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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 총회 100년, 그 빛과 그림자(3) 

한국교회여, 예수는 정녕 그리스도인가? 




출처 : 기독교사상 http://clsk.org/gisang/


 

 cover_639_s.jpg앞서 두 회에 걸쳐 초기 한국장로교회사의 출발을 일단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이를 순서에 따른 역사적 서술만으로 이행할 경우 한국장로교회의 오늘과 미래를 투영하는 일에 있어 정곡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역사의 허리를 자르고, 그 앞뒤를 종횡으로 더듬는 것이 더 빠르고 옳겠다는 판단이다.


‘예수’와 ‘그리스도’의 이별

필자는 몇 차례의 기회를 통해 한국기독교사를 나라 밖에서 강의하면서, 한국교회의 분열 상황, 특히 두드러진 현상으로서 한국장로교의 분열상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 분열의 역사적 과정이나 분열의 명분을 간추려 이야기하기도 어려웠지만, 우선은 분열된 교단들의 ‘이름’을 정리할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 먼저 장로교회의 분열에서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가 분열 상태임을 알려야했다. 감리교회는 ‘기독교감리회’와 작지만 ‘예수교감리회’도 나뉘어져 있다. 뿐 만이랴, ‘기독교성결교회’와 ‘예수교성결교회’,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와 ‘예수교 하나님의 성회’, ‘기독교침례회’와 ‘예수교침례회’ 등등이 다 별도 살림을 차린 것이다. 도무지 이렇게 교파나 교단이 분열되면서 별도의 이름을 붙일 때, ‘그리스도’와 ‘예수’를 서로 나누어 가지며 흩어져 나간 연원은 어떻게 하여 생긴 것인가. 한국교회사를 공부한 필자로서도 이것을 별도로 곰곰이 살펴 볼 기회가 사실 없었다. 물론 때때로 “왜 한국교회는 그렇게 거칠게 그 이름에서부터 ‘예수’와 ‘그리스도’를 나누어 놓았는가 하는 의문을 지니거나 질문을 받기도 한 것은 물론이다. 

해방 후 한국교회 대 분열시대 이전의 경우, 간혹 교회 내 작은 분립교회가 발생할 때의 이름을 보면, 대개는 원래 연원이 되는 해당 교파의 이름을 빼고, ‘자치’, ‘자립’이라는 독자성의 의미를 살리거나 더 적극적으로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붙여 토착적, 독립적 구획의 의미를 내세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로교회의 작은 분립교회 역사에서 일부 예만 보아도, 1910년대의 전라도 최중진 목사는 ‘자유교회’를 선언했고, 1920년대 대구의 이만집 목사는 ‘자치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황해도 봉산의 김장호 목사는 장로교 총회에서 나와 장로교 이름을 아예 빼고 ‘조선기독교회’를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경남 마산의 박승명 목사나 감리교 출신의 이용도 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그룹들은 각각 스스로를 간단히 ‘예수교회’로 지칭했다. 그리고 토착교회 설립의 대표성을 지닌 최태용 목사는 ‘복음교회’라는 이름을 붙여 기독교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 시기 한국교회의 분열사와 분립교회의 명칭으로 보면, 그 갈등의 표적이 상당히 뚜렷하게 드러난다. 곧 선교교회와 토착교회의 신학적, 행정적 갈등이 그 근간이 되는 것이다. 선교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선교한 서구 교파의 이름으로서 ‘장로’, ‘감리’ 등은 그 자체가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선교사를 매개로 서구교회 전승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프랜차이즈’(franchise) 교회로서의 종적 정체성이 강하게 들어 있는 것이어서 이를 배제하는 것이 독립을 의미했다. 반면에 ‘자유’, ‘자치’, ‘자립’이 들어가거나, 아예 선교 주체의 원류가 되는 ‘장로’, ‘감리’라고 하는 원래의 교파 명칭을 빼고, ‘조선’으로 가는 것은 그 이름대로 ‘토착교회’를 표방하는 것을 의미했다. 더구나 ‘예수교회’ 아니면, ‘복음교회’와 같이 기독교의 훨씬 본질적 연원에 잇대어 교회 명칭을 포괄하는 것은, 결국 ‘장로’나 ‘감리’에 배어 있는 서구 기독교의 역사적 전승을 뛰어 넘어 기독교의 출발 본질, 원초적 계시로 바로 되돌아가서, ‘전승’보다는 ‘계시’를 존중하는 교회로 개혁해 나가겠다는 의미가 짙다. 결국 이것은 초대 기독교의 전통에 잇닿으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으나, 더 깊이 보면 ‘토착적 계시’가 ‘전승의 계통’을 생략하고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강력한 자존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보면, 일제하에서 드러나는 분열과 그 분열의 명분은 거의 선교에서의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갈등, 선교교회와 토착교회의 갈등으로 그 명분을 정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정직하게 그 명칭에서 이미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웃 일본의 기독교 역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선교 전통과 토착기독교회 설립의 노력이 대결적 구도로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프로테스탄트 수용자들은 시기를 불문하고, ‘일본적 기독교’의 가치에 방점을 두어 온 것을 살필 수 있다. 이에 최초로 일본 요코하마에서 설립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이름도 ‘일본기독공회’가 되었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선교전승이 바탕이 된 교회임에도 거기에 장로교회를 표방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장로교회라는 이름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그 후 ‘일본기독교회’(日基)가 바로 일본의 장로교회이고, 그것은 나중에 여러 교단이 합하여 하나의 교회가 된 ‘일본기독교단’에서도 결코 서구적 전통의 교파이름은 사용하지 못한 사례가 된다. 이는 경우와 정황은 다르지만, 중국의 ‘중화기독교회’의 전통에서도 함께 찾아지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예수’는 보수적이고, ‘그리스도’는 진보적인가

결국 해방 이전 한국장로교 내의 작은 분립들에서 그 분파교회의 이름을 통해보면, 선교교회와 토착교회의 갈등이 확연하다. 즉 분열의 명분으로 보면 신학적 분열의 일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해방 후 시작된 한국장로교회, 물론 타 교파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그 분열은 선교교회 전승의 기득권과 정통성을 서로 주장하는 분열이 되었다. 즉 ‘장로교’는 장로교의 이름을 강력히 내걸고, 오히려 그 교파교회의 전통과 주도권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주장하는 분열형식이 취해진 것이다. 이는 감리교회나 성결교회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대표적 분열인 장로교의 ‘기장’, ‘예장’ 분열에서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 균열이 일어나고 말았다. 즉 앞서 제기한 대로 ‘그리스도’와 ‘예수’가 분열의 골을 타고 만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기독교의 가장 고전적 명제에 흠집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교’와 ‘기독교’가 일단 교단 명칭으로 갈라진 뒤 거기에 교파전통인 장로회를 가져다 붙인 것이다.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 이들은 각각 이미 1912년 미국남북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장로회, 캐나다장로회 등 네 개의 선교장로교파가 연합(사실은 그 바탕을 형성한 스코틀랜드장로회까지 추산한다면 다섯 개의 장로회)하여 설립한 총회 전통을 그대로 적통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즉 이 분열은 신학적인 태도의 완급문제가 그 명분이었다고 되어있으나, 근본적으로 보면 더욱 그렇지가 않다. 장로교회의 적통, 즉 1907년 장로회 독노회가 수립되고, 1912년에 4개의 장로회 선교교파가 연합하여 설립한 조선장로회 총회의 전승을 어느 쪽이 더 잘 계승하느냐 하는 다툼이었다. 이는 물론 ‘기장’, ‘예장’의 분열에서만 있었던 특징은 아니다. 그것을 전후로 ‘고신’, ‘통합·합동’, 그 이후의 극심한 장로교 분열 역사는 모두 그와 같은 장로교 적통을 주장하는 기득권, 재산권, 세력권 간의 다툼이었다. 이를 풀어 이야기하면, 최소한 수용된 교회로서, 적어도 ‘선교 전승’이냐 ‘토착 계시’냐 하는, 분열에 있어 일말의 신학적 토론도 수반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 그 명칭의 첨예함에 더욱 주목하는 것은 반복하지만, ‘예수교’와 ‘그리스도교’의 결별이다.

더불어 기장, 예장 분열에서 연원된 것인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한국교회 분열 역사에서 ‘그리스도교’(기독교)는 진보 성향, ‘예수교’는 보수 성향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형성한 것 또한 주목되는 바이다. 당연히 ‘기장’은 ‘예장’보다 진보적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기감’은 ‘예감’보다, ‘기성’은 ‘예성’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고, 일반의 이미지도 그러하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신학적 토론을 깊이 할 필요는 없지만, 반대로 세계 기독교 신학사의 흐름에서 ‘예수교’라 함은 신학적으로 더욱 진보적인 특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예수교의 방점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이다.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그에 비해 더욱 교조, 교리적인 성향, ‘기독론’의 정통성에 더욱 중심을 둔 입장으로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예수교’와 ‘그리스도교’의 이름은 그러한 신학적 성찰과 중점적 성향의 향방까지 고려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이미지 형성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단면으로 보면, 신·구교를 합하여 부를 때 주로 ‘그리스도교’를 사용한다든지, 더욱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예수교’ 보다는 ‘그리스도교’의 사용을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에큐메니칼 진영의 교회들이 ‘그리스도교’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과정에서 진보적 성향의 이미지가 더욱 확대된 일면은 있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논의의 여지가 있다. 즉 한국교회에서 가톨릭교회는 더욱 진보적인 교회라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다. 어쩌면, 이러한 이미지는 일정한 시기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활동이나 책임의 전개, 특히 1960년대 이후의 적극적인 에큐메니즘 실천과정에서 형성된 이미지이다. 그러나 역시 신학적으로, 사도전승의 방향에서 보면, 어느 프로테스탄트교회보다 보수적인 교회가 가톨릭교회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분열 장로교회의 명칭들

‘그리스도교’가 ‘예수교’보다 진보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앞뒤 사정을 살폈다. 그런데 그 연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그룹의 첫 이름은, 1952년 6월 3일 조직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호헌위원회’가 그 출발이다. 이는 물론 당시 예장 총회가 “①조선신학교 학생들에게는 일체 교역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②한국신학대학 교수 김재준 목사는 목사직을 박탈하고 그의 소속 노회인 경기노회에 제명을 지시하여 이를 선포케 한다. ③제36회 총회 시 성서축자영감설을 부정한 조선신학교 교수요, 캐나다 선교사인 스코트(William Scott)목사를 심사하여 해당 노회에 명하여 처단케 한다. ④각 노회에서 위 두 교수의 사상을 옹호, 지지, 선전하는 자는 해당 노회에서 처벌한다.” 이상의 조항을 제37회 대구총회가 가결하자, 이것이 장로회의 전통이나 신학뿐만 아니라 헌법에도 어긋난다는 반발이 일었다. 이를 문제시한 이들이 헌법을 지킨다는 의미의 ‘호헌’이라는 말로, ‘기장’의 정통성을 주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한 ‘호헌’이라는 말은 차후 살피겠지만, 한국장로회 분열역사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정통주의적 용어가 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기장분열의 전개는 별도로 살피도록 하겠지만, 이 명칭의 문제가 사실 지금의 관심사이다. 즉 한국장로회 중 가장 진보적이고, 심지어 자유주의 신학의 혐의까지 받은 ‘기장’이 그 그룹의 이름에 처음에는 ‘호헌’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이제 정리해 나갈 한국장로회 분열 분파의 이름을 논할 때 가장 상징적 암시가 되는 특징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장로회 호헌파가 ‘예수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그 명칭으로 취한 것은 호헌위원회가 가동된 지 2년 후인 제39회 총회, 곧 1954년 6월의 일이다. 여기서 ‘대한기독교장로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로 이름을 정했다. 그러나 당시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결코 교파의 이름이 아니었다. 언제가는 합해야 할 별도의 ‘총회’이름으로 ‘그리스도교’를 택했고, 의미를 기록하기는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아주 보편적인 신학적 명제를 고백한 바 있다.

분열의 역사적 내용은 별도로 하고, 여기서 차례로 등장한 대표적 분열 분파의 이름들을 살펴보자. 우선 ‘기장’은 ‘호헌’을 시작으로 앞서 본바와 같이 ‘그리스도교’를 선포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대부분 장로교 분열파의 명칭에서 ‘그리스도교’가 아닌 ‘예수교’가 채택되었다. 한편 별도로 예장의 대 분열의 하나인 예장 ‘고신파’가 분열했다. 이 이름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고려신학교’의 준말로 이후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신학교 분파’ 명칭의 한 연원이 된다. 그 이후의 신학교 중심 분파 명칭들을 보면, ‘예장 총신’(총회신학교), ‘예장 장신’(장로회신학교), ‘예장 계신’(계약신학교), ‘예장 대신’(대한신학교), ‘예장 합신’(합동신학교), ‘예장 웨스트민스터’(웨스트민스터신학교), ‘예장 백석’(백석대학교) 등등 다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들 각각 신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분파들은 그 후 다른 명분으로 다시 교단이 나누어지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신학교가 다시 분열하여, 그 분열한 신학교의 소재, 위치에 따라, 혹은 총회 사무실의 위치에 따라 예를 들면, ‘사당동파’, ‘방배동파’ 등으로 나누어 불렀다. 그리고 대표적 신학교 명칭에 따른 분파이름인 ‘고신’이 ‘고려’가 되기도 하고, 그 내외의 복잡한 분열역학 중에 기형적으로 탄생한 최고의 명물로서의 분파이름은 ‘반고소고려파’이다. 이러한 분파이름이 발생한 경과나 내용은 별도로 하더라도, 우선 그 이름에서 교파 분열의 분쟁을 ‘세속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자는 입장’과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입장’의 대립에서 후자에 해당하는 분파의 이름인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이 명칭이야 말로 세계적인 교단 명칭의 역사에서, 그리고 총 추산 백 수 십 개를 훨씬 상회하는 한국장로교 분열 분파의 복잡한 명칭 중에서도 단연 주목되는 특징적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1959년 한국장로교 최대분열의 역사인, 통합·합동 분열에서, 각 교단은 결국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으로 교단 명칭이 나누어졌다. 물론 이 대분열의 역사는 별도의 항목으로 차후 다룰 것이다. 우선은 그 이름 형성과 특징에 주목해 보자. WCC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지지여부가 표면에 있었으나, 저부에는 개인적 인맥 파벌의 갈등과 지역적 구획 등이 복합되었다. 역시 이 또한 한국장로회의 정통성, 주도권에 대한 다툼이었고, 곧 인맥, 권력, 교회재산의 향배가 분열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들이 갈라진 총회 장소는 대전중앙교회였다. 여기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두 파는 서울로 각각 올라와 한 쪽은 연동교회에서, 한쪽은 승동교회에서 각각 계속 총회를 속개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각각 ‘연동파’와 ‘승동파’로 나뉘어 불렸다. 그런데 타협하여 다시 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던 두 거대 분파는 결국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승동파는 먼저 분파되어 있던 예장 고신파와 1960년 12월에 극적인 연대를 이루어 합동총회를 개최함으로써 그 명칭이 예장 합동이 되었다. 물론 이 합동총회는 그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잔류와 재차 분파의 헤쳐모여를 거쳐, 다시 고신파가 분리해 나감으로, 합동의 정신은 사라지고 이름만 합동으로 남게 되었다. 한편 연동파는 분리해 나간 승동파와 지속적인 통합 노력을 한다는 의미로, 일단 문제가 된 WCC에서 일시적으로 탈퇴를 하고, 재통합을 위한 노력을 명분으로나마 지속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교단 명칭이 예장 통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 합동이고, 통합이지, 이 시기 한국장로교회는 통합의 시대가 아니었다. 이름과는 전혀 반대로 극렬한 분열의 시대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고신파와의 합동, 재 분파를 거친 예장 합동의 분열 역사가 더욱 혼란스러웠다. 1962년에는 국제기독교연합회(ICCC)문제가 관건이 되어, 예장 호헌파가 여기서 분파해 나갔고, 앞서 본 바대로 1963년 9월에는 일시적인 합동총회로 같은 조직을 형성했던 옛 고신파가 재 분파하여 고신 총회와 그 각각 노회를 분립해 다시 나갔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분열 조짐이 가장 뚜렷이 회자되었고, 1979년 9월 사당동파 방배동파를 시작으로 거의 핵분열에 가까운 분파 분열이 휘몰아쳤다.

그런데, 여기에서 새삼 주목해 볼 것은 현재도 한국장로회의 가장 큰 분파 교단인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이 모두, 그 연원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교단의 명칭으로 이른바 ‘연합’과 ‘동맹’을 능가하는, 강력한 일치교회의 지향이 될 수 있는 ‘통합’, ‘합동’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의 의미에 의하면, ①통합(統合)이란,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 따위를 하나로 합침, <교육>아동 및 학생의 생활 경험을 중심으로 학습을 종합하고 통일함, 또는 그런 일, <심리>여러 요소들이 조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룸, 또는 그런 일, 유의어 :도합, 응집, 종합”<네이버 국어사전 중>. ②합동(合同)이란, “둘 이상의 조직이나 개인이 모여 행동이나 일을 함께함, <수학>두 개의 도형이 크기와 모양이 같아 서로 포개었을 때에 꼭 맞는 것, 유의어 :공동, 병합, 연합”<네이버 국어사전 중>.

이상에서 보면, 두 용어 모두 의미상으로는 용호상박으로 일치와 연대를 강력히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교단 명칭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장로회 양대 교단이 한국교회 분열의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는 일 자체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분열하고 있더라도 양 교단이 이러한 이름에 걸맞는 통합과 합동의 목표와 실천에 매진하고 있다면 그것은 의의가 있다. 현실과 이상, 아니면, 현상과 목표의 관계로 얼마든지 해명할 수도 있고, 통합과 합동의 도상으로서의 실존으로, 오히려 그 신학적 명분마저 석명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 한국장로교 주류교단의 행태는 자파 교단의 공식적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조차 망각하고 있는 단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합동’이라는 강력한 일치목표의 교단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예장 합동은 대분열 이후 현재까지 한국장로교 소분열의 역사 역시 대부분이 바로 그 합동 교파의 이름과 조직 하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교회의 일치나 연합운동의 신학 자체, 곧 에큐메니즘을 거부하고 있는 현상에서 명칭과 실제의 유리라는, ‘무심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합동이라는 강력한 연대의 명칭에서 파생된 분파이름으로, ‘합동 정통’, ‘합동 개혁’, ‘합동 보수’, ‘합동 진리’, ‘성경 합동’, ‘합동 근본’, ‘합동 총신’, ‘합동 총회’, ‘합동 정통 개혁’ 등등의 합동 아류의 분파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어색한 분파의 이름들이 파생되었다.


분파 이름의 성향 분류

앞서 다수 예를 들었지만, 한국장로회 분파 명칭에 사용되는 이름들을 신학적, 어원적 연원에 따라 분열의 명분에 합당한 용어와 반하는 용어, 그러한 용어의 뉘앙스 상으로는 분열성 이미지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의미와 연원을 지닌 용어로 크게 분류해 볼 수 있다. 이 또한 한국장로회 분열 역사를 반추해 보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여긴다.


‘정통’은 신학적으로 정통주의를 표방한다. 이는 자신들의 입장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이단이 되는 사고이다. 강력한 분파의식이 아닐 수 없다. 이와 유사하게 근본주의의 표방, 성경중심주의의 표방, 헌법중심주의의 표방, 웨스트민스터 신앙신조나 교리주의, 순수 강조, 개혁전통으로의 환원이나 보수 진리의 표명 등은 모두 분파적 성격을 그 자체로서 지닌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자파 신학교 출신만으로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신학교 분류, 지역명칭을 사용한 차별성 사용 등도 일단 분파적 용어로서 분류할 수 있다.

한편 이미 살핀바 대로, 한국 최대 장로교단의 명칭인 통합·합동을 비롯하여, 연합, 연맹, 중앙, 총연, 종합, 총합 등은 이미 그 용어의 의미로는 분열을 지양하고 일치를 목표하고 있는 이미지를 지닌다. 물론 그러나 실제의 방향과는 대부분 다른 언어도단을 보이고 있음은 더욱 지적할 사항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류될 수 있는 용어들은 그 단독으로도 분파 명칭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수많은 순열조합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연결되어 사용된 사례도 다수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예를 들어 합동이라는 일치 지향의 용어가 ‘합동 개혁’, ‘합동 보수’, ‘합동 정통’ 등등으로 전혀 다른 이미지와 결합되어 무분별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작명된 이유는 이른 바 ‘예장 합동’ 교단으로부터 연원하였다는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덧붙이기지만, 최소한 국어사전적 의미로도 상충되는 용어를 가장 핵심적이며 정제된 ‘메니패스토’라고 할 수 있는 교단의 명칭에서 그토록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결국 한국교회의 이와 같은 자화상, 더구나 그 대표 격으로서 한국 장로회의 혼미한 분열현상, 그리고 그 가장 표피적 분석으로서의 분열 분파의 명칭 하나에서도 문제 상황의 심각한 실황이 강력히 발견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우선 각 교파의 이름에 깃든 신학과 역사를 점검해 보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서정민 l 교수는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교회사)를 거쳐, 현재 일본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학교 객원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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