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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시대, 대인과 소인의 차이

법인 스님 2019. 10. 11
조회수 4241 추천수 0

 

화이부동 和而不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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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하게 지내는 세속의 지인은 요즘 하루하루가 편안하지 않다. 가게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당분간 잘 풀릴 전망도 밝지는 않다. 평소에도 3.1절과 8.15광복절에는 판매가 약간 주춤하는데 그건 그런대로 신경이 조금 쓰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지인은 근심에 앞서 화가 난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원인이 경제적 상황과 요인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위로의 문자를 보냈더니 아베도 문재인도 다 싫다고 한다. 지인은 일본 브랜드 제품인 아식스대리점을 하고 있다. 정치라는 고래 싸움에 한일 두 나라의 순박한 새우들이 숨을 헐떡이고 있다.

 

지금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등 동북 아시아가 갈등과 대립으로 다투고 있다. 지금은 일단락 되었지만 홍콩 송환법문제로 홍콩 시민과 홍콩 정부, 중국이 충돌했다. 알다시피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는 나라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이 법안은, 자칫하면 중국의 체제에 반대하는 인사나 인권운동가들을 중국 본토에 인도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하여 거센 저항을 받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조치와 한국 정부의 대응, 그리고 민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불편하다. 아베의 치졸한 조치는 홍콩 송환법과 같이 인권에 대한 무지와 기만이 있다. 박근혜 정권 당시 굴욕적으로 합의한,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으로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을 한국정부가 해산한 조치, 우리 정부의 대법원에서 일제에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살아있다는 취지의 판결에 대한 경제적 보복을 취한 셈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 정부의 지속적인 참회와 평화수호의 의지와 비교할 것도 없이, 일본 정부의 역사 의식과 인권 감수성은 평화와 상생을 지향하는 인류공동체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생명은 평화를 지향할 때 생명이다. 평화는 차별 없이, 배제 없이 함께 살아갈 때 평화다. 그래서 생명이라는 말은 평화와 상생의 도움을 받아야만 존재하고 약동할 수 있는 유기체이다. 그러나 평화와 상생의 의미망을 가진 생명체들의 모둠인 인류사회의 역사를 보자. 평화의 역사였다고 말하기 저어된다. 동서고금에 전쟁의 횟수와 죽임을 당한 숫자를 헤아려 본다면 차라리 전쟁이 없는 시대와 전쟁이 있는 시대로 구분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다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저마다 다른 생각과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다툼 또한 생명의 특성이고 약동이다. 이른바 국제사회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둠이기 때문에 충돌과 다툼이 늘 있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툼에도 명분이 있고, 교양이 있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다투고, 어떻게 다투고, 다툼 이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늘 숙고해야 할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한국,일본, 중국, 홍콩 등의 갈등을 볼 때 떠오르는 말이다. 함께하면서(), 각자의 개별성을 지킨다(不同)는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

 

이 구절에 대해 많은 이들이 대개 이렇게 해석한다. “군자는 사람들과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못한다지극히 주관적, 감정적, 문화적 분위기로 읽힌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의 해석은 다르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不同),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고() 공존하지 못한다(不和)” 나는 후자의 해석을 전적으로 따른다.

 

’(), 동일성이라는 명분 아래 다른 것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자기 중심적으로 모여들기를 바라는 세계관이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애국의 이념과 감정의 과잉은, 단 하나의 기준에 의거하여 다양성과 다름을 무시하는 무지는, 바로 의 오류이다. 그렇다면 ’()의 의미와 지향은 무엇인가? 바로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 곧 개별이 개별일 수 있는 특성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하는가치이고 문화이다.

 

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유학의 이념이 생활의 밑바닥까지 스며들어왔다. 유교는 관계를 아름답게 하자는 이념이자 문화였다. 아름다운 관계가 바로 이다. ‘는 울타리를 넘나드는 일이다. ‘은 울타리에 가두고, 갇히는 일이다. 이제 아시아는 의 의미와 지향을 새기고 국가라는 울타리에 다른 것들을 가두려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남을 가두면 내가 갇힌다. 이 뻔한 사실!

 

이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 www.peoplepower21.org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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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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