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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으로부터 자유

박기호 신부 2013. 01. 07
조회수 12742 추천수 0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8~30).”

재난대비훈련 김정효-.jpg
사진  김정효 기자


의무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가? 본성에 따라서 산다면 동물과 같은 질서로 살게 될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가? 안되죠! 미래의 일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겠다고 신경 끄고 산다면 대안도 계획도 없고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안되겠지요.

여기에서 피하는 문제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응전의 원리를 생각합니다. ‘도전과 응전’은 토인비의 역사 발전의 원리이기도 하죠. 회피할 것이냐 수용할 것이냐? 문제입니다.

이제까지 삶이 무거운 짐이 되고 멍에가 되었다는 것은 내게 나타나 다가온 문제를 기피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상관 때문에 의무감으로 살았으면서도 그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 짐의 무게입니다. 감당한다는 것이 남의 말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멍에가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아예 외면하고 도망가 버리던지 인연을 끊어버리면 될 걸, 왜 힘들게 고생만 하고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을까. 어쩔 수 없이 몸은 움직이고, 돌봐주고 했으면서도 그 훌륭한 행동이 기쁨도 자존심도 되지 못하고 매번 매순간 무거운 짐이 되고 멍에가 되고 있으니 그 점이 바로 해결의 대상입니다.

마음은 회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감당에서 평화가 없었다면 이번에는 기꺼이 수용하는 방법에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의무감은 헌신과 공유의 정신으로 수용하고, 두려움은 믿음으로 수용합니다. 의무감의 성질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수용하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기꺼이 내일로 받아들입니다.

의무감은 헌신과 공유의 정신으로 훈련합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내 살이 축나거나 죽어간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의 안식을 조금 희생해야 하는 정도라면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헌신이 주는 선물은 너무 큽니다. 타인과 공동체에 기쁨을 선사합니다. 감사와 기쁨이 공유되어 공동체가 밝아집니다.

이런 헌신의 태도는 매번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려서부터 몸의 습관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늘 신발정리 잘 하라. 일찍 일어나라고 요구하는 것, 축산이나 밭일을 시키는 것은 부려먹자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삶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재미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의무로 여기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공동체를 빛낸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성장해야 합니다. 예의염치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무감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습관은 인생에서 번뇌와 고통의 절반을 삭감시켜주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그런 의무감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으로 훈련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어 어머니가 되고 그 에너지가 오늘의 우리나라를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무를 모르고 성장한 이들은 생의 무거운 짐과 멍에를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울증과 자살이 많은 시대를 만듭니다.

두 번째 ‘두려움’에 대한 것인데, 두려움은 미래의 불투명성의 반영이지요.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새옹의 말)를 믿는 것입니다. 내 목숨이 하늘로부터 왔고 내 삶의 순간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입니다. 신앙의 기본이지요. 어떤 문제이건 항상 기본을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스승의 조언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일은 터졌는데 아무 대책도 없고 걱정도 말라는 것인가? 문제의 결과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대책도 궁리하고 준비해야지요. 준비는 하지 않고 걱정만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준비할 것도 있고 잠시 생각해보고 미뤄두는 것도 준비일 수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순간에 대해서 온 마음과 신경을 모두 집중시켜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엄청난 문제가 다가왔다고 해도 내 목숨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 하느님만이 내 목숨을 좌우할 수 있다는 든든한 믿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밤낮으로 근심 걱정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근심걱정이란 마음의 병을 만들고 이성의 작용을 방해해서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좋은 궁리가 나오지 않지요. 좋은 궁리란 지혜에서 나오며 지혜는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문제에만 매몰되면 지혜가 터지지 않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최악의 결정을 하는 경우가 그런 것입니다.

내게 죽음이 다가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란 마치 툭! 정전이 되듯 또는 깜박 졸듯이 부딪히면 순간입니다. 내 목숨은 하느님께서 결정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주어진 시간을 두려움 없이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로 오라. 내가 안식을 주겠다!” 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면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배우라고 했습니다. 당신도 생의 두려움 속에서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시고 순명하셨는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 다스리기인데, 번뇌와 고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무감과 두려움으로 인해서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없는 것이 번뇌이고 고통입니다. 일어난 일과 그 일에 대한 내 감정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기계의 센서가 아니라 생명 있는 물건이니까요.

나쁜 일이 생길 수 있지만 바로 그 때에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성을 작동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어난 일에 대한 내 감정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평화롭게 누리던 행복감이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 넋의 평화와 기쁨이 잠시만 물러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기쁨아, 나 여기 영안실에 조문하고 나올 거니까, 넌 여기 서 표정관리 하고 있거라!” “내 마음의 평화야, 내게 어려운 일이 생겨서 그 일에 잠시 집중하려니까 멀리가지 말고 기다렸다 오너라!”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에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그런 훈련을 할 수 있고 무소유의 수행을 하는 공동체인이라면 얼마든지 평화와 안식과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입으로 이렇게 했으니, 이제 ‘아파 죽겠다’는 말은 못하겠구나! 에휴, 두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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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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