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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7 - ''축 파산''

일반 조회수 9056 추천수 0 2009.03.04 13:31:59
시골살이 첫해 봄입니다. 오백평 땅 중에 집 지을 터 반나마 닦아두고, 한 마지기 가량 돌을 골라내 밭을 일구었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게 아니라, 기역자 놓고 낫도 모르는 인간이 괭이를 잡고 이랑을 만듭니다. 서울서 먼저 와서 자리잡고 있던 이웃 허 선생님이 괭이질 시범을 보여줍니다. 처음으로 감자라는 걸 놓았습니다. 허 선생님하고 같이 사는 이 선생님은 신문지로 멀칭한 고추밭에 와서 고추모를 같이 심어주었습니다. 
하지 무렵 감자를 캐먹을 때도 신기하고 오지기 짝이 없지만, 오곡백과가 익는 그 첫가을의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봄에 대꼬챙이 같은 고추모 백 주쯤 심어놓았는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고추대마다 파랗고 빨간 고추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습니다. 집터 오가며 몇 번 돌봐주고 웃거름 한두 번 뿌려준 것밖에 없는데, 세상에나...... 그만 눈물이 쏟아집니다. 하늘과 땅과 비와 바람과 햇살과 고추모가 합작으로 나한테 너무나 많은 선물을 퍼 앵겨주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하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가을은 하늘이 준 선물을 퍼담으러 다니는 계절입니다. 내 손으로 농사 거들어놓은 것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농사 지어놓은 것들 거두러 다니기에도 바쁩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뒷산으로 앞산으로 산밤을 줏으러 다닙니다. 왜냐면 수고롭게 장대로 밤송이를 때리지 않아도 저절로 알밤이 툭툭 땅에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집터 앞 누군가 심어놓아 이제는 몇 가마니씩 은행을 떨구어주는 은행나무 밑에서 바람 분 다음 날이면 노란 은행잎 위로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있는 은행을 줍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중 마을터 감나무에 꽃보다 예쁘게 매달려 있는 주홍 감을 한 자루 따다가, 짧은 해 지고 나면 밤새 깎아 햇살 잘 드는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답니다. 하얗게 떫기만 한 감을 햇살과 바람이 알아서 그 달고 맛있는 곶감으로 만들어 줍니다. 원래 곶감이 이렇게도 순수하고 달디단 맛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됩니다. 이런 곶감 먹다가 사먹는 곶감은 못 먹습니다. 집집마다 걸려 있는 곶감은 굳이 허락받지 않아도 오다가다 그냥 한두 개씩 빼먹습니다. 아! 사람이 산다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내 농사 하늘 농사 이렇게 푸지니 맨날 이웃하고 나눠 먹는 게 일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치입니다. 감자 캔 날은 막 캔 감자를 한 솥 쪄서 이웃을 부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속이 노랗고 포근포근한 감자... 감자가 원래 이렇게도 꼬순 맛인지도 처음 알게 됩니다. 막걸리를 담가 놓은 집에서는 한 통 들고 오지요. 또 형편 되는 대로 밭에서 막 뜯어온 이런저런 푸성귀들로 금방 한 상 차려집니다. 임금도 이런 주안상은 받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뭐든 밭에서 금방 올라온 것들의 맛이란!  절로 시가 나오고 노래가 나옵니다. 우리 이웃 중에는 시인도 있고, 카수도 있어서 막걸리 한 잔이면 김매다가도 시가 나오고 모내기 하다가도 노래가 나오곤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에 대해 얘기를 하면 모두 금방 알아먹습니다. '하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사람이 산다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그렇게 '하늘'이 보이고, 가슴에 '하늘'이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에서 살면서는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이루어지고 발달하고 굴러가는 이치가  보입니다.

경제 위기니, 붕괴니 하고 세상이 온통 난리를 칩니다. 풀밭에 납작 엎드려서 바라보는 세상 이치에 의하면 지금의 위기나 붕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놀라울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갑기조차 합니다. 물론 내 가족을 포함해서 주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축 고난'이요, '축 신용불량'입니다. '축 파산'입니다. 국가고 사회고 개인이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질주하던 욕망과 편리함으로의 내달림... 그만 전복되어 버린 것입니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전복되어 두 바퀴가 하늘로 향해 있는 자동차 옆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 인생이 새롭습니다. 전복되기 전에는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는, 어떤 안심과 평안함이 옵니다. 영혼이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독히도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 살아왔습니다. 의회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영혼은커녕, 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조차 불손하거나 불안한 상태로 의심받아야 합니다. 어째서 정치가가 시에 대해 얘기하면 안 되고, 경제인이 영혼에 대해 얘기하면 안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 역사학자와 사회학자가 원혼과 영혼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전부 따로따로 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돈 아니면 죽음입니다. 돈이 모든 것을 잡아먹게 되지요. 그러니 만인의 시는, 만인의 영혼은 다른 것이 파산하기 전까지는 숨을 쉴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절대로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역사 이래로 듣도 보도 못한 정권이 들어선 지 1년 만에 국민들 기가 다 막혀 버렸습니다. 옛날 어른들 말씀대로 "먹겠다고 뎀비는 놈한테는 못 당한다"고, 너무나 그악스럽게 작심을 하고 작살을 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아무도 어떻게 해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백 마디 말이 소용없고, 백약이 무효합니다. 속이 시커매지도록 한숨을 쉬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소주를 까면서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그래도 전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정권을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극악무도한 정권에 비하면 그들이 잃어버린 십년이라고 말하는 이전 정권이 나은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때라고 세상이 희망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국가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였고, 국민들을 그 속도에 밀어넣었습니다. 욕망을 부추기는 돈귀신들이 아니면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교육에서도, 사회 어느 분야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들어 갔습니다.
지금의 정권은 그 결과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는, 전복되지 않으면 목숨을 연명하는 것 자체가 고문입니다.  전복되어야만 그 고문이 끝나기 때문에, 지금의 정권은 전복을 위한 수순을 위해 '하늘'이 보내준 사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아니면 답이 안 나옵니다.
실제로 지금 이 정권과의 싸움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적을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을 죽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의 인구가 지금의 반으로만 줄어들어도 우리나라의 악, 돈과 권력은 그 힘이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서울로 와서 기를 쓰고 먹고 살려고 일하는 피땀을 한입에 털어넣는 것이 서울의 구조이고, 그것을 먹고 자본을 키우고, 그 자본으로 권력을 키워 또다시 피땀 어린 돈만 골라서 빼먹는 구조가 서울의 구조입니다. 집 없는 사람은 집값과 월세로, 장사 하는 사람은 권리금과 월세로, 일하는 사람은 임금과 세금으로 돈과 권력에게 뭉텅뭉텅 해다 바칩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돈과 권력은 그 힘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깨춤을 추겠지요. 그렇게 보면 서울을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세상 만드는 최고 기여가 아닐까요?
 
'위기' '붕괴' '파산'이 아니면 '영혼'을 포함한 '인간'이 살아날 길이 없어 보이니, 어찌 '축 파산'으로 맞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지난 1997년 말에 일어난 IMF 때문에 파산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시골로 내려온 사람 중에는 파산하기 전보다 '인간'이라는 총체적 면으로 보았을 때 훨씬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파산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손을 놓고 '사는 게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찾아 주면 좋은데, 그놈의 욕망이라는것이 무엇인지 강제로 빼앗기기 전까지는 스스로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스스로 놓고 싶어도 뒤집히기 전까지는 놓아지지가 않는 것이 바로 이 돈과 욕망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구조입니다.
'위기!'
'붕괴!'
사람들은 겁이 더럭 납니다. 도시에서는 돈 없으면 생존은 공포입니다. 삶의 다른 길을 알지 못하면 이 겁먹은 사람들은 더욱 돈과 권력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럴수록 돈과 권력의 크기는 불어납니다. 그래서 사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 단어를 좋아하거나, 강조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건 돈과 권력을 거머쥔 인간들이 만들고 있는 사기극일 뿐입니다. 무슨 종교 경전에 있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하늘은 사람 하나하나 다 사랑하실 뿐 아니라, 먹고 살 것을 다 마련해 놓았습니다.'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도시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연에 좀더 가까이 가는 순간, 자연과 그 속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먹고 살 것 다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사실은 전혀 행복을 갖다 주지 않는 욕망만 좀 버리면, 세상을 더럽히면서 내 한 몸 깨끗하고 편안하게 하지 않으면 몸에 벌레가 기어다는 걸로 착각하는 그 습성만 좀 버리면, '돈' 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만 좀 버리면, 사실 원래 세상은 참으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겁먹지 말고 망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파산하십시오.
그리고 도시를 빠져 나오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보십시오. 

 
(위 글에 나오는 이웃 허 선생님과 이 선생님 두 분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손상으로, 똑같은 증상으로 입원해 계십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80년대 초 [어둠의 자식들]과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거기에 공 목사로 나오는 실제 인물입니다. 다음 주소로 가면 그 소식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올라온 <너무 똑같으면서 너무 다른 두 목사 이야기>이라는 오마이뉴스 기사가 압권입니다. )
http://cafe.daum.net/echocouple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a*@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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