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특집

―――――― 

변화하는 한반도와 세계, 어떻게 통일을 논할 것인가? 




출처 : 기독교사상 8월호 http://clsk.org/gisang/


 


cover_644_s.jpg2010년 1월 초, 내가 졸업한 대학원 교수 사은회 자리에서 있었던 작은 해프닝이다. 20명 정도 참석한 이 자리에는 군인과 고위 공무원들도 여러 명 있었다. 한 분의 제안으로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이 ‘통일을 위하여’를 건배사로 외쳤다. 이들 가운데에는 통일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군 장성과 정보기관 관계자들도 계셨다. 

“김정일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데 북한이 오래 가겠어.” 술잔을 기울이면서 몇몇 사람들은 북한의 붕괴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통일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나오게 된 배경이자, 갑작스러운 통일, 특히 흡수통일을 반대했던 내가 ‘통일은 천천히’로 응수한(?) 까닭이다.

기실 이명박 시대 5년을 거치면서 통일 담론에는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MB 정부를 비롯한 수구보수 세력이 강력한 통일 추진론자가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선건설, 후통일’ 노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수구보수 진영은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통일 세력’이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미-소 탈냉전과 한-소, 한-중 수교, 그리고 북한의 국제적 고립화와 극심한 경제난이 맞물린 1990년대 들어 흡수통일론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흡수통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이러한 주장은 다소 주춤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MB 정부가 등장한 이후에 흡수통일은 보수진영의 국시(國是)처럼 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한-미-일 3국 정부의 인식의 공유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군사협정 및 한-미-일 3각 동맹 구축 움직임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MB 5년간 통일은 더욱 멀어진 느낌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통일의 3대 조건은 한국 내부의 국민적 합의, 남북한의 화해협력, 국제적 지지와 협력이다. 그러나 MB 5년간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더욱 커졌고, 남북관계는 파탄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미-중-일-러 주변 4개국의 인식과 목표도 더욱 벌어졌다. 북한의 핵무장과 열악한 인권 상황, 그리고 3대 세습으로 대표되는 퇴행적인 선택과 남한의 경기 침체 및 양극화 등 민생 위기가 겹치면서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통일을 한국 내부, 남북관계, 국제관계 세 층위에서 각각의 구심력을 만들어 이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이라고 하면, MB 5년은 세 층위 모두에서 오히려 원심력이 강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세월이었던 셈이다. 


통일? 세 가지 질문을 해보자. 꼭, 그리고 왜 해야 하는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통일 방법론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이 있지만,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왜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데,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인가’에 몰두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 멘토’인 법륜스님은 “통일을 왜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통일은 우리의 독립, 성장, 민주화를 완성해주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과거의 100년을 청산하고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는 일이지요”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지금이 통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역설한다. 법륜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평화재단에서도 6월 19일 ‘국가비전과 통합적 통일정책: 통일정책의 과제와 대안’이라는 제하의 심포지엄을 개최해 ‘평화·민주·복지’의 시대를 열 수 있는 통일을 지금부터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남북한의 국력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동북아시아가 세력전이(power shift) 시대로 접어들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이 넓어진 만큼, 우리가 주도해 ‘사실상의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본 통일


“친구들하고 만나서 통일 얘기를 꺼내면 왕따 당해요.”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도 살기 힘든데 통일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통일하지 않고도 남북한이 협력하면서 평화롭게 살면 되는거 아니에요?” “남한 사람들도 취직하기 힘든데 통일되면 일자리 찾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아요.” 강연 현장이나 사석에서 대학생들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다. 물론 통일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 점이야말로 ‘우리의 소원’이라는 통일과 관련해 지난 10여 년간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간혹 통일을 찬성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하지 못한다. 통일의 필요성과 현실성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의문은 ‘통일 코리아’가 한반도 주민들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한 내 정착한 탈북자들이 2만명을 넘어섰지만, 많은 탈북자들에게 남한은 희망의 땅이 아니라 절망의 땅이 되고 있다. 또한 이미 다문화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이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여전하며, 이는 그 자식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탈북자와 이주민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남한 사람들끼리도 빈부의 차이, 학력의 차이, 사는 지역의 차이, 심지어 외모의 차이에 따라 양극화와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 주민은 북한 주민을 동등한 ‘통일 코리아’의 주민으로 대할 수 있을까? 이미 ‘북한 남성이 남한 여성보다 평균 신장이 작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 주민은 ‘작은 코리안’이 되고 말았다. 산모와 영유아에게 제대로 영양 공급이 되지 않으면서 키와 몸무게만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두뇌 발달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이 생겨나고 있다. 남한의 경쟁지상주의 및 불관용 문화의 팽배와 북한 주민의 왜소화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통일이 한반도 주민들에게 행복을 기약할 수 있을까? 북한을 내부 식민지화하고 북한 주민이 2등 국민으로 전락될 수도 있는 통일, 나는 이런 통일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이러한 우려 때문에 통일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주민들이 골고루 행복해질 수 있는 통일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MB 5년은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에 대해서도 성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두 정부 시기에 남북관계가 꾸준히 발전했던 것은 사실이다. 두 차례 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6·15와 10·4 선언이 이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10년 동안 한국의 빈곤율, 자살율, 아파트값, 대학 등록금, 사교육비, 실업율 등이 두 배 안팎으로 늘어났다. 남북관계는 좋아졌지만, 한국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대단히 열악해진 것이다. 


물론 둘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DJ-노무현 정부 10년간 이룩된 남북관계 개선이 남한의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 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국방비가 정확히 두 배로 늘어났는데, 군비 증강을 다소나마 억제했다면 10년동안 수십조원의 국방예산을 줄일 수 있었고, 이를 교육·복지에 투자했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이나마 나아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과 병행되지 않으면, 그 통일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고, 또한 보통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일을 외친 이명박, 통일을 멀게 하다


어느덧 분단이 강요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훌쩍 지났고, 내년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된다. 그런데 20세기 제국주의와 냉전의 모순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분단체제를 끝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명박 정부의 ‘흡수통일론’이 똬리를 틀고 말았다. 2010년 12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굶고 있는데 핵무기로 무장하고 매년 호의호식하는 당의 간부들을 보면서 이 지구상에 같은 언어, 같은 민족의 처절한 모습을 보면서… 하루 빨리 평화적 통일해서 2,300만 주민들도 최소한의 기본권을 가지고 행복권을 갖고 살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도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이 2만명을 넘어섰다”며 “이제 통일준비는 국가의 당면과제”이고,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확고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MB 정부의 대북한 및 통일 인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과정은 불안할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 붕괴에 이어 정치적 붕괴도 다가오고 있다. 둘째, 극심한 경제난과 3대 세습에 대한 북한 주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고 북한 주민이 자신의 처참한 현실과 대비되는 외부 세계의 실상을 점차 알게 되었기 때문에 민심 이반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내 급변사태가 발생하거나 붕괴되면 이는 통일의 호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대북 인식을 바탕으로 통일세 신설을 제안했다가 이것이 여의치 않자 ‘통일항아리’ 운동을 벌이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무력 흡수통일을 추진한다는 작전계획 5029 훈련도 열심이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피격 이후에는 부쩍 대북 군사 태세 및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 억제 및 억제 실패시 가공할 보복을 염두에 두면서도 북한 군사력의 소진과 내부 불안정을 유도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또한 MB 정부가 은밀하면서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한-미-일 3각 동맹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통일이 어려우니 미국 및 일본과 손을 잡자’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아울러 대북 지원은 중단하면서 대북 심리전을 강화해 북한 정권과 주민 사이의 갈등도 야기하려고 해왔다.

주목할 점은 MB의 흡수통일론은 60여 년 전 김일성의 ‘조국해방전쟁론’과 너무나도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김일성은 ‘3일 만에 공산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며 특유의 허풍으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설득하려고 했다.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면 남한 내부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 북한군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의 저항 능력과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 마찬가지로 MB 정권이 북한 급변 사태 발생을 “자유민주 통일의 기회”라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북한 독재정권하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한미연합군을 열렬하게 환영할 것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또한 한-미-일이 힘을 모으면 중국의 개입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인식과 정책은 극도로 위험한 ‘희망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최근 북한은 한-미-일 주도의 대북 제재 및 봉쇄를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상쇄하려고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한-미-일의 대북강경책 및 흡수통일 전략이 강해질수록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지게 된다. 또한 김정일의 급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승계되고 있다. 북한 내부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 체제를 고려할 때, 북한 주민의 불만이 정권을 위협할 수준까지 조직적 저항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대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북한의 미래에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한 대비책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정보와 치밀한 분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북한은 곧 붕괴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가 차지하면서 이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하고도 무책임하다.

‘2010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에는 정규군과 예비군을 합쳐 약 880만명이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영토는 수 천 개의 지하터널로 요새화되어 있고 영토의 80% 가까이는 산악지형이다. 이러한 현실을 망각하고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했다고 해서 한미연합군이 투입된다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장기전’을 치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장사정포 및 탄도미사일, 잠수함(정) 및 특수부대의 능력을 고려할 때, 전선이 남한으로 확대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이다. 이미 5개 안팎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한미연합군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핵 사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국장인 존 맥코넬은 2008년 2월 “북한이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군사적 패배에 직면하거나 급변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이 투입되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한국에게 핵우산을 공약한 미국도 핵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및 한미연합군의 개입 시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공멸의 시나리오’이다.


한국전쟁 때처럼 중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중국은 건국 1년 만에 미국 주도의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자 핵보유국이자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지금은 G2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의 국력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여전하다. 실제로 북한과 ‘상호우호조약’을 맺고 있는 중국은 북한이 남침 시 이를 지원하지 않겠지만, 북한이 공격받을 경우 돕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한반도는 남북한의 전쟁과 미-중 두 강대국 간의 무력충돌이 맞물리게 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전선을 한반도 ‘안’으로 한정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두 나라는 무사하겠지만 한반도는 또 다시 초토화되고 말 것이다.


역설적으로 김일성의 ‘통일전쟁’은 민족사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커다란 비극을 낳으면서 통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MB의 흡수통일론 역시 남남갈등, 남북갈등, 국제적 갈등을 키우면서 통일을 멀게 만들었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는 자는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 한다’는 말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에 60여년 전 김일성의 잘못된 선택이 어른거리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통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평화통일은 세계사적 실험이다. 전쟁에 의한 베트남식의 통일도, 민의가 배제된 채 집권층의 야합으로 이뤄진 예멘식의 통일도, 한쪽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다른 한쪽이 흡수한 독일식의 통일도 아닌,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한반도식 통일은 전대미문의 역사적 실험이다. 우리가 이러한 통일에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도 세계사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통일은 역사적 의무이자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통일이 품고 있는 당위성은 대단히 크지만, 겉으로는 통일을 외치면서 속으론 분단 고착을 선호하는 경우를 남과 북 정권 모두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은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다. 미-중-일-러 주변국들이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동아시아 권력 지도가 크게 바뀌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구한말의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통일에 있다. 지구촌에서 가장 상이한 두 체제가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조건에서 통일로 가는 길은 엄청난 도전일 수밖에 없다. 거꾸로 통일은 남북한 체제 결함을 극복해 더 나은 제3의 길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경쟁과 차별과 불관용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는 것도 커다란 도전일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은 곧 한국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도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저렴한 노동력, 그리고 유라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지경학적 특징을 고려할 때, 통일은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양극화를 한반도 전체로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도전과 기회 가운데,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지정학의 상호작용이 가장 큰 구조적 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구조적으로 볼 때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딜레마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설명된다. 이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접점에 한반도가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 한반도를 동북아 지역의 패권 확보의 발판이나 완충지대로 삼아왔다는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둔다. 특히 1945년 한반도의 ‘분단선’은 한국전쟁과 정전체제를 거치면서 동북아의 ‘세력균형선’으로 작용해왔고, 이러한 특성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남북한 사이의 통일을 향한 ‘구심력’이 강해질수록, 주변 강대국이 현상 변경되는 한반도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원심력’도 강해질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냉전 해체와 남북한의 통일 과정이 동북아 전체의 번영과 평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 그 자체를 강조함으로써 한반도 민족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불러오는 접근보다는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서 통일을 자리매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한반도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통일’보다는 인류사회의 보편성을 반영하는 ‘평화의 조건’으로서의 통일을 말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한반도 내적으로도 통일은 민족사적 과제의 달성이라는 의미와 함께,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재로서의 의미를 담을 수 있을 때 그 정체성과 비전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통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독일 통일 못지않게 독일-프랑스의 화해협력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화해협력에 성공해 유럽통합을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통일 프로세스를 동북아(혹은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야 통일이 가능해지고 또 풍부해질 수 있다. 


끝으로 기독교가 평화통일 운동에 갖는 함의를 언급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평양은 개신교의 성지였다. 그러나 분단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월남한 기독교인들은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반공·반북 세력이 되고 말았다. 동시에 북한과 일부 교회는 개혁·개방을 가장 꺼려하고 세습을 강행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독교의 평화통일에의 헌신은 북한과의 구원을 극복하고 교회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씻김굿’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때마침 차기 세계교회협의회(WCC) 세계 총회가 2013년 가을 부산에서 열린다고 한다. 2013년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 한반도 핵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2012년 각국의 정치권력 변동에 따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심기일전하여 새롭게 도모할 수 있는 해이기도 하다. WCC 총회가 이러한 역사적인 해에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과 코리아 냉전 해체 및 분단 극복이라는 비전을 국제사회와 함께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정욱식



정욱식 l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객원연구원으로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한겨레》언론비평위원,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평화네트워크 대표로 활동 중이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일반 중앙일보 교보문고, 올해 인문서 우린 다르게 살기로했다 imagefile 조현 2018-12-21 15924
공지 일반 조현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북콘서트 초대 imagefile 휴심정 2018-12-03 20440
공지 게시판 글쓰기에 관한 안내입니다 [3] admin 2011-07-08 761376
2488 일반 김기석과 손석춘의 대화 - ‘광신의 본성’에 대해 imagefile anna8078 2011-07-08 22491
2487 일반 사장,부장,과장,대리,사원,인턴의 표정 차이 image [1] leeyeon5678 2011-10-21 22319
2486 일반 서울시, "사랑의교회의 지하도로 점용은 불법" imagefile 조현 2012-06-03 22003
2485 일반 법륜 스님 “선거 졌다고 대한민국 망하지 않아” movie [1] kimja3 2012-12-26 21983
2484 좋은 글 행복한 사진 ''고바우 영감''님의 판화 몇 점 image 이충렬 2008-07-28 21778
2483 일반 큰 바람 속 차 한잔 imagefile [1] anna8078 2012-08-28 21743
2482 일반 혜민 스님 “고마움 느끼며 사는 삶이 행복 키워드” image [2] anna8078 2012-06-18 21299
2481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시원한 여름 그림 image 이충렬 2008-07-16 21102
2480 일반 새로운 사람의 길 - 김기석과 손석춘의 대화 imagefile [3] anna8078 2011-12-13 21001
2479 [이벤트] 용서 [이벤트] 내 안의 '용서'를 나눠주세요~ imagefile 휴심정 2015-09-21 20984
2478 일반 그리스 인생학교 이벤트 당첨자 조현 2013-04-01 20944
2477 일반 “방황해도 괜찮아” 법륜-김제동 미주 청춘콘서트 imagefile sano2 2012-04-09 20747
2476 일반 Y의 고백 - 남자를 다시 생각하다 image guk8415 2012-07-16 20430
2475 일반 남편과 시어머니 관계로 힘이 듭니다 [펌] anna8078 2012-03-28 20201
2474 좋은 글 행복한 사진 물안개의 아름다움 image [1] 이충렬 2008-07-30 20141
2473 일반 상실에 대한 애도는 삶을 일으키는 힘 imagefile [1] kimja3 2012-05-25 20134
2472 좋은 글 행복한 사진 미국인 화가가 그린 1898년의 한양 image 이충렬 2008-07-11 19602
» 일반 한반도 통일, 기독교의 역할은 사라진 것인가? imagefile anna8078 2012-09-03 19534
2470 일반 간이식을 포기한 절망 속에 찾아온 희망, 잠든 간암 image [1] 한정호 2009-01-04 19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