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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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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장로교, 새로운 100년의 기로에 서서  

한국 장로교 사회운동의 흐름과 책임




출처 : 기독교사상 9월호 http://clsk.org/gisang/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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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 격동하는 한국 민족의 근대사 속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 되는 1912년, 자주적 주권을 빼앗기고, 희망을 잃은 한국 민족에게 총회는 어떠한 꿈과 비전을 주었는가? 


한국 기독교의 수용사적 입장에서 볼 때 장로교 총회 설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일 병합으로 한국 민족이 모든 것을 잃었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국 민족의 절대적 이상이 있다. 그것은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통일국가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설립에는 이와 같은 절대적 민족 국가의 이상을 근현대 민족사에서 실현하려는 의지와 구상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총과 칼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인 성서와 신앙의 자유를 통한 한국 민족의 계몽과 역사 변혁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선교사 입국 이전부터 성서를 중심하여 자생적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성서와 신앙은 기존사회의 대안적 가치이자 한국민족사의 변혁과 발전의 동력이었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회는 시대마다 주어진 민족의 역사적 과제들에 성서와 신앙으로 응답하며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 글은 한국 장로교 총회 100주년의 역사를 이와 같은 민족사의 관점에서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의 범주로 살펴보고, 그 사회적 공헌도와 한계점을 평가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1. 교육활동을 통한 근대화에의 기여 

초기 한국 장로교의 복음 선교의 지향성이 개인전도와 영혼구원에 목표를 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민족이 처한 식민지 상황에서는 그것이 사회개혁적 지향성을 갖고 한국교회로 하여금 민족의식을 형성케 하였다. 복음은 들어간 곳의 민족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창조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통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뜸과 동시에 봉건적 구습과 일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게 되었다. 성서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거나 양도할 수 없는 고유한 자신만의 존재 가치와 주권이 있다. 이것을 억압하거나 소외시키는 법과 제도, 문화와 관습은 모두 전근대적인 야만이다. 이것을 거부하고 성서의 진리에 근거하여 주체적 선택을 하는 것이 신앙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통해 한국 사회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적서차별(嫡庶差別), 반상갈등(班常葛藤)의 봉건적 폐습을 타파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권국가인 조선을 일본이 무력으로 강점하여 식민지화 하는 것에 저항하며, 한국 민족에게 자율적이고 책임적인 주체 의식을 불어넣는 교육 활동으로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기여를 하였다. 

한국 장로교회의 교육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교회내의 주일학교 활성화를 통한 미래 세대의 교육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1890년부터 성서교육을 중심한 사경반을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1912년 주일학교 실행 위원회를 결성하고, 『만국통일주일 공과』를 간행하였다. 주일학교 교육은 한국 장로교회의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일이다. 성서의 가치관과 신앙윤리로 특히, 봉건적 구습에 물들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 공교육에 세뇌되지 않은 청년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1913년 총회록의 보고에 의하면 장로교회 주일학교 수는 한국교회 전체 주일학교 수의 60퍼센트인 1,418교회이고, 학생 수는 79,323명으로 전체 학생 수의 6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 만큼 한국 장로교회는 근대화를 향한 한국 민족사의 흐름을 간파하고, 미래세대를 준비하는 일에 어느 교파보다 앞섰던 것이다. 

두 번째로는 기독교 학교 교육을 통한 근대적 세계관의 확산과 심화이다. 선교 초기부터 의료와 교육을 통한 학원 선교에 주력해온 한국 장로교회는 계속 늘어나는 학교들로 인해 복음선교와 근대적 가치 전파에 유리한 입지를 고수하였다. 그러나 1915년 교육과 종교를 분리하는 일본의 사립학교 <개정사립학교 규칙>의 시행은 장로교회 학교교육의 커다란 시련이었다. 장로교회에 속한 기독교 학교들은 많은 재정적 손실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권위와 신앙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과 희생으로 급기야 1919년 3·1운동의 동력으로 크게 작용한 기독교 지도력을 형성한 것이다. 1912년 총회 창립시와 3·1운동 이전인 1918년의 총회 예산표를 살펴보면 전도비 보다 교육에 투자한 학교용비가 3배에서 6배 이상으로 증액되었다. 3·1운동은 한국 장로교회가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힘써 온 기독교 교육을 통한 근대적 민족의식의 심화 과정에서 얻은 결과이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자유, 민주, 인권, 정의의 정신은 성서의 핵심 개념이다. 이것은 한국 장로교회가 자주적인 민주적인 통일 국가를 현실에서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실현하겠다는 신앙적 역사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1912년 한국 장로교 총회의 주체적이고 자립적이며,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은 3·1운동에서 더욱 크게 결실을 맺었다. 그것은 장로교 안의 연합뿐만 아니라 교파를 넘어서 개신교들과의 연대와 일치를 이루어 내었고, 더 나아가 종교를 넘어서 천도교와 불교와의 연합을 이루어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확대한 것이다. 


3·1운동 이후 기독교가 받은 피해상황을 보면 기소된 전체 피고인 6,417명 중 개신교인이 1,448명이다. 그 가운데 장로 교인이 절대다수인 1,115명이다. 물론 숫자적 통계치로 근대적 민족의식과 역사적 책임의식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는 조선적 봉건사회의 억압과 일제의 식민지배란 전 근대적인 시대모순 속에서 성서와 신앙교육을 통한 구습의 타파와 인권의식의 함양을 통해 계속해서 한국 민족의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통일 국가에 대한 이상과 결합하면서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동력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2. 농촌 사업을 통한 산업화에의 기여 

식민지 초기부터 시작한 일제의 토지 수탈은 1926년에 이르면 소작농의 비율이 자작농 52,426명에 비해 거의 두 배인 1,185,674명으로 늘어난다. 1915년과 비교하면 농민의 총 수가 4.7퍼센트 증가하는데 소작인의 비율이 25퍼센트나 급증한 것이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란 정치적인 지배는 1920년대 이르러 토지 독점이란 경제권 지배로 전환하여 조선사회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일제의 노골화된 토지수탈 정책에 대한 한국 민중의 격렬한 저항은 여기저기서 강하게 일어났다. 그 중에 하나인 암태도소작쟁의(1923-1924)는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 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이룬 공산주의가 제국적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을 이유로 한국사회에 유입되며 사회의 일부 계층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무산계급의 폭력혁명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한국교회는 일제의 자본주의 수탈구조를 지지하는 부르주아적 반동집단일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어떠한 사회운동의 노선과 방법을 택할 것인가? 조선 사회의 급선무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세계적인 공황에서 자립적인 경제 재건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첫 출발은 농촌사업을 통한 경제자립과 부흥이었다. 1928년 장로교회는 총회조직에 농촌부를 신설하고, 1933년에는 농촌부에 상설 사무국을 설치하여 농촌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농촌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첫째는 농민계몽 활동이다. 제 17회 장로교 총회(1928)는 <농민생활> 잡지를 간행하기로 결의 하였다. <농민생활>은 농민들에게 자립의 꿈과 복지사회의 이상을 불어넣어 주며 실제 농사 개량과 농기구 사용 등의 다양한 농사법 등을 소개하였다. 이 책은 매회 2만부나 발행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농촌 순회 지도를 통해 농민들에게 생활개선과 기술교육을 실시했다. 


둘째로 농촌 지도자 양성과 시험 농장 운영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농촌 사업은 단순한 계몽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1932년 제 32회 총회 결의에 따라 ‘고등 농사 학원’을 구상하였다. 이것은 직접 농사를 짓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하며, 생산과 가공 그리고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배우는 시험 농장이었다. 이와 같은 한국 장로교회의 농촌운동은 한국 민족의 절실한 자립경제의 요구를 교회가 수용하고, 이에 책임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1930년대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직접적인 항일 무력투쟁을 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농업의 근간인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은 오직 농민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농촌 경제를 향상하고 농촌생활을 변화시키는 길이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한편으로 농촌 경제를 향상시키기 위해 농업개량이나 유통 구조의 개선, 부업 장려 등을 활발히 전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도덕적 각성을 강조한 것이다.


농촌진흥운동, 즉 경제운동이 아니다. 정신상 기초가 없는 경제 운동은 일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고로 먼저 정신 운동 즉 종교운동으로 농촌운동의 첫 걸음을 삼지 아니하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 조선의 삼십만 기독교 신자들이여, 우리의 특권이 이에 있으며 농촌의 진흥, 조선사람의 활로(活路)가 오직 그리스도교에 있음인저.1)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단순히 농사법의 개량이나 경제적 부흥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활의 조직과 정신의 갱생”까지를 포함한 사회 구조의 변혁운동이자 민족운동이었다. 즉, 농촌 사업은 일제 식민지하에 있는 농민들에게 자립적인 경제생활을 추구하는 인격적 긍지를 주며, 민족자본의 형성과 재화 창출이란 산업화 과정에 실질적으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농촌 사업은 일본이 1937년 중일전쟁을 시점으로 한국을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삼아 사회의 기본재화를 모두 몰수하는 바람에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한국 장로교의 농촌사업은 1949년에 한국 장로교회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기독교 연합 봉사회(Union Christian Service Center)를 통해 다시 한 번 시도되었다. 기독교 연합 봉사회는 일제 강점기 36년간 피폐화된 농촌을 어떻게 다시 재건하고, 부흥시킬까를 고민하며, 장로교가 구세군과 감리교와 연합하여 세운 에큐메니칼 기관이다. 일제 하 한국 장로교회가 1930년대에 추구하였던 자립 정신과 농촌사업을 계승하여 전시농장과 농민학원을 세우고, 농촌 개발과 진흥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선진 축산 기술의 도입과 협동조합 운동의 전국적 확산은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을 위한 산업화 시기로 돌입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3. 인권운동을 통한 민주화에의 기여 

일제 강점기로부터 한국민족의 해방은 불행하게도 남북의 분단을 가져온, ‘미완의 해방’이었다. 자주적인 민주통일 국가의 꿈은 또 한 번 좌절되었다. 한국장로교는 1946년 6월 12일, 승동교회에서 모여 통일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총회를 유보하는 남부대회를 조직하였다. 제 2회 남부대회는 통일의 전망이 어둡게 되자 1942년 일제의 강압으로 해산되었던 31회 총회를 계승하는 33회 총회로 개최하였다. 따라서 통일 문제는 이후 한국 장로교의 사회 운동에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남북 분단은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을 발발하게 하였고, 더 나아가 한국 장로교의 숱한 분열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서도 장로교 총회의 연합과 일치의 에큐메니칼 정신은 한국 민족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 국가를 향한 해방 열망과 독립의 관심을 수렴하였는데, 남북 분단의 문제에서는 이것을 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가져왔다는 것이 매우 큰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한 것이다.(딤후 2:9) 어떠한 이념이나 정치체제에 가두거나 갇힐 수 없는 것이 장로교회가 믿는 성서의 절대성이다. 그리고 그 말씀 안에 참된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 자유는 거짓을 부정하고, 진리인 말씀에 순종하는 자유이다. 대립과 분열의 자유가 아닌 일치와 연합의 자유이다. 이 자유를 잃어버리면 현실정치 권력이나 이념 체제 아래 성서가 종속되고, 신앙의 생명력이 상실된다. 남북의 분단과 대립을 빌미로 이승만 정권 이후 제 5공화국에 이르기 까지 독재정권 아래서 한국 장로교회는 통일을 향한 민주화 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민주화 운동이 분단 이데올로기와 남북의 적대적 군사 대결을 거부하는 평화통일 운동이며 분단 구도를 악용하는 불의한 세력으로부터 박해받는 의로운 이들을 돕는 신앙고백적인 인권운동이기 때문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인권운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민주헌법 수호와 사회 정의를 위해 부정한 권력과 불의한 제도를 비판하고, 시민으로서의 당연히 가질 언론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차원이다. 장로교 신학자 김재준은 1968년 박정희 정권의 6·8부정 선거에 대하여 “불의에 대한 투쟁도 신앙이다.”라는 글을 발표해 불의에 눈을 감고, 악을 방치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로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한국 장로교는 1965년 ‘한일 굴욕외교 반대선언’ 1969년 ‘3선개헌 반대선언’ 등 성명서를 내고, 시대마다 예리한 비판의 눈을 가지고, 독재권력구조와 체제에 저항하며 선교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는 힘겨운 싸움을 하였다. 한국장로교는 분립된 교단에 따라 각기 명칭은 다르나 ‘교회와 사회문제연구위원회’ 또는 ‘교회와 사회 위원회’ 등을 조직하고, 총회적으로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문제들을 선교적 차원에서 대응해 나갔다. 이와 같은 일들은 한국 장로교회가 인권 운동을 통한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의 기여인 것이다. 


둘째는 부당한 국가 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와 지원 활동이다. 한국사회의 도시화와 산업화가 본격화 되는 1960년대부터 한국 장로교회는 산업전도에 착수한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의 문제가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1970년대이다. “노동 3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턱없이 낮은 저임금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 현장의 문제를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지원하기 위해 총회 차원의 선교 신학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1960년대 ‘산업전도’를 ‘산업선교’의 차원으로 확장하며, 인력과 재정을 지원하고,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산업선교도 커다란 도전과 위기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산업선교가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반대하고, 노동자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용공주의(容共主義)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적인 오해였다. 한국장로교의 산업선교에 대한 관심은 성서의 진리와 신앙의 자유에 근거한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직 신앙 고백적이며 선교적 소명에 대한 책임적 선택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이 땅이 가난하고, 소외받고, 억압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성을 보고, 그것을 지키려는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적 노력은 지난 30년 한국사회의 험난한 민주화 여정의 뚜렷한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이다. 



맺음말

한국교회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1912년, 한국 장로교회는 커다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총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지난 100년 숱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총회는 민족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선교적 소명으로 받아들여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성서의 가치와 신앙윤리를 가지고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100년 전 한국 민족의 절대 이상이었던 반봉건, 반외세의 자주적인 민주통일 국가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국가적 위상은 GDP 2만불의 선진국으로 부상하였지만 한국사회는 아직도 봉건적 구습과 외세의 압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근대적 상태로 추락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주체적 의식과 시대의 추이와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역사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체의식과 역사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 답은 성서의 진리와 신앙의 자유에서 비롯하는 자율과 책임윤리에 있다.

한국 장로교회는 이미 지난 100년의 역사경험을 통해 한국 민족의 절대 이상인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 국가의 꿈을 알고 있다. 그래서 교육활동과 농촌사업, 그리고 인권운동을 통해 그 꿈을 이루는 근대적 가치, 산업화의 정신, 민주화의 이상을 제시하였다. 이제 총회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어떠한 대안가치와 사회적 의제들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한국 장로교회가 한국 사회를 위해 선택할 대안가치는 생명과 생태, 평화와 공공성이다. OECD국가 중 빈부갈등이 가장 크고,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한국 사회는 분명 적신호가 켜져 있다. 또 개발이란 명목으로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생태계와 환경의 파괴는 오늘 이상기후와 심각한 자연재해로 한국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가 추구한 개발과 성장의 패러다임에 몰두한 결과이다. 이제 그 방향을 바꾸어 공존과 공생의 새로운 성서가치와 신앙에 근거한 생명과 평화, 그리고 공공성의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야 한다. 이것은 그 동안 근대적 가치와 산업화의 정신, 또 민주화를 추구한 한국 장로교회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깨닫고 성서적 가치와 신앙의 자유 안에서 생명과 생태, 평화와 공공성을 향한 패러다임 전환에 먼저 나서고, 스스로 모델 공동체로 이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 한국 장로교회가 과거로부터 전향하여 미래를 향해 스스로 개혁해야할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연규홍 l 교수는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가을학기 미국 버클리의 GTU(Graduate Theological Union) 초빙교수로서 강의했으며, 현재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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