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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뺀 하느님

장동훈 신부 2015.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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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에 평사제에게 무릎을 꿇고 

고해성사를 하는 프란치스코교황 사진 <AP뉴시스>


교황의 무류성을 떠올리지 않고서라도 죄를 짓는 '신의 지상 대리인'은 참으로 생경하다. 작년 이맘쯤(2013년 3월 28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여느 신자처럼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제에게 고개 숙여 자신의 죄를 고해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 2009년 봄(4월 28일), 이탈리아 중부의 유서 깊은 중세 도시 아퀼라(Aquila)에서도 이와 닮은 장면이 펼쳐졌다. 그날,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노구를 굽혀 자신의 선임자 중 한명이었던 첼레스티노 5세(재위 1294년 8월~12월)의 무덤위에 보편교회에 대한 자신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팔리움(Pallium)을 내려놓았다. 


이 이례적 장면들은 각국 언론을 통해 하나같이 겸양의 표양으로 타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높은 권좌에서 친히 땅으로 내려오는 권력의 '황송한' 겸손과는 달랐다. 베네딕도 16세는 몇 해 전 찾았던 무덤의 주인처럼 실제로 교황직을 사임했고(2013년 2월 11일), 지금의 교황 역시 얼마 전 자신의 재위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 밝히며 전임자와 같은 사임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한번쯤 머리 숙이는 권력의 퍼포먼스에 익숙한 우리에게 '종신의 힘'을 '실제로' 내려놓는 모습은 겸손 그 이상을 떠올린다. 바로 위로다.  


기독교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절기로 공교롭게도 이번 주 내내 이어지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수난주간'은 저 이례적 장면들보다 더 날것의 상징들로 가득 차있다. "여느 사람처럼"(필리피 2,6) 지상에 내려와 더 이상 빼앗길 것조차 없는 죄인으로, "벌받은 자,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이사야 53,4)로 죽고, 죽은 다음에도 죽음의 맨 밑바닥, 버림받은 이들을 어깨에 들쳐 메고 올라오려 쉬지 않고 그 길로 내쳐 어둠의 무저갱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까지, 시종일관 '아래로 내려가는' 상징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인간에 관해 결코 재판정의 제삼자적 증인일 수 없는, '인간'이라는 저 맨 밑바닥의 '사건'을 처음부터 끝가지 겪은 당사자이다. "사람의 아들"(마태오 18,0)은 따라서 이 "우러러볼 풍채도 위엄도 없는"(이사야 53,2) 주인공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 하느님다운 이름이다.


무엇보다 이 서사의 가장 빛나는 대목은 여느 사람처럼 '힘을 뺀 하느님'이다. 이 '힘을 뺀 하느님'으로 가장 격정적인 한 주의 드라마는 신의 고난에 참여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고난에 동참하는 하느님의 이야기로 변모한다. 통곡이 아닌 위로며 고통이 아닌 위안이다. 나와 같이, 여느 사람처럼 오늘의 곡절을 함께하는 동행, 힘을 뺀 하느님. 이보다 눈물겹고, 두근거리고, 든든하고, 빛나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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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월호 농성 현장. 사진 조현



그러고 보면 작년 이맘쯤 남녘 바다의 생죽음들을 속수무책 지켜본 이후 우리가 줄곧 기다린 것은 진짜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팔복더위 광화문 네거리, 길을 멈춘 무개차에서 뻗어준 이역만리에서 온 잠시의 위로가 아닌,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겪은 살아남은 자의 위로, 동고동락의 눈물, 진심의 동행 말이다. 우리가 여전히 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동훈(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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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훈 신부
가톨릭 사제다. 인천가톨릭대에서 신부 수업중인 학생들을 가르치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로 일하고 있다. 늘 사람 옆을 맴돈다. 사람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사람 때문에 분주하며 사람 때문에 운다. 어딜가나 무얼하나, 마지막 시선이 머무는 곳 역시 사람들 언저리다. 때문에 그의 사랑은 ‘질척’거린다.
이메일 : dongframmen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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