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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월간 풍경소리 2019.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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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래 <개똥벌레>의 작사가 한돌


개똥벌레-.jpg


나는 친구가 없다. 이 나이 되도록 친구가 없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거겠지. 물론 처음부터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내 마음을 다 주었던 친구들이 몇 명은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멀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는 누가 만나자고 하면 머뭇거리게 되고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이따금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또 배신을 당할까봐 이내 생각을 접곤 한다.


추억의 문 앞에서 나는 기도를 했다. 혹시 내가 잊고 있던 친구가 있다면 만나게 해 달라고.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도 떠오르는 친구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추억의 문을 열었다.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던 추억의 거리는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어떻게 살았기에 내 추억은 이다지도 가난할까. 내가 걷는 속도로 추억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상태에서 추억이 제멋대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만큼 추억거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나를 반겨주는 옛 친구가 한 명쯤은 나타나겠지 하면서 나는 포기하지 않고 헤매고 또 헤맸다. 이따금 이름을 알 수 없는 친구가 보이기도 했고 이름은 알겠는데 생김새가 희미한 친구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반겨주는 친구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봄내(春川)에서 보냈다. 유치원은 다니지 못했고 초등학교 3학년까지 몇몇 친구들이 있었으나 내가 서울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우정은 싹을 틔우기도 전에 시들었다. 서울 아이들은 옷매무새부터 달랐고 노는 것도 달랐다. 시골티를 벗지 못한 나는 외톨이가 되었고 그런 나에게 손을 내미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6학년 때 또 다른 학교로 옮겼기 때문에 초등학교 친구는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찌감치 외톨이를 경험한 나는 속다짐했다. 중학교에 가면 친구를 많이 사귈 거라고. 하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여 2학년에 오르지 못하고 낙제를 하고 말았다. 동기들은 멀어져 갔고 다시 1학년 수업을 받아야 하는 나는 신입생 사이에서 섬이 되고 말았다. 가까스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스스로 세월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졸업한 뒤에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고 군대에서조차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내 몸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전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모든 사람으로부터 격리되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배치된 부대에서는 2년이 지나도록 졸병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왕따가 된 시점이 중학교에 들어가 낙제한 뒤부터가 아닌가 싶다.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그때 알게 된 것이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내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무섭게 번져나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스스로를 개똥벌레라고 여겼다. ‘개똥이라는 말이 보잘 것 없고 천하고 엉터리라는 말이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밥버러지 같은 나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새들과 달리 나는 거꾸로 껍질을 만들어 그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를 감싸고 있던 껍질은 세상의 거친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참히 부서졌다. 바람은 차갑고 어두운 하늘에는 희미한 별 몇 개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아니다. 어쩌면 내 눈이 맑지 못해서 밝은 별들이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지. 사람은 눈에서 맑은 빛이 흘러야 하는데 그 시절의 내 눈은 외로움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온전하게 보일 리가 없었다.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별을 보면서 저 별도 나처럼 외로움으로 가득 찼구나 싶었다.


눈에 낀 외로움 탓에 나의 하늘은 언제나 흐리게 보였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다보니 사람을 만나도 말을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다. 하지만 누가 나 같은 밥버러지의 손을 잡아 주겠는가. 그 무렵 나는 혼자 떠돌아다니다가 간첩으로 잡히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아버지가 운영하는 조그만 약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볼 때 나는 아주 불안하고 못 믿을 자식이었다. 피난 내려와 봄내에서 약방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서울로 이사 와서 큰 사기를 당하여 무허가 식당까지 하게 됐지만 그마저 실패하여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로 자리를 옮겨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조그만 가게를 마련하여 다시 약방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약방 맞은편에 시장이 있었고 골목에는 음식점, 술집 특히 자그마한 영세 공장들이 많았다. 야근을 하려고 졸음을 쫓는 약을 사러 오는 공장 아이들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그들과 친하게 되었다. 나는 날마다 약방에서 잠을 잤다. 약방 한구석에는 일인용 침대만한 크기의 작은 방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나의 유일한 동무, 기타가 있었다. 밤마다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 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개똥벌레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 동기도 따지고 보면 공장 아이들 때문이었다. 어느 날 공장의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껌벅거리는 것을 보았는데 문득 어렸을 때 보았던 희미한 별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스로를 개똥벌레라 여기며 살아온 것이 사치스럽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껌뻑거리는 형광등 아래서 열심히 일하는 개똥벌레였고 나는 외로움 타령만 하는 귀족 개똥벌레였으니까.

 

그 무렵 좋아하던 여자 아이가 시집을 갔다. 그 아이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데 막상 그 아이가 시집을 가버리니까 내 자신이 그냥 한심하고 보잘 것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 밤마다 눈물이 나왔다. 차라리 내 가슴에 영롱한 구슬이 생겨나기를 바랐다. 눈물을 참으면 그 눈물이 굳어져 진주처럼 영롱한 구슬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것으로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거라고 다짐했다. 문득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속으로 울었다. 눈물은 뺨으로 흐르지 않고 가슴으로 흘렀다. 밤마다 가슴이 쓰렸다. 그때 알았다. 외로움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절하게 외로워지는 거라고. 비를 맞는 것이 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듯이 말이다.


진주처럼 영롱한 그것!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꿈을 좇다가 욕망, 명예 등등 그런 것들이 일으키는 먼지에 쌓여 보이지 않게 되지. 옥도 갈아야 광채가 나듯 사랑도 실천하고,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영롱해지는 것이다. 꿈을 이룬 자는 조명으로 빛나는 것이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롱한 구슬을 지닌 자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지. 나도 그것을 지니고 싶다. 진주처럼 영롱한 구슬!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내 손을 잡아 준 사람은 두 명뿐이다. 1999년 여름, 국토 순례 할 때 어떤 여학생이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손을 잡아 주었는데 그때 그 손길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또 한 번은 2018년 겨울, 집에 가려고 전철을 탔는데 어떤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고 앉으라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했으나 결국 나는 그 청년이 내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청년에게 눈인사를 보냈지만 솔직히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모습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노인 대접을 받고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때 내 나이가 예순여섯, 나이는 그렇다 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인으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에 서글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또다시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우겨 봐도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어떻게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되도록 친구 하나 없단 말인가.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사귀어 보라고. 하지만 나는 혼자가 좋다. 지금까지 혼자였는데 이제 와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도 쑥스럽고 아직도 나는 사람들이 무섭다. 언제쯤 내 가슴에 영롱한 구슬이 생겨날까? 오늘밤도 나는 울다가 잠이 든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 주렴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마음을 다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 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손을 잡아 주렴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개똥벌레, 1982

 

 이 글은 <월간 풍경소리>(http://cafe.daum.net/pg-sori)에 <개똥벌레>의 작사가 한돌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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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풍경소리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교장이 중심이 되어 초종교 조교파적으로 영성 생태 깨달음을 지향하는 월간잡지다.
이메일 : pgso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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