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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생의 동반자

박기호 신부 2019. 02. 22
조회수 724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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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보는 삶


죽음이란 무엇인가? 孔子에게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죽음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는 아직 생에 대해서도 다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해 알겠는가?” 하셨다고 한다. 죽음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는 것은 아무도 답해 줄 스승이 없는데도 질문하는 것은 그것이 삶에 대한 질문과 같기 때문에 우문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늘 질문하고 배워야 한다.


전생과 현생, 그리고 소멸 이후의 시공에는 문턱이 있다. 죽음이란 생의 이쪽과 저쪽의 시공간 사이에 있는 문이다. 한 생명이 언제 어떤 곳인지 모르는 시공으로부터 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 들어오면 출생이고 이승이고 문을 열고 다시 나가면 죽음이라 한다. 생이란 집은 좁아 사람으로 북적인다. 문을 열고 나가면 뜨락이고 마당인데 저승은 무한과 영원성의 시공이다. 무한하고 영원한지도 알 수 없으나 알 수 없음 자체가 무한이고 영원이란 말이다.


전생과 이승과 저승


출생 이전에 전생이 있었는지, 아니면 나 이전의 존재가 어떻게 있었는지 모르듯이 죽음 문턱 너머의 저승에 다음에 또 다른 어떤 문이 있는지도 모른다. 추석이 불가하다. 경험이 없는 초월적 영적, 이데아의 세계로 설명될 뿐인데. 확실한 진리 하나는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은 생과 사의 문을 열고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을 알아냈다. 그것도 두가지를 알아냈다. 죽지 않으려면 첫째 죽음의 문이 열릴 때 문고리를 단단히 잡고 죽을 때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숨쉬기를 잠시도 절대 멈추지 않고 숨을 쉬는 것이다. 둘 중에 하나만 하면 죽는 순간까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이미 그런 고수들이 엄청 많았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 문고리를 너무 단단히 잡고 집착하는 바람에 이미 다시 이쪽 문턱 너머로 돌아왔는데도 문고리를 쥐고 사는 것이다. 잡은 문고리에 손만 놓으면 문은 닫히고 이승의 방안으로 돌아오게 될텐데 죽어도 문고리를 놓지 않고 있다가 힘이 빠져 저절로 문턱에 걸쳐 죽어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집착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생명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미 숨이 멎어버린 나를 살려내고자 누군가가 인공호흡을 열심히 시키고 있는데 조금만 힘을 내서 숨을 쉬면 살아날 것인데 시체처럼 늘어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울증과 정신분열과 실패에 좌절하고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통과 두려움과 고통의 극한 감정인 죽음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삶이 재미없고 권태로운 시간으로, 의무감의 수행 때문에, 그리고 두려움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의무감과 고독과 병고의 고통과 내 존재가 지워져버릴까 하는 고독감에 잡히면 행복할 수 없다. 그것들은 모두가 감정인데 그 감정들이 그토록 두려운 이유는 그 끝이 죽음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듯이 살고 시체처럼 불감증으로 살면서도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루에도 무수히 문을 열고 닫고 들락거리며 사는데 문이 닫히면 죽음이고 문이 열리면 살아있는 거니까 죽음이란 부딪히면 순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고통스러움이나 두려움을 느낀다 해도 순간일 뿐이다.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울까? 죽음을 증언해 줄 사람이 없다. 산 사람 중에는 죽음을 경험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임사체험자들도 죽음에 가까운 체험인 것이지 진짜 죽음이라면 그것을 증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임사체험자들은 죽음 가까이 가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도 힌트로 삼을 만은 하다.

 

부딪히면 순간일 뿐인 죽음


보나벤뚜라 성인은 죽음이 무엇인지, 정말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인지 아닌지, 죽기 전에 까지는 알 수 없다. 죽음을 겪은 후에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은자에게는 고통도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것에 지례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가르쳤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알려주는 이도 없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죽음 사람들이 어떻게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던가를 목격하면 나 역시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번뇌와 고통과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하다.


죽음의 창문 이쪽에서 저쪽을 보는 것은 상상이지만 창문 저쪽에 나를 두고 지금 살고 있는 이쪽 내 생의 현실을 보는 것은 실화고 실제이기 때문에 죽음 이쪽의 삶,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죽음까지의 나의 삶과 행복을 지혜롭게 설계하고 용기있게 맞이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 살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죽음 아니겠는가?

 

죽음은 운명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죽음이란 것에는 얼굴이 없다. 눈도 없고 귀도 없어서 언제 어떻게 어떤 죽음이 찾아올지 전혀 감지할 수 없다.

오래 전 한 여름에 내 동창 신부 둘이서 겪은 일이 있다. 둘이서 여름휴가를 괌으로 가기로 약속해서 일요일 저녁 출발하는 대한항공 여객기 항공권을 어렵게 구했다. 신부들에게 주일은 매우 피곤한 하루다. 오후가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무 피곤하니 내일 출발로 바꾸어 보자고 합의가 되었다. 여행출발은 연기했고 항공권은 취소했다. 대신 좌석이 만석이라 대기중이던 누군가가 그 항공권 자리를 구했을 것이다. 이튼 날 새벽 그 대한항공기가 괌 공항에 착륙하다가 야산에 추락하여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나 죽음의 항공권을 예약했음이 분명하니까 죽었어야 할 내 친구 신부들이 앉았을 자리에 엉뚱한 어떤 사람이 대신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참으로 우연이고 불행한 일이다. 운명이란 것이 있는 걸까? 생과 죽음이란 것이 운명으로 찾아오고 피하게 하는 걸까? 우연일까? 신의 장난일까?

 

죽음은 생의 동반자 이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하느님을 원망할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정비가 불량하거나 일기가 고약한 날의 항공기 운항은 그럴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하고 이건 불특정 다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것보다는 죽음에는 순서도 없고 시공의 질서도 없는 죽음 자체가 혼돈이다. 죽음은 생과 늘 함께 동거하며 동행한다.


우리가 사는 방에서 문 하나만 열면 죽음이란 것을 각성할 뿐이다. 그로므로 내게 죽음이 언제 어떻게 올지는 그냥 올 수 있다는 지식만으로 충분하다. 다만 그래서 살아있음의 시간이 감사의 시간이란 것을 잊지 말고 나와 너의 사이좋음과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마을 노인들은 혼불이란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네 집에서 혼불이 나간 것을 보았다는 말이 돌면 길어야 2~3일 안에 그 집의 노인이 돌아가시게 되는 것을 종종 보며 살았다. 노인들은 자신의 수의를 만들어 놓고 묘자리를 지정해 놓기도 하고 그렇게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연과 창조질서에서 얻을 수 있는 영적 센서가 예민한 영성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기계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영감이 접수되지 못해 혼불을 보지 못한다.


죽음의 운명은 언젠가 한번 나를 찾아올 것이니 오는 죽음을 거부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이 분명하다. 그럴 바에는 죽음을 친구로 여기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그렇다고 죽음이 더 빨리 찾아오는 것도 아니니 혐오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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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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