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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엄마 미란다 수녀님

김인숙 수녀 2012. 09. 24
조회수 920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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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아 나는 잠시 시골 할머니 집에 왔습니다. 콕콕콕, 콕콕콕, 콕콕콕콕…… 전화번호를 누릅니다. 다섯 번 신호가 간 후 저쪽에서 수화기를 들었네요. 


 “여봇소, 여봇소, 미란다 수녀님이세요?”

 “어머, 우리 나리예요? 오늘도 잠 잘자고 일어났나요?”

나는 수녀님과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어제도 그랬듯 

 “수녀님, 보고 싶어요. 언니들 있어요? 수녀님들도 다 있어요?”

하면서 나는 모두 다 바꿔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미란다 수녀님도 내가 보고 싶어 울었다며 ‘엉엉’ 우는 소리를 냅니다. 


 “수녀님, 저 보고 싶어 진짜 울었어요?”

 “그럼, 우리 나리 빨리 보고 싶어요. 엉엉…….”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24일에 갈 계획을 20일로 당겼습니다. 언니들, 수녀님들과 통화가 끝났습니다. 다시 미란다 수녀님이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러고선 가만가만 소리를 낮춰 나에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리야, 전화 할 때 ‘여봇소, 여봇소’ 하는 게 아니라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는 거예요. 알았어요?”     

아차, 할머니가 그러는 걸 나리도 자꾸 똑같이 따라 하네요. 


미란다 수녀님은 우리 집에서 일곱 살 막내인 나와 초등학생 언니들을 돌봐줍니다. 아마 지금쯤 수녀님은 나에 대한 2학기 계획을 꼼꼼히 짰을 거예요. 바르게 쓰기, 매일 아침 어린이 집에 가기 전 10분 내지 15분 정도 읽을 창의력 개발 및 두뇌개발 책도 샀을 거예요. 특히 수학이 약한 나는 ‘좌뇌개발’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나요? 수학교사였던 수녀님은 숫자에 굉장히 민감한 것 같아요. 3 더하기 5를 가르칠 때 수녀님은 그릇에서 사탕을 꺼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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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세 개를 꺼냈어요. 여기에 다섯 개를 더했어요. 그럼 몇 개가 될까요?”

물으면 나는 늘 하나, 둘, 셋… 하면서 하나하나 세어야 답이 나와요. 수십 번 반복해도 똑같이 그렇게 세요. 동화책도 여러 번 읽어준 후 그림을 보고 이야기 해 볼까? 하면 난 잘 못해요. 나는 이렇게 숫자 개념도 없고 못하는 게 많아요. 그렇지만 뭐 나만 그러나요? 아니요? 미란다 수녀님도 못한 게 있었어요. 처음 수녀님이 우리 집에 와서 어쨌는지 아세요?


 “장나리, 김민지, 정소희, 오은채…….” 

하고 부르는 거예요. 뿔이 난 언니들이 


 “수녀님은 왜 우리를 학교에서처럼 성까지 불러요? 여기는 집이에요. 집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잖아요.”

하면서 막 따졌어요. 그때 수녀님은 얼른 깨닫고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하고 사과했어요. 그래도 미란다 수녀님이 제일 잘하는 건 우리들 교육이에요. 특히 나, 나리에게요. 학습지도, 창의력, 두뇌개발을 단계별로 교육 시켜야 한다고 욕심을 아주 많이 부린답니다. 덧셈, 뺄셈을 가르치기 위해 수녀님은 오늘은 사탕, 내일은 흰콩, 다음은 팥, 그 다음은 검정콩을 번갈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몇 번 해도 안 되면 수녀님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오늘은 이만 끝.” 


하지만 또 내일 반복합니다. 하루는 이런 수녀님이 몹시 안 돼 보여  

 “수녀님, 나리 굉장히 잘 하죠. 똑똑하죠?” 

했지요. 내가 슬쩍 본 수녀님 얼굴은 참,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수녀님이 뭔가를 자꾸 설명하고 가르치는 게 짜증이 나서 큰 소리로

 “나도 다 알고 있어요.” 

하고 대들었어요. 그때 내 마음을 어른들 말로 하자면 ‘비록 일곱 살이지만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싶다.’ 이런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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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은 나와 살게 되었을 때 참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때 세 살이었던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잘 때까지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뛰어다니고, 눈에 보이는 물건은 다 던져 놓고 했으니까요. 수녀님은 날마다 내 꽁무니를 따라 다녔어요. 그러던 내가 지금은 어린이 집에 다닐 정도로 많이 컸고 칭찬 받을 여러 가지 좋은 점도 있답니다.  


 “나리는 욕심이 없어요. 생일날 사준 요구르트도 자기 혼자 먹지도 않고 언니들 과 수녀님들 그냥 다 나눠줘요.”    

 “비록 인지력은 딸리지만 저, 피아노 치는 거 보세요. 나리는 절대 음감이라니까요?”     

또 이런 칭찬도 나리는 듣습니다.   


 “우리 나리는 아픈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아주 커요. 누가 아프면 정말 안쓰럽고 짠한 표정으로 ‘호’ 해주는 게 어린애 같지 않아요.”    

  그건 맞아요. 나는 미란다 수녀님이 아프다고 하면 '호호’ 땀이 나도록 많이 불어주고 그래요.  


나는 언니들보다 수녀님이랑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 그런지 내 행동이나 말을 보면 수녀님을 많이 따라한데요. 수녀님은 나리가 말을 안 들으면 우리 집 밑에 밑에 있는 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 경찰 아저씨 부를 거예요.” 

했어요. 그래서 수녀님이 내 말을 안 들어줄 때면 나도 검지손가락을 앞으로 쭉 내밀며 수녀님처럼  “저기 경찰을 불러 올 거예요.”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수녀님들끼리 내 앞에서는 말조심하자고 수군거렸어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우리 아빠가 찾아 왔는데 수녀님 목소리가 보통보다 높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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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 매번 온다고 약속해 놓고 안 오시면 나리에게 상처가 되니 아예 약속을 하지 마세요.” 

  아빠가 떠난 뒤 수녀님은 나에게 약속을 안 지킨 우리 아빠를 혼내서 보냈다고 했어요. 그런 뒤에도 아빠는 또 약속을 어겼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수녀님에게  

 “수녀님, 우리 아빠가 오면 내가 혼 줄을, 혼 줄을 내 놀 거예요.”     

 하고 큰소리 쳤답니다. 그날 나는 아빠가 미워 더 크게 웃고 더 떠들고 놀았습니다. 나는 늘 ‘해피 데이’로 살아요. 슬퍼도 찡그리지 않아요. 야단맞아도 깔깔깔 웃고, 힘들면 큰 목소리로 더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나를 보고 어른들은 쯧쯧 혀를 차며 말하죠. 


어린 것이 시설에 맡겨 질 때 분명 소외감, 박탈감, 버림받음을 느꼈을 텐데, 표현은 못하고 속으로 부대낀 것이 저렇게 과잉행동으로 나온다고요. 그 말뜻을 나는 알아듣기 어렵지만 어른들의 말이 맞든 안 맞든 나는 항상 ‘좋다’ 하고 살아갑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네요. 아무튼 평소에 내가 미란다 수녀님을 따라 하는 것은 그냥 저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지 나리가 해야지 맘먹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만은 수녀님을 닮아 수녀님처럼 나도 똑같이 해야지 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저녁식사가 끝나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원장수녀님의 말씀을 듣는 “저녁말씀”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에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왜냐고요? 말씀은 길지 않고 짧으나 언니들처럼 나는 알아듣지를 못해요. 그래서 미란다 수녀님은 나만을 위한 특별한 ‘저녁말씀을’ 매일 밤 해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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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 했듯이 미란다 수녀님은 우리들 교육적인 면에 아주 철저합니다. 안 좋은 습관은 일치감치 물들지 않게 하지요. 그래서 나리의 취침 시간은 밤 9시입니다. 초등학교 언니들도 똑같아요. 충분히 자야 다음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수녀님 방침입니다.  


수녀님은 밤 8시 30분쯤 되면 나를 2층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내 방에는 언제나 미리 이불이 깔려 있고 그 이불 위에 수녀님과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앉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잠들 때까지 수녀님은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짐작컨대 우리 수녀님은 나에게 이렇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저녁말씀’을 대신 하는 게 분명합니다.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공주 시리즈인 백설공주, 숲속에 잠자는 공주, 인어공주, 엄지 공주 등은 벌써 몇 번씩 읽었습니다. 백설공주 동화를 읽어줄 때면 수녀님은  

 “…… 백설공주가 숲속으로…… 숲속으로… 숲속으로…… 또 숲속으로…….” 


계속 숲속으로, 숲속으로 하면 나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듭니다. 참, 헬렌켈러도 좋아해서 수녀님이 많이 읽어주면서 질문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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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켈러를 가르친 선생님 이름이 뭐죠?”

나리는 자신 있게 ‘설리번’ 이라고 했습니다. 알리바바 40인의 도둑, 호두까기 인형, 벌거숭이 임금도 점점 재미가 있습니다. 피터팬은 뮤지컬을 보러가기 전에 한 번 읽어주고, 보고 와서 또 몇 번 읽어주셨어요. 요즘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서 수녀님이 한 줄 읽으면 이어서 내가 한 줄 읽는답니다. 키다리 아저씨도 그렇게 읽었습니다. 


어느 날 수녀님 친구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어요. 미란다 수녀님은 친구와 대화를 하다 잠시 중단을 했어요.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시간이 되었거든요. 매일매일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수녀님 친구는 놀라며 말했어요. 


 “미란다 수녀님, 정말 좋은 추억을 나리에게 만들어 주고 있네요. 비록 나리가 엄마, 아빠와 살지 못하는 큰 아픔이 있지만 밤이면 날마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수녀님 때문에 나리는 이 좋은 추억을 평생 간직하며 살 거예요.” 


  수녀님 친구의 말은 어린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나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엄마, 아빠랑 살고 있는 어린이 집 내 친구들 중 날마다 날마다 동화 이야기를 듣고서 잠드는 어린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매일 엄마가 동화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집이 얼마나 될까요?  


하루는 미란다 수녀님이 많이 아픈 밤이었습니다. 얼굴도 입술도 하얀 색이었어요. 그런 날도 수녀님은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어요. 목소리에 힘이 없는 수녀님이 많이 슬퍼 보여 나리가 물었습니다.   


 “수녀님, 많이 아프세요?”

수녀님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날따라 나리가 말을 안 들었거든요. 내 손등을 때리는 수녀님을 향해

 “수녀님, 미워. 수녀님, 싫어.” 

하면서 나도 수녀님 손등을 꼬집고 많이 때렸거든요.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평소에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사이에 잠이 드는데 그날은 눈이 말똥말똥 하고 감기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수녀님은 나에게 “잘자, 나리야.”하면서 일어났어요. 나는 얼른 수녀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며   


 “수녀님, 나리가 미안해요.”                  

라고 사과했는데 그때 수녀님은 내 마음을 알았을까요?

궁금한 게 또 하나 더 있네요? 아침마다 내가 어린이 집에 갈 때입니다. 미란다 수녀님은 내 두 손을 꼭 잡고 이렇게 혼자 말합니다. 


 “오늘도 우리 나리가 친구들 하고 잘 놀고, 정리정돈도 잘 하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찔끔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집에서 나는 선생님이

 “정리정돈 합시다.” 

하면 화장실에 간다고 살짝 빠지거든요. 사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나는 막 때리거든요. 그러면 친구들은 나를 싫어하고 같이 놀아주지 않아요. 난 그림책이나 퍼즐을 혼자서 놀아요. 이런 사실을 우리 수녀님이 알까요? 알고도 수녀님은 모른척하고 그러는 걸까요? 


동화를 들으며 잠이 드는 나는 코를 코~올 코~올 골면서 깊은 단잠을 잡니다. 나는 지금부터 생각합니다. 나리가 아주 많이많이 커서 어른이 된다면 나리와 같은 어린이에게 동화책을 꼭 읽어주겠다고요. 밤이 되면 이불 위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둘이 앉아 미란다 수녀님처럼 어른이 된 나는  

 “……백설공주가 숲속으로…… 숲속으로… 또 숲속으로…… 또 숲속으로 들어가서 …….” 

하면서 동화책을 읽어주며 특별한 ‘밤인사’를 나도 따라 할 겁니다. 그러면 그 아이도 코~올 코~올 코를 골면서 잠을 잘 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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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스코의 예방교육 영성 


예방교육자 돈보스꼬는 학교의 기숙사를 비롯하여 아이들과 함께 사는 모든 살레시오 교육자들에게 ‘저녁말씀’을 실천하도록 했습니다. 


 “매일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교장이나 그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몇 마디 다정한 말로 해야 할 일과 피해야 할 일들에 관해 공개적으로 조언하고 충고하도록 하십시오. 그날 자기 공동체 안팎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에서 몇 가지 교훈을 끌어내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절대 5분을 넘지 않도록 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도덕성과 기관의 원활한 운영 그리고 교육상의 성공을 가져다주는 열쇠입니다.”


 심리적으로 훌륭한 ‘저녁말씀’은 가족적 분위기를 강화시켜 더욱 친밀한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으로 여겨졌고 또 그렇게 시행되었습니다. 이 저녁말씀은 늘 “잘 자거라.”는 말로 끝났기에 ‘밤인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예방교육자 돈보스꼬는 ‘밤인사’를 자신의 일로 여겼으며,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줄 한 가지 생각을 중심으로 몇 마디만 들려주어 그들이 제시된 진리에 사로잡힌 채 잠자리에 들도록 하십시오.”


돈보스꼬는 종종 대화로 진행되었던 훌륭한 저녁말씀을 학생들과의 가족적인 모임으로 생각했으며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기회에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시설 내의 갖가지 사건들과 활동을 알려주고 특히 학생들과 교육자들 사이의 오해를 말끔히 씻어주어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 날마다 들려주는 그런 저녁말씀 덕분에 살레시오 교육자들은 자신의 지도하에 있는 학생들과 다정한 관계를 형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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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는 살레시오 수녀이며 작가입니다. 지난 5월에 또 한 권의 책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를 냈습니다. 먼저 방황해본 10대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멘토링 책입니다.
이메일 : clara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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