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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저자 - 백석, 1938년 발표작)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출출이 – 뱁새. *마가리 – ‘오두막’의 평안도 사투리..

 

우리는 살면서 과다한 욕심으로 물질적이고 육감적인 쾌락만 탐할 뿐 그 이외의 것에는 무감각하다. 특히나 점점 이 사회의 경쟁이 치열해져 갈수록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이익만을 탐할 뿐 그 이외의 것들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으로 물질적 이익은 되지 않지만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그 중에는 바로 이런 백석 詩人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같은 작품도 포함 된다.

 

하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찌 그리 한가하게 詩나 읽고 있고 감상에 적어 있나’라고 말하면 딱히 뭐라 답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좋은 詩의 발견도 때로는 사람들이 돈을 벌 때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최소한 이 詩를 읽으며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한 기쁨을 느꼈다.

 

일단, 한번 이 詩를 좀더 구체적으로 음미해보자.

 

+++++++++++++++++++++++++++++++++++++++

한 젊은이가 있다.

지금 당장 가진 것은 없지만 희망과 큰 꿈만을 갖고 힘든 현실을 헤치며 세상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맨주먹으로 덤빈 세상은 가혹하기만 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날들이 계속 되자

점점 삶에 지쳐가고 있었다.

이제 너무도 힘든 마음에 풀썩 쓰러질 것 같은 어느 겨울 밤.

문득 밖을 보니 눈이 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오고 있었다.

눈이 ‘펑펑’ 오는 것이 아니라 ‘푹푹’이라고 표현할 만큼 대단히 많이 내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눈물이 났다.

자기 신세가 한탄스러워졌다.

정말 열심히 달려왔는데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고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으니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터져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도 자신의 삶과 꿈을 사랑했기에 이루어지지 않는 그 꿈이 더 아프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삶을 사랑하니까 그 사랑만큼 더 아프고 이렇게 내리는 눈이 단순한 눈이 아니라 아픈 마음을 대신이라도 하듯 ‘푹푹’나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방 구석에 있는 소반을 끌어다 놓고 아까 저녁때 집에 들어오며 사가지고 온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한잔, 두잔, 세잔..네잔 마시다 보니

갑자기 너무도 힘든 현실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든 희망이든 모두 잊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냥 어릴 적 뛰어 놀던 것처럼 오두막 집에서 두견이 뱁새를 벗삼아 조용히 살고 싶어졌다.

 

겨울밤은 깊어가고 눈은 점점 더 내린다.

그래, 돈이건 출세건 명예건 예술이건 사랑이건 그 무엇이 됐건 간에..

그 따위 욕심은 훌훌 털어 버리고 고향 산골로 가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꿈과 희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참 삶을 새롭게 찾은 것이다.

참 삶을 찾아 떠나자.

 

이제 내일 날이 밝으면 모두 정리하고 고향으로 가자.

문득 방문을 열어 보니 벌써 한참이 지났지만 눈은 계속 내린다.

잠시 멍하니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엄청나게 쌓여 있는 흰 눈.

그리고 또다시 그 위에 내려 앉는 눈.

 

타향 먼 곳에서 쓸쓸히 홀로 앉아 그 눈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인생.

이제 고향 산골로 돌아가려는 처량한 인생.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도 무심하게 계속 ‘푹푹’ 내리는 눈.

 

그리고 정말 고향 산골로 돌아가야 하는가..

결국 고향 산골로 돌아가려고 이런 삶을 살았던 가.

나만 ‘희망’을 사랑한 것일까?

나만 그 꿈을 향해 도전한 것일 까.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힘들고 쓸쓸한 것일 까.

문 밖에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홀로 소주를 마시는 것이 인생인가.

 

그건 아니다.

나만 꿈을 사랑하고 희망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꿈도 희망도 나를 사랑했다.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있듯 꿈도 나를 사랑하고 내 인생도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처럼

어디서 내 꿈과 희망은 성공이라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오늘 밤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나를 반길 것이다.

다시 시작하자.

정말로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후회도 미련도 없이 최선을 다해서 부딪혀 보자.

그러면 된 거다.

그때가 되면 정말 아무 미련도 후회도 없이..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돌아서자.

그때 돌아가도 늦지 않다.

그때까지만 다시 해보자.

 

겨울 밤은 점점 더 깊어가고

함박눈은 푹푹 나리고

그 눈을 보며

한 젊은이는 잊었던 꿈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희망의 神은 이런 밤이 너무 좋아

마치 그의 부모님처럼 ‘으앙으앙’ 울고 있다.

다시 일어서는 자식의 모습에 감격해

‘으앙으앙’ 울고 있다.

 

눈과 나타샤와 당나귀는 그래서 그 젊은이를 사랑한다.

가난한 그이지만 자신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위한 흰 눈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래서 삶은 참 아름답다.

그래서 희망은 참 아름답다.

 

그 젊은이의 꿈은 부자일수도 있고 출세일수도 있고 위대한 작품일수도 있고 사랑일수도 있고 민족의 독립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꿈은 바로 나타샤로 표현된다.

 

그래서..그의 꿈과 성공이..

그녀든..예술이든..출세든..명예든..독립이든..인생이든..간에..

순수한 희망이라면 그 것은 모두 소중하다.

+++++++++++++++++++++++++++++++++++++++

*이 時에 대한 음미는 독자 개인의 몫이며 위의 감상은 순전히 본 저자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이래서 내게는 좋은 時의 발견도 보석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준다.

돈과 출세만 기쁨이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도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돈만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너무 절망 마라.

이미 7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을 보고 70년 만에 그 작품을 만나 기뻐하는 누군가도 있다.

분명 좋은 작품이고 옳은 일이라면 반드시 끝까지 살아남아 언젠가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세상에 감동을 줄 것이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진실은 반드시 알려지고 진리는 반드시 살아 남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동의 미소와 감동의 눈물로 열매를 맺는다.

 

그동안 납북 작가란 이유로 세상에 묻혀있다가 1989년 3월 15에 뒤늦게 발간된 백석 시집 “절간의 소 이야기”.

1991년에 나는 처음 그 책을 처음 펴 들었지만 그 소중함을 모르고 책장에 꽂아두고 18년 동안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다시 읽었다.

이렇게 그의 작품을 늦게 느끼게 된 것은 나의 무지함 때문만이 아니다.

내가 그의 詩를 음미할 만한 안목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책을 펴낸 출판사의 편집자도 한몫 거들었다.

시집 책 표지에 거창하게 ‘민족 주체’의 어쩌고 보다는

‘가장 진실한 삶의 내면의 고독, 진실의 소리’라고 말했어야 어린 내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집 78, 79쪽에 쓸쓸히 적혀 있는 시 한편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너무 늦게 찾아줘서 미안하다.

정말 말하고 싶어진다.

세상에 이런 詩도 있었노라고..

 

백석의 詩는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알지는 못한다.

7일이면 최신가요가 세상을 휩쓰는 시대에 70년이 지나도 아직 모른 이가 너무 많다.

지금까지의 나처럼..

물론 그런 사실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70년이 아니라 700년이 지나도 백석의 詩는 살아남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 가.

역시나 예술은 위대하다.

좋은 작품은 위대하다.

 

믿어라.

지금 당장의 힘든 현실을 살고 있어도 좋은 작품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세상에 그 진실이 알려질 것이다.

그때까지 잘 참고 견뎌라.

끝내 그 참 가치를 인정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위대함으로 남고 소중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진리다.

 

2009년 2월 14일..쓰다..


 

*제 글은 허락 없는 인용 및 불펌을 금지 합니다. 혹시, 퍼가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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