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 나 자신이 기성 의사가 되기 전에 기록을 남겨놓고 싶었다. 또 기록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사실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을 내었다. 글감을 포착하는 순간에 바로바로 글을 쓰면 현실을 가공할 틈이 줄 것 같았다. 때문에 인턴 수련을 받는 1년 내내 작은 수첩을 항시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러다가 인상 깊은 사건이나 상념을 맞닥뜨리면 단 몇 초의 여유라도 생길 때마다 짬짬이 메모를 휘갈겼다. ...  
 
                                                - '인턴일기' 정신과전문의 홍순범, 글항아리 출판
 
 -일기를 쓰는 이유, 블로깅을 하는 이유
최근 어느 정신과 전문의가 자신의 인턴시절 일기장을 정리하여 '인턴일기'란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저자는 의과대학 4학년 때, 남들이 모두 지옥과 같은 고생길, 인생 끝났다고 하는 인턴생활을 들어가면서 그 1년의 삶을 일기로 적을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그때 수첩에 생생한 고민과 목격담을 적었고, 수년이 흘려 정신과 전문의 과정까지 마치고 이 책을 출간하겠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바쁜 병원생활 중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솔직히 힘들다. 하지만, 내가 블로깅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내 블로그를 찾아 주는 블로거들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며, 또한 먼 미래에 일기와 같은 지금 나의 글들이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주는 마법거울과 같이 되지는 않을까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복잡한 생각과 상념들을 정리하는 노트이기도 하다.) 이 인턴의 일기에 빠져들며, 벌겋게 졸린 눈으로 당직실 구석에서 쪼그리고 노트를 끄적일 인턴이 지금의 나와도 비슷하단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놓치기 아까운 부분을 옮겼다.
  
-인턴, 레지던트의 어원-
... 인턴은 1년 동안, 보통 한 달을 다뉭로 소속된 과를 바꿔 다니며 일한다. 그래서 인턴(intern)이란 이름 자체가 병원 안에서(in) 뱅뱅 돌며(turn) 일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와 반대로 레지던트(resident)란 이름은 각 과에 거주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비롯되지 않았겠는가. ...
 
-흡혈귀의 본능-
... 드디어 나도 경험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인턴의 직업병 증상. 사람을 보면 팔과 손의 혈관 상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동적으로 그랬다. 환자들뿐이 아이었다. '저 교수님 혈관 좋으시네.' 입맛을 다시게 되고 주사바늘을 꽂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흡혈귀가 되고 있었다. 더 황당한 일도 있다. 마땅한 혈관이 없는 환자를 한참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갑자기 굵고 싱싱한 혈관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달려들려는 순간, 그것은 내 팔과 손의 혈관이었다...
 
-중환자실, '지겹다'???-
... 아, 불쌍한 나의 3년차 선생님! 온종일 중환자실에 틀어박혀 옷이라곤 팬티 위에 헐렁한 수술실 복장 달랑 걸치고 ... 저녁은 며칠 주기로 쳇바퀴 도는 배달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구려! 그러다가 2개월에 하루 정도 퇴근해서 데이트하고 들어오곤 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만나러 나가는 분이나, 또 만나러 나오는 분이나.
그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간신히 한두 시간 눈 붙이고 있는데 다급히 깨운다. 꾸역꾸역 일어나 찌글찌글 잠에 취한 머리를 억지로 가동시켜 겨우 진료 방법을 궁리해 낸다. 그 때에는 지겹다는 생각이 떠오를 겨를조차 없다. 한숨 돌리고 다음 날 묵직한 일과 중에 불현듯 떠오르는 한마디. '지겹다.'
그것은 생리현상이었다. ... 나는 이해할 것 같았다. 그것은 더럽고 불쾌하게 볼 수도 있지만 또 귀하고 아름답게 볼 수도 있는 마음의 땀방울이었다. 퇴근해서 TV를 보는데 어느 연예인의 열애설 진상 ... 동화 속 이사한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다른 세계, 사람들이 가볍게 둥둥 떠다니는 세계가 병원 밖에 있구나. ...
 
-일반외과, 부당청구=소신진료-
... 국가가 제한된 예산에 맞춰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처방을 한다고 해서 과연 의사가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걸까? 언론 보도를 통해 "부당 청구"라는 표현을 접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소신 진료" 팻말이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문을 닫고 보니 반대편에는 "부당 청구" 팻말이 있는 격이니까. ...
 
-응급실, 엄마-
... '하지만 저렇게 상종하기 싫은 사람에게도 엄마가 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쉽게 잊는 사실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때 특히. ...
 
-지은이의 어린 시절에
...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프랑스에서 뛰놀며 스페인, 모로코, 알제리, 모리셔스, 사모아, 이란, 중국 등지 출신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행운을 누렸다. ... 프랑스에선 줄곧 아이디어가 좋다는 칭찬을 듣다가 우리 교실에선 너는 왜 교과서에 없는 질문을 하냐며 핀잔만 듣게... <끝>
 
 
-아는 만큼, 준비된 만큼 보인다. 

겪어 본 일이라 그런가? 어느 과에서의 일인지 작은 제목만 봐도 내용이 대충은 짐작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일(job)이 아닌 사람(human)을 보는 지은이의 탁월한 따스함에 놀라웠다. 아는 만큼 보이고, 또 보인만큼 사랑할 수 있고 했던가!
 
요즘 만나는 의사들이나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에게 브로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멋 있고, 사진과 음악이 넘쳐나는 시간 많이 드는 블로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 나보다 적게 또는 많이 아는 사람들과 계급장 떼고 토론하기에 인터넷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자신과 타인의 블로그를 댓글과 트랙백으로 오가며, 관전하는 이에게 검증을 받는다는 것은 때론 장편의 논문을 쓰는 것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듬어진 나와 네가 남는다면 이것 자체가 서로에 대한 봉사가 아닐까?
 
'Only a life lived for others is worth living.' :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다.  -Alber Einstein(아인슈타인) 
 
직장을 다니며 혼자 꾸준히 블로그를 유지하긴 많이 버겁다. 그래서인지 메타블로그, 연합블로그들이 그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새내기 의사들이나 의국에게도 좋은 모델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인턴 동기들끼리 1년간 일기를 모으거나, 내과/외과 의국에서 그 과를 1년 동안 거쳐간 인턴들의 글을 모아서 작은 책을 만들어 선후배와 환자들과 함께 보아도 서로를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다.
 
돈이 있는 자는 돈으로, 힘이 있는 자는 힘으로, 지혜가 있는 자는 지혜로 나를 포함한 서로, 우리를 위하여 작은 것을 함께 나눈다면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우리의 일기와 블로그도 작지만 분명히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 인턴의 꼬깃꼬깃했던 수첩이 300여 page를 넘는 책으로 다시 태어난 '인턴일기'는  인간에 작은 애정과 관찰이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블로그의 미래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고맙다. 인턴일기야!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는 모든 블로그들도 Merry X-mass!'

 내과의사 한정호의 의료와 사회(im.docblog.kr), 출처 포함 무단 재배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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