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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소유인가?

박기호 신부 2012. 04. 18
조회수 8966 추천수 0

왜 무소유인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다(루가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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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우화에 등장하는 부자는 집문 밖의 거지를 외면했다는 것, 좀 인색하게 살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하게 잘못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지 나자로는 동냥으로 사는 불쌍한 걸인이라는 것 외에 특별히 잘한 일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왜 최후심판이 재심청구도 못할 정도로 매몰찰까요? 이건 분명히 이웃돕기 안했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닐 것 같습니다.

진상은 부자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사후 심판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했던 어느 부자 청년처럼, 비록 그가 종교생활을 열심히 했고 계율을 잘 지켰고 기도를 잘 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느님을 믿었다면 부자로 살면서도 대문 밖의 나자로를 외면했을리가 없고 죽음의 심판을 믿지 않았을리가 없습니다. 알았어도 중요하지 않게 여겼고 재테크와 사교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느님을 신앙했지만 삶으로는 재물을 더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이승에서 믿는 대로 저승의 심판을 받습니다. 사후 심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무신론이고 물신에 대한 우상숭배입니다. 나자로는 가진 것이 없어서 기댈 곳이라곤 하느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믿음이 죽은 다음에도 유효했던 것입니다. 죽음이란 자기 믿음의 결산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아나뷤’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야훼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가난해서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억울해도 어쩔 수 없고 국가나 부자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오직 야훼 하느님만이 희망인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모님 엘리사벳은 구약의 아나뷤을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먹이시고 굶어죽지 않게 하십니다. 부자나 빈자나 살게 되어 있습니다. 똑똑하고 능력있고 기회를 가진 자는 꾀와 기득권으로 먹고 살게 되어 있고, 능력없고 무식하고 박탈당한 자들은 하느님의 복으로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들은 하인들의 보살핌을 받고,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는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자들에게 당신을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임마누엘의 하느님으로 나와 함께 사시기를 원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삶을 ‘자발적 가난’ 또는 ‘무소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살고 싶어서 ‘자발적 가난’으로 무소유의 삶을 선택합니다.

무소유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목적은 삶을 하느님과 합일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정의를 열망하기 위해서 은총에 집중하기 위해서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버리는 것이 무소유입니다.

무소유의 삶은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존재들, 힘없고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연민과 능력을 선물로 받습니다. 빈민들의 마을에 인정이 넘치는 이유입니다. 부자의 눈에는 빈자와 약자의 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날마다 눈길을 마주치는 거지 나자로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였다는 것은 죽은 다음에야 알게 됩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네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리라!”

하느님은 능력이 있고 자신만만할 때는 스스로 잘 하도록 버려두십니다. 하실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실패하고 좌절하고 어둠에 갇혔을 때, 해도해도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에는 하늘만 쳐다봅니다. 그때에 그분과 눈길이 마주쳐 그 분께서 비로소 우리에게 눈을 돌리시고 일으켜 주시고 당신의 손길로 도와주십니다.

무소유의 삶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진정한 무소유 삶에는 하느님께서 나의 삶과 죽음의 주재자이심과 죽음 이후 영생의 세계를 보고 믿게 합니다. (2012. 3.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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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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