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어른의 치유는 자기몫이다

박미라 2019. 04. 08
조회수 9673 추천수 0

당신 탓은 아니지만 치유의 주체는 당신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상처 받은 주부 “엄마가 용서 안 돼요”

 

사진31-.jp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두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과거에 어머니가 내게 했던 일들이 떠올라 화가 나요. 수많은 육아 지침서들과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엄마인 내가 먼저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 상처를 준 사람은 부모님이지요. 그래서 그 마음을 풀어 보려고 어머니에게 내가 상처 받았던 얘기를 하면, 어머니는 미안하니까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라고 합니다. 속상하다고요.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 못다 한 말들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차별과 무관심, 화풀이 속에 많이 상처 입었던 내 마음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데이지  

 

A. 육아 지침서를 비롯해 대부분의 심리학 서적들이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금 당신이 불행한 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았던 영향과 상처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 같은 주장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3세 이전의 부모자식 관계를 집중 조명하는 대상 관계이론의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고통 받는 건 당신 탓이 아니라 당신의 부모 탓입니다’라는 말은 고통의 당사자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울이나 불안, 분노 등의 감정 때문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자존감이 꽤 낮아져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 ‘당신 탓이 아니다’라고 누군가 말해 준다면 크나큰 위로가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어디를 가나, 우리 부모가 어린 시절 내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는지 말하는 걸 자주 듣습니다.  

이런 류의 심리학 이론이 가진 문제점은 그 해결의 주체를 모호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수록,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른이 된 뒤에도 자신의 감정을 좌우한다고 말할수록 고통의 주인공은 문제 해결을 할 힘이 없어집니다. 결국 내 상처는 부모님이나 부모님을 대신할 심리전문가가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냉정하고 엄격했던 아버지가 지금도 원망스러워서 찾아가 따졌는데, 지금은 너무 늙고 약해져서 마음이 편치 않다. 어머니가 과거에 분노가 많아서, 또는 자식을 차별해서 내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데, 과거 얘기를 꺼낼라치면 펄펄 뛰면서 되레 화를 낸다. 그래서 상처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그렇습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성찰을 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지? 내가 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하고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자식들은, 남편은 왜 나를 이렇게 화나게 하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당신이 과거에 어린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키워 줬더니 이제 와서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냐며 다시 분노의 불길을 되살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데이지님의 어머니는 미안하니까 그만하라고 하시니 상당히 좋은 부모님입니다.  

실제로 부모의 사과를 받고도 여전히 마음이 치유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제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아졌는데,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는데,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자주 수치심을 느낀다는 겁니다. 이럴 때 자신에 대한 좌절감은 몇 배로 커집니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나는 왜 달라지지 않지? 아직도 속 좁게 용서를 못 하는 건가?  

이런 심리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데 ‘내적 불행’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받아들였던 불행이 결국은 내면의 불편감을 유지하려는 힘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이제 부모는 없지만 내면화된 부모가 내게 힘을 행사한다는 말과도 비슷합니다. 내가 부모의 태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너는 가치 없어. 욕구를 참아. 너는 나를 힘들게 해. 타인을 위해 봉사해야만 좋은 애가 되는 거야…등등으로요. 혹시 데이지님도 이런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실 저는, 과거에 부모가 원인이었다는 주장에도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긍정심리학을 중심으로, 성격의 많은 부분이 타고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성격이 양육의 결과냐 아니냐에 관한 논쟁을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데이지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어머니를 자기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시게 되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우울한 일이 됩니다. 나는 어머니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을 거야, 어머니처럼 내 자식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야, 하면서 긴장하고 쩔쩔매다가 그 스트레스 때문에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초보 엄마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는 게 있는데, 아이들은 참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처 입었다가도 이내 밝아지고 깔깔 웃고, 또다시 부모를 사랑해 줍니다. 상처의 회복 속도가 느린 사람들이 있는데(저 역시 그랬습니다만), 그들도 어른이 되면 그 상처를 자양분 삼아 한층 성숙해지기도 하지요.  

데이지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차별과 무관심과 화풀이로 당신을 괴롭혔다면 지금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고 너그러우신가요? 당신은 당신을 귀하게 여기시나요? 당신의 아픔을 눈물로 위로해 주시나요? ‘괜찮아. 어떤 모습이어도 내가 곁에 있어 줄게’라는 마음을 갖고 있나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고통이 당신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을 치유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생각이, ‘모두 내가 부족해서’ ‘내 탓’과 같은 것들입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껏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했고, 잘 버텼고, 그리고 이렇게 상담을 원하는 글을 써서 보내셨으니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 탓이 아니지만, 어른이 된 뒤에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권리와 의무는 바로 당신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못다 한 말들, 상처들을 이제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해 주세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것도 권합니다. 당신에게는 상처만큼 강력한 회복과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박미라
심신통합치유학 박사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여자와닷컴> 콘텐츠팀장을 지냈고, 마음치유학교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안내중이다. <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완벽하지않아도 괜찮아>등의 저서가 있다.
이메일 : blessmr@hanmail.net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