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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쓸 것인가 버릴 것인가?

박기호 신부 2012. 11. 12
조회수 6593 추천수 0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루가 13,6-9).”

기질이나 성격적으로 유별난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형제간 중에도 그렇고 동서들 가운데도 그렇고 가정이나 마을이나 학교나 직장이나 어떤 집합을 막론하고 그런 이가 있게 마련인 것은 인간이란 것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지요.

20121112_4.jpg » 한겨레 자료 사진.
 
공동체에도 성격이 유별나기 때문에 못 어울리거나 부딛히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경우는 폭력성을 갖거나 그 반대의 경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일컬어 ‘독특하다, 특별나다, 이기적이다’ 혹은 ‘이상하다, 좀 그런 사람이다’ 등으로 표현하거나 규정해서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왜 그럴까! 어쩌면 좋지요? 쓸 수는 없고 버리기는 아깝고 매정하고... 물건은 고쳐 쓰거나 버리면 됩니다. 사실은 사람도 유생물로서 물건이예요. 그러니까 버리거나 고쳐 쓰면 됩니다. 하다가 안 되면 버릴지라도 노력을 해봐야 하겠지요.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수행이고 그 수행을 서로 도와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당사자는 자신을 알고 인정하고 개조를 위해 노력하고, 주변 사람들은 공동의 책임의식으로 힘써야 합니다. 주변 사람이란 부모일수도 있고 교사일수도 있고 도덕이나 법률일수도 있겠지요.

암튼 그런 독특한 성품의 사람을 재목으로 써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만드는 위대한 일이고 형제를 얻는 것이고 진정으로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본인과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니고 예수님 생각입니다(루가 13,9). 그 비유로 포도원에 심어진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가 아닌 무화과 한 그루를 뎅그렇게 심어놓았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재미로 그랬는지 덤으로 심은 건지, 뭐 한 그루 정도야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건 농부의 관상용일 뿐 생산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거름도 주지 않고 관리를 안 했습니다. 당연히 열매가 없거나 보잘 것 없겠지요. 돌무화과 돌배 고염 개복숭아가 되어 버린 거지요.

짐승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데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애써야 만물의 영장이라 하겠지요. 내가 돌무화과인지, 성격이나 사고(思考)와 행동 방식에서 너무 독특한 면을 가졌는지. 자신을 알아야하지요. “네 자신을 알라!”

주변과 충돌할 때 마다 한 번씩만 생각해 보면 자신이 발견되고 해답이 딱 나오는 건데 자기를 바라보려는 수행이 없으니까 개복숭아 그대로인 것입니다. 개복숭아는 벌레만 끼고 과일 노릇 못하는 건데, 자기는 나 때깔 좋고 맛있는 과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답답하단 거지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사람 1순위여.

그런데, 문제는 그런 멤버에 대해서 100% 본인의 책임만 묻는다면 그 공동체 수준 역시 푼수이기는 마찬가지란 것입니다. 포도밭에 무화과를 심어서 관리 안 한 책임이 공동체는 전혀 없다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무화과 밭에 심어져있었더라면 제 때에 무화과가 열렸을 걸 왜 포도밭에 심어놓고 퇴비도 안주고, 관상용으로 생각했으면 관상용 기능으로 봐줘야지 웬 뜬금없이 열매 타령하면서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느냐 이건 잘못된 것이지요.

“내가 퇴비도 주고 관리를 해 볼 터이니 한 해 동안 더 두고 봅시다.” 관리인이 잘 생각한 것입니다. 주인보다 관리인이 더 수행이 된 사람입니다. 경험이 있는 거지요.

좋게 말해서 독특한, 성질 안 좋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공동체 가족들이 자신의 성격 맞춰주러 입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단히 각성해야 하겠지요.

“여러분. 내 성질이 못되어 먹어서 지금 이 모양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디서부터 이 모양이 되었는지, 어떤 이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반영되어 그렇다고 하고, 어떤 이는 가정교육이 문제였다 하고 또 어떤 책에서는 생활 환경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어쨋건 저는 이제부터 공동체로 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수행을 하겠습니다. 공동생활 3년 후에, 5년 후에는 마을의 원로처럼 좋은 품성의 공동체인이 되고자 성장할 것입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여러분이 퇴비를 주고 도와주십시오!”

이런 마음과 각오의 가짐을 가져야 하겠지요. 어떤 수준까지 성장하겠다고 결의하는 것이 수행목료입니다. 본인이 노력하고, 또 주변의 사람들이 서로 도와서 이미 버렸어야 할 돌을 모퉁이 돌로 쓰는 공동체라면 건강하고 훌륭한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수행의 도장이고 기회의 시기이고 도움의 가정입니다.

“두 사람이 다툴 경우에 어느 한 편만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고 두 사람 모두에게 있습니다.-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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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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