우사 복장에

새까맣고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남자 무용수가 나와서 발을 구르기 시작하자,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사이사이 갑자기 동작이 멎고 느린 동작이 이어진다.

이상하다. 역설적으로 동중정(動中靜)에서 두엔데의 강도가 더욱 커지나 보다.

객석에서 자지러지는 외마디 비명이 들려온다.


플라멩코 대사습놀이에서 가끔 노파 무희들이 대상을 차지한다더니, 그 말이

이해된다. 이런 미스틱하고 원초적인 분위기에서는 얼짱 몸짱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신끼 어린 두엔데 자체가 미의 기준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평소에

죽음이라는 진실과 자주 마주쳐 인격적인 가식을 떨쳐버리고 알몸으로 삶의

열풍을 맞아본 사람만이 진정 두엔데, 진짜 주인의 얼굴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플라멩코의 하이라이트가 대개 투우사 복장의 남자 독무(獨舞)인 것도 아울러

이해된다. 일상의 자아가 죽어야 진짜 주인이 깨어나므로. 고로, 플라멩코나

투우는 ‘죽음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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