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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고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 점검하는 마음이 알아차림"

휴심정 2013. 04. 02
조회수 5007 추천수 0
야생화 포교 12년 계원사 주지 시주 스님 
어둡고 외졌던 도량, 자비·나눔 꽃으로 장엄하다 


12년 전 거미줄로 뒤덮였던 절  
주지 취임 후 홀로 운력 매진해
시행착오 겪으며 야생화에 몰두
200여 화분 가득 색색의 꽃 만개
4월28일 제2회 야생화 축제 열어


 야생화1.jpg
▲대나무 숲으로 가리워져 습기가 차고 거미줄이 가득했던 계원사를 야생화 가득한 아름다운 도량으로 일궈낸 시주 스님. 
스님은 “지난 12년간 야생화를 가꾸며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결국 꽃의 성향을 이해하는 것 또한 수행임을 깨달았다”고 미소를 머금었다.  

  
꽃의 계절 봄이다. 산과 들 그리고 도심의 아파트 숲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어난다. 그리고 여기 경남 양산의 중부동 백운산 자락의 계원사(鷄源寺)에도 무수한 꽃들의 잔치가 열렸다. 사찰의 입구부터 도량 전체를 둘러싼 야생화 화분만 200여 개가 넘는다. 손톱만한 흰 꽃, 노랗고 길쭉한 꽃봉오리, 흐드러진 분홍 꽃망울과 바다를 닮은 푸른 꽃잎, 울퉁불퉁 선인장의 좁쌀만 한 꽃무더기…. 어느 하나 똑같은 표정이 없다. 

 계원사를 야생화 동산으로 만든 사람은 주지 시주 스님이다. 스님이 계원사에 온 지는 올해로 12년째다. 각양각색의 야생화는 그동안의 오롯한 주지 살림 흔적이기도 하다. 스님은 2011년 12월 10년 불사를 회향하고 이듬해 야생화 축제를 시작했다. 자그마한 도량, 소리 없는 홍보에도 300여 명이 다녀갔다. 마을 주민과 등산객들이 입소문을 낸 덕분이란다. 

올해도 4월 28일 오전 11시 제2회 계원사 야생화 축제를 개막한다. 무엇보다 계원사의 야생화 축제가 훈훈한 미담이 되는 것은 나눔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축제 기간 행사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의 이름을 야생화에 걸어 드립니다. 그리고 수익금은 전액 소외 이웃을 위해 회향할 겁니다. 지난해 바자회를 겸한 첫 행사의 수익금 300만 원도 중부동사무소에 전달했어요. 앞으로도 이웃을 위한 나눔 잔치를 매년 열어야지요. 이것이 불사에 도움을 주신 마을 주민과 등산객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노를 치듯 부드러운 손길로 야생화를 손질하던 시주 스님을 따라 접견실 만하당(滿堂)에 앉았다. 넓은 창문 너머로 오봉산의 능선과 양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차경(借景)입니다. 경치를 빌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방안에서 자연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스님이 이곳에 처음 올 당시만 해도 이런 경치는 상상할 수 없었단다. 그러니까 12년 전, 계원사는 높은 대나무 숲에 가려져 어두웠고 습기가 많아 사계절 축축해 뱀과 모기가 득실대던 도량이었다. 그나마 전통사찰의 명맥을 이어준 대웅전마저 천장에서 빗물이 샜고 거미줄이 뒤엉켜있었다. 그런 도량의 주지를 왜 맡았던 것일까.

“차량이 아닌 걸어서 도착하는 사찰의 진입로가 좋았습니다. 특히 길가의 한들거리는 이름 모를 꽃들이 정말 향기로웠어요. 게다가 대웅전의 부처님 미소가 얼마나 평온했는지요.” 주지를 맡게 된 간단명료한 이유였다. 2년간 스님 7명이 바뀌었고 한 달 이상 도량을 지킨 이가 없었다는 말도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그 정도로 꽃들은 스님을 반겼고 스님도 꽃이 좋았다.

 야생화2.jpg
▲부드러운 손길로 꽃들을 돌보는 시주 스님. 스님은 “사람도 꽃도 이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당장 혼자서 운력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대나무 숲의 어둡고 칙칙함을 거두는 일부터였다. 그런 스님의 모습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본 사람들이 도움을 자청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군인들이 도왔고 등산객들도 기와를 비롯한 자재들을 마을 입구에 두면 도량까지 손수 옮겨 주었다. 스님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차와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바로 야생화였다.

 
“마을에 내려가 시장을 갈 때마다 야생화 화분 하나씩을 사왔어요. 그리고 사찰과 등산로가 이어지는 길의 적당한 위치에 배치했지요. 제가 처음 이 도량을 찾을 때 꽃을 보며 행복했던 그 느낌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런 저를 보고는 마을 사람들도 집에 있던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한 송이가 열 송이 되고 한 화분이 스무 화분으로 늘더군요.”
 

스님은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한 번도 직접 꽃을 가꿔본 적 없었기에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말했다. 여린 야생화들이 한겨울 추위에 얼어 죽기도 하고 한여름 뜨거운 햇살에 녹아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실도 배워갔다. 어떤 꽃은 물을 좋아했고 어떤 꽃은 흙을 좋아했다. 환경을 맞춰 준 꽃들은 오래오래 잘 자랐다. 겨우내 흙속에 제 빛깔을 숨겼다가 해를 넘기고 이듬해 다시 피는 꽃들이 늘어났다.

  
“꽃을 가꾸면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사람도 이 꽃과 같다는 사실을요.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성향을 이해하고 서로 배려할 때 상생의 에너지가 피어날 수 있어요. 주관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에게 저는 꽃을 가꿔보길 권하고 싶어요. 꽃을 보고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이고 점검하는 마음이 알아차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행인 겁니다.”


스님이 단순히 꽃만 가꾸고 있었다면 지금의 계원사는 없었을 것이다. 계원사 곳곳에 야생화가 늘어날수록 도량도 여법한 모습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은 지금의 사격이 증명해준다. 대웅전을 보수하고 태풍 매미로 반파된 요사채를 미련 없이 걷어낸 뒤 그 자리에 넓은 마당을 만들어 탑을 세웠다. 굴삭기로 나무 기둥을 하나하나 운반해 330㎡ 규모의 목조 요사채도 조성했다. 옛부터 ‘하늘에서 닭이 내려와 우는 곳’이라 하여 신성한 장소로 칭했지만 정작 대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천계암(天鷄巖)’ 앞에 관세음보살상을 조성했고 ‘천계정’ 물길을 정비, 감로의 터전을 만들었다. 그렇게 대숲 정리만 3년, 전체 불사는 자그마치 10년이 소요됐다.

 
 야생화3.jpg
▲각양각색의 야생화들. 야생화 축제를 통해 모인 후원금은 전액 소외이웃을 위해 회향된다.  

 
“이곳에 오기 전 대구 금용사에서 20년 동안 대중 생활만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른 스님들께서는 홀로 살 때도 함께 살듯 하라고 당부하셨지요. 통도사 어른 스님의 관심과 격려도 큰 힘이 됐습니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어른 스님들의 말씀을 되새겼고 불사를 하면서도 새벽과 사시, 저녁 시간마다 어김없이 예불을 올렸습니다. 운력도 매일 끊임없이 했습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지만 결코 시간을 재촉하거나 날짜를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할 뿐이었어요.”

 
묵묵히 불사하고 기도하는 스님 곁에 신도들이 모였다. 스님이 처음 계원사를 찾았을 때 신도는 “정말 단 한 명” 뿐이었다. 이제 1명의 신도가 800세대의 대가족으로 늘어났다. 초하루 정기법회 때 도량을 찾는 불자들도 30여 명에 이른다. 거사회가 운영 중이고 매주 일요일 오후에는 뒷산 둘레길을 오르는 팀도 있다. 무엇보다 봉사에 관심을 갖는 이들과 함께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목욕 봉사를 전개, 7년이 되던 해 회향한 일은 지금도 회자되는 미담이다. 사하촌을 향한 스님의 자비심은 더 큰 원이 되어 있다.

 
“양산 지하철역 주위에 시내가 형성되면서 아래 마을에는 형편이 어려운 세대만 남았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도량을 지었으니 이제는 나누어야죠. 지난해부터 특별 법회 때마다 성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야생화 축제도 그 일환입니다. 하반기에는 방과 후 교실과 밑반찬 배달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차후 법인을 만들어서 체계적인 후원 사업을 펼칠 겁니다.”

 
이름 모를 야생화의 미소에 반해 계원사에 정착했다는 시주 스님. 스님은 이제 그 야생화의 미소를 대중과 나누는 데 온 마음을 보낸다. 하산을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이에게 “우리 마음도 저 꽃과 같다. 향기롭고 아름답고 여운 깊은 존재”라는 스님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아마도 마음 꽃을 피우는 것이 스님이 야생화 정원을 가꾸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양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글은 법보신문(www.beopbo.com)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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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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