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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이 만난 사람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또 '인간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란 인류정신사의 가장 큰 주제를 오해 테마로 한 인터뷰와 이에 대한 목사와 신부, 스님, 주역의 대가와 심리학자 등 10명이 모여 토론한 대담을 선보입니다.

백기완이 80평생 만난 여자중 최고는?

조현 2011. 08. 11
조회수 106092 추천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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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점심을 통일문제연구소장인 백기완(79) 선생과 함께 했다. 1년 가량 못뵈었더니 더 늙으신 것만 같다. 하긴 우리나이로 80이니 늙음을 탓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백 선생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지난 2일 백주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를 당한 것과 관련해서다.

 

백 선생은 그 날 대한문 옆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단식 농성장’을 방문했다가 보수단체인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위협에 위험을 느낀 백 선생이 택시를 타자 택시 앞을 가로막고, 앞과 뒤쪽에서 택시 위로 기어오르고, 백 선생을 우산으로 위협하며 끌어내리려 했다고 한다. 백 선생은 이 과정에서 옆구리 등을 다쳤다. 그런데도 당시 80여명의 경찰은 백색 테러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서슬퍼런 독재자들과 명동·종로의 ‘주먹들’ 앞에서도 전혀 기 죽지않았던 백 선생이 테러를 당했다고 해서 기가 꺾일 리가 없다. 소주 한 잔을 들고 외치는 데서부터 특유의 기가 발동한다.

 

“아리 아리 떵~”


술 한 잔을 들고 건배를 하면서도 줏대 없이 구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 ‘간빠이’ 같은 왜어는 말할 것도 없고 ‘위하여’니 ‘건배’도 허용치 않는다. 아리랑의 ‘아리’는 ‘길을 찾아가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간다’는 뜻이란다. 떵은 덩더꿍의 줄임말 격이다. 우리의 추임새다. ‘아리 아리 떵~’하면 금새 분위기가 고조돼 쉼표 없는 백 선생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백 선생이 영화 <마당을 나온 암닭>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만약 보지 않았다면 “기자가 그런 훌륭한 작품을 아직도 보지 못했느냐”고 경을 칠 것이었지만, 이미 보았다니 만면에 웃음을 띤다.

 

현실에 굴종하지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마당을 나온 암닭>이야말로 ‘아리 아리 떵~’이 절로 나오는 줄거리가 아닐 수 없다. <마당을 나온 암닭>의 여러 장면 가운데서도 백 선생이 인상 깊게 여긴 대목은 양계장 안의 닭들이 ‘비록 수달의 추동’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감옥인 양계장을 박차고 나오는 모습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는 노예적 삶을 떨친 그 순간이야말로 해방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박재동 화백의 오돌또기에서 그렸는데, 몸 하나 움직일 여지조차 없는 닭장 내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백 선생은 남 앞에서 불호령을 내리기도 하고, 자기 자랑을 잘 하기도 하지만, 남 칭찬도 그 못지 않게 잘하는 편이다. “칭찬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꿈 속에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외로움이 없어진다.”

 

그게 백 선생의 지론이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조선소 85미터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었다.

 

‘고행을 한 많은 종교인들을 봐왔지만, 그런 고초 속에서 김진숙위원과 같은 웃음을 짓는 이를 보긴 쉽지않다’는 기자의 말에 백 선생도 눈시울을 글썽이며 ‘김진숙이야말로 내가 평생 만나본 여자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거침 없이 칭송한다. 여자들은 하루 두 번 이상 씻어야 하는데 마실 물 조차 부족한 그 위에서 지내고, 한여름 철이 달궈지면 양말을 신고도 도저히 서 있을 수 없는 상태인 크레인 위에서 200일 이상 보내면서도 용기와 절제, 희망을 잃지않는 참으로 보기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늙은 몸이 이제 무엇을 하겠느냐”면서 “김진숙이라도 살려야하겠다는 생각에 전날 <한겨레>에 기고할 글을 쓰려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한참 울었다”고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아, 흙 한줌, 흙 한줌씩만 -왜 김진숙을 살려야 하는가


누를 수 없을 만치 끓어오르는 한마디가 있어 붓을 들었습니다.


저는 입때까지 있어온 ‘희망의 버스’를 세 번 다 탔습니다. 다짐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김진숙을 살려내자, 그 한마음일 뿐, 갖고 간 것은 흙 한줌이었습니다.

 

아내가 무엇 하러 그런 걸 갖고 가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말을 안 했습니다. 높은 무쇳덩이에 216일째 올라 있는 그에게 뿌리를 내릴 흙 한줌을 보태자 그거였지요. 하지만 한 번도 주진 못했습니다.


1차 때는 허리춤에 찼다가 경찰 방패에 떨어뜨렸고, 2차 때는 부산역에서 영도까지 모진 빗속을 걷다가 홀랑 젖어버렸고, 3차 때는 영도다리에서부터 막혀 뚫다가 짓이겨졌고. 그래도 그날 밤 8시부터 3시간 반 동안 꽝꽝 막힌 영도의 골목골목을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죽어라고 걸어 마침내 찔뚝찔뚝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서 남몰래 한숨을 지었습니다.

 

아, 이 좁은 영도에 경찰 7천, 경찰 앞잡이 여러 천이 김진숙을 살리자는 저 눈물겨운 물살을 이렇게까지 자근자근 짓밟는 까닭은 무엇인가.

 

손출(간단)하다. 썩어문드러진 재벌과 이명박 정권은 그 생각, 그 체질, 그 욕구가 일치하는 동업관계다. 그래서 김진숙을 죽게 하자는 것이구나. 영도의 밤은 새벽까지 무더운데도 소름이 오싹, 넋살(정신)을 차려 김진숙을 그려보았습니다.

 

김진숙은 누구일까.

저 높은 무쇳덩이에 올라 재벌 돈벌이의 판을 깨는 불법 난동분자일까. 그래서 죽어 마땅한 괘씸한 노동자일까. 아니다, 아니라고 세면바닥을 질렀습니다.

 

김진숙은 ‘살티’다, 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살티란 목숨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몸뚱아리의 목숨하고는 다릅니다. 제 몸에서 배어나는 땀으로만 살아가는 목숨이요, 둘레의 사람과 누룸(자연)하고도 잘 어울려 살아가는 목숨이니, 그게 바로 김진숙이다, 이 말입니다.

 

그가 무쇳덩이에 올라 목숨을 건 것도 정리해고 철회하라, 아니면 못 내려간다, 딱 그거이니 그가 살티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어요. 그렇습니다. 김진숙은 많은 사람들이 나만 잘살겠다, 내가 이겨야 한다고 피투성이의 다툼만 하는 이 고얀 돈의 논리, 이기적 개인주의 문명을 갈라치는 살티라. 그의 요구를 들어야지 그를 끌어내리려 해선 안 된다. 그건 오늘의 삶의 모범을 죽이는 거라, 절대로 안 된다. 끌어내려야 할 건 썩어문드러진 재벌이지 우리들의 살티, 김진숙이가 아니라고 땅을 쳤습니다

 

아, 참말로 김진숙은 누구일까요. 그야말로 ‘서돌’이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서돌이란 짓밟힐수록 불꽃이 되는 대들(저항)을 뜻합니다. 그래서 서돌은 사람이 사람으로 설 수 있는 마지막 불꽃이면서 아울러 창조, 창작의 원천이요, 갈마(역사)의 모든 끌힘(추진력)은 거기서 나온다고 했으니 그 서돌을 지피질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 불꽃이 없으니 실바람에도 몸을 못 가누는 허제비가 되는 겁니다. 어려운 말로 좌절, 절망의 맨 끝자락, 허무주의의 늪으로 굴러떨어지는 타락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더구나 오늘의 이 문명은 그 허무주의를 강요하는 던적(병균)입니다. 그리하여 탈이 든 사람들은 다투어 이 썩은 문명에 한 다리라도 걸치려고만 드는 꼴입니다. 교육이 그러하고, 철학이 그러하고, 옳음이 무너지고, 누룸(자연)이 쌔코라져도(망해도) 나만 차지하겠다고 갈기갈기 찢어버려 너덜이가 된 이 땅별(지구)의 캄캄한 어두움, 여기서 김진숙이만이 꺼져가는 이 땅별의 서돌을 한사코 지피고 있는 겁니다.

 

저 불 꺼진 무쇳덩이 위에 번덕번덕 빛나는 불꽃이 그거라니까요.

그 안간 불빛에서 깨우침을 받아야지 그것에 최루재를 뿌리다니, 그건 참의 살육, 서돌의 살육이라. 이명박 정권도 물러가고, 조남호 회장도 물러가야 한다고 세면바닥을 굴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말로 김진숙은 누구일까요.

이 겨락(시대)이 낳은 가장 어먹한(위대한) ‘찰’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찰이란 시라는 뜻의 우리말이지요. 어디서 나왔느냐. 샘에서 나왔습니다. 저 덤삐알(산자락)의 찬샘은 물을 찰찰 넘쳐 둘레의 메마른 땅을 적시지만 그것을 제 것이라고 하질 않습니다. 또 쉬질 않고 찰찰 넘치는 까닭은 한때라도 멈출 것이면 그 맑은 샘도 썩습니다. 그러니까 찰이란 걸레를 짠 구정물이 아니라 찰찰 넘쳐흐르는 변혁인 것이니, 그 찰 김진숙은 참말로 무엇일까요. 모든 살티(목숨)와 노니는 한마음, 창조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김진숙이는 눈물의 샘이요, 등짝엔 땀방울의 샘, 예술입니다. 소금쟁이는 내버려두어도 달이나 별도 눌러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썩는다고 엎어버리는 변혁의 샘, 예술인데, 거기다가 시뻘겋게 펄펄 끓는 무쇳물을 붓겠다니 그건 김진숙만 죽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예술을 죽이려는 범죄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류는 이명박 정권과 한진중공업 조남호한테 그런 막심(폭력)을 내준 적 없으니 그들에 맞서 싸워 김진숙을 살려내야 합니다. 거기에 노동문제 해결, 인간문제 해결이 있고, 썩은 문명 대 새 문명 창조의 싸움이 있으니 희망의 버스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이어져 김진숙을 살려야 합니다. 못 살리면 인류의 역사, 문명을 폐기해야 합니다. 사람인들 무슨 낯짝으로 살겠어요.

 

그러나 길은 있습니다. 너도나도 흙 한줌씩이면 됩니다. 그것으로 저 빈텅(공중)에 매달려 뿌리를 내리고자 해도 흙 한줌이 없는 그에게 흙을 쌓아주면 그가 이깁니다.

 

왜냐, 김진숙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살티를 세우고 서돌을 지피고 찰을 지을 찰니(시인)이니까요.

그래서 온 땅별 모든 이들에게 이릅니다. 한번쯤 눈을 들어 이 안타까운 한반도, 영도를 보아줄 순 없을까요. 높이 솟은 저 무쇳덩이가 보이지요. 그게 바로 이 땅의 한 찰니가 올라 사람됨의 뿌리를 내리고자 가슴은 퉁퉁대지만 한줌 흙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는 빈텅입니다.

 

뜻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깨우침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손길을 잡아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한줌 흙입니다. 아 한줌 흙.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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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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