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눈에 띄는 좋은 책

우리말 성서번역사의 새로운 이정표



출처 : 기독교 사상 http://clsk.org/gisang/



17554894.jpg성서를 쉽게 읽도록 하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환영할까? 이른바 평신도들은 이를 기뻐할까? 성서가 쉽게 읽히고, 그에 따라 이해가 높아지면 어떤 이들은 차라리 무지의 상태로 남아 있었다면 좋았으리라고 후회할 수 있다. 광야를 헤매던 히브리인들이 고기와 마늘을 먹었다던 이집트 땅을 그리워하듯 말이다. 마음을 다해 의지하던 특정 구절의 뜻이 자신들의 이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어리석은 탄식이 나올 것이다. 가령,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씀을 집이나 가게에 걸어놓고 새삼 삶의 의지를 다지던 이들은 그게 자신의 이해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리라. 그렇지 않아도 불확실하고 혼돈스러운 세상에 안정과 번영의 약속을 빼앗아버리는 새삼스런 지식은 짜증을 불러올 수 있다. 다른 편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모호하여 그저 대강 넘어갔던 본문의 뜻이 명확해지면서, 거기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게 되는 경우 말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등 각종 이념에 흠뻑 젖은 이들은 본문의 뜻이 또렷해지고 그것이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차마 손에서 내려놓지는 못하겠는 성서를 손에 들고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성서는 그때 ‘뜨거운 감자’의 형편이 되고 만다. 

소위 ‘평신도’가 아닌 종교 지도자들 혹은 목회자들은 쉽게 읽히는 성서를 반가워할까? 조금 꼬인 속내를 가진 사람의 추측은 이렇다. 일부 목회자들은 편안히 이해되는 성서를 별로 내켜하지 않을 수 있다. 다소 불친절한 본문, 그것도 원어가 히브리어나 아람어, 그리스어와 같이 우리가 흔히 접할 기회가 없는 언어로 기록된 문헌을 번역한 본문일수록 언필칭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평신도는 신학교에서 (기껏해야 몇 학점에 불과한 교육이 전부일 경우가 많지만) 그 어렵다는 원어를 배우고, 흔히 쓰지 않는 단어와 고어투가 담긴, 그러면서도 뭔가 엄숙한 분위기를 가진 성서를 오늘날의 언어로 풀어내는 목회자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존경의 눈빛은 쉽게 이해되는 성서, 그래서 이내 목회자의 성서 해석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도록 하는 ‘쉽게 풀어 재미있게 읽는 성경’ 때문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성서 언어의 단어 몇 개를 주워 삼키며 특별한 공부를 자랑하고픈 허영에 들 뜬 목회자들이 쉽고도 재미있는 성서를 굳이 반길 이유가 없다. 


민경식 교수가 이러한 우리의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는 짐짓 이를 무시한다. 대신 그는 “성서를 우상화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이것은 내가 짐작키로는 성서에 대한 신뢰와 관계있다. 성서의 권위는 우리가 바치는 찬사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는다. 도리어 그는 성서는 그 자체의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그는 신앙인들의 용기를 믿는다. 성서에 대해 자신이 가진 이전의 오해를 과감히 수정할 용기, 또 성서를 자신의 뜻에 맞춰 조정하기보다는 성서 앞에서 자신을 교정할 신앙의 용기 말이다. 


성서의 우상화를 거절하며 누가복음을 새롭게 엮어 옮긴 연세대의 민경식 교수는 우리 신약학계 성서 번역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학문적 능력을 보유한 학자이다. 신약성서를 번역하자면 우선 성서의 언어인 그리스어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리스어를 능통하게 해도 그것이 곧바로 좋은 번역을 낳지는 않는다. ‘번역’에 대한 이해, 곧 번역이론에 대한 튼튼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지금 우리의 말, 곧 탁월한 21세기 우리말 구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한 번역을 기대할 만한데, 민 교수는 이에 더해 신약학자로서 본문의 역사, 사회, 문화, 정치, 문학적 지식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직 소개해야 할 것이 더 남아 있다.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은 뮌스터 신약성서본문연구소가 발행하는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성서를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한다.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그리스어 성서이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바로 그 연구소에서 일하고 공부하였으며 알란트의 성을 이어받은 학자를 지도 교수로 신약성서 사본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취득하였다. 나아가 그는 이미 세계성서공회연합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번역을 자문하면서 실제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이만한 학력과 경력을 갖춘 학자가 드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성서번역에서 최고 수준의 학자가 번역한 역작 앞에 있다. 그러나 번역자의 높은 명성이 곧바로 번역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꼼꼼히 번역의 속과 밖을 살펴 ‘명실상부’한지를 살펴야 한다.


이 새로운 누가복음 번역을 앞에 두고 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미 우리에게는 우리말로 번역된 여러 종류의 번역 성서가 있다. 그런데 왜 또 새로운 번역이 필요하단 말인가?” 민경식 번역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과감히 ‘기능적 번역’을 시도했다는 데에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번역이론은 ‘문자적 번역’에서 ‘기능적 번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장구조를 옮기는 것보다는 본문의 의미, 그 뜻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여기 작용했다.”(6쪽) 어떤 이들은 ‘문자적 번역’을 매우 강조한다. 마치 ‘기능적 번역’을 하면 성서를 왜곡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온전한 의미에서 ‘문자적 번역’이 있다한들 이해할 도리가 없다. 마태복음 1장 1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책 세대의 예수의 그리스도의 아들의 다윗의 아들의 아브라함의.” 우리는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문자적 번역’을 하자는 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가 ‘문자적 번역’이고, 어디까지가 허용되는가? 그 답은 ‘문자적 번역’을 주장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을 뿐이다. 


기능적 번역을 통해 성서의 의미를 번역하려 했다면, 민경식의 누가복음 번역은 복음서의 이야기성도 되살리려 한다. 16세기 중엽에 스테파누스가 붙인 장절을 없애 누가복음의 이야기, 곧 장절로 ‘구분’되지 않는 흐름을 되살렸다. 사실상 이야기로 된 복음서는 독서용이라기보다는 낭독용이었다. 복음서를 회중 앞에서 ‘읽는’ 사람은 우리나라 무성영화 시대에 변사(辯士)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이는 이른바 지중해 세계, 특별히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전혀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는 책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보다는 호메로스의 작품을 외워서 공연하던 사람(호메리다이)의 입을 통해 확산되었다. 


‘기능적 번역’과 이야기의 흐름이 강조된 누가복음의 첫 장을 열자마자 민경식 번역의 특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민경식 번역은 이른바 문장 구조 혹은 어순도 고려하여 번역의 대상으로 삼는다. 우리는 편지를 보내거나 어떤 책을 누군가에게 헌정할 때 수신인의 이름을 맨 처음에 놓는다. 민경식 번역은 이를 살려서 1장 1-4절을 번역하였다. 


존경하는 데오필로 각하께,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미 많은 사람이 글을 썼습니다. 처음부터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그대로, 또한 훗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그대로 말입니다. 저 역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차례대로 엮어서 각하께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하께서 이미 아시는 일이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 무엇인 진실인지 아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데오필로 각하께”는 헬라어 성서에서 3절에 나온다. 그러나 이를 개역개정이나 새번역과 같이 3절에 두기보다는 1절 머리에 두는 것이 1-4절의 의미를 더욱 잘 살린다. 따라서 민경식 번역은 헌정의 대상을 글의 제일 처음으로 올렸다. 우리말 번역 중에는 공동번역개정판이 이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데, 민경식 번역은 단지 이곳에서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문장 구조와 어순을 분명하게 번역의 대상으로 고려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도 하지만, 바둑을 두어본 사람은 수순(手順)의 중요성도 안다. 문장의 구조나 어순을 적극적으로 번역의 대상으로 삼는 번역의 탄생은 즐거운 일이다. 


눈에 띄는 또 다른 번역의 특징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보충적 설명이 자연스럽게 곁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장 5-12절은 당시 제사 및 ‘아비야 조’와 관련된 관행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그 구절은 이렇게 번역된다.(밑줄이 보충 설명임) 


기원전 4년 경, 헤롯대왕이 유대 땅을 다스리던 때의 일이다. 유대의 제사장들은 가문에 따라 24개 조로 나뉘어 있었고, 각 조가 한 주씩 돌아가며 예루살렘 성전 제사 일을 도왔다. 이 가운데 아비야 조에 속하는 사가랴라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아론의 후손이었으며,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중략- 마침 사가랴는, 자기가 속한 아비야 조가 제사를 담당할 차례가 되어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일을 수행하게 되었다. 관례에 따라 제사장들은 각자가 맡을 일을 제비로 뽑아 정했는데, 사가랴는 주님의 성소 안으로 들어가 분향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물론 불가피하게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경우, 곧 역사적 배경과 같이 설명은 상자 안에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설명 상자가 성서읽기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나아가 이 번역의 또 다른 장점은 단지 보충적 설명에 머물지 않고 전문적인 학자들의 주석 결과가 반영되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주석에서부터(11장 44절의 번역을 보라) 대단히 섬세한 부분에까지 걸쳐있다. 따라서 기존의 번역과는 완전히 다른 번역을 제안하는 것도 있다. 14장 24절과 16장 8절의 번역이 그러하다. 


여러분,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처음에 초대받았던 사람들 가운데서 내 잔치를 맛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번역에서는 비유 속 주인이 종에게 한 말이 아니라 예수가 청중(여러분)에게 한 말로 설정되어 있다. 개역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게 처리되어 있고, 새번역에서는 인용 속 말의 화자를 주인으로 청자를 종(단수)으로 설정한 것과 완전히 다르다. 나는 민경식 번역에 찬성표를 던진다. 청자를 나타내는 헬라어는 복수 형태이기 때문이다.  16장 8절도 매우 흥미롭다. 민경식 번역은 이렇게 되어 있다. 


비유를 마치시고(설명), 주님께서는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셨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세상에 속한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기 때문이다. 


우리말 성서는 모두 비유 속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민경식 번역은 주님이 칭찬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이것은 아마 논문으로 미처 써 내지는 않았지만 민 교수의 오랜 본문 연구의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주석적 번역은 그간 난해한 비유로 알려진 비유들이 새로운 번역과 함께 다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여러 예를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의 현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가령 논란 가운데 우리말 성서에는 좀처럼 반영되지 않은 높임말의 사용이다. 예수가 오늘 우리 사회에 온다면 대중 앞에서 설교나 강연을 할 때 현재의 우리말 번역 성서처럼 반말을 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번역은 예수의 대중 설교를 경어로 표현했다. 예수는 이른바 ‘평지 설교’에서 이렇게 설교한다. 


여러분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슬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웃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법만이 아니라 도량형을 번역할 때에도 현대의 단위가 사용되었다. ‘리’의 감각을 가진 이들은 이제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km’가 훨씬 쉽게 감지된다. 따라서 24장 13절 같은 곳은 이렇게 번역된다. 


바로 그 날,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된 그림은 어느 경우에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하였고, 번역의 무게에 비해 다소 가벼운 삽화라는 느낌이다.


성서학에서 번역은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처음 성서본문을 공부하고자 할 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등 성서의 언어로 된 본문을 번역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번역의 완성은 해당 본문에 대한 주석적 연구와 해석학적 성찰이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된 후에야 이루어진다. 번역은 본문 이해의 최종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우리말 번역 성서의 수준은 우리의 성서학 수준을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만한 번역을 갖게 되어 참으로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나라 성서번역의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될만한 공헌과 수준을 보여주는 민경식 교수의 누가복음 번역이 모쪼록 많은 분들의 손에 가닿기를 기대한다.


김학철 l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학위(Ph. D.)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를 맡고 있다. 




저자 민경식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신약성서 본문비평과 신약성서 사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뮌스터 신약성서본문연구소(INTF)에서 연구 활동을 하였으며, 이후 성서사본에 대한 연구와 발표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이자 세계성서공회연합회 아시아-태평양 지역 명예번역자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신약 사본과 인쇄본 이야기』, Die fruheste Uberlieferung des Matthausevangeliums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성경 왜곡의 역사』, 『중소형교회 성공 리더십』(공역), 『땅콩박사』(공역) 등이 있다. 


목차

1장 예수의 생애와 어린 시절

2장 세례자 요한과 예수

3장 갈릴리에서의 선교활동

4장 예루살렘을 향해

5장 예루살렘에서의 선교활동

6장 수난과 부활 

출처 : yes24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일반 중앙일보 교보문고, 올해 인문서 우린 다르게 살기로했다 imagefile 조현 2018-12-21 22706
공지 일반 조현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북콘서트 초대 imagefile 휴심정 2018-12-03 27576
공지 게시판 글쓰기에 관한 안내입니다 [3] admin 2011-07-08 773967
2218 일반 이곳은 뭐하는 곳인가? [1] 땅끝촌넘 2008-01-02 15645
2217 일반 지구의 절규, 마음의 절규 imagefile anna8078 2011-11-17 15598
2216 일반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 입문서 [3] repent00 2012-09-19 15568
2215 일반 자본과 노동! repent00 2013-04-06 15449
2214 일반 함세웅 신부 은퇴 미사 imagefile [1] 휴심정 2012-08-27 15358
2213 일반 앗. 사이트 오픈을 축하드립니다. image [1] 미야 2008-01-02 15319
2212 일반 좋은 엄마란... dhsmfdmlgodqhr 2012-07-05 15250
2211 일반 “시장의 인간화·보통사람들 ‘성화’ 이뤄져야 새 세상” imagefile [2] 휴심정 2012-04-23 15185
2210 일반 세대를 아우르는 다정한 멘토 혜민스님 - Dear 청춘 movie 휴심정 2012-05-29 15152
2209 일반 히말라야에서 온 청전스님 인터뷰 기사 image [4] 조현 2011-09-26 15139
2208 일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1] loongrun 2015-12-04 15081
2207 일반 남자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5가지 [1] 조현 2012-02-03 15054
2206 일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극단적 종교갈등이 갖고 있는 파괴성... 영화 <그을린 사랑>... imagefile [2] hyuri4you 2011-07-25 15031
2205 일반 안경벗지마 !! 장기하! imagefile hyuri4you 2011-08-15 15011
2204 일반 위대한 조비알리스트2 - 울고있는 진인편 imagemoviefile [7] ujanggum 2014-05-21 15001
2203 일반 말복, 그리고 입추 imagefile anna8078 2012-08-07 14978
2202 일반 CBS 이명희입니다. [1] 이명희 2008-01-10 14972
2201 일반 한국판 <월든>, <산위의 신부님> image [2] 조현 2011-10-16 14862
2200 일반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imagefile [3] wonibros 2012-07-20 14859
2199 일반 석천암에서 [1] 무를찾아서 2008-01-26 14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