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일하러 아내가 나간 사이, 혼자 술을 먹던 이 남성이 갑자기 화가 나서는 머리에 오르는 열을 참지 못하고, 머리에 구멍을 뚫어 열을 식히려 했다고 하는군요. 10cm 짜리 못을 6cm 깊이로 정수리에 박은 채로 병원에 실려 왔다는 군요. 뿐만 아니라 배와 팔에도 못을 여러군데 찔렀다고 합니다. 다행히 8시간의 수술로 살았다고는 하네요.
장황하게 중국인의 자해 소동을 쓴 이유는 제가 내과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비슷한 환자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 머리에 박힌 못이 보이시죠? 출처 : 뉴스보이]
3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인데, 온몸에 화려한 문신이 보이더군요. 순간 쫄았죠.
'이거 조폭 간의 전쟁아냐???'
시신에는 속옷만 입혀져 있었고 완전히 피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얼굴이나 몸에 구타 흔적은 전혀 없더군요. 함께 온 젊은 여자에게 어찌된 일지 물어보며,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였습니다. 환자의 인적사항을 묻는데, 이 여자분이 잘 모르시더군요. 사실은 자기가 보호자가 아니라, 같이 술을 먹다 죽은분이 자해를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사타구니에 1cm 가량의 칼자국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을 기다렸습니다.
외상은 단 1cm 폭이고 깊지도 않지만, 하필이면 칼이 찌른 부위가 대퇴동맥을 정확히 잘랐더군요. '밴드 오브 브라더스'란 미국드라마의 후반부에 보면,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 오발하여 대퇴동맥을 관통하여 즉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처럼 정말 이 동맥이 잘리면, 갑자기 쏟아지는 피로 인하여 몇십초면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영화) 중 하나입니다. HBO에서 제작한 10부작 Band of Brothers는 전쟁을 예찬하기 보단, 어쩔 수 없는 전쟁터에서 인간이고자 하는 인간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눈물겨운 작품입니다.]
잠시후 경찰아저씨들이 오셔서 사건 조사를 하시고, 응급실에 근무하는 저희들에게도 질문을 하시더군요. 외상이니 외과가 주진료과이지만, 처음 진료한 것은 저이기 때문에 저도 몇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개괄적인 사건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간단하더군요.
이 여자분이 이 남자분이 단골술집 종업원이고, 가계에서 술을 마시고 이 여자분 집에 술을 한잔 더 하러 갔는데, 술 안주로 사과를 깍아서 마시다가, 취한 남자분이 요즘 열이 많이 받는데 '너(아가씨)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며, '똑바로 안하면, 어떻게 될지'를 보여준다며 앞에 있던 과일 깍던 칼로 허벅지를 '딱 한번' 찔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가 막 솓아나는데 어찌할 줄 모르다 보니... 이렇게 된 거라는군요. 경찰관이 여자분과 동행하여 과도를 가지고 다시 응급실로 와서 사타구니의 상처와 대조를 하더군요.
[아래쪽 붉은 관이 대퇴동맥(femoral artery)죠.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정맥보다 바깥쪽에 위치한 동맥이고 피부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심장 및 뇌혈관조영술을 위한 경로이자 동맥피를 쉽게 뽑을 수 있는 곳이라 의사들에게는 고마운 동맥이죠.]
열 받는다고 자기 몸에 폭력을 휘두르지는 건 바보짓인지 누구나 다 머리 속으로 알기는 하죠. 또한 다른 사람을 해가는 것은 바보짓를 넘어 '악행'이란 것도 잘 알죠. 하지만, 술기운이나 격한 감정으로 잠깐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인간인 모양입니다. 흉기나 주먹을 이용한 폭력만이 아니라, 언어폭력이나 성폭력 또한 마찬가지겠죠.
2009년 한해는 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막연히 말로만 하는 것보다는 술을 과하게 먹어 취하지 않으려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실은 지난 달에 술 취해 차에서 자다가 얼어 죽을 뻔 했거든요... ^^; 구해 준 집사람에게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은 생명의 은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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