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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내 몸을 망치고 있다

최상용 2011. 09. 11
조회수 57281 추천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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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물물교환을 통해 부족 간의 삶을 영위해 왔다. 원시사회로 갈수록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는 생산체제를 유지하며 지구상의 생명이 공존해왔다. 그런데 근대 산업화 시대가 도래 하면서 생명 중심이 아닌 소수의 인간만을 위한 경제논리가 판을 치며 지구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대자연의 순리를 중시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의 더불어 살려는 지혜는 사라져 가고 있는 수많은 풍속에서 알 수 있다. 이번에는 건강한 삶을 위해 먹거리를 원활하게 조달했던 오일장에 대해 알아보자.

 

왜 우리 선조들은 닷새마다 장날을 열었을까? 여기에는 천문적 지혜, 그리고 먹거리와 인체의 유기적 관계를 염두 해 둔 아주 과학적인 생각이 농축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언어 속에 담긴 의미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먼저 기후(氣候)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고대 동양에서는 1년 365일을 크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계절(季節)에 이어 더 세부적으로 24절기(節氣)로 나누고, 다시 24절기를 기후(氣候)로 구분하였는데, 1기(氣)는 15일이며 1기를 다시 5일씩 3등분하여 3후(候)로 세분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후란 의미는 한 달이라는 30일을 보름달을 기준으로 반절로 나누어 15일을 기준삼아 1기로 하고 다시 이를 세분하였는데, 즉 15일을 3등분하여 적어도 5일마다의 날씨의 변화를 1후로 하였던 것이다.

 

최소 5일이 지나면 만사만물이 눈에 띌 만큼 변화를 일으키니, 적어도 닷새만에는 곳곳마다의 산물을 교환하여 식재료의 조화를 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5일마다 식재료를 교환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 어느 정도는 먹거리의 편식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연유로 5일장이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산업화와 함께 들이닥친 냉장고와 함께 도심으로 파고든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전국 곳곳에서 열렸던 오일장의 의미가 퇴색해 가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온 5일장이라는 조상님들의 지혜로운 산물이 거추장스럽고 구태의연한 것쯤으로 격하되어 버렸다. 오일장의 장점은 자연스레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이 들어서는 읍이나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십여 리 안팎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집결되니 당연한 일이다.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은 식재료의 보존가능 기간도 염려해둔 아주 위생적인 시스템이다.우리가 먹는 사계절 식재료 중, 여름철에 생산된 것들이 쉽게 변할 수 있는데, 적어도 가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닷새 내외는 견뎌낼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요즘이야 ‘냉장고’라는 계절을 무시하는 괴물(?)이 있어서 제철이 아닌 음식을 어느 때곤 먹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 괴물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30여 년 전만 해도 전국의 5일장은 먹거리 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정겨움이 넘쳐나는 만남의 장소였다.

 

사실 냉장고의 등장으로 이웃 간의 정도 많이 사라졌다. 장기보관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음식이 상하기 전에 이웃과 나누어 먹는 훈훈하고 정겨운 미풍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혹 버릴지언정 냉장고에 우선 보관하고 보자’는 욕심이 각 가정의 냉장고에 팽배하고 있다. 더구나 요즘에는 김치냉장고까지 가세해 이웃 간의 아름다운 풍속은 더욱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 보니 제 때 먹는 식재료보다 장기보관하다 결국엔 버리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있다.

 

냉장고에 갇혀 있는 식재료 중 상당수는 그냥 상온에서 보관해도 좋을 것들이다. 과일의 경우 식탁위에 놓아두고 눈 맛을 충족시키며 2-3일 간 숙성시켜도 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맛을 배가 시켜준다. 냉장고에 보관된 음식은 냉기를 안고 있어 식재료 고유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 지나치게 시원하면 내 몸에 필요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미각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가능하면 장터에 나가 닷새 동안 먹을 식재료를 사다 상온에 보관해 가족들의 미각기능을 살려야 건강한 식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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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토 전역에서 지역 지역에 따라 닷새마다 작은 축제가 열렸던 5일장! 이는 단지 우리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지역경제를 유통시켰고, 가정마다의 식탁에 다양한 제철의 식재료를 제공하였다. 요즘처럼 유해물질이 첨가된 불량식품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4계절이 무시될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넘나는 국적불문의 식재료들이 넘쳐나고 있다. 장기보관을 위해 첨가물질이 함유된 것이나 냉동식재료는 바이오-에너지 측면에서 볼 때 신선함은 고사하고 본연의 에너지(氣의 정보)가 상당히 왜곡되기 마련이다. 단지 열량의 높고 낮음만으로 식품의 품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 살아 있는 기운(生氣)이 문제다.

 

지금 당장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대부분 더 이상 들여 넣을 공간도 없이 꽉 들어차 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전기료도 전기료지만 못 먹고 버릴 음식이 더 많아지고 있다. 비우고 살아야 할 것은 마음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해 냉장고도 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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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용
신문과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동양철학에 매료돼 원광대에서 기(氣)공학과 기(氣)학을 공부한 동양철학박사. 현재 인문기학연구소 소장으로 동양사상과 생활건강 및 명상에 대해 강의한다. 저서로는 한자의 강점인 회화적인 특징을 되살리고 글자에 담긴 역사적인 배경을 소개한 <브레인 한자>와 <한자실력이 국어실력이다>등이 있다.
이메일 : choisy1227@naver.com      
블로그 : choisy122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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