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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값과 얼음 홍시

일반 조회수 7715 추천수 0 2008.12.10 22:50:59

피자 외상 값과 얼음 홍시

 

“저 푸르지오에 배달왔습니다. 댁에 계시면 갈까요?”

“아이고, 이를 어쩌지요? 지금 광주에 가는 길입니다.”

“아니예요. 손님 댁 가까운 곳에 배달 온 김에 그냥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난 달에 초등학생을 둔 성당 교우가 생각이 나서 저녁 미사를 마치고 귀가하다가 피자를 선물해주었다. 예전부터 마음속에 있었으나 때에 따라서 불필요한 생각이 많은 나의 특성 때문에 절정기를 자주 놓쳤는데 그때 갑자기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산 치즈와 국산 쌀을 사용해서 만든다는 피자 가게에 전화로 주문을 했다. 오만하게도 미안하게도 외상인 셈이다. 교우는 오늘 행운아다.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나의 절정기에 그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외상!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 샘께서 방위성금을 내라는 급한 공문이 왔다면서 오늘 종례 때까지 모두 100원(환?)씩 내라고 했다. 종례 시간이 되었다. 성금을 내지 않은 학생은 나를 포함해서 2명이었다. 즉석에서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빌려달라고 해서 내게 되었다.

 

사회성이 없는 것인지 외상을 하지 않으려는 못난 성격 때문인지? 아니, 두 가지가 적당히 섞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외상은 나의 사전에 없었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 자신이 하나의 신용 카드와 같다는 것과 가끔 외상이라는 것은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기능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 시절에는 유별나게 융통성이 없었다. 상대방의 부탁에는 융통성이 아주 많지만 나 자신에게는 답답할 정도로 말이다.

 

그나 밤에 교우로부터 피자를 고맙게 잘 받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는 회심작을 완성한 작가의 마음처럼, 옥동자를 해산한 산모처럼 외상이라는 사실은 얼마동안 나의 기억 속에 휴지부가 되어버렸다. 나의 일상에 매몰되고 만 것이다. 금년 학교에서도 컴퓨터로 일을 하다가 3번인가 수업을 놓치거나 조금 늦게 들어간 적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해결이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게임에 집중하는 것은 집중력과 상관이 없다고 하던데 나도 그런가?

 

피자를 선물을 한 후, 3주쯤 후인 지난 일요일. 성당 미사를 마치고 아내랑 광주로 차를 몰았다. 백화점 세일 기간을 맞아 아들의 겨울 옷을 사려고 가는 도중이었다. 따르릉! 피자 가게의 주인의 전화였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또 실수를 했다. 참으로 미안했다. 그런데 전화상으로는 나보다 피자 가게 주인이 더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괜히 외상값을 독촉했다는 피자 가게 아주머니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또아리를 튼다.

 

전화기 속의 음성은 월요일 퇴근 시간까지 나의 소심한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월요일 퇴근 시간을 틈 타서 피자 가게에 들렀다.

“스르륵!”

“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셨지요? 피자 값을 드리러 왔습니다.”나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주인은 계산대에 어떤 물건을 내어놓았다.

“아이스 홍시 좋아하세요? 저희가 먹으려고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작은 상자 둘을 내어놓았다.

“차를 가지고 오셨지요? 둘 중 하나를 가져가세요.”

 

여전히 나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 하나는 12개, 다른 하나는 9개가 작은 플라스틱 상자에 들어있었다. 하얗게 서리를 입고 있었고 약간 터진 속으로 홍시의 빨간 속살이 맛보기처럼 곱게 선을 보였다. 중국 두목이라는 시인이 서리 맞은 단풍을 이월화(二月花)보다 붉다고 했던 시구가 생각이 났다. 얼굴은 갸름하고 조금은 겸손하게 창백한 모습의 주인 아주머니! 그녀의 마음이 홍시의 붉은 속살처럼 살짝 보인 듯도 했다.

 

아직도 나는 외상 값을 치르지 않고 있었다. 아주머니와 나 사이에는 피자 값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얼음 홍시가 있는 것이다. 현금영수증 발급하는 소리는 아직도 들리지 않고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고 있었다. 상업적인 친절을 내가 순진하게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은 분명이 인간적인 친절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피자를 하나 포장해달라고 주문을 했다. 밤호박 피자를 주문해놓고 아내에게는 저녁을 준비하지 마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에 oo이라는 답장이 왔다. 세상을 삭막하다고만 판단한 것이 나의 선입견이었을까? 그날 저녁은 따뜻한 밤호박 피자를 아내랑 맛있게 먹었다. 훈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얼굴이 조금 상기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먹을거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영양분도 따지고 유기농인지도 따진다. 시골 부모님이나 장모님이 주신 것은 의심치 않고 먹는다. 외식은 자주 하지 않지만 하게 될 경우에는 많이 따진다. 피자도 국산 치즈와 국산 쌀을 사용한 것을 찾는다.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의 훈훈한 인정까지 받았으니!

 

화요일 밤에는 얼음 홍시를 꺼냈다. 외국식으로 말하면 셔벗이라고 해야 할까? 얇은 껍질을 살짝 벗긴 다음에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는 맛이란! 아내의 숟가락에는 뜨는 양이 적어진다. 맛 때문인지 아주머니의 인정 때문인지 양을 조절하는 것 같다. 옛날 어머니처럼 아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런 음식을 보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떠오른다. 어쩌면 세상에 속고 산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욱 좋은 것은 아닐지! 아름다운 사연 때문인지 시원하고 달기가 그만이다.

 

보통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자연보다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보다는 자연에게서 감동을 많이 받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감동의 대상이나 순간을 자연에게서 더욱 찾으려 하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내가 있는 학교에는 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공부에 매달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따뜻한 마음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눈을 잠시만 돌려보면 뜻밖에 아이들이라는 사람에게 감동을 발견하고 흐뭇해한다.

 

그런데 장사를 하는 어른에게서 감동을 받았으니 내가 감동을 사람들에게 돌려줄 차례가 아닐까? 세밑이다. 나도 따뜻한 환경이 되어야겠다. 순수한 얼음을 녹이지 않는 따뜻한 환경 말이다. 어느 NGO 단체에서 산타 클로즈 할아버지를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60을 넘어야 한단다. 나도 산타클로즈가 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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