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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암과 같은 니체

2012. 07. 07
조회수 8648 추천수 0


문체 없는 시대 / 서해성


서해성 소설가.JPG



활자를 악보 삼은 니체

물이 아니라 강이다

차라리 뜨거운 배암과 같다 


니체를 그저 읽는 것은 니체를 향한 모독이다. 니체는 소지로 불태워 취한 뇌에 들이부어야 한다. 먼저 예리한 도끼로 합리주의의 두개골을 쪼개고 향신료를 정교하게 뿌린 뒤 박동하는 영혼을 끄집어내 주무르면서 몸을 흔들어야 한다. 배암처럼. 따라서 니체를 평어체로 쓰는 건 죄악이다. 그건 디오니소스에게서 포도주를 빼앗는 격이다. 본디 평문이란 신을 불러낼 수도, 저주를 퍼뜨릴 수도 없는 메마른 입술과 같다.


서구 관념은 지난 100년 동안 온전히 소화되지 못한 채 번역투로 한반도를 지배해왔다. 뿔과 비늘과 용틀임이 잦아든 사상(가)이란 안개에 갇혀 있는 병든 이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관념의 변비는 거꾸로 어설픈 독점을 용인하는 괴이한 과정이었다. 작품이 지닌 원래 향취를 살리지 못하고 굴절시키는 행태가 낳은 파렴치한 문체가 번역투다. 그 숱한 날들을 보상해주고도 남는 니체의 피를 비로소 마셔보았다. <니체극장>(고명섭)에 다녀온 뒤 독서일기에 남겼으되. 니체, 이 이글거리는 조롱의 신을 풀밭으로 끌고 나왔네. 니체를 풀어주면 세상이 온통 니체가 되어버릴까 봐서 말이지. 오랜만에 옷을 벗고 대리석 정원에서 흥건한 피로 저녁을 먹는 중일세.



니체극장.jpg


<니체극장>은 니체의 삶과 언설을 고스란히 재창조해낸다. 가장 뻐근한 모국어로. 관념이 감성과 발작적으로 교합해 양피지 타는 냄새가 나야 니체다. 스타일이란 본디 중세 필경사들의 손끝에서 놀던 스타일러스에서 나온 말이다. 이 건반 없는 음악은 활자를 악보로 삼는다. 물이 아니라 강이다. 차라리 이것은 뜨거운 배암과 같다. 뼈가 있되 꿈틀대고, 독이 있되 등 무늬에 배신이 화려하다. 물리면 죽든가 제 혀를 타게 하고, 이내 껍질을 갈아야 한다. 주제에 따른 생동하는 변신이다. 문체란 혼자서는 뜻이 없되 뜻의 팽창이자 약동이자 요동치는 완성이다.


스스로 메타포이자 알레고리의 일부였던 카오스의 사제 니체는 단답형을 혐오했다. 명제가 늘 양가성을 품게 하는 건 그의 악취미에 속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게 문체다. 1888년 토리노에 있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을 걷던 니체는 마부가 말을 세게 채찍질하는 걸 보고는 마차를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토리노의 채찍’은 그의 신화적 피가 현실에 엎질러졌을 때 일어난 착란, 곧 광증이었다. 이날로 근대 로고스의 완강한 집을 부수고자 했던 디오니소스의 끓어오르는 종말은 시작되었다. 이성으로부터 해방은 주술 없이는 이를 수 없는 법이다. 그는 합리성의 억압을 향해 봉기한 아리안 샤먼이었다. 끔찍하게도 자칭 ‘귀족’인 그가 갈망했던 사회는 노예제였는데 정작 그야말로 제 문체에 사로잡힌 황홀한 그리스 노예였다. 그는 문체를 타고 선악의 단순 구분점을 넘고자 했다. 불타오르는 <니체극장>에 가보라.


문체 없는 시대는 해방 없는 시대의 반사물이다. 문체는 자유다. 문체는 음악성을 품은 해석이다. 한 토막짜리 사회는 한 토막짜리 문체를 갖는다. 박정희 시대 문체는 4음절 행진곡풍이었다. 그를 동경하는 자의 심장에는 수혈할 수 있는 피가 들어 있지 않다. 엠비는 한낱 시장행진곡이다. 그는 모순마저 단순해 아예 변주를 허용치 않는다. 니체가 이 땅에 살았다면 날마다 달리는 마차에 매달리다 필시 어느 저물녘 바퀴에 치여 죽었을 것이다.


니체의 주술에 녹아내릴 귀를 가진 자도 드물지만 니체의 피를 닮은 자는 생각과 말의 몸짓 역사에 오직 고은의 언어뿐이랄까. 선악이란 때로 얼마나 편리하고 형편없이 싱거운 판가름이던가.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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