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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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행스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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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오순도순 머물다가는 정토마을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상실’이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사회와 가족, 자신의 삶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힘들어한다.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헤아리며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자제병원 상량법회 하루 전이던 3월31일, 두 가지 상실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를 잃은 거사님이 정토마을을 찾아왔다. 아내의 임종을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거사님에게서 술 냄새와 함께 외로움과 무기력함이 짙게 느껴졌다. 거사님은 직장에 나가겠다는 의욕도 없이 술로 상실감을 달래고 있었다. 이어 1년 전 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보살님의 전화를 받았다. 보살님은 딸이 백혈병 진단을 받는 순간 현실을 외면하고 숨어버렸다. 보살님은 1달 전 암을 선고받았는데 지금은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딸이 집에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 보살님은 죽은 딸을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상실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죽음이 끊임없이 넘실대는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언젠가는 상실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느끼는 상실의 강도는 극심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예가 드물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도 떠나는 사람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요즘 우리사회가 ‘슬픔의 빠른 극복’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일까. 아버지는 아버지라서, 어머니는 어머니라서, 자식은 자식이라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억압되면 그 감정은 분노와 우울로 변질될 수 있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상실에 있어 즉각적인 반응은 대개 사건에 대한 부인이다. 정신적 증상으로 안절부절, 혼란, 무관심 등이 나타나고 신체적으로는 현기증, 기절, 발한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가족을 잃은 아이의 경우 슬픔을 묻거나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어린아이의 가슴에 애도의 감정이 억압된다면 그 감정은 일평생 아이의 가슴에 상처로 남게 될 것이고 그 상처는 삶의 여러 고비마다 투사될 것이다. 상실감을 억압하고 애도의 여정에 참여시켜주지 않는 어른들의 편견은 아이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준다. 


하지만 상실은 인생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며 그것에 대한 애도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상실에 있어 자신이 누구를 잃었는지 알지만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또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때는 애도의 감정을 충분히 표출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의 지지와 돌봄이 필요하다. 애도는 죽은 사람의 의미를 가슴에서 되새김질하며 산 사람을 진정으로 살리는 일이다. 죽음을 겪는 고통을 삶 안으로 소화하는 일, 죽음과 삶을 잇고 그 자연스러운 이음 속에서 다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그러기에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면 그러한 상실에 따른 애도의 여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할 줄 알아야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삭혀내는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토마을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 가운데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토마을을 다시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면 상실의 감정을 외면하고 억압하며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려는 의도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든지 그것과 직면해야하며, 그럴 때 비로소 건강한 애도의 여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3340403647739.jpg 요즘은 사람이 죽어도 애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애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 애도 할 줄 모르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상실과 진솔하게 대면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삼년간 곡을 하며 온 가족이 애도의 여정을 함께했다. 오늘날 그렇게 할 수야 없겠지만 상실에 대한 적절한 애도는 인간을 더욱 고귀하고 의미 있게 만든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출처 : 법보신문  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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