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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나는 전과자다

일반 조회수 14088 추천수 1 2012.08.11 18: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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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과 세간, 부처와 중생은 얼마나 다른 걸까.’ 나는 횡령사건에 휘말린 스님을 변호하러 다니면서 그에게도 끊임없이 ‘나’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17) 종교인 재판

“나에게서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사라지자 나의 영혼은 육체와의 연결에서 벗어나 닻을 내릴 새로운 정박지를 찾고 있었다. 나는 전 우주의 지배자이고 모든 운명의 조정자이며, 전지전능한 이스와라(Iswara) 신상 앞에 서 있곤 했다. 때로는 그의 은총이 나에게 내려와서 그에 대한 나의 헌신이 더욱 많아지고, 마치 예순세명 성자들의 그것처럼 영원해지기를 기도하기도 하였으나, 그냥 고요히 앉아서 내 내면의 깊은 그것이 초월자의 깊은 그것으로 흘러들도록 내버려 두는 때가 더 많았다.” 라마나 마하리시는 자신의 깨달음을 이렇게 썼다. 그런데 과연 육체를 떠나 내가 달리 어디 있는 걸까.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감옥에 가던 시절, 나는 이런 사건들을 변론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나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인과 눈이 맞아
공금 쓰고 도망간 주지스님
그와 공범으로 엮인 또다른 스님
선생 하면서 카페 차렸다가
사직서를 제출한 신부님…

종교에선 참나를 찾으라지만
현실 속 인간은 이것저것 욕망
부처와 중생이 같다는데
차라리 환속해서 먹고살지
이들은 어찌 재판에 휘말렸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1986년 군에서 제대를 할 무렵 나는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본래는 검사를 희망했지만 전두환 정권의 시녀 노릇을 못 면할 게 뻔해 고민을 하던 중에 동생이 시위를 주도하다 붙들려 재판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꿈을 접었다. 제대 뒤 국제거래변호사 사무실, 소위 로펌이란 데 가서 한국, 미국 변호사들과 한 2년 일했다. 그러다가 다른 로펌에서 일하던 이석태, 조용환 변호사와 뜻이 맞아 한 사무실을 차리기로 했다. ‘누가 얼마를 벌든 똑같이 나눈다.’

선배인 이 변호사가 제일 먼저 로펌을 나와, 사무장도 없이 여직원 하나 데리고 유유자적하고 있던 차였다. 그해 1988년 8월에는 사무실 수입이라고는 ‘이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무료 변론 의뢰인이 가지고 온 수박 한 덩어리가 전부였다. 그는 일이 없으면 덕수궁 돌담 길을 한가히 산보했다. 집에서는 그더러 ‘당신, 여직원 미스 김 월급 주려고 사무실 차렸냐’고 놀렸다.

내가 합류하면서 처음 앉은 자리는 비어 있던 사무장 책상이었다. 이 변호사는 연수원 동기인 대학 후배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 후배는 어느 날 장래가 보장된 법조인 자리를 훌훌 털고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가 소개해준 책 제목이 ‘나는 누구인가’였다. 인도 힌두교 큰 스승인 라마나 마하리시의 가르침을 풀어 쓴 책이었다.

마하리시는 이 현상계는 감각 경험, 기억,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이 생각에서 벗어날 때 ‘참된 나, 진아(眞我)’를 깨달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힌두교 표현으로 바로 브라만이 참된, 절대적 실재로서, 이 온 우주의 비인격적 본질이자 존재하는 만물의 근원이다. 이 브라만이 나라는 개체 속에 들어와서는 아트만이라 불린다. 진아란 바로 이 아트만이자 브라만을 가리키는 것.

어느 해던가, 태풍이 불어 큰 물난리가 났던 해이니 1991년쯤이던가. 나는 대구에 재판하러 내려가면서 기차 안에서 눈 감고 열심히 내가 누구인지 궁리를 거듭했다. 자, 내가 그 어떠한 빛도, 소리도, 냄새도, 감촉도 없는 무중력 상태에 던져졌다고 상상해 보자. 외부의 감각이나 경험이 단절되면 과연 나는 무엇을 근거로 나를 느낄 수 있을까.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런 환경에 던져졌다면 아무런 느낄 것도, 따라서 기억할 것도 전혀 없으니 더이상 나를 느낄 수 없다. ‘나는 없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눈을 뜨면 이 현실 속 나는 너무도 생생히 살아, 이것저것 욕망한다. 욕망 안 하면 이 세상에서 내가 새끼 치고, 또 먹고살아갈 수나 있나. 나는 몇 년간 마하리시가 가르친 진아를 찾아 헤매다가 너무 막막해서 그만 접었다.

3자 동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첫 사건으로 민사사건을 맡았다. 예쁘장한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남편이 돈 몇 푼 받고 어느 회사에 이름을 빌려 주었다가 패가망신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어음이고 세금이고 다 책임지게 되었으니 큰일은 큰일이었다. 사정이 딱해서 수임료를 받지 않고 재판을 해 주었고 결과는 비교적 잘되었다. 남편도 몇 번 왔었는데 어느 날 자신이 열심히 도 닦던 스님이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는 절에 불공드리러 왔던 예쁘장한 아주머니와 눈이 맞아 스님 생활을 그만두고 결혼을 했다. 이 세상에 나오긴 했는데 적응해 살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거였다. 기차 안에서 눈을 감고 곰곰 생각해보면 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다가도 눈을 뜨면 먹고살아야 하는, 내가 분명 있다. 전직 스님도 열심히 돈 벌어 저와 마누라 먹여 살려야 한다.

대법원에서 끝내 유죄가 된 ‘형님 스님’
힌두교 브라만은 기독교 하느님과 거의 같다.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우주의 절대적 실재. <바가바드기타>에는 기독교 성서 구절 같은 이런 대목도 있다.

‘나를, 태어남도 없고 시작도 없으며 온 누리의 대 창조주로 아는 사람, 그 사람은 반드시 모든 죽을 인생 속에서 미혹에 빠지지 않고 일체의 죄악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인인 다석 유영모 선생이 진아, 참된 나, 곧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고 해서 힌두 사상과 같은 맥락의 가르침을 폈고, 그 제자인 함석헌 선생은 아예 <바가바드기타>를 번역하고 강의했다. 유영모의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육체는 나가 아니다. 참나인 얼을 실은 수레라고나 할까. 이 얼나는 예수의 얼나와 하느님의 얼나와 한생명이다.’ 브라만과 아트만이 하나라는 힌두 사상과 완전 똑같다.

몇 해 전 나는 12살 위 띠동갑 스님의 횡령사건을 변호했다. 내가 음주운전 전과자가 된 것도 바로 이 형님 스님 모시고 막걸리 한잔한 뒤 그리된 거였다.

횡령사건의 내용은 이랬다. 어느 절에 오래된 불경 책이 있었는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고지원을 받아 보수작업을 하게 되었다. 스님이 이 작업을 그 절로부터 도급받았다. 국고 지원은 일단 절로 나오고 스님은 그 절 주지와 도급계약을 맺어 보수 작업을 마치면 그 절로부터 비용을 받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 비용은 국가가 제정한 보수 작업 단가표에 따른 것으로 담당 공무원이나 절이나 스님이나 그 누구도 이 기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스님은 보수 작업을 마치고 단가표에 따른 작업비용을 받았다. 그리고 그중 일부를 절에 시주 형식으로 돌려주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그 절 주지 스님이 평소 절의 공금을 빼돌려 사적으로 써 왔다. 주지 스님에게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에게 횡령한 돈을 주었는데 투서가 들어가 수사가 시작되자 주지는 도망을 갔다.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었다. 검찰은 절 장부를 뒤적이다가, 형님 스님이 도급비 일부를 다시 절에 시주했는데 이 돈까지 주지가 개인적으로 쓴 걸 발견하고는 ‘형님 스님’을 걸고넘어졌다. 당신이 도망간 주지와 짜고 도급비용을 부풀려 주지에게 준 것 아니냐, 그러니 받은 도급비 중 시주한 금액만큼은 횡령을 한 주지와 공범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도급비는 문화재 담당 공무원과 스님이 정부 단가표에 따라 정한 것이기에 부풀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스님이 받은 도급비 일부를 절에 시주한 게 횡령이라면, 만약 전액 기부했을 경우에는 횡령금액이 전액으로 더 커진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스님과 나는 1년여 동안 저 남쪽 끝 도시까지 열심히 재판받으러 다녔다. 당연히 무죄가 날 줄 알았는데 대법원까지 유죄라고 우겼다. 이건 정말 ‘우긴 거’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주지 스님은 스님 옷 벗고 환속해서 여인과 알콩달콩 살았으면 되었을 것을 어찌 그리 횡령에, 도주까지 하게 되었나.

어찌어찌해서 도 닦는 스님이 될 수도 있겠으나, 또 인연이 안 되면 애 낳고 돈 벌고 살면 될 걸.

나가르주나는 <중론>(中論)에서 열반과 세간, 부처와 중생이 한 치도 다르지 않다고 가르쳤으니 나는 간디나 유영모 선생이 성관계를 극도로 혐오한 걸 별로 동의하지 못하겠다.

유영모는 심지어 이렇게 해혼 선언을 했다. ‘사람은 결혼을 하면 해혼을 해야 한다. 부부간에 혼인 생활은 하되 성생활은 끊는 것이다. 간디는 37세에 해혼을 했지만 나는 오늘부터 해혼을 하니 그리 알아라.’ 그러면 처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처는 중생이 아니니 빨리 중생 자리를 떠나 부처가 되겠다는 걸까.

스님은 횡령죄, 난 음주운전죄
뭐,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천주교 수도회 신부가 수도회의 명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이 신부는 도 닦는 거보다는 속세에서의 일 처리 수완이 뛰어났고, 적성에도 딱 맞았다. 일을 하다 보니 업자들과 룸살롱도 가게 되었고, 카페도 동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보다 못한 수도회에서 이제 그만 선생 일 접고 수도회로 돌아와 열심히 도를 닦으라고 명했다. 수도자들은 수도회에 들어갈 때 3가지 약속을 한다. 청빈, 정결, 순명. 이 신부는 세 가지 다 지키지 못했다. 그는 일단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는, 태도를 바꾸어 이 사직 의사표시가 강요에 의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나는 학교 쪽 대리인으로 방어를 하게 되었다. 군인이나 학생처럼, 수도회는 일반 법리가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되고, 그 고유 특성들이 존중되어야 하며, 수도회의 명령을 따른 것은 순명이지 강요된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법원은 속세의 잣대를 들이대어 사직서 제출이 강요된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신부도 신부 옷 벗고 일반인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서 선생 되고 카페도 차리고 하면 될 것을.

나는 형님 스님과 횡령재판 다니면서 이리저리 괴롭혔다. “스님, 붓다가 가르치신 연기의 법에 따르면, 실체로서, 변하지 않고 다른 것에서 독립되어 영원히 존재하는 ‘나’가 없다지요. 그렇다면 대관절 윤회는 누가 합니까?” “원효대사가 해설을 부친 <대승기신론>에 유일 실재인 한마음(一心)이니 ‘진여’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브라만이니 아트만이니 하는 힌두교 사상이지, 연기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거 아닙니까?”

얼마 전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의 예로 든 시조새에 대한 서술을 교과서에서 빼달라는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냈다.

창조론자들은 이 우주의 여러 조건들 중 하나만 지금과 다르게 되었더라도 우리가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 이거야말로 신의 창조를 입증하는 거라 한다. 이름하여 인간원리.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말고 수많은 우주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조건의 우주들에서는 인간이 아예 생겨나지 않았을 터. 그러니 지금의 이 우주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창조론을 주장하는 건 문자 그대로 인간 중심주의다. 우주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신도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나.

5천만년 전 이제 막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영장류의 첫 조상은 다람쥐 크기로 나무에 살면서 다람쥐에 쫓기는 신세였다. 부처는 연기의 법을 잘 알아 마음이 편해진 이를 말한다. 하지만 저 나무 위에서 다람쥐에게 쫓기던 인간의 조상에게 무슨 부처와 중생의 구별이 있었겠나.

하찌와 티제이(TJ)가 이리 노래한다. “아, 장사하자. 먹고살자.”

형님 스님과 나는 둘 다 전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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