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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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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기반 미디어 생태계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구하는 설교자  




출처 : 기독교사상 11월호 http://clsk.org/g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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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심각하게 비판하는 현대 설교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설교를 다 듣고 난 다음에 청중의 입장에서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설교의 주제나 핵심사상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설교자가 말하려고 하는 요점이 뭐냐?”는 것이다. 저자가 관심을 두고 살펴본 바에 의하면, “지난 25년 동안 들었던 설교 중에 요점이 분명한 설교는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19쪽) 오늘날 기독교 설교는 성서적인 근거도 희박할 뿐만 아니라 한 편의 설교의 흐름 속에서도 통일성과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고 설교자의 여러 일방적인 주장만을 나열하고 있어서 로타리클럽의 연설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2쪽)


이런 암담한 현실을 염두에 두고 저술한 이 책은 그 제목만 언뜻 보면 매우 도발적인 느낌을 준다. 저자가 설교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거나 조롱 섞인 시각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은 보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신학전통을 견지하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종교학과 신학석사 학위를 마치고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13년 동안 고든콘웰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바울 서신을 가르쳤고, 보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전통을 따르는 교회에서 9년간 목회하기도 했던 매우 보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신학자요 목회자이며 설교자이다.(11쪽)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들 중에서 설교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간주하며 실제로 목회자들이 설교 사역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교파가 있다면 그것은 개혁파 목회자들일 것이다. 그 이유는 개혁주의 전통은 교회의 본질과 기능을 성서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인 설교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그 누구보다 설교 사역의 영적인 권위와 그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이 일에 부름 받은 실제 설교자들의 설교 사역을 존중하는 입장을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95, 10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 제목처럼 현대사회 속의 개혁파 목회자들의 설교가 평범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13, 20, 30-36쪽) 현실에 대해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목회자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11개월 동안 암 치료를 받는 심각한 고통 중에라도(8, 94쪽) 서서히 무너져가는 교회 강단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교회의 설교 사역에 대한 간절한 애정과 희망 때문이었다.(105쪽)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의 저자가 오늘날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문화적인 변화(11쪽)이다. 그 중에서도 전자 매체의 등장으로 인하여 현대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문화의 현장으로서의 미디어 생태계(Media Ecosystem)가 지성을 자극하는 텍스트와 언어 기반 미디어로부터 시청각을 자극하는 이미지 기반의 전자 미디어로 바뀌었다는데 주목한다.(15, 38-41쪽) 현대 설교의 질적인 저하에 영향을 준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와 관련하여, 저자가 주목하는 문제점은 현대인의 시청각을 자극하는 이미지 기반의 전자 미디어에 현대인들이 오랜 시간 노출되니, 지성을 자극하는 텍스트 독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적과 신비의 세계가 담긴 텍스트를 읽더라도 그 텍스트 안의 “단어와 문장으로 빚어낸 은은한 기적은 눈여겨볼 줄 모르고 그저 글의 내용만 피상적으로 캐내어 가는데” 익숙해진다는 것이다.(49쪽) 이런 현상의 단적인 증거가 바로 텔레비전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청각 이미지로 가득 찬 텔레비전은 깊이 있는 정신과 영혼의 세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57쪽)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대개 사람의 두 귀 사이에서 움직인다. 정신과 영혼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언어의 세계이며 움직임이 없는 세계로, 급변하는 이미지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세계다.”(5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현대인들이 피상적인 이미지들이 쏟아지는 텔레비전이나 영화, 심지어 핸드폰에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 “설교자가 이런 현상에 물들면 … 그는 여느 책을 읽듯 성경도 똑같은 방식으로 읽는다. 속독으로 쭉 훑으면서 가장 명백하게 눈에 띄는 내용을 찾는다. 이 본문은 ‘무엇에 관한’ 말씀일까? 그는 이런 물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지만 텍스트가 어떻게 조직됐는지는 눈여겨보지 않는다.”(50쪽)


성서 본문의 일차적인 목적은 독자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에 관한 지식이나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현실세계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세계를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독자들을 초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독자들이 그러한 성서의 초청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려면 성서 본문의 문학적이고 수사적인 장치들과 전략들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성서 본문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텍스트의 단어와 구절, 그리고 수사적인 표현들을 깊이 있게 음미하면서 읽을 줄 알아야 하며 텍스트 행간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상상력을 갖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설교자가 특별히 텍스트에서 자극받는 것이 없는데 그가 하는 설교가 회중을 자극할리는 만무하다.”(50쪽)


이 책에서 현대의 지루해진 설교와 관련하여 저자가 비판하는 또 다른 현대의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은 전화다. 전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음성을 멀리서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67쪽), 대화 중에 대화에 대한 상대방의 몰입도나 대화 주제에 대한 상대방의 관심의 정도가 나타나는 얼굴표정을 전혀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68쪽) 대화 중에 상대방의 반응을 고려하지 못하게 만드는 미디어 생태계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설교자들은 “내 말을 듣는 상대의 반응을 읽는 훈련이 돼 있지 않아서 … 설교 시간에 회중의 반응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교인 전체가 설교를 듣지 않는데도 목사님 혼자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했다.”(68쪽) 


시청각을 자극하는 이미지 기반의 미디어 생태계가 기독교 설교자들과 설교 사역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본질적으로 언어로 구성된 정신과 영혼의 세계를 강단에서 제대로 설교하려면 먼저 급변하는 이미지 중심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언어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감성을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설교자들은 시와 같은 문학적 텍스트를 정독하고 깊이 있게 묵상하며 텍스트 행간 속에서 정신과 영혼의 깊이 있는 세상을 상상하며 체험하는 능력을 훈련할 것을 권면한다.(97-101쪽, 104-106쪽) 저자는 지금도 학생들 중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될 뜻이 있다면 종교학이나 신학을 전공하기 전에 먼저 영문학을 전공할 것을 권한다고 한다.(106쪽) 

이미지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설교 능력이 점차 퇴보하는 현대의 설교자들에게 저자가 제안하는 또 다른 대안은, 편지나 기도문과 같은 글을 쓰는 훈련을 통해서 짜임새 있게 소통하는 능력을 배양하라는 것이다.(110쪽) 20세기 중반 이전 이미지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가 조성되기 이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설교자들은 편지를 쓰거나 설교 원고를 작성하면서 깊이 있는 사고체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였고, 그러한 영향으로 설교내용 역시 일관성과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미지로 무장한 전자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면서 현대인들은 점차 텍스트를 통해서 깊이 있는 사고를 전개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그 결과 현대 설교자들의 설교의 일관성과 통일성은 로타리클럽의 연설보다 더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저자의 통렬한 비판과 책망은, 예비 설교자들을 훈련하는 서평자 본인의 입장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판이기도 하다. 신학생들의 사고 능력은 점점 퇴보하고 있으며, 설교 사역을 준비하기 위하여 미리 작성하는 설교문의 내적인 일관성과 통일성도 점차 퇴보하고 있다. 한 편의 설교에 너무 많은 주제들이 무차별적으로 나열되는 경우들이 부지기수다. 한 편의 설교에 너무 많은 주제들이 제시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의 내적인 일관성이나 논리적인 통일성이 무시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비논리적이고 일관성 없는 설교가 반복된다면 청중은 설교를 듣는 일에 관심을 거둬버릴 것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간단하고도 단호하다. 이미지 기반 미디어로부터 돌아서서 텍스트를 정독하고 묵상하며 행간에 숨은 세계를 상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독해 능력을 배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서 사고와 논리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배양하라는 것이다. 현대 교회의 설교 현실을 바라보는 저자의 비판은 매우 예리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벌거벗은 임금님에 관한 우화가 생각났다. 우화에 등장한 사치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어느 임금님은 사기꾼의 농간에 속아서 결국은 벌거벗은 몸으로 만백성들 앞에 나타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옷을 입고 있으니 그 황홀한 모습을 한 번 구경해 보라는 것인데, 실상은 벌거벗어 온갖 수치가 다 드러나는 몸으로 행차하고 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분명한 사실은 천하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엄연한 사실이 공론화될 수는 없다. 지엄하신 임금님의 권위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 간의 암묵적인 굴종 때문에…. 하지만 임금님의 권위도 알지 못하고 사람들 간의 암묵적인 굴종도 이해할 수 없었던 한 아이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크게 소리치는 순간 모두가 미몽에서 깨어난다. “야! 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매 주일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설교자)들 중에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단적인 증거는, 그동안 지속되어 온 설교 사역의 방식이나 그 영향력이 별로 달라지지도 않고 또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설교를 크게 고쳐야겠다는 반성을 할 일도 없다. 그러니 현재 설교의 수준이나 방식, 그 영향력은 앞으로도 그대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설교자 스스로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설교를 못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목회자(설교자)들이 벌거벗은 임금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정적인 증거다.


스스로 착각한 임금님과 그러한 착각을 허용해 주는 백성들 가운데 참으로 우스운 행차가 진행되고 있듯이, 스스로 설교를 잘하거나 아니면 지금의 설교에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목회자와 그러한 수준 낮은 설교를 허용해 주거나 묵인해 주는 교인들이 있어 참으로 지루한 설교가 암울한 먹구름처럼 한국교회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우리 임금님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정확하고도 담대하게 지적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해 준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못한다는 예리한 비판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정독하며 행간을 읽을 줄 아는 감성을 계발할 것과, 일관성 있는 언어 구사를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위격과 성품과 사역을 설교함으로써 회중을 하나님의 구원 세계로 이끌어 들일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초청에 모든 설교자들이 반드시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



이승진 l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텔렌보쉬대학교(University of Stellenbosch)에서 설교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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