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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투쟁

“12월15일이었습니다. 그날을 잊을 수 없지요.”

최승호(51) 피디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 ‘노성일 이사장이 폭로하던 날’이었다. 2005년 12월15일 오후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황우석 교수에겐 줄기세포가 없다’고 실토했다. 거대한 반전이었다. 당시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책임지던 최승호 당시 책임피디(CP)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기자와 인터뷰에 응했다. 노 이사장의 기자회견, 황우석 교수의 반박 기자회견으로 이어지는 격랑의 진실게임에서도 그는 용감하고 침착했다.

그때만 해도 최 피디에게 방송 저널리즘은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였다. 국민들이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도 진실이라는 확신이 들면 용감하게 말했다. 황우석 줄기세포 의혹을 제기한 직후 광고가 떨어져나가고 시청률이 급전직하했지만, 피디수첩이 제기한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은 피디수첩이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방송 장악’ 논란에 휩싸이며 입이 막혔다. 최 피디도 자신이 제작한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이 결방되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최승호 피디는 한국 피디저널리즘 역사의 한가운데를 걸어왔다. 1995년 피디수첩에 합류한 이래 ‘금정굴의 넋’, ‘검사와 스폰서’ 등 화제작을 연출하고 세계적인 특종인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사건’ 편에선 책임피디로 활약했다. 그런데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탐사보도를 하겠다고 말한 첫번째 피디”라고 칭하는 최 피디는 지금 더는 피디가 아니다. 지난달 20일 문화방송이 파업 참가 등의 이유로 해고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전국언론노조 엠비시(문화방송)본부가 170일 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할 때에도 최 피디는 빠져 있었다. 여야는 8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김재철 사장을 교체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여야 합의문에는 해고자에 대한 원직 복직 약속은 없었다.

지난 16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주변의 한 사무실에서 최 피디에게 두번째 인터뷰를 청했다. 20일에는 추가 서면인터뷰를 진행했다. 7년 사이 참으로 많은 게 변했다. 최 피디는 “이번 정부와 김재철 사장 아래서 황우석 사태가 발생했다면 곧장 검찰 수사가 들어와 담당 피디가 구속되고 프로그램이 결방됐을 것”이라며 “심지어 노태우 정권 때도 프로그램 개입이 이보다 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제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프레임은 벗어날 때”라며 “피디수첩에 돌아가 탐사보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사피디인 최승호 피디는 지금 기약 없는 해고자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국 피디저널리즘은 군사정부 직후 저널리즘이 외면한 공백에서 자라 꽃을 피웠다. 역사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 방송사 노동조합의 결성과 방송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이다. 1990년 ‘피디수첩’이 등장하고 이듬해 ‘그것이 알고 싶다’, 1994년 ‘추적60분’의 부활로 이어졌다. “저희 피디수첩은 능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간 적이 없었다”(2005년 5월31일)는 말을 들은 한 연구원은 황우석 줄기세포 의혹을 들고 방송사로 찾아갔다. 그를 이끈 최승호 피디가 지금 해고자가 되어 있다.

해고 진짜 사유는 ‘대통령 불편하게 한 죄’

이명박 정부·김재철 사장 체제서 
‘줄기세포 조작’ 찍었다면 
수사하고 피디는 잡혀갔겠지 
언론장악, 전두환 이후 최고다

문화방송 170일간의 파업은
스스로 언론인으로 세우는 과정 
그래서 성공적이었고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날 것
나도 피디수첩으로 돌아가
탐사보도 업그레이드하고파

해고자 최승호 피디는 매일 서울 여의도동 문화방송 사옥으로 출근한다. 노조 사무실에 머무르면서 해고·징계자들과 로비에서 농성을 한다. 최 피디는 “워낙 해고·징계자들이 많다보니 노조 사무실이 북적북적한다”며 “당분간 노조가 하는 일을 도우면서 <문화방송> 정상화가 빨리 가능하도록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승호 피디는 피디수첩에 복귀할 수 있을까? 16, 20일 두 차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문화방송>에서 해고된 최승호 피디는 16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인근의 한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김재철 사장이 나간 뒤 다른 사장이 오면 문화방송에 상식이 회복되리라 믿는다”며 복직 희망을 피력했다.
-당신을 학생운동 출신의 전형적인 ‘운동권 피디’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숨질 때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그날 밤 ‘큰 별이 떨어졌다’고 일기를 쓴 전형적인 ‘유신 청소년’이었죠. 탐사보도로 알려지다보니, 대학 때 학생운동 많이 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연극만 했죠. 가끔 시위할 때도 뒤꽁무니만 쫓아다녔어요.”

-문화방송 입사가 1986년이죠?

“연극 경험으로 드라마 피디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하지만 맨 처음 ‘신국토기행’이라는 여행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교양피디로 살게 됐죠. 교양피디는 정보성 프로그램에서 시사·다큐멘터리·생방송까지 폭넓게 다루거든요.”

-1980년대만 해도 피디가 제작하는 시사프로그램이 별로 없었죠?

“<한국방송> ‘추적60분’이 1980년대 초에 생겼다가 없어진 적이 있죠. ‘뉴스비전 동서남북’도 있었고… 사회부 말단 사건 소재를 주로 다뤘죠. 1987년 말 노조가 설립된 문화방송에선 가장 큰 요구가 방송을 제대로 하자는 거였어요. ‘어머니의 노래’(광주항쟁 민간인 피해를 알린 다큐멘터리)도 1989년 노조의 노력으로 방송됐어요.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든 김윤영 피디가 ‘피디수첩’ 초대 팀장으로 왔죠. 피디수첩은 1990년 5월8일 ‘피코 아줌마 열받았다’로 첫 전파를 쏘았습니다.”

-피디수첩도 초기 결방된 적이 있죠?

“1990년 ‘우리 농촌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우루과이라운드를 다룬 꼭지를 제작했다가 사쪽에 의해 불방됐죠.(당시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노태우 정부 때였는데, 그 당시에도 우리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불방에 항의했고 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이 해고됐죠. 피디수첩팀도 해체되고 새 팀으로 구성돼요.”

-최 피디님이 당시엔 무엇을 제작했죠?

“‘우리 시대의 명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탈춤 명인에 대한 다큐로 입봉했고, ‘경찰청 사람들’도 만들었어요. 국내 최초의 재연 프로그램인데, 제가 추천받아 간 거죠. 경찰서에 가서 사건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괜찮다 싶으면 (작품으로) 올리고….”

-피디수첩엔 언제 합류하게 됐죠?

“‘경찰청 사람들’ 꼬박 2년 하고 1995년이었어요. 첫 작품은 ‘동두천의 분노’였어요. 미국의 어느 신문에서 동두천을 ‘섹스 농장’(sex farm)이라고 표현했어요. 여성을 가둬놓고 성매매시키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항의하는 업주들을 담아서 방송했죠. 하지만 나중에 한 주간지에서 필리핀 등 동남아 여성들이 이곳에서 과거 한국 여성들처럼 힘들게 지낸다는 기사를 읽었죠. 내가 객관적으로 만들었나 심각하게 회의했고, 이런 실수를 다시 하지 말자 했어요.”

-또 기억나는 작품은 없나요?

“1995년 경기 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을 다룬 ‘금정굴의 넋’이라는 작품이요. 한국전쟁 때 경찰과 우익단체가 인민군 부역자라고 해서 수많은 사람을 처형한 뒤 주검을 수직갱도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사건이에요. 유족들과 함께 며칠 동안 땅만 팠습니다. 결국 아기는 머리 땋은 채로 나오고 아주머니는 비녀 꽂은 채로 나오고…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죠. 당시 태극단(우익단체) 할아버지들은 나라 지키려다 최선을 다하다 그런 일이 벌어진 건데 이제 와서 학살자로 매도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반발했죠. 하지만 뼈에 무슨 이데올로기가 있겠습니까.”

-1990년대 중반인데도 양민학살 문제가 내부 논란 없이 방송됐네요. 황우석 줄기세포 논란 때는 어땠나요?

“당시 한학수 피디와 최진용 시사교양국장 그리고 제가 호흡이 잘 맞아 끝까지 프로그램을 지킬 수 있었죠. 당시 최문순 사장(현 강원도지사)도 사실을 직접 확인하곤 방송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한번은 황우석 교수가 회사 임원을 찾아와 ‘내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점심 먹기로 돼 있다. 피디수첩에서 말도 안 되는 거 취재해도 되겠냐’고 했다고 해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점심 약속도 없었다더군요. 하여튼 당시 청와대는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을 통해 황 교수 쪽 말만 전달됐어요. 나중에 논란이 커지면서 청와대가 이쪽저쪽 정보를 챙기더라고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방송됐고 줄기세포는 가짜라는 사실이 확인됐죠.

“만약 이명박 정부와 김재철 사장(현 문화방송) 체제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다면, 황 교수 증언만으로 검찰 수사가 들어갔을걸요. 한학수 피디는 잡혀갔을 테고, 방송은 안 됐을 테고….”

이때 인터뷰 자리에 있던 아내(52)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밥 남긴 적 한 번도 없던 이 이가 그 당시 처음으로 밥을 못 먹더라고요.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최 피디님이 이번 정부에 제작한 ‘4대강 수심 6m의 비밀’(2010년 8월)은 한 번 불방 사태를 겪었죠?

“대운하 사업의 연장선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로선 심장을 건드린 느낌이었겠죠. 국토해양부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법원이 기각했어요. 그런데 김재철 사장이 저보고 방송 테이프 들고 자기한테 와서 설명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법원도 방송하라고 한 건데… 거절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단체협약에 국장책임제(담당 피디와 부·국장이 방송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제도)가 명시돼 있으므로 임원이 간여 못한다고 했습니다. 방송 당일 스튜디오에서 마무리 작업 하는데, 한 기자가 전화를 해선 ‘오늘 불방 결정 됐다면서요?’ 그러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 담당 피디도 모르는 불방이 어딨냐’ 했죠. 그 기자 말이 국토부 대변인에게 들었다는 거예요. 그 뒤 녹화 끝나고 자막 넣고 있는데 피디수첩 부장이 와서 방금 임원회의에서 불방 결정이 났다고 하더군요. 김재철 사장이 임원회의 하기 전에 청와대나 국토부와 얘기해서 (임원회의에) 방침을 전달한 거 아니겠습니까? 김재철 사장의 본색을 드러낸 첫 사건이었죠.”

-이번 정부 들어 시사프로그램이 수난을 겪었죠?

“피디저널리즘뿐만 아니라 방송저널리즘 전체가 위축됐어요. 방송 자체를 못하게 하니까, 피디들도 작품에 집중 못하고… 4대강 하고 이듬해 1월에 ‘공정사회와 낙하산’을 했는데, 그 뒤로는 탐사보도라고 할 만한 게 방송된 적이 없어요. 김 사장이 피디수첩팀과 국장, 본부장 전부 갈아치우고 철통같은 통제 시스템을 수립하기 시작한 거죠.”

-정부가 ‘광우병 트라우마’ 때문에 피디수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요. 그 이전부터 방송 장악이 이번 정부의 기본 원칙 중 하나였다고 봐요. 정부 출범하자마자 한국방송 정리 작업에 들어갔잖아요. 노무현 정부 때 추천한 당시 여당 이사들이 많은 한국방송 이사회 인적 구성을 바꾸려고 했고. 신태섭 이사도 자신이 재직하던 동의대에서 압력을 받아 나갔고, 김금수 이사장도 잇따라 사퇴했습니다. 이렇게 여당 이사 대 야당 이사 비율을 바꾸고 결국 정연주 사장 해임시킨 거 아닙니까? 애초부터 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있었던 거고, 광우병 사태가 일어나면서 피디수첩이 ‘공적 1호’가 된 거죠. 만약 피디수첩이 정연주 사장이 물러난 한국방송에 있었다면 처참했을 거예요. 그나마 문화방송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여당 쪽 이사들이 뽑은 엄기영 사장이 있었고 노조가 보호해서 버틴 거죠.”

-지난 6월20일 해고가 결정됐죠. 해고를 예상했나요?

“아뇨. 사쪽도 논리가 있는데 날 해고시킬까 했죠. 파업 지도부도 아니고 노조가 제작한 동영상 인터뷰하고 20년차 이상 조합원들과 농성한 거밖에 없는데… 그런데 그게 해고 사유래요.”

-노조 조합원들은 현업에 복귀했고, 그럼 피디님은 어떻게 되나요?

“8월 방송문화진흥위(방문진) 이사회에서 사장을 바꾸면 복직하는 게 순리 아닐까요? 별로 불안하지 않아요. 내가 파업에서 큰 역할 안 했기 때문에 해고가 부당하다, 이런 게 아니라, 김 사장 입장에선 대통령 불편하게 한 게 최고의 해고 사유였겠죠. 이제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프레임은 벗어날 때가 됐지 않았나요?”

-이번 파업을 평가한다면요?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 없고 언론을 장악 대상으로 보는 면에선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입니다. 6월항쟁 이후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태도는 지금이 가장 심하지 않나 싶어요. 노태우 정부 때보다 못해요. 이번 파업은 그런 언론장악 환경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문화방송에 이어 한국방송도 100일 동안 파업했고 <연합뉴스>도 23년 만에 파업했어요. 대한민국 언론인으로서 집단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됐죠. 이번 파업은 굉장히 성공적입니다.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드러날 거예요. 파업 뒤 한국방송도 뉴스나 ‘시사기획 창’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잖아요.”

-방송을 제 편으로 삼고 싶어 하는 권력의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그때는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입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죠.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컨트롤한 적이 없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조선·중앙·동아 비판한 것에 대해 편파보도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에서 어떤 메시지가 온 게 아닙니다. 조중동은 세무조사도 안 받으려고 했고, 그런 ‘밤의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시민사회에 팽배했어요. 언론도 언론을 비판할 수 있는 건데, 정권과 연결시키는 건 어폐가 있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경우 그런 일로 탄핵하는 게 말이 안 되지만, 한국방송의 경우 비판의 정도가 좀 심했던 것 같은 느낌은 있어요. 하지만 그게 편파방송이라는 얘길 들을 정도로 정부가 개입하려고 했냐고 하면 솔직히 난 모르겠어요. 한국방송 탐사보도팀이 노무현 정부 장관 인선에 대해 얼마나 비판을 많이 했는데요. 활어가 펄펄 뛰듯 기자들이 제 물에서 놀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8년 4월 장관 발표 뒤에 똑같은 보도를 하니까 난리난 거 아닙니까? 이렇게 편파보도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공영방송 사장을 청와대가 좌지우지하는 구도 때문이에요. 이번 기회에 문화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방문진 이사 구조도 여야가 합의해야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해요. 야당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사장을 못하도록요.”

-지난 18일 노조의 현업 복귀 이후 회사는 파업에 적극 참여한 조합원 50여명을 자신의 분야 외로 발령을 내는 등 공격적입니다. 이를 들어 김재철 사장 교체도 불투명하다고 내다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예상하고 파업 잠정중단을 결정했어요. 파업을 계속하는 것이 더 쉬운데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김재철 사장 문제에 대한 여야 합의를 신뢰했기 때문이에요. 합리적인 경영 판단, 법 상식, 순리에 따라 이 문제를 결정한다는 문구는 한글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사장 퇴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8월 이후에도 김 사장이 남아있게 된다면,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김 사장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그 선택은 국민의 공분을 살 것이고, 편파보도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겁니다.”

-위축된 피디저널리즘, 공정성이 훼손된 방송이 회복 가능할까요?

“앞으로는 김재철 사장 식으로 기자와 피디를 꺾기 힘들 겁니다.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요? 저는 탐사보도를 하는 게 제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간부도 해봤지만 행복을 느끼진 못했고 언제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 꿈을 버릴 수 없습니다. 피디수첩으로 돌아가 좀더 업그레이드된 탐사보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자유로운 탐사보도가 가능한 사회가 된다면 우리가 가진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풀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흰머리를 휘날리며 취재하는 외국의 언론인들을 보면서 그 사회의 수준을 느낍니다. 제가 그들처럼 대단한 언론인은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배우면서 현장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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