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을
휴심정의 기사와 글이 모여 있습니다.

(30) 계룡산 도인 석봉선사

조현 2005. 10. 28
조회수 13286 추천수 0
02783105_20051026.JPG

무서운 얼굴 불같은 성격 일거에 버리고 40년 묵언


충남 아산 영인산 자락으로 한 노승을 찾아 나섰다. 세상에 드러내기를 전혀 원치 않는 그를 어렵사리 만나는 감회에 젖어 산길을 오르니 막다른 곳이다.


토굴 같은 집이 외로이 서 있다. 노승이 산에서 주워 까놓은 것을 보이는 쥐밤들이 널린 방에 한 노승이 앉아있다. 혜철 스님(81)이다. 80대 노구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허리가 꼿꼿하다. 이것이 수행자의 힘인가. 강하되, 위협적이지 않다.


그를 마주하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이 방안을 덮는다. 그러나 그는 불을 켤 생각조차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한 발을 옮길 수 없는 칠흑 같은 밤 중에도 계룡산 숲 속을 뛰어다녔다는 그다. 어둠 속에서 호랑이 불빛 처럼 빛나는 혜철의 안광이 이 세상에 단 한차례도 드러난 적이 없던 그의 스승 석봉 선사(1890~1971)의 삶을 토해낸다.


석봉은 무섭게 생긴 인물이었다. 머리는 까지고 입술은 튀어나오고 눈빛은 상대의 심장을 찌르듯해 마치 사천왕 같았다. 전남 곡성 겸면에서 태어난 석봉은 7살 때 몸이 아파 7살에 곡성 관음사에 맡겨져 기도를 시작했고, 그것이 출가길이 되었다. 불경을 익히기 위해 지리산 화엄사로 옮겨간 석봉은 구례중학교를 다니면서 사천왕 같은 얼굴 값을 하기 시작했다. 유도 3단이던 그는 우리 밖을 나온 산짐승처럼 구례시내를 주먹으로 휩쓸고 다녔다. 보다 못한 구례군수가 화엄사 주지에게 그를 산문 밖에 내보지 말도록 편지를 쓰자 석봉은 “네가 군수면 군수지, 왜 남의 발까지 묶으려고 하느냐”며 군청을 뒤짚어놓았다.


강렬한 눈빛 ‘사천왕’ 인상…유도 3단 길거리 주먹질도
‘화’ 놓기로 결심하고 정진 “참는 장사 당할 자 없다”


그가 38살에 참선을 하겠다며 만행에 나섰다. 금강산 마하연에서 1년 간 참선 정진한 그는 금강산에서 마가목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선방으로 도반과 함께 갔다. 그런데 하루 밤 자고나니 지팡이가 없었다. 화가 난 석봉은 “오늘 밤 안으로 지팡이를 가져다놓지 않으면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시 하룻밤을 자고 나자 지팡이는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상원사 선방에선 그의 도반의 방부(살기를 요청)는 받아주면서 그의 방부는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참선길이 막히게 된 그는 ‘왜 방부를 받아주지않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자 함께 온 도반이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느냐”며 “스님이 화를 내면 꼭 사천왕 같아서 다른 스님들이 무서워 함께 살기를 꺼린다”고 말해주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남에게 ‘위협’이라는 얘기였다.


석봉은 그 순간 금강산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한 스님이 마하연 돈도암에서 있는데, 마당에 있던 뱀이 부엌으로 들어가 타고 남은 재를 묻혀 자기 몸으로 마당에 글을 썼다. 자신은 원래 홍도 스님이었는데, 아파서 누워 있다가 바람에 문이 ‘확’ 닫히는 바람에 발이 끼었다고 단 한 번

02783109_20051026.JPG

화를 낸 과보로 이렇게 뱀의 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석봉은 상원사 조실 한암 선사 앞에 가 3배를 올렸다.


“진심(화)을 놓겠습니다. 방부를 받아주십시오.” “진정 진심을 놓을 수 있겠는가?” “저는 한다면 합니다.”


그 순간 사천왕 처럼 무섭던 석봉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변한 그의 모습이 믿기지 않던 선객들이 처음엔 시험 삼아 욕을 해도 빙그레 웃을 뿐이었고, 나중엔 발로 차도 웃을 뿐이었다. 그 뒤 열반할 때까지 40여년 간 그는 꼭 하지 않으면 안 될 말 외엔 입을 여는 법도 없었다. 사실상 40여년의 묵언이었다.


혜철이 9년 간 모시고 산 계룡산 신흥암에서도 석봉의 말 없는 정진은 한결같았다. 신흥암은 천연바위 속에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있어 가끔씩 방광한다는 천진보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흥암에서 방광하는 것은 천진보탑만이 아니었다. 전기불도 없던 시절 신흥암에서 기도하던 불자들은 칠흑 같은 밤 석봉의 방에서 방광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말 없던 석봉이 남긴 유일한 문답이 있다. 그는 “누가 가장 센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왕이나 천하장사나 호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참는 장사를 당할 자가 없다”며 “인욕(참음)이 제일 강한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석봉의 ‘5가지 제일’ 법문이다. 그는 이어 “무엇이 가장 이로운 것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나 지위를 답했다. 그러나 그는 “무병이 이롭다”고 했다. 또 그는 이어 “제일 부자는 지족(자족함을 앎)한 사람”이며, “제일 친한 사람은 부모, 형제나 자신의 잘못을 부추기는 이가 아니라 잘못을 정확히 지적해주는 친구”이고, “제일 즐거움은 도를 깨쳐 알고 열반에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봉은 3일 간 스스로 곡기를 끊고 앉은 채 열반했다. 충남 보령 선림사에서 보관중인 그의 좌탈열반 사진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석봉의 도반인 도봉산 욕쟁이 선사 춘성은 석봉의 앉은 법구 앞에서 좌선을 하고 나서는 “일체 집착을 벗어나 나로서도 대답할 수 없는 법을 설하고 있다”며 3배를 올렸다. 석봉의 법구를 다비하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무려 사리가 한말도 넘게 쏟아진 것이다. 사리는 그의 뜻에 따라 산에 뿌려졌고, 어떤 탑도 세워지지 않았다.


혜철의 방에서도 긴 침묵이 흐른다. 어떻게 화가 그런 과보를 받는지, 왜 많은 중생을 두고 홀로 산에 사는 지 질문도 사라져 버렸다. 계룡산 아래서 사 간 감을 함께 나누는 사이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가을 바람이 답할 뿐이다. 가을 바람에 감은 이렇게 익었고, 온 산하가 붉게 물들고 있지 않은가.

계룡산·영인산/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5년 10월 26일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은둔>(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깨달음의 자리’ 연재를 마치며‘깨달음의 자리’ 연재를 마치며

    조현 | 2005. 12. 07

    지난 1월에 시작된 <깨달음의 자리>가 33회 일우선사편으로 끝을 맺었다. 자신의 내면은 도외시 한 채 끝없이 외연의 개발과 성장과 확장, 승리만이 ‘진리’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조용히 내면의 빛을 밝힌 선지식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성찰...

  • (33) 일우 선사(33) 일우 선사

    조현 | 2005. 12. 07

    ▲ 일우 선사의 유일한 상좌 정원 스님이 25년째 은거 중인 천안 태화산 평심사에서 스승을 회고하고 있다. 세상 모르게 설파한 불법… 무게가 삼천근 <깨달음의 자리> 마지막 편 점을 찍으러 충남 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

  • (32) 남장사 혼해 선사

    조현 | 2005. 12. 01

    여인 품속서도 어김없었던 진흙 속 연꽃6·25 전쟁 중이었다. 대찰의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져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때였다. 경남 함양읍의 조그만 사찰엔 일흔이 넘은 노승이 피난 와 있었다. 이 절엔 전라도에서 피난 온 20대 여인이 공양주(부...

  • (31) 구미 금강사 철우선사(31) 구미 금강사 철우선사

    조현 | 2005. 11. 17

    주름진 선승도 머리 조아린 ‘소년 조실’ 부산 백양산 선암사에 선승들이 찾아왔다. 경남 통영 용화사 도솔암 선방의 선객들이었다. 경허 선사의 법제자로 천진도인인 혜월 선사를 조실로 모시러 온 것이다. 그런데 혜월은 그 조실청장(조실 요청서...

  • (1) 경허선사 생사의 문 넘은 동학사(1) 경허선사 생사의 문 넘은 동학사

    조현 | 2005. 10. 28

     △ 꽁꽁 언 계곡 옆으로 동학사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거센 태풍의 시발이 되듯이 한 사람의 깨달음이 무너져가는 세상의 정신을 새로이 일으키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깨달음을 얻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