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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신부 살려주세요

박기호 신부 2011. 09. 21
조회수 13971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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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 산위의마을 촌장 박기호 신부              사진   조현

 

“목사님, 신부 좀 살려주세요. 한 달 동안 기침이 안 떨어져 죽을 지경입니다요.”

 

한결공동체 김태룡 목사님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나는 한번 감기에 걸리면 두어 달 가는데 극심한 기침으로 고생할 때가 많다. 약도 소용없어서 웬만하면 그냥 버틴다. 기침으로 두통이 지근지근한 것도 괴롭지만, 밤중의 기침은 정말 곤욕스러워 견디기 힘들다. 잠도 못 자고 밤새 뒤척이게 되니 아침이 상쾌할 수가 없다.

 

몇 년 동안 감기 없이 지냈는데, 작년 가을에 예년과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때마침 한결공동체의 김 목사님과 가족들이 우리 마을을 방문했는데, 함께 온 가족 중에 한의사인 형제가 있었다. 진맥하고 간 후 약을 보내줘서 먹었는데 금방 회생했다.

 

남은 약을 두었다가 다른 가족에게 주었더니 역시 잘 들었다. 그런데 한 달 넘게 기침을 하고 있자니 한약 생각이 나서 김태룡 목사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신부가 죽겠다는데 목사가 모른 체할 리 없었다. 금방 답장이 왔다.

 

“아이구, 신부님, 약 대령하겠습니다. 옥체만강하옵소서!”

 

몇 해 전 안식년으로 시작된 마을 생활을 2년 7개월째 살았을 때다. 만 3년을 앞두고 공동체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나름대로 결산을 해야 할 처지인데, 성과는 차치하고 문제점만 가득한 상태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동안의 생활에 대해 피정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피정센터를 찾아갈까 하다가 차를 한 대 빌려 개신교 신앙공동체 마을 몇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때 처음으로 찾아간 한결공동체에서 김 목사를 만난 것이다. 2008년 9월이었다. 우리 마을처럼 동쪽을 향한 산기슭 경사진 지역에 자리 잡은 마을은 메인하우스와 학교, 목공실, 생활사 등이 다소곳이 지어져 있었다.

 

한결 가족들은 신심과 영성이 깊은 20~40대 젊은이들로 영아에서 초등생 아이들까지 있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대학생 때 김 목사를 만나 공동체를 학습하며 준비하다 서로 뜻을 모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구성원의 기초가 아주 건실하고 튼튼해 보였다.

 

김 목사는 내가 단순 방문자나 가톨릭 신부가 아니라 공동체에 투신한 사람이라는 동료 의식을 갖고 대우해주었다. 나는 방문 직전까지 엄청난 몸살로 입원까지 했던 터라 영육 간에 대단히 피곤한 상태였다.

 

김 목사에게 우리 마을의 문제점들을 꺼내놓자 전혀 경계심 없이 들어주면서, 공동체 선배로서 일찍 경험했던 운영문제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산위의 마을은 준비모임을 겨우 2년 남짓 했다. 그나마 제대로 한 것도 없었다. ‘한결’과 비교해보니 첫단추를 끼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입촌과 퇴촌의 반복으로 안정감이 없는 우리 마을에 비해서, 한결은 지금까지도 초창기 멤버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어서 공동생활의 중심이 믿음으로 확실하게 잡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건강한 공동체와의 만남은 은총이고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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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결공동체의 모습    사진 한결공동체 제공

 

 

김 목사 내외는 특별히 교육학에 관심이 많고 유아교육을 잘 시켰다. 교육은 몇 살부터 가능할까? 부모마다 자녀마다 다양하겠지만, 갓 돌이 지난 아기가 혼자서 밥을 먹게 하거나 3~4세 아이들이 부모를 곁에 두고도 자기 또래와 함께 질서 있게 식사하는 모습,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정숙할 줄 아는 아이들의 모습은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엄교와 친교의 균형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지침인지 반성하게 했다.

 

김 목사는 공동체의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순명을 강조했다. “공동체가 아무리 좋은 교육방침을 가지고 있어도, 부모가 전적으로 순명하여 공동체에 맡기고 따르지 않으면, 자녀교육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자녀를 길러본 경험으로 유아교육의 전문가처럼 굴거나 자기 생각을 고집한다면 역시 교육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한결에는 세 명의 초등학생이 한 교실에서 복식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방문했을 때 보니 예닐곱 명으로 늘었다. 식당에 앉아 있는 아이들 품새가 장난이 아니다. 계속 이어지는 젊은 커플들의 결혼과 출산으로 자녀들은 벌써 30명 가까이 부쩍 늘었고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은혜로운 성장이 부러웠다.

 

한결 가족들 중 일부는 마을을 돌보고 다른 가족들은 아직도 학교 교사직이나 일반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공동체 경제의 기초가 된다. 그중에 한의사인 박기열 형제도 있다. 처음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허리와 어깨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침과 파스 치료를 해주었다. 한결을 알게 된 인연으로 아프면 연락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기침 감기약을 무상으로 얻어먹고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은혜롭고 감사한 일이다.

 

공동체라는 몸에는 다양한 달란트를 가진 지체들이 필요하다. 교사도 있고 음악가도 있고 이발사도 있고 의사도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두 필요한 사람들이다. 특별히 자연 속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에는 한의사나 약초와 효소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있다면 큰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마을에 가장 필요한 사람으로 ‘왕언니’와 ‘큰형님’을 꼽고 싶다. 가족들을 대범한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고 거부감 없으면서도 엄격함을 지니고, 신심과 식별력을 가진 ‘언니’와 ‘형님’은 성직자가 아닌 가족 중심의 공동체로 성장시키는 데 필수적 존재라는 생각이다.

 

우리 마을 가족들은 좋은 일꾼을 보내달라고 세 번째 천일기도를 하고 있다. 전문성과 경험과 자격증까지 가졌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자신의 관심분야를 더욱 성장시켜나가며 양성을 격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산이가 커서 뭔가 하나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엇을 하게 될까? 유치원 때는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는데 1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축구에 빠져 프로 축구선수가 꿈이다. 빨간 유니폼에 박지성의 7번만 달고 다니더니, 요즘은 ‘매시 10번’을 단 줄무늬 옷을 입고 다닌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 세월에 커서 공동체의 일꾼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 될까. 우선 나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 목사와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종종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소식을 나눈다. 어제는 “벌통의 꿀을 따서 빵을 찍어먹는 중인데 신부님 생각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벌통 근처에서 채밀기를 돌리면서 꿀을 찍어 먹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김 목사가 “아! 빵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입맛을 다시자 누군가가 주방으로 달려가서 식빵을 가져다 꿀을 발라 먹는 중인 것 같다.

 

우리도 재작년에 두 통의 양봉으로 시작해서 네 통까지 늘렸고 몇 차례 꿀을 따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 꿀맛이란 정말 ‘꿀맛’이고 식빵 생각이 나기도 했는데, 우리 양봉은 지난겨울 동사해버렸다. 김 목사는 내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낸 것이 아니고, ‘우리 벌은 멀쩡하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했음이다. 꿀맛 자랑만 하고 시치미 뗄 리가 없는데 아직도 택배차량이 오지 않고 있다.

 

마을 문제에 부딪칠 때면 나는 이곳저곳에 자문을 받곤 한다. 주로 수도생활을 하는 분들을 찾거나 전화를 하는데, 그래도 가정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김 목사의 조언이 더 큰 도움이 된다. 생각과 경험을 기탄없이 나누어줌에 감사한다.

 

한결에서는 매년 가족음악회를 여는데 우리 가족들도 초청받아 간 적이 있다. 강산이 부모는 이번 출산을 앞두고 한결을 며칠간 방문했다. 마을에서의 출산은 처음이라 필요한 자문을 듣고자 갔던 것이다. 또 우리는 목사님을 초청하여 자녀교육에 대해 강의를 들은 적도 있고 한기설 형제가 와서 양봉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김 목사와 나는 닮은 점도 있다. 공동체 관련 모임이나 논찬, 강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나 신뢰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삶의 차원이어서 이론이나 담론으로 다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동체로 사는 기술은 공동생활을 지닌 자만이 나누어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

 

한결공동체와 산위의 마을의 공통점이 있다면 농업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아직 자급은커녕 농업 노동의 능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명의 농업이 공동생활 안에서 본격적으로 머지않아 이루어질 날이 올 것을 믿는다.

 

한결은 튼튼한 반석 위에 선 집이지만 그래도 김 목사는 공동체를 보호하는 데 우선적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환대’라는 것이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 이후 공동생활의 기본적 소명임은 분명하나 가족들의 영신수행에 유해할 수 있음도 분명하다.

 

특히 공동체의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얼굴들이 늘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얼마든지 문제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한결공동체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고 목사가 신부 살린 것에 감사하다는 말만 썼다!


“한결 가족 여러분 모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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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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