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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한해 마무리

원철 스님 2012. 12. 24
조회수 17521 추천수 0


겨울산사-.jpg

겨울 산사   사진 <한겨레> 자료



괜히 마음이 바쁘다. 12월인 까닭이다. 딱히 밀린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것 같은 데 그냥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다. 이래저래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때이니, 


몸이 바쁘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바빠야 할 것 같다. 알고보면 이것도 습관이다. 바빠서 바쁜 것이 아니라 뭔가 바빠야 할 것 같은 시절인 탓이다. 잊지않고 기억해주는 지인들의 송년모임 몇 건은 폭설 때문에 길이 막혀서, 혹은 교통이 불편한 산골에 산다는 핑계를 대며 사양했다. 달력에 표기된‘공식적인 일’이 아니라면 두문불출을 다짐하며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겨울 살림살이를 위하여 김장을 했다. 인근 고랭지 밭에서 배추를 트럭으로 실어왔다. 어차피 내다팔 것이 아닌 까닭에 크게 인위적인 손길을 보태지 않고 가능한 한 노지상태에서 가꾸는지라 배추포기도 아담한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땅바닥에 퍼져 아예 꽃배추가 된 녀석도 적지않다. 제대로 모양을 만들기 위해 허리에 매둔 짚풀이 속이 차기도 전에 흘러내린 까닭이다. 자연산이라 모양은 별로 볼품이 없지만 어디에 내놓더라도 맛과 향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배추걷이가 끝난 휑한 빈 산밭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한 해를 마무리한다.  배추로서는 아름다운 마무리이겠지만 김치로서는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산중의 겨울추위는 혹독하다. 한지로 만든 문풍지로 냉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할 수 없이 출입문과 창문에는 비닐을 덧댄다. 기와집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예술적(?)으로 잘 덮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늘 해오던 일이라 숙련된 솜씨로 마무리를 했다. 작업을 마친 후 처음에는 통풍이 제대로 되지않아 갑갑한 느낌이 들지만 이내 그것에 길들여진다. 두툼한 수건을 두 장 길게 깔고 물을 흠뻑 적셔주는 작은 수고만 보탠다면 밤새 습도가 조절되어 콧속이 마르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본래 한옥은 숨쉬는 집이라 바닥은 따뜻하지만 천장은 추울 수 밖에 없다. 또 아무리 단열처리를 해도 개방형 집구조로 인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궁여지책으로 겨울 한 철은 비닐의 힘을 빌려야 한다. 따뜻한 날은 그 비닐이 눈에 거슬리지만 한파가 덮칠 때마다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 일어난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긴 하지만 그래도 창문 한 켠에 살짝 뚫어둔 작은 환기구를 열 때마다 바깥의 싸아함이 답답한 방안으로 밀려 들면서 청랭한 기운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준다.     



김장-.jpg

김장   사진  <한겨례> 자료



수백년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마당 한 켠의 화강암 수곽은 12월이 되면서 물을 담는 본래역할을 마무리 하고 바닥을 드러낸 채 제 몸을 말리고 있다. 겨울동안 비스듬이 해바라기를 하면서 지낼 것이다. 얼마 전까지 철철 물이 넘쳐 가끔 새들도 와서 목을 추기고 잠자리가 꼬리를 담그고는 사라지곤 했다. 지금 그 자리에는 고양이가 지나가면서 울음으로 적막을 깨뜨릴 뿐 한 해가 저물어가는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설사 생명없는 돌이라고 할지라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쉼이 해마다 있었길래 그 자리를 오늘까지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12월은 돌도 쉬고 나무도 쉬고 산도 쉬고 사람은 매듭을 지어야 한다. 쉼을 통한 한 매듭은 한 켜의 나이테가 되고 한 해의 연륜이 되며 또 한 살의 나이가 된다. 겨울시간이라고 흐르지 않을 리 없지만 섣달은 흐르는 것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정지된 느낌이 세밑 무렵의 또다른 산중의 맛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옛사람은 이런 시를 남겼나 보다.       

산중무일력(山中無日曆) 한진부지년(寒盡不知年)

산 속이라 달력이 없어/추위가 지나가도 년월일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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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해인사로 출가했다. 오랫동안 한문 경전 및 선사들의 어록을 번역과 해설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서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했다. 또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메일 : munsu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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