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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늘이 되어드리리

원철 스님 2012. 08. 13
조회수 13634 추천수 0


나무-.jpg



사람들을 위해 시원한 그늘이 되리라

 

덥다. 그늘을 찾는다. 처마끝이 만들어 낸 직선의 지붕그늘도 좋지만 나무가 만들어 준 원만한 곡선의 그늘은 더 고맙다. 동네어귀 느티나무처럼 한 그루가 만들어내는 도도한 그늘은 격이 있고, 소나무 군락처럼 여러그루가 동시에 만들어 내는 빽빽한 숲 그늘은 깊은 맛이 있다. 


한 그루 그늘이 잠시 쉬기 위한 공간이라면, 숲그늘은 아예 몸과 마음을 내려놓게 만들고 또 모든 걸 잊어버리게 한다. 이즈음은 치유와 명상의 기능까지 떠안았다. 잠깐 구경삼아 쉬려왔던 숲그늘에 반해 그 자리에 완전히 눌러앉은 이들도 더러더러 있기 마련이다. 혹여 유명인사라면 그 숲은 그대로 스토리텔링이 더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가 된다.

 

《제왕운기》를 남긴 고려말의 대학자 이승휴(李承休 1224~1300)선비는 당시‘호모 노마드(homo-nomad 옮겨다니는 사람)’였다. 그래서‘동안(動安)거사’라고 불렀다. 안주하는 삶보다는 차라리 움직이는〔動〕것을 더 편안히〔安〕여긴 까닭이다. 세상에 원칙〔道〕이 있다고 생각되면 벼슬자리에 나아갔고, 원칙이 무너졌다고 판단되면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굳은 심지는 옳은 것은 옳다고 했고 그른 것은 그릇다고 했다. 에둘러 말할줄 모르는


그 결과는 파직과 좌천으로 인한 이동을 불러 왔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강원도 삼척 천은사(天恩寺)의 소나무 그늘자리를 만난 이후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눌러 앉았다. 후학들이 위패까지 모셔놓은 숲 속 동안사(動安祠)는 700여년 이상 누릴만한 편안한 휴식처였기 때문이다.


천은사 가는 길에 들렀던 준경묘· 영경묘 인근의 백두대간은 조선왕실의 탯자리답게 일등급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으로 가득했다. 소나무는‘왕의 나무’였다. 경복궁 중수와 새 숭례문 복원에는 기꺼이 자기몸을 내놓았다.



소나무-.jpg




능참봉은 능 관리와 제사준비 및 의전담당이라는 고유업무와 함께 인근 소나무 숲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능을 관리하는 사찰인 천은사 스님들도 같이 힘을 보탰다. 아궁이 불 때던 시절, 넓은 면적의 수만그루 나무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였다.


능림(陵林)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찰림인 까닭에 갓 절에 들어온 행자들은 새벽마다‘담시역사(擔柴力士 나무를 지키는 수호신)’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 후, 장작불 지펴 밥물 끓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불볕더위는 무분별한 산림훼손과 이산화탄소의 과다한 배출이 겹친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탄소량을 증가시키는 공범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부채의식의 틈을 비집고 어김없이‘녹색성장’참여를 독려하는 공익광고가 끼어든다. ktx동대구역 계단을 오를 때 마다“당신은 오늘 나무 8그루를 심었습니다.”라는 글귀에 꽂힌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승용차로 올 때보다 기차로 오는 것이 탄소를 그만큼 덜 배출했다는 의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무정차 통과차선에는“하이패스는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안내문도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운전자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실내온도를 2도 낮출 경우 연간 탄소 감축량은 소나무 7억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는 신문기사 앞에서 그대로 입이 딱 벌어진다.

 

산문(山門)안의 경치를 정성껏 가꾸면서 모범적으로 나무 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임제(臨濟 ?~867)선사는 한 그루의 말씀까지 덤으로 심었다.


“여천하인작음량(與天下人作陰凉)”이라

천하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시원한 그늘이 되리라”


그나저나 이번 더위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 이산화탄소의 입장에선 참으로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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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해인사로 출가했다. 오랫동안 한문 경전 및 선사들의 어록을 번역과 해설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서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했다. 또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메일 : munsu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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