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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못봤는데

이 칼럼을 보니 다시 챙겨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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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개막식.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황진미의 TV 톡톡

오심과 경기 운영 미숙으로 런던올림픽은 ‘개막식만 멋진 올림픽’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하기야 개막식(사진)은 최고였으니까. 근대의 성찰과 이 시대가 추구할 가치를 보여준 종합예술이었으니까.

개막식 직전 에스비에스(SBS) 아나운서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던 대영제국”이라고 운을 떼었다. 이제 곧 대영제국의 영광과 영국의 정체성이 웅혼하게 드러나리라. 그러나 개막식이 담은 건 근대의 성찰이었다. 영국은 근대를 태동시킨 주체로서 근대의 성찰이라는 시대정신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근대의 태동이라면 산업혁명과 의회민주주의가 떠오른다. 산업혁명과 의회민주주의로 인한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자랑할 만도 하다. 그러나 개막식은 산업혁명을 ‘대혼란’으로 표상했다. 산업혁명이 낳은 많은 노동자들이 쇳물로 오륜을 만드는 모습과 노동권과 여성 참정권을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자본주의가 역사 발전에 기여한 바는 노동자계급의 산출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의회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기 해방을 외치는 거리에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개막식은 영국의 자랑으로 국가가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국민건강서비스(NHS)와 어린이 문학을 꼽았다. 영국의 자랑이 무엇인지는 꼽기 나름이다. 어린이 문학보다 일반 문학을 꼽기 쉽고, 신자유주의 이념 공세 속에서 국민건강서비스는 개혁 대상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둘을 꼽은 건 가치와 지향을 담은 선언이다. 즉 ‘아이들이 편히 잠드는 사회’가 우리가 추구할 가치라는 뜻이다. 600명의 국민건강서비스 노동자들로 채워진 무대는 이러한 가치가 정치가의 공언이나 모성애의 강조가 아니라, 간호사와 유모 등의 사회적 노동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음을 분명히한다. 특히 올해 3월에 발효된 국민건강보험 개혁법에 따라 전달 체계의 간소화와 감독 및 예산 집행권의 민간 이양은 있을지언정, 보편적 복지의 후퇴는 절대 불가하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영국의 가장 ‘일반적인’ 가정이라는 강조와 함께 흑백 결합 가정이 나오고, 영국 팝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만난 청춘남녀 역시 유색인종이었다.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군무가 반전 평화의 상징을 만드는 가운데, 동성애를 다루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장면이 배경으로 스친다. 다양한 인종과 성적 지향을 인정하며, ‘젊은이들이 연애하는 일상’ 또한 우리 사회가 지켜야할 가치임을 말하는 것이다. 무대 말미에는 팀 버너스리가 등장했다. 텔레비전 중계는 그가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시자임을 소개했지만, 그가 아이디어를 무료로 공개해 이윤을 얻지 않았음을 설명하진 않았다. 개막식은 노동의 가치와 일상의 복원을 통해, 자본이 아닌 삶을 지향할 것을 역설했지만, 한국 텔레비전 중계는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영국의 한 보수당 의원은 이번 개막식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보다 더 좌파적이었다고 비꼬았다. 당연하다. 개인이 말소된 국가주의를 물량 공세로 보여주었던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은 현재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성장 일변도의 가치를 대변했다. 반면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평화의 군무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길어올린 진보의 가치를 대변한다.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성화대는 결국 없었다. 대신 작은 불들이 하나로 합쳐져 일어나 거대한 성화대가 되었다. 너와 나의 삶이 서로를 보듬고 연대해 일어서는 “하나의 삶”. 런던올림픽이 일깨운 우리 시대의 슬로건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한겨레신문 2012.8.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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