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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상 5월호] 김기석과 손석춘의 대화(9) 
돈과 예수, 그리고 죄 
 

출처 : 기독교사상 5월호 http://clsk.org/gisang/  


 cover_629_s.jpg김기석 목사님

이 편지를 받으실 때는 목사님의 몸에 들어온 한기가 모두 풀리셨겠지요. 봄을 맞아 내복을 벗은 목사님께서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몸을 책망하셨지만, 몇 해 전부터 봄이 봄 같지 않은 수상한 계절로 다가온 탓이 더 크겠지요. 올해는 봄의 전령이라는 진달래마저 가까스로 피어나는 듯 처연하더군요. 
‘주님의 기도’를 누가 감히 비틀었는지 여쭤본 지난 편지에 목사님의 자상한 답장 고맙게 읽었습니다. 안식일, 희년과 연결지어 설명하신 대목을 읽으며 새삼 정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 주님의 기도에 관해 문의 드린 편지가 <기독교사상>에 실린 며칠 뒤였지요. 한국기독교연구소 김준우 소장님께서 그 편지를 읽고 주님의 기도에 대해 최근 출간한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존 도미니크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의 역작 『가장 위대한 기도』(The Greatest Prayer)였지요. 지난 편지에서 저 나름대로 주님의 기도를 누가 비틀었는지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크로산의 그 책은 김 목사님의 답장과 함께 저의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주었습니다. 


김 목사님. 
봄이 봄처럼 다가오지 않는 수상한 세월은 목사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교회 내부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목사님께선 일본 동북지역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기도 전에 먼저 ‘큰 종을 자처하는 목사들의 망언’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토로하셨습니다.
실제로 목사님의 불안은 불행히도 적중했지요. ‘큰 종 목사’들은 해일이 남아시아를 휩쓸었던 2004년에 그랬듯이, 허리케인이 미국의 뉴 올리온스를 덮쳤던 2005년에도 그랬듯이, 2011년 일본 지진 앞에서 어김없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심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목사님께선 그들의 무지와 오만을 질타하셨지요. 
기실 한국 교회의 추한 모습은 일본의 지진과 해일 앞에 늘어놓은 망언에서만 불거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지요. 제가 <오마이뉴스>에 과하다고 느끼실 “한기총, 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제목으로 칼럼(2011년2월18일)을 기고한 이유였습니다. 매체의 성격이 달라 <기독교사상> 독자들과도 나누고 싶어 먼저 칼럼 전문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기총으로 불리는 개신교계 최대 교단·단체 연합기구다. 한기총의 ‘보수성’은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보수적이기에 신앙에 몰입하고 정치엔 초연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정치적 색채가 아주 짙다. 
가령 한기총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토목사업 강행을 적극 편들어왔다. 4월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겠다며 모금 운동에 나설 정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종교와 살천스레 갈등 빚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민족문화 보존 차원에서 조계종이 해마다 지원 받아온 ‘템플스테이’ 예산을 이명박 정권이 삭감한 바로 그 시점에, 한기총의 길자연 목사는 뜬금없이 ‘처치스테이’를 들고 나섰다. 해마다 500억-600억 원씩 3천억 원을 지원받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 중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곧이어 열린 선거에서 한기총 회장에 선출됐다. 
바로 그 한기총과 길자연 회장이 금권선거 의혹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한기총 내부에서 구체적 증언이 곰비임비 불거지고 있다. 전임 회장인 이광선 목사가 자신의 선거 때 돈이 오간 사실을 최근 고백했다. 그가 한기총 선거의 부패를 증언한 다음날에는 40여명의 목회자들이 1인당 100만원 씩 받았다며 4천만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고백이 이어졌다. 
그런데 전임 회장의 양심 고백 앞에서도 한기총 내부는 정치적 해석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금권 선거를 척결할 절호의 기회”라는 움직임에 “음해세력의 유언비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길자연 회장 쪽의 목사가 40여명의 목사들에게 1인당 100만 원씩을 건네며 “잘 부탁한다”고 말한 자리에 길 목사가 동석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는데도 그렇다. 
기실 한기총 회장 선출 과정에 검은 돈이 춤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심지어 회장 선별 기준이 ‘재력’이라는 비판까지 있었다. 
하지만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금권선거의 실체 앞에선 설령 그것이 ‘음해세력의 책동’이라 하더라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기총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최귀수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교회에 대해 무람없이 개탄했다. 
“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솔직하고 용기 있는 고백이다. 그래서다. 한기총 목사들이 유대감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 10위에 꼽힌 랍 벨 목사의 진솔한 물음을 들려주고 싶다. 최근 국내에 옮겨진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원제 Jesus Wants to Save Christians)에서 벨 목사는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룰 인간의 몸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신과 인간의 올바른 결합을 보여줄 살과 피를 찾으신다”고 쓴 뒤 곧장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이면 어떻게 되는가? 자신의 백성이 자신이 반대하는 모든 것의 구현체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어떤가.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압제자의 자리에 올라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물론, 모든 장로들이 이명박 장로와 같지 않듯이 모든 목사들이 그렇지는 않다. 이를테면 한국교회에는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라는 상식을 바탕으로 “내 삶의 모든 것이 예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헌신적으로 추구하는 ‘예수살기’모임도 있다. 
오해없기 바란다. 국내 최대 개신교 단체인 한기총이 ‘예수살기’에 나서기를 바랄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혹 한기총이 예수가 반대한 모든 것의 구현체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국가적 불행 이전에 종교적-개인적 비극 아닐까.

목사님. <오마이뉴스>에 칼럼을 쓰며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써야 할 글이라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한기총은 이 편지를 쓰는 이 순간까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진통을 거듭하고 있지요. 목사님께서 이 편지를 받으실 때면 순리대로 해결되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쉽게 정리될 전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기총 선거에서 드러난 검은 돈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목사님께서도 한숨으로 지켜보셨겠지만 곧이어 분당중앙교회 문제가 불거졌지요. 오늘의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를 새삼 짚어보게 했습니다. 분당교회 신도들이 이미 일간지 광고를 통해 <오마이뉴스>를 성토하고 40여명이 버스를 대절해 편집국에 항의 방문을 함으로써 다 알려진 사실이기에 굳이 교회 이름을 익명으로 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그 교회를 개척해온 목사입니다. 여러 가지 명예롭지 않은 일이 겹쳐 목사직에서 사임하는 그의 연봉이 6억 원이었고, 사임할 때 전별금 20억 원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눈길을 모았지요. 분당중앙교회 쪽에서는 사실 관계가 다르다고 했고, 실제로 그 목사가 20억 원을 모두 받은 것은 아니지만, 뭇 사람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목사의 생활 규모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분당중앙교회의 2010년 말 재정보고 자료에 따르면 목사에게 사례비 1억 5300만원, 목회비 6000만원, 대외협력비 1억 5400만원, 세 딸 미국 유학비 2억 300만원(교육비·체류비·왕복항공료), 사모 차량구입·유지·사택관리비·의료비 등을 포함해 6억 원이 지급됐다고 합니다. 교회 쪽에서는 6억 원이 아니라 4억 4777만 6000원이라고 ‘해명’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백번 양보해서 그게 맞는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지 않겠지요. 1억 5천만 원이 넘은 사례비를 받고 거기에 6천만 원의 목회비까지 받는 목사가 자녀 유학비나 대외협력비 수 억 원을 챙길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났을까요.
그 뿐인가요. 최 목사는 당회의 의결 없이 2007년부터 2010년 말까지 총 113억 원의 교회재정을 펀드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4년간 매수 금액만 256억 8400만원, 이 과정에서 지급한 수수료는 3억 3000만 원이 넘는다고 하지요. <오마이뉴스>는 매수와 매도 주문을 최 목사가 직접 했다는 증권사 담당자의 증언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심지어 그 펀드에는 일반 헌금, 목적 헌금, 건축 헌금은 물론이고 신도 2100여 명이 복지재단 설립을 위해 모금한 6억 3000만 원의 복지재단 출연금도 투자되었다지요. 목사의 펀드 투자로 인한 손실은 총 11억 8500만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김기석 목사님.
목사님처럼 청빈한 목회 활동을 하는 분들이 다수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가령 <뉴스엔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김민수 목사는 자신이 담임목사를 마치며 전별금으로 이사비용만 받은 사실을 토로했더군요. 김민수 목사는 “개신교회에는 어떤 정해진 매뉴얼이 없어 교회마다 천차만별이고, 교회 크기에 따라 목회자의 사례비도 천차만별이고, 은퇴 후에도 전별금이나 퇴직금 등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떤 목사는 사례비도 못 받아서 대리운전이나 폐지 수집을 하면서 목회를 하기도 하고, 어떤 목사는 은퇴한 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매달 몇 백만 원 혹은 몇 천만 원씩 챙기기도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집과 자동차 등은 기본이며 주로 대형교회 목사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 사례가 너무 특이하므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비난을 받는 것이지 사실 많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에 저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가난한 신도들이 애면글면 모아준 전별금마저 받지 않은 김민수 목사의 청렴성에 감탄하면서도 저는 그 글에서 새삼스런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대형교회 목사들의 삶입니다. “은퇴한 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매달 몇 백만 원 혹은 몇 천만 원씩 챙기”고 “대부분 집과 자동차 등은 기본”이라는 대목에선 분당중앙교회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어쩔 수 없이 들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려 신문기자 시절에 짧은 기간이나마 종교를 취재했던 저로서도 한국의 대형교회가 이런 상황까지 왔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을 알고 보니 한기총 선거에서 어떻게 검은 돈이 대량으로 살포될 수 있었는지 말끔하게 정리되더군요. 비록 길자연 목사와 갈등관계에 있는 목사의 말을 인용했지만 “한기총, 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제목으로 칼럼을 쓴 뒤 한편으로 너무 과한 비판이 아니었을까 불편했던 마음도 모두 풀어졌습니다.

김 목사님.
한낱 사사로운 관심은 아닙니다. 찬찬히 톺아보죠. 연간 수입이 줄여 잡아도 4억 4천만 원인 목사가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서민의 고통을 온새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1억 5천만 원의 ‘봉급’에 더해 무람없이 다른 돈까지 챙기는 목사가 과연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주님을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은퇴한 뒤에 매달 몇 천만 원 씩 받는 대형교회 ‘원로 목사’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요. 왜 그들이 보수적 정치색을 틈날 때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지, 아니 보수를 넘어 기득권만 완강하게 고집하는 수구적 행태를 보이는지 자명한 게 아닐까요.
그런데 목사님. 
제가 더 궁금한 것은 그 목사들이 신도를 사로잡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보도에 항의해온 분당중앙교회 신도들 가운데는 전별금 20억이 적절하다거나 부족하다고 보는 신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 장로는 “보통 큰 교회에서는 (사직하는 목사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서 나갈 수 있도록 하는데 이 정도 액수로는 턱도 없다”고 했다지요. 직접 항의방문을 온 한 신도 또한 “30억 정도가 적절하다”고 명토박았답니다. 문제의 목사가 여러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하고 있는 데도 그렇게 두남둔 것이지요. 
김 목사님.
앞서 1억 5천만 원의 ‘봉급’을 받는 목사가 무람없이 다른 돈까지 챙겨 연봉 4~6억 원을 받은 사실을 제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기실 저의 경험에서 비롯합니다. 언젠가 목사님께 말씀드렸듯이 제가 몸담고 있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은 ‘십일조’로 시작했습니다. 2005년 8월 분단 50년을 맞아 처음 7명이 모였지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구원’할 정책 대안을 제시하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결의한 7명은 십일조를 내는 회원 100명을 모아 상근연구원 10명을 고용하는 구상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요즘 세상에 십일조 내는 회원 100명을 어떻게 모으느냐고 대다수 사람들이 회의적 눈길을 보냈지만 6개월 뒤인 2006년 2월11일 새사연을 공식 창립할 때 십일조 회원은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저희가 100여 회원으로부터 매달 십일조를 모아 연구원을 출범시키자 당시 어느 목사님은 준비위원장이었던 저를 일러 농반진반으로 “개척교회 목사”라고 하더군요.
목사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 한켠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잠깐이었고, 그 뒤 줄곧 불편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목사님들과 달리 저와 새사연은 회원들에게 영혼을 구원하는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가난한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정책 대안을 연구하고 여론화해 가겠다는 뜻으로 100명의 십일조 회원을 모았지요. 과연 그 회원들의 영혼에 저와 새사연이 평안을 줄 수 있을지 지금도 자신이 없습니다.
결국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저는 초기에 월평균 150만원 받던 ‘활동비’를 88만원으로 줄였고 곧이어 그것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고정수입’이 없다는 게 조금은 불안했지만, 마음은 더 편해지더군요. 
그래서입니다. 교회와 새사연을 동렬에 놓고 생각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만, 신도들이 낸 십일조를 자녀 유학비용에도 썼던 그 목사가 저에겐 아주 먼 나라의 낯선 존재로만 다가옵니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데 30억 원이 들고 전별금으로 준다는 말에는 차라리 그런 신도님들과 함께 했던 그 목사가 부러웠습니다. 30억 원의 10분의 1만 있더라도 가난한 민중을 위한 정책대안을 훨씬 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기 때문에 더 그랬지요. 재정이 확보되는 만큼 젊고 유망한 연구자들을 더 채용할 수 있으니까요.
목사님.
물론, 저는 모든 기독교인이 앞서 소개한 ‘돈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꿋꿋하게 예수의 길을 지며리 걸어가는 목사님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비단 목사들만이 아니지요. 저희 새사연에도 십일조를 내는 회원 가운데 기독교인이 적지 않습니다. 
앞서 인용한 <오마이뉴스> 칼럼을 읽고 전자우편을 보내주신 독자들의 글도 저의 믿음을 더해주었습니다. 기독교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은 기독교인들이 절실하고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지요.
김기석 목사님.
민망하게 제가 쓴 칼럼을 편지에 옮겨온 이유는 더 있습니다. 저는 칼럼 맨 뒤에 “오해없기 바란다. 국내 최대 개신교 단체인 한기총이 ‘예수살기’에 나서기를 바랄 생각은 전혀 없다”고 썼습니다. 
예수살기. 아마 김 목사님도 잘 아시는 단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예수살기’라는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몇 달 전입니다. 예수살기는 2008년 3월 창립선언문에서 “교회는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 반사회적, 반역사적, 반민주적인 길을 가고 있으며, 결국은 교회 내 윤리는 실종되어가고 있다”고 공언했더군요. 결코 쉽지 않은 선언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저에게 예수살기의 선언은 흠잡을 것이 없을 만큼 명쾌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것이 예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역사적 현장을 유기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개인화해버렸다. 역사를 외면하고 단지 종교 영역 안에 갇혀버린 기독교, 삶을 간과하고 단지 말의 잔치로 숨어버린 기독교는 지금 극심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이 추락해버린 한국교회 모습은 어느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 예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우리들의 허물임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심정으로 예수 살기의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결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목사님. 
그럼에도 제가 한기총이 예수살기에 나서기를 바랄 생각은 없다고 쓴 이유는 다분히 방어적이었습니다. 칼럼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했지만, 그런 생각이 얼마나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크로산의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가장 위대한 기도』가 저에게 주님의 기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기에 크로산의 다른 책들을 구입해 읽었지요. 
크로산은 또 다른 역작 『예수는 누구인가』에서 “예수의 말씀들 속에 표현된 철저한 평등, 권력남용의 종말, 개방된 밥상, 하느님 나라의 모형 설정”은 “우리가 이제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더 무서운 것들”이라고 썼더군요. 이어 크로산이 던진 경구는 저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설혹 그러한 비전을 완성할 수 없고, 혹은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다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약화시켜 설명하려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조차 자주 했던 시도들, 즉 예수의 말씀들과 행동들을 길들여서 우리가 보다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로 만들려는 시도는 피해야만 합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성찰한 이유는 저 스스로도 한기총에 선을 그어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복음서 기자들조차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길들여서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로 만들려 했다는 크로산의 치밀한 분석은 저에게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크로산의 문법을 빌려 자신을 톺아보았지요. 왜 나는 한기총이 ‘예수살기’에 나서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칼럼에 썼을까? 한기총을 비판하며 나는 예수의 말씀을 약화시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크로산도 그 길이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더군요. 
“예수가 제시했던 하느님 나라의 비전은 매일매일의 실제적 상황으로 즉각 옮겨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 현실적인 상관성을 갖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비전으로서 매일매일의 사회적 상황과 모든 관습적 제도들과의 창조적인 긴장 속에 있다는 점이며, 바라건대, 우리로 하여금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지요.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우리로 하여금 지상 위에서 똑같은 하느님의 나라를 확립하게 하시는 철저한 정의의 하느님을 선포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한다면, 하느님은, 그렇다면 결국, 세상도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실지 모릅니다.”

김 목사님.
다시 주님의 기도로 돌아오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지난 편지에 답주셨듯이, 그리고 평생 예수와 성경을 탐구해온 크로산이 지적했듯이 주님의 기도는 ‘빚의 탕감’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에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다는 전통을 보더라도 명백하지요. 크로산의 분석에 따르면 주님의 기도를 비틀기 시작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복음서의 기자들이더군요. 
기실 주님의 기도는 목사님께서도 답장에 쓰셨듯이 “오늘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이미 인용하셨지만 저는 <기독교사상>의 독자들과 함께 다시 성경의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보고 싶습니다. 
“매 칠 년 끝에 그 해의 끝에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 면제 규례는 이러하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 주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친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신 15:1-2)
빚을 면제해주는 해가 가까이 왔다고 하여 인색한 마음으로 친족을 냉대하거나 아무것도 꾸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구체적입니다. 빚을 갚지 못해 결국 종으로 팔려간 사람들도 일곱 해 째 되는 해에는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것은 물론 빈손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얼마나 거룩한가요.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대로, 너희의 양 떼와 타작마당에서 거둔 것과 포도주 틀에서 짜낸 것을 그에게 넉넉하게 주어서 내보내야 한다.”(신 15:14)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한 것과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거기에서 구속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여라.”(신 15:15a) 
고백하거니와 저는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크로산의 책과 김 목사님의 편지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오늘의 한국 기독교에 옷깃을 여미며 정중하게 묻고 싶습니다. 왜 주님의 뜻을 실현하지 않는가요? 
왜 한기총 내부에서 스스로 “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고 있는 데도, 이 땅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조용할까요? 
지금이야말로 한국 기독교를 개혁하는 근본적인 운동, 새로운 연대가 힘차게 나타나야 옳지 않을까요? 감히 말씀드리거니와 그게 2011년 현재 주님의 뜻이 아닐런지요?

김기석 목사님.
저 같은 먹물이 쉽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실을 알고 난 뒤, 진실을 알수록, 예수의 길을 따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직도 제가 미처 알고 있지 못한 진실이 더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목사님. 
적어도 주님의 기도는 바로잡아야 옳지 않겠습니까.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말로 옮긴 김준우 소장은 빚의 탕감 대목에서 ‘옮긴이 각주’를 통해 저 같은 독자의 궁금증을 예상했다는 듯이 자세히 일러주고 있더군요.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마태복음 6:12 관주에서 ‘헬,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옵시고’라고 설명함으로써 그리스어 원문에는 ‘죄’가 아니라 ‘빚’으로 되어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새번역과 표준새번역 개정판에는 각주에서 그리스어 원문에 대한 언급이 없이 ‘또는 빚진 사람의 빚을 없애준 것 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 목사님. 
저는 ‘그리스어 원문’이라며 밝힌 것과 ‘또는’이라고 쓰는 것은 차이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 새번역과 표준새번역 개정판은 ‘그리스어 원문’을 또 하나의 해석 차원으로 의미를 낮췄을까요? 

김 목사님.
지난 편지의 끝자락에서 목사님께서는 제게 참 긴요한 충고를 주셨습니다. “가끔은 한눈도 팔며 살라”고 하셨지요. “너무 몰두하다가 소진되거나 거칠어질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라고 쓰셨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 자신도 제가 너무 거칠어지는 게 아닐까 성찰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주님의 기도’와 관련해 진실을 알고 난 뒤 저는 지금 더 불편해졌습니다. 너무 자주 한 눈 팔며 살아온 스스로에게 문득문득 의문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어서입니다. 
과연 이 명백한 불의를 묵인해도 좋은 것일까? 
‘가장 위대한 기도’를 읽어가는 바로 그 시점에 곰비임비 불거진 한국교회의 치부는 주님의 기도를 왜곡한 데서, 아니 주님의 기도를 왜곡한 뒤에도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짐짓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데서 뿌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사님.
“벗들을 만나 더러 허튼소리도 해보고, 숲의 고요함 속에 머물기도”해야 옳은 데, 그 말씀에 참으로 공감하는데, 그럼에도 지금 편지를 띄우는 이 순간 과연 제가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자괴감이 앞선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편지가 “더러 허튼소리”는 아닐런지요. 
그래서인데요.
목사님. 
제 가슴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질문을 드립니다.
죄란 무엇일까요? 
원죄를, 죄를, 어떻게 이해하는 게 옳을까요? 

손석춘 님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으로 언론학 박사이다.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중앙대-연세대 겸임교수,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신문읽기의 혁명1, 2권』을 비롯한 언론비평서와 『순수에게』, 『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 장편소설 『아름다운집』을 발표했다. 민주언론상, 통일언론상, 한국언론상, 한국기자상,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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