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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사, 밤길을 잃고 헤매다

청전 스님 2011. 08. 19
조회수 16766 추천수 3

내생에도 다시 가리, 바라방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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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다가 아예 직장까지 내던지고, 무작정 히말라야 품안에 살아보겠다며 자칭 전백련(?) 회장이란 한분이 찾아 왔다. 한국의 웬만한 산을 다 올랐다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두 번이나 해냈다니 어지간한 산사람이나 진배없다.

 

 이곳까지 오기 전 네팔의 이름난 트레킹 코스며, 그 고생길인 티벹의 성산 카일라스를 그것도 두 번이나 순례를 했다하니 그 분의 산에 대한 기벽을 뭐라 말 할 수 있으랴. 이래저래 인연이 계속 되다가 드디어 이 글의 한곳을 함께 산행하게 되었다. 필자는 오직 그분 산사람만 믿고 따라 부치는 꼴이었다.

 

히말라야 산행은 한구간만 진행하려 해도 열흘이 넘는 게 기본 일정이라서 기본 장비 텐트며 먹을 것 등등 참 짐이 많아 고역이다. 아예 여기서부터 걸어올라 부치는 강도 높은 산행을 결정했다. 목표점은 그야말로 최 오지 극점이나 다름없는 곳을 택했다. 지도를 펴 놓고 찾는다는 게 어찌 그곳을 찍은 것이다. 지명은 “바라방갈”이란 산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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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란 길가다가 사람을 만나 묻고 물어가는 원시적인 산행법일 뿐이다. 일차로 이곳 고개를(인드라하라 패쓰; 4340메타) 넘다가 느닷없는 눈과 우박을 만나 바위틈에 잽싸게 끼어들어 갤 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내리막에서의 긴장된 한발 한발이란 그야말로 쌩 땀이 나는 힘든 하산 길을 잊을 수 없다. 우박과 눈이 얼어붙었는데 아이젠도 없이 지팡이 하나로 내려가는 위험을 당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긴장 속에 한발자국씩 옮긴다는 게 얼마나 힘 든다는 건 당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어찌어찌 이레간의 산행을 마치고 다라리란 마을에 들어갔다. 바라방갈 전의 마지막 마을이다. 조그만 산간 마을인데 외래인은 첨인지 마을 사람이 다 모여든다. 배가 고프다는 시늉에 9월의 이른 사과를 따 준다. 그 맛이라니! 지금도 필자는 내 생에 그렇게 맛있는 사과 맛은 없었다. 지금도 사과를 먹을 땐 “다라리 사과”를 연상 한다. 내리 두 개를 우적우적 먹어치우고는 십 루삐를 드리니 받지 않는다.

 

그날 밤은 참 잊기 어려운 사건이 하나 생겼다. 필자는 어디를 가건 의약품을 꼭 챙겨 간다. 그때도 상비약 정도로 항생제며 진통제 연고 등등을 준비 했는데 오는 길의 마을에서 많이 사용한 상태였다. 그래도 남은 약으로 아픈 사람 오라하여 거의 바닥이 났는데 저녁 먹고 잘 준비에 한 오십대쯤의 아저씨가 들어온다. 알고 보니 이 마을 사람이 아닌 저쪽 산 넘어 사는 분으로 어찌 여기 왔다가 약을 주는 의사가 있다하여 날 찾아오는 거였다. 얘긴즉슨 내일 열시 경 까지는 올 것이니 이 자리에 기다려 달라는 부탁이다. 즉 산 넘어 자기 마을에 가 아파 있는 부인을 데려온다는 것이다. 참 가슴이 저미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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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문명의 혜택이 없는 그야말로 심심산중 마을 이라 서니 이 밤에 나를 믿고 자기 마을 까지 가서 아픈 아내를 데려 온다는 그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 하다. 약도 떨어졌고 또 자신이 없었다. 어떤 병인지는 몰라도 그때 당시로는 선뜻 데려오라는 용기가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 바라방갈을 간다하니 그냥 쉽게 십 킬로란다. 지도상엔 아무리그래도 어림잡아 하룻길인데도............ 걷다 보니 맙소사 하루 종일 걸어 부쳐도 마을 낌새가 없다. 이제나 저제나 마을이 나오겠지 희망하며 걷다가 드디어 캄캄해졌다. 욕심으론 어떻게든 마을에 들어가 밥도 얻어먹고 잠자리도 구하고 잔뜩 희망사항으로 걸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다 비까지 내린다. 길도 아닌, 말이 길이지 그걸 놓치지 않고 어찌어찌 따라 부쳤는데, 이젠 위험 부담이 따른다.

 

그래도 전등을 쓰며 끝까지 가보자는 결정에 전전 마을 가게에서 산 건전지를 끼어 넣었다. 그런대 이 새로 산 건전지가 일분이나 켰을까 그냥 불빛이 죽는 게 아닌가. 이걸 어쩌나. 알고 보니 우리가 산 건전지는 모르면 몰라도 제조한지 십년이 넘었을 성 싶었다. 자연 소모 된 건전지였다. 더 이상 발을 뗄 수가 없는 칠흑이라서 밥이고 뭐고 그냥 그 자리에 어렵게 더듬어가며 텐트를 쳤고 그냥 뻗었다. 속으론 어찌 이 길을 십 킬로라 했지 라며 부아를 삭이면서. 잠이 깨자마자 물줄기 찾아 씻고 미숫가루로 어제 저녁 겸 아침으로 어설프게 끼니를 때우니 그래도 힘이 난다.

 

 날도 환히 개었다. 대충 침낭이며 텐트를 개어 바로 길 따라 나섰다. 태고 적 전나무 숲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아, 아, 이 무슨 선경인가! 마을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땅에 드리워 퍼지는데 드디어 저쪽에 너와 지붕 마을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찍찍한 전나무 숲과 그 옛날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올 성 싶은 그 마을 풍광이라니. 큰 보람이다. 여태껏 쌓인 피로가 그냥 녹아버린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니. 내 글로는 그 멋진 풍광을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지도상의 표기로는 해발 2550메타로 되어 있다. 이렇게 까지 아름다운 마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집 모양이 어찌 그리도 우리나라 강원도 삼척이나 정선 지방의 너와 지붕이며, 사람 모습도 인도인이라기보다는 네팔 산악 족을 닮아 저절로 친근감이 간다. 이른 아침 낫선 외국인 모습에 마을 사람이 죄다 나온다. 마을 대표 격 되는 분의 집으로 안내 받았다.

 

 이틀을 푹 쉬었다. 놀랍게도 학교가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방학이 겨울 방학뿐으로 육 개월이란다. 수업이 늦은 봄에서 이른 가을 까지 여섯 달 동안만 있을 뿐이다. 산 넘어 깡그라 에서 선생이 파견 된다. 월급을 어찌 받는가 물으니 10월 경 산 넘어가 일 년치를 한꺼번에 다 받는단다. 5월 경 산 고개 눈이 녹을 무렵 다시 들어온단다.

 

다시 엿새 길인 타인뚜 패쓰(5050메타)를 넘어 마날리로 나가자니 기운이 다 빠져버려, 좀 쉽고 낮은 나흘 걷는 바이즈나쓰 쪽 고개를 넘기로 했다. 탐싸르 패쓰(4700메타)를 넘어 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고개였는데 이렇게도 아름답고 멋진 고개라니 순 우리의 행운이었다. 그 높은 산꼭대기의 눈밭에 호수가 있다니 누가 상상이나 하리요. 사진만 봐도 한번 가 볼까라는 맘이 솟을 거다.

 

힘들게 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 부치니 그런 곳에 허름한 찻집이 있다. 여름철에 곡식이나 생필품을 나르고 하는 마부꾼들의 중간 숙박 처로 밥도 팔고 짜이도 판다. 이런데서 짜이라니 웬 횡재인가. 차 한 잔 마시고 아직은 해도 있어 더 내려부칠 것을 말하니 아저씨가 그냥 쉽게 “니째 도 킬로” 라며, 이(貳)킬로만 아래로 가면 밥도 해주는 집이 있단다.

 

 쉽게 그 말을 믿고는 내려부치기 시작 했다. 그까짓 이 킬로쯤이야. 우리 발걸음으로 반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또 한 번 찐한 고생길이 되었으니. 그 이 킬로가 어찌 된 건지 걸어 도 걸어 도 나와야 할 집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밤하늘에 별은 총총 나 있어 그나마 희미한 빛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이놈의 니째 도 킬로가 도대체 어찌 된 건지를 한탄하며 걸을 뿐이었다.

 

 마침내 밤 열 한시경 정말 놀랍게도 저쪽에 불빛이 보인다. 이제 살았네 하고 들어가니 위에서 말해준 아저씨가 말한 바로 그 집이었다. 그때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바로 이 아줌마는 그 아저씨의 마누라였고, 우리를 자기 집에서 밥을 먹여 매상을 올리려고 이십여 킬로를 줄여 이 킬로로 말한 이유를. 늦은 저녁밥의 꿀맛이란, 밥과 싸부지(야채) 한 가지가 그리도 맛있을 수가 있을까. 어쨌든 와야 할 길이었고, 다행이다 고맙다며 잠에 떨어졌다.

 

늦은 아침 빠란타(감자를 으깨 넣고 기름에 지져 만든 밀가루 전)를 먹고는, 이제 정말 인가가 나오는 하산 길임을 알고 반찬통으로 가져간 푸라스틱 그릇 등등 잡동사니 살림이 될 것을 죄다 꺼내주니 그 웃는 모습이 행복이다.

 

이후로도 몇 번 그 분과 산행을 했는데, 좀 더 걸을 일이 생기면 으레 “아따, 조금만 더 가요, 니째 도 킬로” 하면서 웃곤 했다.

 

그 분 아니면 어림도 없을 멋진 산행을 이끌어 준 그 산사람, 이젠 나이도 있어 힘든 산행 다 접었다며 멀리 미얀마의 한 절에서 길고 긴 명상 수행길이란 소식을 마지막으로 받았다.

 

지금도 얼추 많은 산행에서 바라방갈의 운치와 낭만은 단연 최고이다. 가끔 내생에도 그 바라방갈 꿈속의 산골 마을을 또 다시 꼭 걸을 거라는 상상의 나래 속에 절로 행복과 기쁨이 솟는다.

2011년 8월 찐한 우기 속에서, 해야 될 공부는 안하고 망상을 피우며.......... 청 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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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스님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광주 대건신학대에 다니다 송광사 방장 구산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88년 인도로 떠나 히말라야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매년 여름 히말라야 최고 오지인 라다크를 찾아 고립된 티베트 스님들과 오지 주민들에게 약과 생필품을 보시하고 있다. 어느 산악인보다 히말라야를 많이 누빈 히말라야 도인.
이메일 : cheongjeon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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