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토요판] 가족
학원비 탓에 접어둔 화가 꿈
전문대 문창과를 갔다
대학때도, 졸업 뒤에도 알바
엄마는 무릎수술을 받고
아빠는 위암수술…
난 다시 편입을 공부중이다
합격하면? 학비 낼 순 있

새벽 5시,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는 벌써 일어나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김진아(가명·23)씨는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공부를 해서, 대학(편입)에 합격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까?’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정말,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엄마, 나 미술학원 보내줄 수 있어? 그런데… 미술학원… 비싸대.”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보내줄 형편이 안 된다”고. 예상했던 답이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그 밤, 화장실에 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울었다. 다 안다.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의 하루벌이로 먹고사는 집안 형편에, 한 달에 몇십만원씩 하는 미술학원을 다니기는 어렵다는 걸. 그 말을 꺼냈던 건, “정말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였다.

쉽사리 미련이 떨쳐지진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얘기해 주셨다. “진아야, 미술은 네가 좀더 나이가 들어서 취미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이 한마디에 기대어 산다. ‘언젠가 내 맘껏 그림을 그릴 날이 올 거야.’

미대를 포기한 대신 전문대 문예창작학과였다. 책 읽는 걸 좋아했고, 수업시간도 나쁘지 않았지만 대학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입시 미술학원을 거쳐 미대에 진학한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전공시간보다는 교양과목에 있던 ‘인체 드로잉’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자화상을 그리는 과제에서 ‘A+’를 받았는데, 그때 교수님이 달아준 코멘트를 보고선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도 그 말을 잊지 못한다. “미대생만큼의 뛰어난 안목과 데생력, 나중에 동화 일러스트 작가가 돼서 본인이 직접 글-그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미대에 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읽어준 것 같아서 기뻤다. 그때 알았다. 마음 한구석엔 버리지 못한 꿈이 살아 있음을.

꿈은 접어둔 채 살고 있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학자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벌써 스물세살이다. 학자금은 내내 ‘족쇄’였다. 대학교 2학년 때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로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였다. “장학재단에서 전화가 왔는데, 장학금 받은 것과 대출금 받은 게 이중 수혜로 문제가 됐다”고 했다. “대출금 110만원을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당장 한 학기 남은 학교도 못 다닐 형편이 돼버렸다.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기분을 그때 알았다. 언니의 마이너스 통장을 헐어 110만원을 갚았다. 힘들게 생활비를 보태는 언니는 그만큼 더 신용불량자에 가까이 다가섰다. 고비를 넘기고 난 뒤 편입을 결심했다. ‘나중에 원하는 만큼 그림을 그리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좀더 좋은 환경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편입학원에서 정신을 차려보면 종이엔 어느새 그림이 한가득이다.

편입학원비를 벌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영화관에서 일하고,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는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말도 없이 일찍부터 가족을 위해 일하러 나가는 아빠의 심정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남들처럼 일요일에는 잠도 푹 자고 주말 프로그램을 보는 게 소원이었다. 즐겁게 영화를 보고, 책을 빌리러 오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1500원짜리 김밥 한 줄로 끼니를 해결했다. 일하던 대여점 옆에 만두가게가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까지 그 집 만두를 한 번도 사먹지 않았다. 만두는 3000원, 그 돈이면 김밥 두 줄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돈이 무섭다. 졸음이 쏟아져 800원짜리 캔커피 생각이 간절해도 몇 번을 고민하다가 이내 지갑을 여민다.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를 생각한다. 잠이 달아난다.

원망도 많이 했다. ‘난 왜 이런 집에 태어났을까.’ 정말이지 맘 편하게 공부만 하면 좋겠다는 맘도 간절했다. 편입학원에 다니기 보름 전, 엄마가 갑자기 무릎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땐, 솔직히 화도 났다. ‘내가 세워둔 편입 계획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부터 했다. 내 학비를 대기 위해 온종일 백화점에 서서 일하느라 엄마의 무릎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장이 났는데도. 수술이 끝난 뒤 춥다며 손을 떠는 엄마, 너무 약해진 그 모습에 눈물이 났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고비를 넘겼다 싶을 때, 또 한고비가 찾아왔다. 이번엔 아빠가 위암 수술을 받게 됐다. 엄마는 애써 강한 척한다. 안 그러면 가족 전체가 흔들릴 테니까. ‘강해져야겠다.’ 맘속으로 수백번씩 되뇐다.

엄마가 말했다. “이렇게 못사는 집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찢어진다. 아빠는 “학원비를 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보험금으로 나온 돈에서 용돈을 내줬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 애정으로 뭉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지금은 편입학원에서 공부를 한다. 작은 학원 자습실 한 칸, 내가 공부할 자리가 있다는 게 기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적어도 공부만 10시간씩 할 수 있으니. 두렵기도 하다. 대학에 합격하면, 우리 집에서 입학금은 내줄 수 있을까. 엄마는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했다. 몇 년 전 ‘미술학원에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엄마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오늘도 돈 걱정에 떤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학원으로 향한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내 새로운 학교의 학비는… 또 어디서 나오긴 할까? 다시 이런 생활이 반복되진 않을까? 내일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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