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친구여, 안녕

일반 조회수 7047 추천수 0 2008.10.12 12:00:41
즐거운저항

 

망설임 끝에 결국 쓰기로 한다.

너에 대한 나의 느낌들이 상당한 오류이기 바라는 마음을 여지껏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너에게는 느닷없고도 더 이상은 반갑지도 않을 우편물 하나를 만들려고 하니 무엇보다도 짜증이 앞서지만, 더러운 기분으로 살기보다는 매듭짓고 반듯하게 정리하는게 성질에 맞겠어서 담담한 심정으로 대충이나마 내 감정을 수습해 보고자 함이다.

 

살아가는 일이란 언제나 명쾌한 것만도 아니고, 오히려 안개속 반투명 빛깔이 때론 모른척 못본척 편하기도 하다는 걸 자조와 함께 인정하면서도, 내가 너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그 순수했던 열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내 신앙이 무너져 내린 것 하나만으로도 겨우 이따위 편지를 쓸 수 밖에 없는 나를 스스로 용서하고 있다.

 

너에게 나는 한 때의 사람이었을 망정, 한 시대를 그저 바람만 불어오는 황야와 같은 외지에서 그림자외엔 친구도 없는 고독한 유랑을 숙명으로 여기며 언제나 고국에 대한 절절한 향수에 젖어 살던 나에게 너는 비록 수 년을 못 보고 말 한 마디 목소리 한 자락을 잡지 못해도 언제나 정답고 그리운 이름이었다. 십년 별리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단 한번 흔들리지 않았던, 때로는 박탈감에 휩싸여 휘청거리는 나를 지탱해 주던 너에 대한 나의 풋풋하던 믿음이 퇴색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돌아와 이제는 제법 중후한 사나이들로 만나 반목과 증오같은 덧없는 것, 오해와 갈등같은 너절한 것 정도는 파란의 세월 뒤안길에 두고 온 줄 알았더니 이렇듯 어이없는 불신의 덫에 걸려 신음하게 될 줄이야. 의혹으로 다가와서 결국 확인되어버린, 네가 쌓아올린 단절의 벽 앞에서 주체할 수 없는 당혹감은 제쳐두고라도, 언제는 혼자가 아니였겠느냐마는 정체도 알 수 없는 고독, 회한과 번민으로 가슴저린 자기상실까지 겪은 지난 몇 년, 네가 나에게 너무도 선명히 각인시킨 것은 바로, 배신이었다. 신의가 없었던들 절망도 없었으련만..

 

찢겨져버린 우정의 깃발을 이제 처연한 심정으로 불태우련다.

어쩌다 한번쯤 낯설어도 반가웠던 너와의 무의미한 만남도, 리턴콜 없는 전화에 손가락을 끊어버리고 싶을 만큼 했던 후회도, 그래도 그래도 하는 미련과 어떡할까 하는 갈등도, 결국 나를 소모시키고 말 뿐인 어리석은 기대도 함께 불태우련다. 네가 나를 비켜갈 수 밖에 없는,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이유도, 어쩌랴, 그저 쓴 웃음으로 함께 불길속에 던져버린다. 이제 그만두련다. 그런 걸 회상해 볼 만큼의 자적함도 갖고 싶지 않다.

 

지성은 말로써 훼손되고 말이란 하면 할수록 과장되고 와전되기 마련. 이세상 누구와의 쟁패도 피하지 않겠지만 너와의 그것만은 진정 거절하련다. 내 평생의 외우로 너를 낙점했던 나의 선택이 상처받고 싶지도 않고, 아직은 이 모든 것이 나의 불민함때문이라고 자성하는 마음 또한 크기 때문이다.

 

이제 너를 떠나 보내면서, 아니, 너를 떠나면서 공연한 신파의 이별가를 부르지는 않겠다. 다만 부단히 노력했어도 인간에 대한 나의 안목 부족함을 참담하게, 그러나 조금은 초연한 심정으로 자책할 뿐. 가슴 무너지는 상실감과 허망함에 눈물 흘리지 않기를 스스로 다짐하며 너를 떠난다. 아듀 라미.

 

追: 오늘 너를 만났다. 폭력보다 잔혹한 사상과 관념.

왼손을 잘라내고 외팔이로 살아가는 너를 한없이 연민했다, 따뜻한 왼손으로

차가운 오른손을 감싸쥐는 나는. 

불혹은 아직도 어림없는 꿈이었음을 아픈 각성의 바늘로 찌른다.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a*@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공지 일반 중앙일보 교보문고, 올해 인문서 우린 다르게 살기로했다 imagefile 조현 2018-12-21 22732
공지 일반 조현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북콘서트 초대 imagefile 휴심정 2018-12-03 27603
공지 게시판 글쓰기에 관한 안내입니다 [3] admin 2011-07-08 774009
2546 일반 [9월, 시사성 스트레스에 대한 처방전] 불온한 2008-08-29 8121
2545 일반 구름 나그네 [1] 배통 2008-08-29 8742
2544 일반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 목암 2008-09-07 7733
2543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사진 몇 점 image 이충렬 2008-09-09 11464
2542 일반 생명살이 농부이야기 - 티브이(TV) 특강에 출연하다. image 목암 2008-09-10 8223
2541 일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카르페디엠에이미 2008-10-02 7445
2540 일반 02. 우리 속의 어린왕자는 죽어야 한다 마지막 詩人 2008-10-08 8497
2539 일반 비공식으로 사는 공식 즐거운저항 2008-10-12 7487
2538 일반 그대, 혁명을 꿈꾸는가 즐거운저항 2008-10-12 6292
» 일반 친구여, 안녕 즐거운저항 2008-10-12 7047
2536 일반 피라밋 심플리즘 즐거운저항 2008-10-12 7676
2535 일반 빗속을 걸어가기 즐거운저항 2008-10-12 7531
2534 일반 집시여인이 준 에피파니 즐거운저항 2008-10-12 7569
2533 일반 건설현장 힘없는 굴삭기 아빠의 피해, 도와주세요 닥빈 2008-10-12 8529
2532 일반 박재동 화백 ''선주스쿨''에 교실을 열다 image 이충렬 2008-10-13 8900
2531 일반 귀와 눈은 나의 것입니다. 돌샘 2008-10-13 7974
2530 일반 5거리 한가운데 멈춘 자동차 돌샘 2008-10-14 9389
2529 일반 날마다 짓는 집 돌샘 2008-10-14 7610
2528 일반 <한겨레교육> 송광사+보림사 사찰벽화 답사 안내 image 호석 2008-10-15 8944
2527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조현기자와 떠나는 달마산 미황사에 다녀와서~ imagefile [2] 무쇠풀 2008-10-19 9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