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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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출처: 2012년 07월호 [통권 6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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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은 마이너리티에 속합니다.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집 근처에서나 주변에서 그리스도인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설령 자신의 이웃 중에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 아픔을 느끼는 사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어쩌면 일본의 그리스도인 대다수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을 먼저 지적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실제로는 교회 안에서조차도 존재하는 문제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떠안아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 상’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인 이상, 또한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도록 요구 받고 있는 사람인 이상, 이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생각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래부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외로움과 고민과 아픔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외로움과 고민, 혹은 아픔이 없이, 이 세상과 교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포기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은 일본인이나 한국인,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어떤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인 이상’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독특한 고민과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외로움이며 고민이고 아픔입니다. 이는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도 그 뿌리가 깊습니다. 

먼저 도쿠가와 막부는 1613년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금지를 명문화했습니다. 그 이후에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이른바 쇄국정책을 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는 미국 함대가 내항하여 그들이 개국을 요구함으로써 이 쇄국정책도 막을 내리게 되고 그 후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다시금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54년.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은 오늘날도 여전히 사회적 마이너리티입니다. 인구비 1%라는 벽을 넘기는커녕, 최근에는 그 비율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로는 우선, 무엇보다도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신앙적 문제,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일본사회에는 그리스도인이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적 삶의 방식, 내지는 사고방식을 가로막는 정신성이 그 배경에 있다는 점, 더구나 그것이 뿌리 깊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일본의 상황은 현재의 한국 상황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느낍니다.

이 점에 관한 한, 교회 안과 밖은 그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교회 안에서나 그리스도인끼리의 교제 속에서는 일본에서도 스스럼없이 찬송가를 부를 수 있고 소리 내어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는 나름의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어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그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사회 안에는 그리스도교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을 기피하도록 하는 무엇,-저는 이것을 정신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낍니다.

일본에서는 교회 외의 장소에서 그리스도인을 만나는 일이 극히 드뭅니다. 오래도록 일본의 그리스도인 인구는 1%가 안 된다고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개신교 그리스도인으로 한정할 경우, 최근에는 인구 대비 0.2%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000명이 있으면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겨우 두 명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 일본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마이너리티에 속한 사람들이 느끼기 마련인 외로움과 아픔과 고민을, 일본의 그리스도인들도 또한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느끼고 아파하고 고민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마이너리티라고 하는 숫자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좀 더 심각한 문제를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사회와 문화의 심층에 존재하는 정신성과 풍습, 그것들과 깊이 관련된 종교와 제도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마이너리티로서의 외로움과 고민과 아픔의 문제를 대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일본에서 마이너리티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하에 이 문제에 대한 작은 성찰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일본의 마이너리티로서의 그리스도인 수와 교회의 현황
우선 일본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어째서 마이너리티라고 하는가를 통계에서 나타난 수치상으로 확인해 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의 그리스도인 인구비는 1%에도 못 미친다는 표현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통계상에서 그 비율은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변동이 없거나, 해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총무성 통계국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총인구 추계는 약 1억 2,779만 9천명(2011년 10월)이며 그 중에서 그리스도교(소위 이단 사이비 포함) 인구가 212만 1,956명(2009년 12월 현재, 문화청(文化廳), 『宗敎年鑑』, 2011년)이므로 그 인구비는 1%를 족히 넘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종교 신자의 총수만으로도 2억 730만 4,920명에 이른다는, 일본의 총인구를 훨씬 웃도는 신자 숫자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일본의 그리스도신문사의 통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그리스도인 인구는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를 합하면 약107만여 명으로, 그 인구비는 0.845%, 이를 개신교로 국한시키면 약0.476%가 됩니다(『キリスト敎年鑑 2012年版』キリスト新聞社, 2012년). 그러나 개신교의 주일예배 참석자수로 한정해 보면 최근에는 인구비 0.2%까지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치상으로 보면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인구비 0.2%밖에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일본의 개신교 교회의 현 상황은 어떠할까요. 일본의 그리스도교 최대 교파인 일본기독교단(교회 총수 1,724, 교역자 총수 3,363, 교인 수 18만 2,418, 2010년 현재)의 경우, 한 교회에 주일 아침예배 출석 교인의 숫자는 전국 평균 34명에 불과합니다. 주일 저녁예배 출석자수는 평균 2명인 상황입니다. 대도시와 대도시 근교에 주일 아침예배의 출석자가 100명이 넘는 비교적 큰 교회가 모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일에 20명 혹은 10명도 모이지 않는 교회가 일본 전국의 지방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극도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교회만큼 고령화가 현저한 공동체도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청년 등 젊은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교회 안의 마이너리티에 불과한 교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떨까요. 주일학교에 모이는 아동의 전국 평균은 약 10명(일본기독교단 통계, 2010년 현재)입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에 불과합니다. 2-3명밖에 모이지 않는 교회도 적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아이들이 오지 않아서 주일학교의 문을 닫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교회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확보하려는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순히 교회에 아이들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이 일본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통계상으로 보더라도 명백한 마이너리티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구성을 보더라도 노년층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나 아이들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마이너리티인 교회 안에서도 마이너리티가 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란 본래 대체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어떻게 승인되는 것일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조건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교회에 다니든 다니지 않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각이 있든 없든, 전부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요. 또는 교회에 다니고 있으면, 아니면 예배에 참석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이번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이며 또 누구인가 라는 문제는 앞으로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찰이 없으면 마이너리티이든 아니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안고 있는 진정한 문제에 다가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2)일본에서 마이너리티인 그리스도인의 외로움 - 믿음의 친구가 없다는 것
그런데 수치상으로 마이너리티인 일본의 그리스도인은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외로움과 고민, 그리고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 중 하나는 믿음의 친구가 주변에 거의 없다는 현실입니다. 이를 일본의 독특한 문제로 거론할 필요까지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문제로 보는 한, 믿음을 같이 하는 친구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며 그 문제는 ‘외로움’에 있어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마이너리티인 그리스도인은 사회생활 속에서 같은 신앙을 가진 친구가 주변에 적다는 것, 혹은 전혀 없다는 것, 또한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친구를 교회 안팎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러한 상황과 관련된 ‘외로움’을 일반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젊은이나 학생의 경우, 같은 세대 중에서 믿음의 친구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때로는 교회 안에서 조차 믿음의 친구가 없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밖으로 나가면 함께 기도할 친구가 없습니다. 신앙의 문제를 나눌 친구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마이너리티인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제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교회 밖은 당연한 일이고 교회 안에서 조차도 함께 기도하고 신앙에 대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같은 세대의 친구가 없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교회 밖에서도 외롭고 교회 안에서도 외로웠습니다. 믿음의 친구, 신앙의 대화가 통하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 출석자가 2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던 제가 같은 나이의 친구를 만난 것은 겨우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같은 나이의 그리스도인 친구를 단 한 명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만남은 단지 기쁨이라기보다는 충격이었으며 그야말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친구가 주변에 없다는 외로움이란 어떠한 외로움일까요. 결국 그것은 대화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외로움일 것입니다. 특히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신앙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진정한 의미의 이해는 없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어째서 우리들은 외롭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말이 통하지 않는 데에서는 사랑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논리적인 이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논리적으로는 이해를 했다 하더라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마음은 더더욱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상대방의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놀라울 만한 큰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애입니다. 타자를 사랑하는 사랑을 훨씬 능가하는 자기애입니다. 서로 간에 자기애밖에 없는 관계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들은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타자로부터 받는 사랑과 타자를 사랑하는 사랑을 잃어버린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처럼 외로움의 문제는 반드시 사랑의 문제와 결부됩니다.

외로움의 밑바닥에 있다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의 부족이며, 사랑의 결여입니다. 자기애의 크기에 반비례하는 작은 타자애(他者愛)입니다. 특히 상대방에게서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없을 때의 감정, 그것이 외로움의 뿌리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앙의 말들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정적입니다. 신앙에는 실존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사실은 주변에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문제는 설령 한 사람이라도 말이 통하는 믿음의 친구가 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의 문제를 넘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된 본질적인 외로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역사적 고찰-16세기말 이후, 항상 그리스도교를 의식하여 그리스도교와 대결해왔던 일본이라는 관점에서
그러면 현대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 마이너리티라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 직접적인 이유 중 한 가지를 일본사회에 있어서 전도의 어려움에서 찾아보는 것은 타당한 일일 것입니다. 이는 전도가 진전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늘지 않는다는 소박한 이치에 따른 견해입니다. 

그러나 과연 일본사회에서는 어떤 시대에나 전도가 어려웠을까요.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초로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16세기의 일본은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눈부시게 전도가 진전되었던 시대가 일본에도 있었습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찾아온 것은 1549년 8월 15일(!)이었습니다. 그 날,스페인 출신의 바스크인 선교사 사비에르(Francisco de Xavier)가 규슈 가고시마의 해안에 상륙하여 포교활동을 개시한 것입니다. 이는 일본과 서양의 ‘첫 번째 만남’(후루야 야스오(古屋安雄))인 동시에 이른바 일본의 서양에 대한 ‘첫 번째 개국’에 해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일본과 그리스도교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일본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급속하게 증가하였습니다. 33년 후인 1582년에는 전국에 세워진 교회가 약 200개, 신도 수는 15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기세와 가르침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87년에 신부와 사제의 국외 추방명령을 내렸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은 계속 늘어나 1590년에는 약 30만 명, 1600년에는 무려 50-75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일본의 총인구가 2700만 명 정도였다는 것, 그리고 이 상황이 전도 개시 이후 50년 이내의 일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시대는 놀라울만한 속도로 전도가 추진되던 시대, 혹은 전도에 있어서 ‘놀랄만한 성공’(라투렛)을 거둔 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이상, Kenneth Scott Latourette, Christianity Through the Age, 1965, 에비사와 아리미치『日本キリシタン史』書房, 1966년 및 후루야 야스오, 오키 히데오 공저 『日本の神學』ヨルダン社, 1989년을 참조)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이라면 바로 ‘전도가 어려운 나라’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기 쉽습니다만, 단기간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급속히 확대되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 확대의 가능성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7세기 도쿠가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한층 더 심해집니다. 모두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613년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금지가 명문화되고(실제로는 1612년에 이미 도쿠가와 막부의 영지에서 그리스도교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그 후 일본에서는 이른바 쇄국체제가 정비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1854년의 일미화친조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2백년이 넘도록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인의 해외교통을 금지하고 막부가 허가한 나라 이외의 외국들과는 외교무역을 제한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도쿠가와 막부)이 왜 쇄국체제를 선택했는가, 그 이유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의 확대를 막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일본(도쿠가와 막부)이 쇄국했던 것은 그리스도교를 의식해서였고 그리스도교를 적대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이 쇄국체제도 풀리게 됩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가 우라가(浦賀) 앞바다에 나타나 일본에게 개국을 요구한 것입니다. 일본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이듬해인 1854년에는 일미화친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 사건은 일본 입장에서는 이른바 ‘제2의 개국’이며 ‘일본과 서양의 두 번째 만남(후루야)’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왜 일본이 쇄국체제를 풀고 개국을 했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을 소위 역사교과서적 관점으로 본다면, 당시 구미의 제국주의적 시대 조류와 그 힘을 이미 알고 있던 일본이 강대한 무력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의향에 굴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배경에 있는, 보다 깊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개국의 배경에는 역시 그리스도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페리 제독은 ‘개신교 국가 미국’의 국민으로서 일본에 왔으며 ‘선교·사명(미션)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후루야는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가톨릭)때문에 쇄국을 했던 일본이 그리스도교(개신교)에 의해서 개국을 하게 된다는 역사를 일본은 갖고 있습니다.

개국 이후의 일본은 여전히 그리스도교를 의식하여 대(對)그리스도교라는 구도로 국가의 근대화를 추진해 갔습니다. 구체적으로 메이지유신 정부는 서양문화와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근대국가를 형성해갔는데 그 때 서양의 혼(정신)까지 도입하여 일본 고유의 혼까지 바꾸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화혼양재(和魂洋才)’, 즉 서양의 기술은 수용해도 혼(정신)에 대해서는 일본(和) 고유의 것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생각으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각한 일본의 혼이란 무엇이며, 서양의 혼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이를 신앙문제로 파악한다면 문제의 본질이 분명해집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혼이란 신국 일본이라는 사상을 지탱하는 신앙과 그 기반이 되는 국가 신도(신사신도)를 말하는 것이며, 서양의 혼이란 그리스도교와 그 신앙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대국가 형성기의 일본에서 양자는 충돌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당시 일본의 국체(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정체)와 맞지 않았으므로 배격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물론 1889년에 반포된 대일본제국헌법의 문면에서 신교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도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안녕질서를 방해하지 아니하고 신민으로서의 의무에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 신교의 자유를 가진다’(대일본제국헌법 28조)라는 유보가 붙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일본정부는 이른바 신사 비종교론에 입각하여 ‘신사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궤변적 해석을 가져와 신도 및 신사를 다른 모든 종교들의 상위에 두고 전 국민을 신사참배로 향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과 병행해 일제는 군비를 확장하여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그리면서 태평양전쟁에 돌입해 갔습니다. 결과는 일제의 패전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국가신도를 기반으로 한 전체주의국가 일제는 패전하고 그 후,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일본국이 새롭게 탄생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이 패전을 통하여 ‘제3의 개국’을 한 것이며 그것은 동시에 ‘일본과 서양의 세 번째 만남’의 계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남과 개국의 배경에는 역시 그리스도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16세기 이후로 일본은 세 번의 개국과 함께 서양과 세 번의 새로운 만남을 경험했는데 거기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교가 깊은 차원에서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컨대 16세기에 그리스도교를 만난 후, 일본의 역사는 어떠한 형태로든 그리스도교를 항상 의식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것, 또 그리스도교 없이는 오늘날의 민주주의국가 일본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은 마이너리티입니다. 그 이유의 하나로, 저는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패전에 의해 일본은 국민주권을 구가하는 민주주의국가로 크게 달라졌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정신성 및 제도에 관련된 문제, 다시 말해 천황제도의 문제입니다. 일본은 패전 후 민주국가가 되었음에도 천황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야말로 일본의 그리스도인이 안고 있는 외로움과 고민, 아픔의 핵심적 원인입니다.

4) 일본에서 마이너리티인 그리스도인의 고민, 아픔 또는 갈등 - 일본인의 정신성 혹은 종교성을 중심으로 
과거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하기 이전의 일제시대, 천황은 현인신(現人神·아라히토가미-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서 신격화된 존재였습니다. 패전 후, 천황은 이른바 ‘인간선언’을 하고 자신의 신격을 부인했지만, 신일본의 건설에 즈음해 천황제도는 유지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사도 존속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일본인의 정신성과 종교성에 대하여, 여전히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정신성과 종교성이 일본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일본인의 종교성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잡다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엉터리로도 보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해를 보내는 방식을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먼저 새해 1월 1일에는 신사에 가서 기도를 올립니다. 여름의 오본(お盆-우란분재)이라 불리는 시기가 되면 절에서 스님을 집으로 모셔 독경을 부탁합니다. 12월의 크리스마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드린 사람들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새해 1월 1일이 오면, 다시 신사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을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인의 일생을 종교적 관점에서 따라가 보더라도 마찬가지로 잡다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는 신사를 찾아 기도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태어나면 생후 약 1개월 후에 신사에 데리고 가서 축복 기도를 받습니다.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 스무 살과 같은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신도 식으로 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 가장 인기가 있는 결혼식이 그리스도교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할까요? 많은 경우에는 절에서 스님을 모셔서 장례를 치릅니다. 태어나면 신사에 가고, 결혼할 때면 교회에 가고, 죽으면 절에 부탁하고…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잡다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과 교제해 나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경우에 신앙적인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연말의 송년회 석상에서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들 올 한해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새해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설날 아침에 신사에 참배하러 함께 갑시다.” 그러자 전무를 비롯하여 부장과 과장이 잇달아 목소리를 높입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설날에는 모두 같이 신사에 참배하러 갑시다.” 그러나 직원 A씨는 그리스도인이므로 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물론 신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일본이므로 모두들 A씨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설날에 신사에 함께 가지 않은 직원은 A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직장에서 A씨의 입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상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진 속도는 어떻게 될까요? 

또한 이런 일도 생깁니다. 그리스도인 B씨가 다니는 직장의 벽에는 작은 가미다나(神棚)가 있습니다. 가미다나란 작은 신사와 같은 것으로 신도의 신을 모셔놓은 선반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매일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면서 부장을 필두로 하여 가미다나를 향해 배례를 합니다. 직원들도 부장을 따라 배례합니다. 그러나 B씨는 그리스도인이므로 혼자만 배례를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지 않고 서있습니다. 그러면 직장에서 B씨의 입장은 어떨 것이라 상상되십니까.(이는 단순히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전철역의 사무소에서도 가미다나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습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 C씨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신사가 있습니다. 이 신사를 중심으로 매년 열리는 마츠리(축제)는 마을의 정기적인 행사입니다. 마츠리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마츠리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마츠리 때가 다가옵니다. 마을의 임원들은 각 가정을 방문하여 마츠리를 위한 모금을 하고 준비를 위해 역할 분담도 부탁하면서 돌아다닙니다. 그들이 C씨의 집에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C씨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신사에 내는 헌금을 정중히 거절하고 마츠리 준비 작업에 참가하는 것도 거절합니다. 그러면 이 마을에서 C씨의 입장은 어떻게 될까요?

A씨도, B씨도, C씨도 아마 공통적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는 느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공동체 속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위의 상황들은 일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일본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이러한 어려움과 고민, 혹은 갈등을 필연적으로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정신성 혹은 종교성이 그리스도인의 그것과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닫는 글
일본에는 8만 8천여 개의 신사가 있다고 합니다. 신사는 저마다 다른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어떤 신사이건, 어떤 절이건, 때로는 어떤 교회이건, 그곳에서 숭배하는 신이나 부처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데에 저항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한 정신성, 종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때문에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려고 하면,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름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은 마이너리티입니다.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속에 고민과 아픔, 그리고 갈등을 안고 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비단 일본 그리스도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라도,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어떤 사회에서나 그리고 교회 안에서 조차도,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 매일 경험하고 있는 외로움과 고민, 아픔과 갈등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의 상황만큼 어렵다 하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과는 다른 방식, 예수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셨는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외로운 그리스도인끼리 참 사랑으로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낙운해 l 교수는 일본 도쿄에서 출생한 일본인이다. 도쿄신학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M.Div.)했으며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일본기독교단 목사(한국 파송 선교사)이며 새문안교회 협력교역자, 장로회신학대학교 전임강사(외국인교수, 조직신학)를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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