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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이겠다

김인숙 수녀 201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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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가.jpg

재민이의 아픈 상처가 있던 바다 선창가

 

 

회상 1

  촤르르 차알싹, 촤르르 찰알싹……. 나는 고향 바닷가 가까이에 있는 어느 골목길 작은 여관방에 누워 밤물결 소리를 듣는다. 22년 만에 고향 항구를 찾아 나는 부러 선창가 방을 예약했다. 낮은 천장, 흐릿한 형광불빛 아래 깍지 낀 양손을 베개 삼아 누웠다. 땀내와 비린내, 술에 젖은 아버지의 체취가 엉켜 있을 듯한 구석의 이부자리. 벽지는 오줌지린 것처럼 비 샌 자국이 여기저기 무늬져 있다. 이런 방안이 나에겐 익숙하다. 내 어린 시절이 그랬으니까.


  촤르르 찰싹, 촤르르 찰싹……밤물결 소리가 방 안으로 밀려온다. 먼 옛적 슬픔의 물결도 가슴 위로 밀려와 나는 숨 쉬기가 힘들다. 귓전에 울리는 뱃고동 소리 에 젖은 두 눈이 흔들린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점점 팡팡 뛴다. 어부였던 아버지가, 술에 만취한 아버지가 소주병을 쥐고선 흔들거리며 집 가까이 오고 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달팽이처럼 몸을 만다. 아버지가 나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작게 아주 작게 똘똘 말아 숨긴다. 


  쾅, 대문이 열렸다. 터어벅, 터어벅, 아버지가 가까이 오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때릴 것이다. 신발을 벗어던진다. 방문이 열리고 고함소리가 아버지보다 먼저 방을 점령한다.


  “이 새끼 어디 있어. 나가, 너도 당장 나가.”

  이불 속에 나는 간절히 원한다. 내가 스르르 없어지기를, 바닥의 물기처럼 점점 사라지길 버리길.

  “모두 달아났어. 니 형, 누나, 니 에미 년도  갔어. 그러니까 너도 꺼져버려! 내 눈에서 없어지란 말이야.” 

  엄마는 다섯 살 때 집을 나갔다. 그 뒤 형, 누나도 내 곁을 떠났다. 오늘은 아버지 목소리에 어둠보다 무서운 살기가 느껴져 몸에 소름이 돋는다. 파악, 술병이 방바닥에 부딪쳐 깨지는 동시에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아버지를 밀치고 방안을 뛰쳐나왔다. 맨발로 뛰었다. 아버지도 악을 쓰면서 미친 듯 내 뒤를 쫓아왔다. 그리고 과도로 내 등을 찔렀다. 나는 피를 흘리면서도 달렸다. 쓰러지면 붙잡혀 죽을 것 같았다. 잊을 수 없는 내 나이 일곱 살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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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한 백분도 수사(오른쪽에서 두번째)

회상 2 


  집을 떠난 재민이는 여기 저기 복지시설을 전전했다. 아버지를 향한 복수의 칼을 갈면서. 그러면 그럴수록 재민이는 울보가 되어갔다. 시설을 옮길 때마다 별명이 늘었다. 징징대는 울보, 고집불통, 싸움쟁이……. 얼굴에 손톱자국도 그만큼 많아졌다. 


내가(백분도 수사) 재민이를 만난 곳은 대전 돈보스코 작은 집(현재 돈보스코의 집)에서다. 열다섯 명이 사는 여기서도 재민이는 미운 막내 오리새끼 초등학생이었다. 형들과 다투고, 억지 주장을 하고, 형들보다 용돈도 더 달라, 과자도 더 달라 마냥 떼를 썼다.  

     
  그 해 겨울 주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탕 속에 있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불러내어 때를 밀어주었다. “그 다음, 재민이 빨리 나와” 나는 재민이의 손등, 팔, 다리, 가슴을 씻긴 후 등을 돌려 앉혔다. 등판 오른쪽 위에는 재민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새겨있었다. 내 손은 잠시 멈추다가 다시 움직였다. 서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따뜻하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물에 젖은 재민이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재민이는 등을 밀어주는 나에게 아버지의 폭행, 그리고 그날의 생생한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폭로하였다.


  “난 아버지를 만나면 죽일 거예요.”

 

  당시 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수사(평생 동안 가난, 정결, 순명의 서원을 지키며 사는 수도자)가 아닌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재민이의 상처받은 이야기를 듣고 고심하던 나는 강사에게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아이에게 제가 지금 어떻게 해 주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그 상처를 지울 수 있나요?” 라고 물었다. 강사는 이런 말을 해 주었다.


  “한번 심하게 받은 상처는, 커다란 사진 모양으로 마음 안에 기억되어 남습니다. 그래서 지워질 수 없어요. 다만 수사님이 그 아이와 크고 작은 아기자기한 추억이 될 만한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그런 추억들은 작은 사진 모양으로 만들어져 커다란 상처의 사진 위를 덮어 버립니다. 아름다운 작은 추억의 기억들로 상처가 덮어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물건을 함께 사러간다던가, 함께 음식 만들기, 놀이나 운동을 함께 하기 등등 하루 중 아이와 함께 하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먼저 학교에서 돌아온 재민이 손을 잡고 동네 슈퍼마켓을 갔다.


  “재민아, 오늘 저녁에 우리가 먹을 간식 좀 골라봐라. 그리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골라봐.”
  재민이는 500원짜리 과자 한 봉만 달랑 들었다.
  “재민아, 야〜 그것 밖에 없어. 맛있는 거 많잖아. 더 골라봐.”   
  그런데 재민이는 뜻밖에 말을 했다.

  “수사님은 우리 모두에게 과자를 사주셔야 하니까 돈이 없잖아요? 나는 이걸로 충분해요.”
   평소에는 그렇게 더 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가 내 사정을 봐주고 나를 배려하는 이런 깊은 마음이 있다니…….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재민이와 함께 작은 사진, 기억 속의 상처를 덮을 만큼 따뜻한 추억을 한 장 한 장 만들어갔다. 축구를 하면서 함께 넘어져 누워 하늘 바라보기, 달밤에 농구하기, 간지럼 태우기, 장난치기, 씨름하기 등등.


  돈보스코 작은 집 지도 신부였던 이호열 신부님은 미사 때 재민이에게 복사를 서게 하여 제대에 촛불을 켜고 끄게 했다. 그러면 나는 재민이의 뒷모습에 자신감이 담긴 또 한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어느 때는 거실청소나 식사 후 정리를 유도하고선 식구들이 모인 밤에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일련의 칭찬과 격려는 자신이 인정받고 있음을 느껴서인지 아이의 행동거지에 변화를 가져왔다. 자기 몫인 과자를 나누어 먹는다거나, 자기 물건을 필요한 아이와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재민이는 그런 행동을 한 후에는 은근히 칭찬을 기대하며 으쓱댔다. 나는 재민이의 이런 일을 관심있게 보고 계속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재민이는 또래들에게 좋은 표양을 보여야 칭찬과 격려와 인정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체험해 갔다.   


  그러나 무조건 고집을 부리거나, 형에게 막무가내로 덤비고, 또래와 다투면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시하며 지나쳤다. 재민이는 조금씩 하지 않아야 될 것과 하면 좋은 것들을 구분하여 갔다.


  비오는 날이면 나는 주방 이모에게 재민이를 데리고 부침개 좀 해달라 부탁했다. 특별히 재민이에게만 주방 입실 금지를 깬 것이다. 재민이는 정말 좋아했다.


  “재민아, 달걀 두 개 깨서 반죽에 넣어라.”
  “네, 이모”
  재민이는 양손에 하나씩 든 달걀을 서로 부딪쳐 깼다. 그리고 그날, 재민이에게 뜻밖의 말을 엿듣고 놀랐다.
  “이모, 이모대신 우리 엄마가 내 곁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엄마 말은 한 번도 하지 않던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를 찾았다. 나는 또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제목을 붙였다. <재민이가 엄마를 만난 날>이라고.  울보, 고집불통, 싸움쟁이 재민이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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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장난스럽게 빵을 먹는 백분도 수사(오른쪽에서 두번째)

회상3

 

  아주 먼 데서, 그러다가 바로 내 귓전에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어부 일을 나간 아버지 배가 암초에 걸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돈보스코 집>에서 중학교 입학을 앞둔 그해 2월쯤이었다. 저녁식사 후 분도 수사님이 나를 불렀다. 방 안은 조용했다. 책상, 책장에 있는 책들, 그리고 서 계신 수사님도 조용했다. 수사님은 앉으라 권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거침없이 대답했다.        


  “재민아, 너의 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아마 매일 술 드시고 소리 지르고 그렇게 살 거예요.”
   한 참 간격을 두고 두 번째 물으셨다.  
  “아버지가 밉니?”
  “예. 미워요. 죽이고 싶어요.”

  수사님은 눈을 감으시고 세 번째 물으셨다. 이번에는 ‘만약에…’ 라며 말을 더듬으셨다.
  “재민아, 잘 들어봐. 만약에……만약에…말이다. 만약에 아버지가 그 사이에 병이 났거나 다른 일로 돌아……가셨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그래도 미울까?”


  그 질문에도 나는 망설임 없이 곧장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안 죽어요. 힘이 세거든요.”
  네 번째 물으셨다.
  “혹시 돌아 가셨다면…… 넌 용서할 수 있겠니?”
  “아니요.”
  나는 그렇게 똑똑히 대답했다. 수사님이 같은 질문을 또 한다 해도 내 대답은 한 자도 틀리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요.” 라고.


  수사님은 이제 질문 대신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가를 자세히 전해주었는데 나는 듣지 않고 우리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고 계속 마음속으로 우겼다. 처음에는 멍한 상태에서 우기다, 울면서 우기다, 나중에는 “아버지, 아버지”하고 부르며 우기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라며 울부짖었다. 차가운 바다에 빠져 외롭게 죽어간 아버지를 향해.  

 

  밤바다는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으며 고향 항구는 오늘 밤도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고 있다. 밤물결 소리는 밤새 계속 들릴 것이다. 찰싹, 촤르르 찰싹 촤르르……   나는 눈을 감고 아버지를 본다. 이제는 술에 만취한 모습이 아니다, 손에는 술병도 칼도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를 바라본다. 스물아홉 살 청년, 당신 아들 재민이를. 

 

백분도수사님6-.jpg
아이들과 함께하는 백분도 수사(앞줄 왼쪽 첫번째)

 

 돈보스코 예방교육

 

 

  예방교육은 교육적 관계 속에서 실현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랑은 느껴지는 것,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만져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인 “칭찬”은 어둠 속에 있는 아이를 맞으러 오는 따뜻하고 친밀한 음성이며 그의 주위를 둘러싼 공허 속을 가로질러 내미는 손입니다.


  칭찬은 행동을 일으키는 효과적인 자극제입니다. 칭찬은 아이들 마음엔 태양과도 같습니다. 만일 칭찬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랄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돈보스코는 아이들에게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하여 칭찬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허영심을 일으키지 않고, 아이들의 잘못을 제때에 바로 잡아주면서도 아이들이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칭찬할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일을 잘 했거나 말을 잘 들어서, 또는 남을 위하여 봉사를 했거나 관대한 마음씨 때문에 칭찬과 찬사를 받으면 아주 기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과 성공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돈보스코는 말합니다.
  “애정을 전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어떤 좋은 일을 했을 때 칭찬하는 것입니다.”

 재민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 하는 과정에서 엄마와 가족들을 찾아 돈보스코의 집을 떠났습니다. 현재 강원도에서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민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이미 용서 했고, 지금 저는 엄마를 더 행복하고 기쁘게 해 드리고 효도하고 싶습니다. 그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복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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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는 살레시오 수녀이며 작가입니다. 지난 5월에 또 한 권의 책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를 냈습니다. 먼저 방황해본 10대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멘토링 책입니다.
이메일 : clara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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