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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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기독교 신자의 갑작스런 사찰여행 ‘사건’

지난 12일 <한겨레> 독자 40여명과 함께 문경에 있는 봉암사를 다녀왔습니다. 저희 신문사에서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마련한 ‘전문기자와 함께 하는 여행’ 행사의 일환이었지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란 그럴듯한 이름을 내걸고 떠난 이번 여행은 온라인을 벗어나 독자 여러분과 직접 대면하면서 교감하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번 여행에 동참한 온라인뉴스팀의 새내기 장수경 기자가 여행 후기를 써왔습니다.  기독교인인 장 기자는 봉암사에서 무엇을 찾았을까요?

 
설렘보다는 걱정…낯선 풍경에 마음은 무거워지고

 

“카메라는 가져가면서 메모리카드를 안 챙겨 가면 어떻게 해.”
 

20여년간 기독교인으로 살아 온 내가 절에 간다는 것은 일종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봉암사에 가기 며칠 전부터 설레기보다는 걱정을 더했지요. 단 하루뿐이지만 지금까지 멀리해 온 종교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허둥댔어요. 디지털 카메라를 챙기면서 메모리카드는 깜빡 잊었고, 집결지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곳을 헤맸거든요.

 

사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기자로서 이번 행사를 돕기 위해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봉암사로 가는 버스 앞좌석에서 가이드처럼 앉아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기 시작하는 조현 선배의 말을 듣고는 ‘앗,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고의 틀을 깨고, 묶여 있는 마음을 자유롭게 하자.”

 

내 안에 있는 편견을 깨기로 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혹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나만의 가치로 판단하는 버릇을 깨버리고 싶었어요. 가장 가까운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우리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소수의 약자든 ‘내가 옳고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스스로에게 내준 과제였어요.

 

일행 대부분은 불교신자였습니다. 그들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성탄 이브의 어린 아이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아무 때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봉암사가 아니어서 그랬을 거예요. 봉암사처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은 더 영험하게 느껴졌어요.

 

봉암사에 도착했더니 편견을 깨자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고 물 좋고, 산 좋은 유명지에 온 관광객이 되어 버렸지요. 어린시절 ‘시간탐험대’라는 만화영화에서처럼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돈데크만”이라고 외쳐 시간이 멈춰버린 세계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만 같았어요.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산과 물과 그리고 수행하고 있는 스님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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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두 손을 곱게 모으고 합장을 하더군요.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따라했습니다. 대웅전이 절마다 있는 건지, 공양이나 합장이 무엇인지 불교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었거든요. 나에게 불교는 그저 조선시대 억불숭유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요.

 

사람들은 간만에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 사진기에 봉암사를 담았습니다. 그 순간 스님 한 분이 “찍지 마세요”라고 외쳤습니다. 스님에겐 우리가 수행 중에 불쑥 나타난 불청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외침을 듣고 나서야 봉암사가 일반인이 출입하기 힘든 ‘스님들의 수행처’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대웅전 마루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엄숙한 기운에 땅 밑으로 꺼지는 기분이었어요. 자애로워 보여야 할 불상은 무섭게 다그치는 것만 같았고요.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어떻게 봉암사까지 올 생각을 했냐’며 나무라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기운에 눌려 마음을 다잡고 일행들이 하는 것처럼 기도를 따라했습니다. 봉암사 여행에 동행한 사람들이 독실한 불교신자일 것이라고 여겼는지 그들을 따라 하면 나도 여기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얻어가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무작정 따라했지요.

 

대웅전을 나오니 갑자기 불어 온 서늘한 바람에 무거웠던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 묵직함을 안고 마애불을 보고자 산에 올랐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간들 산에 오르는 것이 이보다 힘들까요.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한걸음을 옮기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마애불이 보는 방향으로 앉아 참선을 하는 것이라며 함께 온 딸에게 설명해주는 아저씨의 말을 귀동냥 삼아 제법 그럴듯한 자세로 앉아 명상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해보는 것이라 말소리, 걸음소리, 물소리, 그리고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눈을 감아 앞이 보이지 않으니 귀가 열려 마음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리에 마음이 가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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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 스님과의 대화…마음을 여니 발걸음이 가벼워졌어요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은 본디 목소리가 우렁차고 힘이 세다고 했는데 수술로 기운이 많이 쇠약해지셨는지 법문을 예상보다 일찍 마쳤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대운하 반대를 위해 수술까지 마쳤으니 이젠 ‘운하 반대’만 하면 된다”는 농담을 건네시더군요. 아프기 전엔 그 기세가 하늘에 닿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현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무거웠던 마음은 다른 종교를 마주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었나 봅니다. 종교를 믿는 것도 인간, 그것을 설파하는 것도 인간인데 사람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더더욱 없을테지요. 또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 편견일 테고요.

 

내 안에 자그마한 변화를 느끼자 가파른 정토회 수련원에 올라가는 발걸음은 오히려 마애불을 보러 가는 것보다 가벼웠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 자신들이 사는 곳은 돌보지 않을지라도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정토회 사람들은 부처의 현신이었어요. ‘불가촉천민’이라 하여 이들을 만진 사람마저도 상대하지 않을 정도로 궁핍한 인도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기적인 제 자신에게 ‘참 못났다’했습니다. 종교, 국적, 이념을 뛰어넘는 그들에 비해 난 ‘나만이 옳다’는 편견에 가득 차 있었지요.

 

정토회 수련원에 올라가는 길에 만난 소가 갈던 밭은 내려올 때쯤엔 모두 갈려 있었어요. 내 마음 또한 그 밭처럼 씨앗이 뿌려지기 좋게 되어 있더군요. 이젠 어떤 씨를 뿌려 볼까요.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온라인뉴스팀 장수경 기자 flying710@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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