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치
휴심정이 만난 사람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또 '인간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란 인류정신사의 가장 큰 주제를 오해 테마로 한 인터뷰와 이에 대한 목사와 신부, 스님, 주역의 대가와 심리학자 등 10명이 모여 토론한 대담을 선보입니다.

이정희 천도교교령이 본 손병희

조현 2017. 12. 20
조회수 4617 추천수 0


이정희1-.JPG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우이분소 앞에 봉황각이 있다. 천도교중앙총부건물을 50년 전 옮겨온 벽돌건물이 가려져 잘 보이지않는다. 그 건물 뒤로 돌아가니 인수봉에서 날아온 듯한 모습의 봉황처럼 우아한 한옥 기와집이 나타난다. 천도교 3대교조 의암 손병희(1861~ 1922)가 3·1운동 7년 전인 1912년부터 비폭력 평화 독립운동의 전사들을 양성한 곳이다. 의암이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으로 내려오던 천도교의 도통을 이어받은 ‘인일(人日)기념일’(24일)을 앞두고 천도교 이정희(72) 교령을 봉황각에서 만났다.

 

 의암성사-.jpg » 의암 손병희의암성사께서 7차례에 걸쳐 모두 483명에게 이신환성(以身換性) 수련을 시켜 3·1운동을 준비한 곳이지요”

 ‘이신환성’이란 ‘육신의 안락을 위한 삶을 성령의 참된 삶으로 바꾸라’는 의암의 가르침이다. 이곳에서 49일씩 수련으로 체험한 성령으로 무장한 이들이 전국으로 내려가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훗날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게 하는데 막중한 구실을 했다고 한다. 두 달 뒤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독립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칠만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이곳에서 싹을 키운 것이다.


 “해방 직후 백범 김구 선생도 귀국하자마자 이곳을 찾아 의암의 묘를 참배하면서 ‘3·1운동이 아니었으면 임시정부가 없었고, 의암이 없었으면 3·1운동도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두번이 참례했다.”

  자유당시절인 1959년 ‘손병희 선생 기념사업회’가 결성돼 이승만 대통령이 명예위원장을 맡고 조동식 동덕여대 총장이 위원장을 맡아 파고다공원에 동상을 세우고, 전기를 쓰고, 묘비를 제막했는데, 미처 기념관은 짓지못한채로 1965년 기념사업회가 해체됐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의암의 뜻을 기리고 유물을 제대로 전시할 공간마저 없다.  윤봉길, 안중근, 유관순, 백범이 기념관이 있는데, 중국의 국부인 손문이나 인도의 국부인 간디에 비견할 민족지도자인 의암의 기념관이 없다는 것이다.




첫수련-.jpg » 1912년 첫 49일 수련을 마친 뒤 제자들과 기념촬영한 의암 손병희(두번째 줄 가운데)


 더구나 서울시 유형문화재2호인 봉황각마저 지어진 지 100년이 넘어 틈이 벌어지고, 조금씩 기울어져 보전관리가 어렵고, 3·1운동 전에 수련하던 소봉황각도 사라져 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교령은 “봉황각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인근에 기념관을 지어 의암의 묘와 함께 성역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3.1운동 100돌을 앞에두고, 3·운동을 잇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정확히 인식하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의암기념관 건립의 청신호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초대 기념사업회 위원장이던 조동식선생의 손자인 조원영 동덕여대 이사장이 의암기념사업회를 열성적으로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 교령은 기념관 건립에 천도교가 앞장 서기보다는 조력 구실만 하고 싶어한다. 의암은 천도교인들의 스승이기도하지만 세계에서도 유례없이 여러 종교와 화합해 비폭력평화 독립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이자 동학 혁명가이자 시민운동, 여성운동, 어린이운동, 언론출판 교육운동을 이끈 근세의 선구자이므로 한 교단 차원이 아니라 범정부 범국민적 차원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창수도원-.JPG » 봉황각 앞에 있는 의창수도원

잡지-.JPG » 의암 당시 천도교가 펴낸 잡지들


 이 교령은 동학혁명과 3·1운동에서 외세에 맞서 천도(동학)교인들이 불쏘시개가 되었듯이 민족 통일을 위해서도 잘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북에서 노동당에 이어 제2 정당이 천도교청우당이다. 남북이상가족상봉단장으로도 온 류미영(지난해 별세)도 천도교청우당위원장이었다. 해방 때 북에만 천도교인이 200만명이었고, 여전히 북에서는 천도교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천도교를 통해 남북이 화해와 통일의 활로를 찾았으면 좋겠다.” 

 이 교령은 “최근 종교지도자들의 청와대 오찬에서 대통령께도  이 점을 말씀드렸다”며 “최덕신·류미영위원장 부부의 아들인 최인국씨가 이 정부 최초로 최근 방북허가를 받아 북에 다녀온 것을 교류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봉황각전경-.JPG » 봉황각 전경



봉황각사진-.JPG » 의암성사의 사진과 함께 의암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그림이 전시된 봉황각 내부


 봉황각은 이 교령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장소다. 그는 서울 홍릉에 있던 카이스트 전신 키스트(KIST)에 재직하던 33살 때 봉황각에 와 1주일간 시천주주문수련을 하면서 성령(한울님)을 체험한 것을 진짜 인생의 시작으로 본다. 독실한 천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깨달은’ 그 때가 참천도교인으로서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뒤로 한번도 ‘천도’를 의심하거나 좌고우면하지않고 달려왔다고 한다. 그는 1992년 카이스트가 대전으로 옮겨가 대전에 살며 계룡산에만 2천번을 올라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이면 새벽에 손전등을 들고 올랐다. 그는 그런 일심의 집중력을 이제 천도교의 핵심사상인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한울님)사상을 펼치는데 모으고 있다. 지난달 24일 인내천운동연합을 출범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니 사람을 한울처럼 공경하고 누구나 한울이니 차별 말고 대하라는 ‘인내천’보다 더한 인간존중과 평등이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이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한울처럼 섬겨라)이란 휘호를 자주 썼던 것도  그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사람 중심이다’, ‘사람이 먼저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말이다 ”

 이 교령은 “나라엔 경제적 지엔피(국민총생산)만 있는게 아니다”며 “한사람 한사람을 얼마나 존엄하게 대하는지로 가늠되는 ‘정신적 지엔피’를 높여 진정으로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