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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거리 한가운데 멈춘 자동차

일반 조회수 9465 추천수 0 2008.10.14 09:02:20
 

5거리 한가운데 차가 멈추다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라고 김남조 시인은 그의 시 “설일”에서 말했다. 산다는 것이 잠재된 사고의 연속 선상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때로 든다. 청소년기에는 잠깐 나도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더 보기 좋아한다. 마음이 밝아지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면서 좋은 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겸허함까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장단점의 양면인 세상과 사람을 볼 때에는 기왕이면 밝은 면을 볼 것이다.


지난 목요일이었다. 보름 전부터 광주에서 통근을 하는 후배 교사인 박 선생님과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교내 메신저를 자주 사용하여 좋은 글의 한 대목을 상황에 맞게 낯이 설지 않은 몇몇 선생님들에게 보내는 나는 그와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메신저를 보내면 답장에 따라서 보낸 글에 대한 사람의 반응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쥬얼 미디어에 익숙하다. 또한 조금이라도 진지한 생각이 필요한 것을 귀찮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저런 까닭에 비록 짧은 글이라도 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그래서 나는 그런 면을 참고하여 짧은 글이라도 메신저로 보낼까 말까를 결정한다. 그런데 박 선생은 나름대로 골몰하는 문제가 없다면 나의 글에 대한 반응이 빠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감대는 넓어지고 공통점을 찾게 되어 인간관계는 깊어지게 된다.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생각해야 한다.


박 선생님과 약속을 한 날이 목요일이었다. 주변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아마 두 사람은 일반적인 술자리와는 달리 마음에 있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장소도 정하지 않고 퇴근부터 나의 차를 함께 타고 가서 막연하게 평화광장으로 갔다. 장소야 가서 정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편한 생각으로 갔다.


15년 동안 나의 발이 되어 세상 속으로 안내를 해온 나의 자동차가 어제부터 이상했다. 시간을 알리는 글자가 평소에 전조등을 켤 때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어제 아침 출근하기 전에 이를 확인하려고 봤는데 물론 전조등은 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퇴근할 때에는 아예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방전된 경우와 똑 같은 현상이다. 송 선생님이 점프선을 이용해서 가까스로 출발은 했다.


사실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소위 기계치이라는 점이다. 심지어는 장도리를 드는 일을 제외하고는 어떤 연장을 사용한 일도 두려워한다. 컴퓨터도 다른 사람들보다 5-6년은 늦게 배웠다. 지역 교육청에 연수과정이 없어질 때쯤에 지명을 받아서 연수를 할 정도였다. 워드 1급 자격증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또 어떻겠는가? 15년간을 사용한 자체도 나에게는 기적이다. 아니 무랑태수 같은 나의 성격 때문에 지금의 자동차를 애용하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먼 길을 가려면 카센터에 가서 사전 정비를 받는다. 나는 한 번 크게 데어야 그 다음부터 준비를 한다. 몇 년 전일까? 지금의 자동차로 서울에 갈 적에 고속도로에서 멈춘 적이 있었다. 사고가 나야 자동차 부속을 바꿀 정도로 나의 삶은 허점투성이다. 그래서 15년 동안 타고 아내와는 달리 아직도 자동차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속도감이 많이 떨어진다. 옆자리 박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배터리 상태가 좋지 않거나 세레모터(스타트 모터)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역시 과학 선생이었다. 시청 앞을 가면서도 불안하다. 아주 미세하게 덜컹거림을 느낀다. 잘 아는 카센터가 하구뚝 입구에 있다고 하자 거기까지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고 한다.


보채는 아이 달래듯이 조심조심 간다. 그러나 예상했던 순간은 금방 벌어졌다. 고가도로를 지나서 이마트 앞의 5거리의 한 중간에서 멈춰선 것이다. 당황스럽다. 평소 나의 소심한 성격이라면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 선생님이 있어서 당황하는 순간은 길지 않았다. 차를 한쪽으로 밀자고 했지만 5거리의 교통량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했다. 교통순경도 없었다. 전원이 아예 들어오지 않아서 비상등도 글리지 않았다. 트렁크를 열자고 했지만 그마저도 열리지 않았다.


“대천(大川)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一千石) 실은 배에 /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도 끊기고 돛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이라는 사설시조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자동차들이 절해고도처럼 5거리 한복판에 멈추어 서있는 차를 피해서 통행을 한다. 얼마나 미안한지. 빵빵거리지 않아서 운전하는 그들에게 더욱 미안했다. 나를 동정해서일까? 아니면 황송하게도 시민의식의 성숙된 자세일까? 순간 예상밖의 일이 일어났다. 하얀색 소형차가 내 차 옆에 멈추었다. 무슨 일일까?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는 무인도에 서 있는 나에게 뜻밖의 위문객이 나타난 것이다.


“선생님, 저 은희예요? ㅁ여고 제자 은희예요.”


고맙게도 자신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어색하기도 한 나의 묘한 표정. 처음에는 이름과 얼굴이 낯설었다. 다른 것이 부족한 만큼 기억력만은 상당히 좋은 편인데 잠시 ‘응, 응’하면서 무척 반가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실제로도 은희양은 생명수나 다름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고맙고, 반가워’를 몇 번이나 계속한다. 설마가 예보를 무시한 후 버스를 타고 바닷가의 포구에 배를 타러 나갔는데 예보처럼 눈보라가 사정없이 내려친다. 당연히 배는 뜨지 않고 미리 알았던 구멍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때 배가 뜰지 몰라서 혹시나 하고 와봤다는 낯선 이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5년 전의 겨울이 생각난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라는 말이 맞다. 은희양에게서 그것을 느꼈다. 바쁠 텐데 따가운 초여름 햇살 속에 스스럼없이 맨 얼굴을 드러낸 은희양이 정말로 고맙다. 화장기 하나 없는 은희의 얼굴, 세상 어떤 작위적인 느낌도 없던 은희양에게 바쁠 텐데 어서 가라고 했다.


그래, 세상을 착하게 살 이유가 있다. 겸허하게 살 이유가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살 이유가 있다. 나눔을 실천해야 할 이유가 있다.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새삼 뼈저리게 다가온다. 그래서 하느님은 늘 사람과 가까운 곳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사제들은 말하는 모양이다.


도울 것이 없냐고 몇 번이다 묻던 은희양이 생각났다. 은희는 학창 시절에 공부는 별로 잘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는 하얀 얼굴이었다. 말수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항상 하는 아이였다.


공부는 좀 못하더라도 그보다 더 잘한 것이 많은 아이였다. 특히 인성이 도드라졌다. 내 기억이 맞다면 고은희일 것이다. 교사로서 학교에서도 가장 친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조용한 학생이다. 표현력이 부족하거나 내세우기를 좋아하지 않거나간에 나는 그런 아이들을 속으로 더 좋아한다. 표현력이 아직도 부족한 학창시절의 내 모습을 지우지 못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은희는 그랬다.


자동전화로 연결한 보험회사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보험을 담당하는 카센터로 직접 연결했다. 본사로 전화를 해야 한다고 하자 상황을 설명하면서 견인차부터 보내주기를 요청했다. 견인차가 왔다. 늘 보던 과장이다. 그들은 상업이겠지만 나에게는 생명수였다.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였다.


어려움을 함께 해준 박 선생님에게 무척이나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우리는 잠시 걸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다. 여기저기를 마음속으로 기웃거리다가 가까운 곳 중에서 아주 단순하게 골라서 들어갔다. 둘 다 소식가여서 음식이 남았다. 주인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사전에 한 상을 받으려면 4명이 좋다고 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2 사람만 만났다.


그러나 대화의 질은 아주 높았다. 문학청년이던 시절의 이야기, 코흘리게 시적 콧수건을 왼쪽 가슴에 차던 시절 이야기, 주말농장을 가꾸는 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 등등 사무적인 관계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정을 꾸려가는 이야기, 자녀교육관, 바람직한 스승의 모습 등 화제는 다양했다. 소주는 한 병을 둘이서 마셨다. 그때 다른 모임에 갔던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연스럽게 시원하고 맑은 밤공기를 마시면서 다음 장소로 옮겼다.


이합집산을 하고 인적 구성원을 재편성하는 등 짧은 시간에 인간 시장은 여러 번 바뀌었다. 도중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카센터로 가서 차를 찾아서 집에다 두고 다시 3명의 모임에 참석했다. 세레모터를 재생용으로 갈았다고 하여 8만원을 주고 대리운전을 불러서 차를 집에 둔 다음에 택시를 불러타고 다시 밤무대로 나갔다.


‘나 같으면 은희양 같이는 못할 것이다. 바쁘다는 합리화를 핑계로 그냥 지나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더욱 겸허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적어도 나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 더욱 평화로울 가능성이 많은 것이 아닌가.


은희양이 떠날 때에 나의 직장은 밝혔지만 묻지 못한 은희양의 전화번호가 궁금하다. 나의 유일하기도 하고 마지막 장점이기도 한 밥 사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고 아쉽다. 하느님께 기도해볼까. 은희양으로부터 가까운 날에 전화가 오기를 기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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