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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수 대표는 우리 사회가 입시경쟁에 매몰돼 사교육에 대한 기본적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것을 지적했다. 지난 3일 늦은 오후 서울 용산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교사 출신답게 설명을 매우 잘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

2008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출범할 때 저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동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보도자료만 열심히 생산하는 시민단체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올 수 있을지 의심한 까닭이었습니다. 지난 4년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런 의심을 불식하는 눈부신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 활동을 쉽게 보여주는 자료가 <아깝다, 학원비!>라는 32쪽짜리 소책자입니다. 개별지도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학원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낸 고육지책이 선행학습이고, 3개월 이상의 선행학습은 효과 없는 진도 경쟁일 뿐이며, 학원이 만든 실력은 고교 때부터 통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이 소책자는 박재원, 이범, 조남호 등 사교육 전문가 22명이 함께한 29차례 연구모임과 토론회의 결과물입니다. 소책자 하나를 만들더라도 ‘구호’가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는 철학이 담긴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주도한 송인수 공동대표는 진영논리에 휩쓸리기 쉬운 교육 관련 논쟁에서 보수도 진보도 아닌 독특한 입지를 확보해온 사람입니다. 연이은 회의일정에 쫓기는 그를 만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최근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선행학습 금지법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토플 점수 반영을 금지하는 특목고 입시제도가 도입되면서 관련 학원의 매출이 급감했어요. 우리가 특목고 입시정책과 관련해 여러 차례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됐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정책을 변경하면서 외고 대비 중학교 영어 사교육은 성장세가 꺾였죠. 하지만 영어가 꺾이자 수학 사교육이 문제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전국단위 표본조사를 통해 중고교의 수학 기출문제를 싹 다 뒤졌어요. 진도를 벗어나는 범위에서 문제를 출제했는지,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지 않은지 두 가지 척도로 재보니 상당수의 중고교 문제에 엄청난 선행요소가 있었어요. 바로잡으라고 촉구하니까 교과부가 교육청들과 협의해서 전수조사에 나섰죠.”

매일 생닭 잡으며 보낸 중고등학교 생활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헌법재판소의 2000년 과외교습 금지 위헌 결정이 개인 과외교습을 허용했지만, 현직 교사나 교수가 가르치는 과외 사교육은 공정성에 위배되는 ‘반칙’으로 보아 금지했어요. 공익을 해칠 경우 교육권 제약도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선행학습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학습효과가 없고, 입시경쟁에서 불공정을 유발하는 ‘반칙’이며, 학교교육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일종의 불량식품이에요. 모든 식품이 아니라 불량식품만 규제하듯이 지식체계 속의 불량 프로그램을 규제하는 것이므로 위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저희는 ‘선행학습 금지법’이 아니라 ‘선행교육 규제법’을 만들자는 거예요.”

-사교육을 안 받으려면 신앙에 가까운 결단력이 필요한 상황 아닌가요?

“<아깝다, 학원비!>도 모든 사교육을 거부하라고 얘기하지는 않아요. 입시경쟁에서 남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서 사교육을 받는 현실을 인정해요. 다만 불필요하고 해로운 사교육까지 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 소책자는 어디까지가 필요한 사교육인지 알려줄 뿐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아깝다, 학원비!>를 읽어본 사람들 마음속에 뜨거운 불이 일어나고 문제의식이 전염되면서 거기 머물지 않고 ‘사교육은 모두 안 받겠다’는 분들도 나와요.”

-실증적인 분석에 중점을 둔 운동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운동을 시작할 때 몇 가지 전략이 있었어요. 첫째, 사교육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을 불문하고 온 국민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이념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다, 둘째, 사람들과 소통할 때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보도자료에 경어체를 쓰는 등 설득과 겸손의 방법론을 택한다, 셋째, 통계와 데이터로 말하지 ‘쌩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단일 주제로 23차 토론을 한 적도 있습니다. 지긋지긋하게 팠지요. 학원이 선행학습을 왜 선호하는지 정리하는 데만 2년 이상이 걸렸어요. 학교는 못 하는 개별학습을 학원은 해주리라 기대하고 부모들이 애를 학원에 보내잖아요. 그런데 학원도 이것은 못 해줘요. 학원에서 개별학습을 하려면, 수십명을 한 교실에 넣으면 안돼요. 강사는 교과 내용뿐만 아니라 아이들 특성에 따른 교습방법론도 아는 전문가이어야 하고요. 강사료도 공간도 더 필요한데 그래서는 학원이 돈을 벌 수 없어요. 하지만 모든 아이가 다 모르는 내용을 선행학습으로 가르치는 건 강사의 수준이 낮고 강의실이 적어도 가능하죠. 사실 아이들이 학원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중간·기말고사를 앞둔 3주 정도뿐이에요. 그러나 학원은 그 기간 외에도 애들을 붙잡아둬야 하니까 선행학습 상품을 내놓게 되죠.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 선행을 뛰는 게 아이에겐 해롭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원 입장에서는 문 닫게 생겼으니 도와주셔야 해요’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1964년 원주에서 태어난 송인수는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을 목격하며 “세상이 무너지던” 소년 시절을 보냅니다.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식사 준비, 빨래, 동생들 돌보기 등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장남인 그의 몫이었습니다. 고등공민학교를 거쳐 남들보다 1년 늦게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닭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도와 매일 30~200마리의 닭을 직접 잡는 “동업자” 생활을 5년 이상 계속했습니다. 학교 끝나고 새벽 1시까지는 닭을 잡아야 했기에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던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성적이 안 좋으면 고아원에 갈 수밖에 없다”고 겁을 주셨고, 그 말이 주는 부담 때문에 송인수는 공부 이외의 다른 출구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983년 그가 서울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하자 고등학교 선생님과 후배들은 모금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소식이 방송으로 알려진 뒤에는 도지사에게 금일봉도 받았습니다. 대학 학비는 면제됐지만 도서관 사서보조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는데, 닭 장사와 비교하면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깝다, 학원비!>
사사건건 반대한 내가 미웠던지
“널 선생이라 하지 않겠다”
그 뒤 지하보일러실로 출퇴근
처참하게 망가진 뒤 다시 태어나

이념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을 것
소통할 때 어려운 말 쓰지 않고
설득과 겸손의 방법론 택할 것
데이터로 말하고 ‘쌩주장’ 말 것

사춘기 아들은 왜 삼선슬리퍼를 신을까

-독서를 강조하는 송 선생님이신데 막상 자신은 책을 읽을 수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군요?

“장사를 하며 학교를 다니느라,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는 책을 거의 못 읽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사춘기를 경험하지 못했죠. 중1 때 집안이 가장 어려웠기 때문에 반항도 못했어요. 그래서 아들의 사춘기를 제가 이해할 수 없었죠.”

-아들의 어떤 점이 이해가 안 가던가요?

“학교 갈 때 삼선슬리퍼를 신고, 원색적인 옷을 좋아하고, 시험에 대한 초조함도 없고. 중1 때는 시험 하루 전에 친구들에게 시험범위를 물어보더군요. 제가 학습방법을 일러주면 ‘그건 범생이나 하는 거잖아’라며 자신은 범생이가 아니라 규정하고. 범생이였던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웃음) 검소하고 절제하며 공익을 추구하는 건 제 삶의 중요한 가치인데 아이는 그걸 내면화하지 못하고 계속 튕겨냈어요. 예민하고 불편해서 대화도 어려웠죠.”

-해결방법을 찾으셨나요?

“윤지희 공동대표의 권유에 따라서 2010년 중2 아들과 둘이서만 10박11일 해외여행을 했어요. 정말 생살 뜯어내듯 바쁜 일정을 포기하고 떠난 여행이었어요. 아내가 따라오려고 하길래, 제가 그랬죠. ‘당신하고는 문제없잖아. 당신이 오면 우리 둘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이 아이도 나를 직면해야 하고, 나도 이 아이를 직면해야 해.’ 옆자리에서 충돌도 하고 대화도 하면서 아들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었어요. 나중에 제 생일에 아들이 편지를 보냈는데 ‘아빠도 인간이고 남자고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느꼈어요’라고 썼더군요. 소통이 되니까 저의 가치관도 받아들여서, 지금 고1인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소책자가 있으면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도 해요. 힘든 여행이지만 다녀오기를 잘했어요.”

가난했던 송인수에게는 대학도 직업도 “소극적 선택”이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국립대를 가야 했고, 학비가 저렴한 사범대 중에서도 “막연히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은” 어학을 전공했습니다. 사범대 출신의 의무복무연한제 때문에 특별한 사명감 없이 교사의 길에도 들어섰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던 그에게 1992년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는데, 학급 15등 이내 학생들 집에 전화해서 불법찬조금을 20만원씩 걷어야 했어요. 각 학급에서 300만원씩 12반 총 3600만원을 모아 회식비, 야간자율학습 수당, 교장·교감 수당 등으로 썼을 거예요. 제가 ‘양심 때문에 못 하겠다’며 야간자습도 희망자율이니 전체 학생을 강제로 남기는 것은 불법이라고 거부했어요. 그러자 어느 날 부장교사가 회의 중에 언쟁하다가는 다른 교사들을 모두 나가게 하고 육두문자와 함께 ‘나도 널 선생이라고 하지 않겠다. 너도 날 선생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저에게 돌진하더군요. 사사건건 반대하는 제가 그만큼 미웠던 거예요. 제 옆자리이던 그분을 피해서 두달 동안 교무실 대신 아무도 없는 지하보일러실로 출퇴근하면서 지냈지만, 저의 교사 인생은 그때 처참하게 망가진 셈이었어요. 자긍심이 바닥난 파산 상태에서 거의 기어서 간 게 선교한국대회였죠.”

송인수의 인생 타임라인
-거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죠?

“사회적 지위나 급여의 관점에서 교직을 바라보는 틀을 벗어버리고, 선교사로 내 교직 인생을 살겠다고 결단했죠. 그 결단이 저를 해방시켰어요. 선교한국 다녀와서는 그 부장선생님께 버릇없이 언성을 높인 걸 사과하는 편지부터 썼어요. 몇 개월 뒤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사모임을 창립했죠.”

-잘못된 관행과 맞선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암울한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친구들이 자기 몸을 불사르며 죽는 모습을 봤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기독교인으로 합당한 운동방식은 아니라서 그 길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 친구들이 자기 몸을 불사르면서 대답하려고 했던 시대의 문제에 응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꼈어요. 학교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그 친구들이 씨름하던 것보다는 경미한 주제였고, 옳고 그름이 분명했어요. 부패의 구조적인 시스템 같은 건 잘 모르지만,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촌지는 교사가 우위에 있는 문제라 그냥 안 받으면 됐는데 교재채택료 등과 싸우는 게 그 당시에는 너무너무 어려웠어요. 때로는 그냥 받은 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고, 때로는 액수를 세어보지도 않고 가위로 잘게 썰어가면서 다시는 안 받겠다고 결심을 다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 혼자 대처하려고 해서는 다 깨지는구나, 뜻을 같이하는 교사운동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때 저의 싸움이 한편으로는 부패한 구조와의 싸움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입시경쟁과의 싸움이었어요. 다른 학교와의 무한경쟁에서 우위에 서려다 보니 돈이 필요했고, 돈을 모으려다 보니 부도덕한 방법을 썼고, 거기 맞서다가 제가 당한 것이었으니까요.”

99년 전교조가 합법화되면서 가입 여부를 고민하던 송인수와 동료 기독 교사들은 독립적인 운동을 꾸리기로 결심하고 2000년 ‘좋은교사운동’을 시작합니다. 2004년 교사를 그만두고 전임사역자로 헌신한 송인수는 교원평가에 찬성하여 전교조와 대척점에 서기도 하고,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하여 보수기독교계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전교조와 맺어온 독특한 경쟁과 협력관계를 물었습니다.

“전교조가 초기에 내걸었던 교육민주화 의제에는 상당부분 공감했어요. 하지만 운동방식은 제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았어요. 학교에서 불의한 관행과 맞서 싸울 때 날카롭게 피아를 가리는 방식이 불편했죠. 저는 정의를 지키면서도 상대방을 끌어안는, 정의와 평화가 공존하는 운동을 바랐어요. 그래도 전교조 선생님들과는 늘 협력관계를 유지했어요. 무소속인 교사가 때로는 전교조에 도움이 될 때도 있거든요. 학교운영위원회에 교사 위원으로 들어가면 3명이 전교조고 저만 무소속이었어요. 그런데 전교조 선생님들이 옳은 얘기를 해도 학부모들이 잘 듣지를 않았어요.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표현이 거치니까요. 저는 학부모들이 쓰는 일상용어로 비교적 온유하게 말하니 편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나중에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저를 따로 불러다가 ‘이거 좀 말해달라’고 하시면 제가 그걸 대변하기도 했어요. 그러면 그대로 처리될 때가 많았고. 좋은교사운동과 전교조의 관계도 비슷한 면이 있을 거예요.”

송인수 대표
멀고도 가까운 전교조와 나의 관계

-한국 사회에서 중도의 길이 쉽지 않을 텐데요.

“교원평가 때도, 사립학교법 개정 때도 좌우를 넘나드는 저희 행보에 혼란스러워하더군요. 저의 이념적 지향을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간단해요. 학생들의 유익과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면 무엇이든 주장합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를 바꾸는 힘은 소수의 운동가가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운동가들 입장에서는 진영논리가 중요하지만 시민들은 양심과 상식에 일치하는 주장이면 지지하거든요. 그런 시민들을 끌어안지 않으면 앞으로 운동은 힘듭니다. 교원 운동도 그래요.”

-좋은교사운동에 헌신하면서 정작 본인은 교사를 떠난 게 아이러니입니다. 정치권의 부름도 있지 않나요?

“운동은 갈수록 커지고 누군가는 그 일에 집중해야 했죠. 그러나 단순히 일이 많아서 퇴직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이 힘을 가지려면 강력한 희생 공동체에 기반을 두어야 해요. 중심에 선 사람이 희생하지 않고 이익을 보면서 주변을 설득할 수는 없죠. 교직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저의 퇴직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었습니다. 요즘 저는 사무실에서 데이터와 씨름하며 공장을 돌리는 공장장처럼 살아요. 디테일에 하자가 있는 운동은 구호만으로 성공하지 못하거든요. 민간 교육부라는 자부심을 갖고 책임 있는 자료를 만들려고 노력하죠. 그런 의미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부총리급이에요.(웃음) 정치권의 부름은 없었습니다. 관심도 없었고요.”

-살아오면서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나요?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신앙, 정의로움, 한번 일하면 끝을 보는 끈기, 고객의 신뢰, 박리다매 정신 같은 게 어머니가 물려준 자산인데, 인생에도 운동에도 비슷하게 적용이 돼요. 박리다매는 ‘나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관철하지 않는 게 나를 위해서도 좋다’고 적용되는 식이죠. 한번 일을 하면 끝을 보면서 고객의 신뢰를 받는 것도 그렇고.”

좋은교사운동을 떠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창립한 것도 그렇게 쌓은 신뢰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의 동료들은 여전히 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들입니다. 어머니의 장사 비법을 이어받아 철저하게 현실적인 그의 태도는 의심 많고 꼼꼼한 소비자인 저의 마음까지 움직였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저는 결국 지난 4년간 미뤄두었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가입서에 제 이름을 적었습니다. 송인수의 끈기라면 정말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 겁니다.

녹취·진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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