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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감옥과 옛 전남도청

일반 조회수 12528 추천수 0 2008.12.12 14:15:26

"바스티유 감옥은 오페라극장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 정부에 의하여 새로운 세계사 학설이 나왔다.

프랑스인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될만 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발표한 것이니 대체 그 말이 어떠한 것인지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정말 펄쩍 뛰어오를 만큼 심각한 것인지, 그저 약간 생뚱맞을 정도일 뿐인지 아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괜히 시비하는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일단 프랑스혁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봉건적 신분제와 절대왕정이라는 질곡을 단칼에 역사의 저편으로 날려버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대를 연 프랑스혁명, 그것은 근대사회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혁명이 일어날 무렵의 프랑스는 절대왕권에 의한 전제정치가 일반화된 상태였다. 통치자는 루이16세, 그는 국가와 인민 위에 군림하였다. 소수의 특권층인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하면, 국민의 대다수였던 평민들이 겪은 고통은 지금의 우리가 짐작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 통치자를 위한 도구로만 간주돼 오던 제3신분의 그들이 드디어 일을 내기 시작하였다. 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 그것이 혁명이다. 당시의 프랑스는 그 길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여러 격변에서 종종 보듯 프랑스혁명 역시 하나의 단순한 사건에서 신호탄이 올랐다. 일련의 불안정한 정국상황에서 공포감에 시달리던 일단의 시민들은 자구책 마련을 위해 어느 날 파리의 한 공공시설물을 습격한다. 그리고는 비교적 간단히 그것을 손에 넣는다. 때는 1789년 7월 14일, 그때 그들이 접수하였던 시설이 바로 ‘바스티유 감옥’이다. 그 사건은 이어 정규군과 시민군 사이의 시가전으로 확대되었고, 전국 각지의 농민봉기를 불러왔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집권하기까지 계속된 일련의 정치적 격변, 즉 구체제(앙시앙 레짐 ancien régime)를 타도하는 과정이 프랑스혁명의 대강이다.





 

            

그림1) 바스티유를 공략 중인 파리시민들

 






그들이 갔었던 바스티유가 원래부터 감옥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그것은 백년전쟁 당시 파리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지어졌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찌어찌하여 감옥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감옥으로 바뀐 뒤 그곳은 고문과 의문사로 악명을 떨치었으며, 거기엔 주로 사상범과 정치범이 수감되었다. 그런데 총기로 무장한 시민들은 왜 다른 곳을 놔두고 하필 우굴쭈굴 험상궂게 생긴 바스티유로 향하였을까.






선량한 양심수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아니다. 안전지대를 확보하여 장기간의 농성에 들어가기 위하여?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항쟁에 필요한 탄약을 얻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그리곤 얼마 뒤 그 건물을 부숴버렸다. 바스티유는 시민들에게 점령된 지 4개월 만에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시민들이 바스티유를 앙시앙 레짐의 상징으로 여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시민들에게 바스티유 점령은 앙시앙 레짐에 대항하여 거둔 최초의 승리로 기록된다. 그리하여 7월 14일이 프랑스의 혁명기념일이 되었으며, 그날은 현재 프랑스 최대의 경축일이다. 






바스티유가 있던 자리는 그 후 오랫동안 빈 땅(공원, 광장)으로 남게 된다.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은 무려 2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그 새로운 건물이 바로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이다. 그것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서, 1989년에 세워졌다.





 

             

그림2)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안내문을 살펴보자. 이번에 읽어 볼 대목은 문광부가 '옛 전남도청사'의 일부를 허물고 그 자리에 아시아문화전당의 건립을 추진하면서 내놓은 변명자료의 일부다. 도청별관을 철거하려는 계획이 강력한 반발에 봉착하였음은 주지한 바와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광부는 지역일간지의 광고면과 문화계 인사들에게 발송한 이메일을 통하여 정부의 입장을 널리 전파한 바 있다. 문광부의 다음 주장은 그 홍보물에서 발췌한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상징, 바스티유 감옥은 유럽문화의 심장인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대한민국의 문화 심장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도청별관의 소중한 모습들은 ...... 바스티유 감옥 사례처럼 ...... 승화시키겠습니다.’ (그림3)





 

                    

그림3) 문화체육관광부의 홍보물 가운데 일부

 












아뿔싸. 위의 진술에서 어떤 의문점을 발견하였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면 그것을 독해하는 작업에 함께 나서보자.






먼저, ‘프랑스혁명의 상징, 바스티유 감옥은 ... 오페라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에 함축된 의미는 이러하다.






1. 바스티유는 프랑스혁명의 상징으로서 보존될 가치가 충분한 기념물이다.


2. 그것의 가치는 오페라극장에 버금간다.


3. 하지만 그것은 오페라극장을 짓기 위해 희생되고 말았다.


4. 따라서 바스티유의 철거와 오페라극장의 건립은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되었다.


5. 건물은 비록 철거되었으나, 그 정신은 오페라극장 속에 살아 움직인다.






어떠한가. 앞에서 살펴본 프랑스혁명 관련 대목을 상기한다면,






1. 바스티유는 혁명의 상징이 아니라, 혁명의 타도대상인 앙시앙 레짐의 상징이다.


2. 그것은 증오의 대상이었기에 혁명세력에 의해 파괴되었다.


3. 반면 오페라극장은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4. 바스티유는 혁명이 발발한 직후인 1789년 11월에 사라졌고, 오페라극장은 그 후로 200년이 흐른 1989년에 세워졌다.


5. 바스티유는 구체제의 상징이었고, 오페라극장은 그것을 타도한 혁명의 기념물이다. 따라서 바스티유는 부활이 아니라 영구사멸 대상이다.






그러한 바스티유가 한국 정부에 의해 어느 날 별안간 오페라극장으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나아가 ‘도청별관을 바스티유 사례처럼’ 대목에 이르면 더욱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항쟁당시에 파리의 시민들은 바스티유를 공격하였었고, 접수한 뒤에는 그것을 파괴해 버렸다. 반면 광주의 시민들은 도청을 끝까지 지켜내려 하였었고, 그러나 대가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현장을 지키려 하였던 주체가 도리어 파괴를 당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문광부는 도청을 바스티유와 등치시키고 있다. 이보다 더욱 극적인 사실의 반전이 있을 수 있을까. 의도적 왜곡인지 무지의 소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엄청난 역사왜곡이 아닌가. 이 정도의 왜곡사건은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데 모자람이 없으리라. 5.18을 프랑스혁명과 대등한 반열에 위치시킨 정부의 노고를 위안거리로 삼을 수 있다면야 좋으련만.








 

            

 그림4) 영화 '화려한 휴가' 의 한 장면

 








매년 혁명기념일이 되면 프랑스 전역에서는 여러 행사와 더불어 무도회, 시가행진, 불꽃놀이 등의 축제 한마당이 펼쳐진다. 파리의 시민들은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에펠탑 앞에서 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를 노래한다. 그날을 기리며 이렇게 외친다. ‘바스티유를 파괴하자, 7월 14일이여 영원하라.’ 그러므로 문화관광체육부가 프랑스혁명과 바스티유의 사례에서 진정으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이렇게 소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도청을 사수하자, 5.18이여 영원하라,’






[글쓴이 신왕선/건축사/shinwase@hotmail.com/2008.12.11


글쓴이 신왕선씨의 허락으로 이 글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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