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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박수 받을 권리가 있다

황창연 신부 2016. 10. 06
조회수 8037 추천수 0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원칙

제가 있는 생태마을에는 재미난 상여금 규칙이 있습니다. 연말 보너스가 1년 근무한 직원은 30만 원, 20년 근무한 직원은 600만 원으로 1년에 30만 원씩 올라갑니다.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연말에 월급까지 보태면 천만 원 이상 받아갑니다. 새로 들어온 청년도 대학을 포기했지만 직장생활을 일찍 시작했으니 앞으로 많은 상여금을 받게 될 겁니다.

매년 45만 명의 대학 졸업생 중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는 사람은 5만 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졸업생 가운데 일부는 아르바이트 같은 비정규직으로 일하지만 상당수는 2, 3년 동안 취업 준비를 한답시고 빈둥거리거나 심지어 나이 든 부모가 어렵게 번 돈으로 생활비와 용돈을 얻어 쓰는 형편입니다.

05649000_P_0.JPG » 한 대학생이 6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대학까지 나온 젊은 엘리트들이 이 지경이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게 많은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절반 이상 사라져도 괜찮은 1순위가 바로 대학입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대학이라고 이름 붙은 학교가 대한민국에서 총 400여 개가 되는데, 대체 이 좁은 나라에 이렇게 많은 대학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학벌 과잉 풍조가 만들어낸 부작용으로 대학만 나오면 인생이 잘 풀릴 것이라 믿는 부모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한다면 제가 왜 대학을 귀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장이나 중소기업에는 일손이 모자라 난리인데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흘러넘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명색이 대학 졸업생인데, 공장 노동이나 중소기업의 회사원 자리는 눈에 안 차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20대 여성이 생태마을로 찾아왔습니다. 대학 성적도 우수하고 성격도 명랑하고 활달해서 인기 있는 대학생활을 보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져서 지금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우울증까지 걸리면서 공무원을 꼭 해야겠습니까? 그냥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하면 안 될까요? 목표만 바꾸면 삶이 달라질 겁니다.”

그 여성은 공무원만이 자신의 일생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전부를 공무원시험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슴 가득 쌓이는 것은 분노와 좌절감뿐이었습니다. 제 말을 귀담아듣고 돌아간 그 여성이 얼마 후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접고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 아주 행복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명문대학을 나와 고위 관직에 올랐다고 해서 더 행복한 것도 아니고, 돈 많은 부모 덕에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행복을 보장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권력이나 재물 때문에 감옥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습니다. 비록 남들의 눈에 낮은 자리라 해도 내게 주어진 조건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오늘을 희생해서 내일 더 많이 보상받으려는 마음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합니다.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다 해도 작은 감사를 느낄 수 있다면 곧 행복의 씨앗입니다. 그 작은 씨앗에서 행복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597등이 나눠주는 행복의 씨앗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년이 되는 해에 가족을 동반하여 모교를 방문하는 ‘홈커밍 데이(Home-coming Day)’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행사인데, 이제 한국에도 정착되어 고등학교와 대학 동창들이 학교 강당이나 호텔에 모여 훌쩍 나이 드신 은사님 앞에서 큰절도 하고 선물도 드리며 스승의 은혜에 감사를 표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끼리는 그동안 잘 지냈는지, 결혼생활은 어떤지, 애들은 잘 크는지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누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누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왁자지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추억에 잠기는 시간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행사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창 모임에 단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습니다. 동창들과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졸업생들이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기로 하고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졸업생 대표 강사를 누구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한때 전교 610명 중 597등을 했던 사람입니다. 학교 공부에 큰 뜻이 없어 이리저리 방황 좀 하다 보니 거의 꼴찌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동창들은 우리 학교 출신 국회의원이나 시장님을 다 제쳐두고 597등인 저를 강사로 선택한 것입니다.
친구들이 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제일 훌륭한 인물이어서는 아닐 것입니다. 신부는 명예나 출세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친구들은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보여서 부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이 사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꼭 신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려고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는 성적이 꽤 많이 올랐습니다. 신학교에 합격한 날은 온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한때의 꼴찌가 이루어낸 행복한 성취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노력하여 저 자신에게 준 큰 선물이어서 행복했습니다.

저는 신학교 7년을 지내는 동안 행복하게 살았고, 보좌신부 3년 또한 행복했고, 본당 신부 10년 또한 행복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평창에서 아침에 일어나 사제관 마당에 나가면 기분이 최고입니다. 아름다운 강과 구름이 걸린 앞산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가득 충만함이 느껴집니다. 생태마을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집니다. 바가지 긁는 마누라가 있나, 컴퓨터게임에 미쳐 있는 자식이 있나, 시집, 장가보내야 할 자식이 있나, 사제로서의 삶이 참 행복하고 홀가분합니다. 그러니 친구들이 저를 찾아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황 신부, 너 정말 행복해 보인다!”

제가 왜 사람들 눈에 그리도 행복해 보일까요? 봄이 오는지 여름이 가는지도 모르고 공부해서 이제는 또다시 경쟁사회에서 꽃이 피는지 낙엽이 지는지도 모르며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이 똑같은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합니다.
지금 절망에 빠져 있는 젊은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먼저 눈을 돌려보십시오.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정없이 깎아내리지 말고,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을 소중하게 껴안아주십시오.
처음부터 없는 것을 억울해하며 세상을 원망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우울증에 절망감뿐입니다. 대단한 직장에 연연해하지 말고 자기 능력에 맞는 일을 찾으면 지치지도 않고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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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연 신부
1992년 수원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생태마을 같은 친환경 농촌마을을 국내에 40군데, 지구촌에 40군데 건설하는 것이 꿈이다. 저서로 <사는 맛 사는 멋>,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 등이 있으며, 최근 행복 공감 에세이 <삶 껴안기>를 출간했다.
이메일 : hcy25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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