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의 좋은 책읽기, 좋은 글쓰기 강좌 1

2011.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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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에 대해서는 소설가 카프카가 한 말 ‘정신의 얼음판을 깨뜨리는 도끼 같은 책’이 좋은 책이라고 자주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는 카프카가 대학생 시절 친구 폴라크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말입니다. 카프카가 쓴 정확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하려 책을 읽겠는가? ……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

(카프카에 대해서는 제가 연전에 쓴 <광기와 천재>에 재미있게 서술돼 있으니 혹시 관심이 있으면 그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카프카가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난 게 1883년인데, 바로 그해에 그리스 남부 지중해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작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입니다. 카프카가 바로 그 편지를 쓰던 무렵(1904년 전후) 20대의 카잔차키스에게 카프카가 말한 대로 죽음처럼, 자살처럼, 얼음판을 깨뜨리는 도끼처럼 다가온 책이 니체입니다. 카잔차키스는 파리에서 니체를 발견하고 거기에 얼마나 아찔하게 휘말려들었는지를 <영혼의 자서전>에서 상세히 묘사했는데요, 그 중 한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그는 나를 완전히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는 그의 격렬함과 자부심에 비틀거렸고, 위기에 도취했으며, 마치 굶주린 맹수가 어지러운 난초들이 가득 찬 시끄러운 밀림으로 들어가듯, 두려움과 열망을 느끼며 그의 작품에만 탐닉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내면에는 인간 존재 이전의 ‘악한 자’가 지닌 어두운 태곳적 힘이 존재했고, 또한 인간 존재 이전의 신이 지닌 밝은 힘도 존재했는데, 내 영혼은 이 두 군대가 만나 싸우는 격전장이었다. 고뇌는 격렬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지 않기를 바랐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좋은 책이란 바로 그렇게 전 존재를 흔들어버리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 전체를 흔들어버림으로써 삶의 질서를 일거에 혼돈으로 몰아넣고 다시 그 카오스상태에서 삶을 재창조하도록 밀어붙이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제 경우를 이야기한다면, 카잔차키스가 니체를 발견하던 나이에, 그러니까 대학시절 내게 그렇게 막강한 힘으로 삶을 한순간에 휘저어 놓은 책이 바로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였습니다. 카잔차키스가 만난 조르바는 니체의 책에서 곧바로 걸어 나온 인물 같았습니다. 카잔차키스는 니체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흥분, 고양, 강렬한 변화 욕구, 자기 초월 욕구를 조르바라는 실존인물을 통해 느꼈습니다. 책으로 알게 된 것을 체험으로 확인했다고 하면 딱 맞을 텐데, 그 체험을 소설의 언어로 형상화해 놓은 게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그 조르바에 대해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씁니다.

“삶의 길잡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졌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으리라. 그 까닭은 글 쓰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그가 갖추었으니,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아침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결정적인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도 더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제가 느꼈던 것은 이겁니다. ‘이런 책은 절대로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가르쳐주는 새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 삶의 방식을 창안하는 것을 뜻하고, 그런 새로운 삶의 창안이란 다른 말로, 예컨대 푸코가 한 말로 하면 실존미학입니다. 조르바는 정신의 얼음판, 정신의 감옥문을 깨부수는 도끼였습니다.

좋은 책은 우리의 앎을, 인식을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책입니다. 그 심화, 확장의 과정에서 만나는 바위라든가 장벽을 돌파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바위를 뚫고 장벽을 돌파하는 그때가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바로 그렇게 깨닫는 순간 우리는 우리 안에서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 힘으로 삶을,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진짜 좋은 책은 바로 그런 기능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에 대해 이야기보고 싶습니다. 이건 글을 쓰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니체가 강렬한 답변을 내놓았는데, 거듭 읽어볼 만합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읽기와 쓰기’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직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당신은 피가 곧 혼(정신, spirit)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혼을 다해서 쓴 글, 피를 잉크 삼아 쓴 글만이 다른 사람의 혼을 흔들고 피를 끓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남의 피를 끓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피가 끓어야 합니다. 내 혼이 타오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혼을 타오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글은 먼저 글 쓰는 사람 자신을 감동시키고 뒤흔들고 삶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우리는 글을 통해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고, 또 타인의 삶이 바뀌도록 영감 혹은 자극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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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즐거운 지식> 출간 기념으로 6월8일 홍익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연 ‘저자와의 만남’ 강연의 원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읽기, 좋은 글쓰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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